394화. 구유명작
풉.
희현은 가까스로 몸을 추스르더니 피를 토하며 멍하니 목진을 보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
“이럴 수는 없어!”
목진은 눈이 빨갛게 그을린 희현을 힐끗 보더니 두 손을 서서히 폈는데 체내에서 거대한 보라색 불기둥을 내뿜어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잇따라 주변의 온도가 부쩍 오르더니 목진의 아래쪽 대지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보라색 화염은 난폭하기 그지없었다.
또한, 목진의 체내에서 내뿜는 영력 파동은 점차 강해져 눈 깜짝할 사이에 진정한 지존경에 이르렀다.
이에 학생들은 다시금 깜짝 놀랐고 학원의 원장들도 안색이 어두워졌다. 2품 지존의 영력 파동을 내뿜는 목진에 비해 겨우 1품 지존에 이른 희현은 너무 왜소해 보였다.
“목진도 숨겨둔 필살기가 있었다니…….”
일부 원장들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것이 곧 오대원의 최정예 학생의 실력이었고 그들마저도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다.
심지어 태창 원장마저도 잔뜩 놀란 표정이었는데 금세 화색이 되었다. 반면 히쭉거리던 천성 원장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보라색 화염이 휘몰아치며 목진의 등에도 커다란 날개가 돋아났는데 까맣던 소년의 눈동자는 보랏빛이 되었고 새의 맑은 울음소리가 주위에 퍼졌다.
“이것이 지존의 힘이란 말인가…….”
목진은 서서히 주먹을 쥐며 체내의 무서운 힘을 마음껏 느꼈다. 지금의 그는 가볍게 손만 흔들어도 이 구역을 으깨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강했다.
이건 절대 신백난 따위가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렇게 많은 힘을 견뎌낼 수 있다니, 육신이 엄청나게 강해졌나 봐?”
구유작이 조금 놀란 듯하며 말했다. 그녀는 목진이 기껏해야 일품 지존만큼의 힘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다.
“네가 잠든 2년 동안 나도 열심히 수련했어.”
목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전보다 확실히 많이 늘긴 했네.”
구유작은 적어도 목진이 전처럼 자기보다 실력이 뒤처지지 않아 기분이 좋았다.
이에 목진은 가볍게 웃더니 서서히 고개를 들어 한기 어린 눈빛으로 희현을 쳐다보며 힘껏 발을 굴렀다. 보라색 화염이 요동치며 그가 사람들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때 소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결은 이쯤에서 끝내자.”
희현은 흠칫 놀라 바로 뒤로 물러났는데 보라색 화염으로 휘감은 손이 공간을 뚫고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나타나 녀석의 목덜미를 잡았다.
사람들은 아직 목진이 사라진 곳을 보고 있었는데 소년은 이미 희현의 목덜미를 잡고 있었다. 다들 뒤늦게 이를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목진은 희현의 목을 잡고 그를 번쩍 들었다. 이에 기세등등하던 녀석은 지금은 갓난아이처럼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했다.
아무도 전세가 다시 이렇게 기울어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목진을 철저하게 제압했던 희현은 1각도 안 되는 사이에 엄청난 실력 차이로 숨통을 내줬는데 소년의 반격이 훨씬 깔끔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놀란 건 갑자기 실력이 폭등한 목진의 실력이었다. 원고천룡매의 힘을 빌린 희현을 훨씬 뛰어넘어 그는 무서울 정도로 강해졌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한편, 희현은 한껏 상기된 얼굴로 미친 듯이 발버둥 치며 목진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애썼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그는 너무 화가 났다. 여태껏 동년배를 훨씬 뛰어넘는 실력으로 사람들의 존경 어린 눈빛을 받으며 살아온 그가 지금처럼 낭패를 당하다니.
이건 자존심이 강한 희현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너를 찢어 죽여버릴 거야!”
희현은 포효하며 웅장한 영력을 끌어올려 목진을 공격하려 했지만 소년이 가볍게 손을 튕기자 보라색 화해가 휘몰아쳐 그의 웅장한 영력을 순식간에 녹여버렸다.
슉!
희현은 예리한 손끝으로 소년의 눈을 찌르려 했는데 목진이 먼저 그의 가슴팍을 힘껏 때렸다. 이에 녀석은 가슴이 움푹 파인 채 미친 듯이 피를 토하며 다시 뒤로 튕겨 나갔다.
퍽!
희현이 아직 바닥에 닿지도 않았는데 목진은 귀신처럼 그의 앞쪽에 나타나 주먹을 힘껏 휘둘렀다. 보라색 화염이 들끓는 주먹에 주위 공간마저 잔뜩 일그러졌다.
목진의 엄청난 주먹에 맞은 희현은 순간 온몸이 빨갛게 변했고 곧 불타오를 것만 같았다.
풉.
그는 피를 토하며 무너진 석대에 꽂혔고 피를 철철 흘리며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허공에 떠 있는 목진을 노려봤다.
“이럴 수는 없어. 목진이 무슨 수로 이토록 강력한 힘을 얻은 거지!”
곧 승리할 것 같았던 희현은 엄청난 변고가 당최 받아들여지지 않아 온몸을 파르르 떨며 중얼거렸다.
“이 힘도 녀석의 것이 아니야. 그리고 녀석은 육신이 강해 너보다 받아들이는 힘이 많은 것뿐이야.”
희현의 마음속에서 사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넌 나의 힘을 빌려도 겨우 1품 지존인데 녀석은 2품 지존의 힘을 얻었으니 당연히 상대가 안 되지.”
“난 반드시 목진을 죽이고 싶어, 어떻게든 죽일 거야!”
희현은 혈안이 되어 말했다.
“그럼 육신을 나한테 넘겨. 저따위 녀석쯤은 나한테 식은 죽 먹기야.”
원고천룡매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평소 같았으면 당연히 거절했을 텐데 허공에서 무덤덤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목진을 보니 화가 잔뜩 치밀어올랐다.
지금쯤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학원 대회 1위를 축하받아야 마땅했는데 그는 지금 무기력하게 석대에 누워있는 것이 못마땅했다.
희현은 절대 목진과의 싸움에서 패배할 수 없었다!
그는 반드시 녀석을 쓰러뜨려야 했다!
“죽여줘!”
희현이 한을 품고 말했고, 원고천룡매는 호탕하게 웃으며 답했다.
“하하하, 원하는 대로 해주지.”
이에 희현이 천천히 눈을 감자 몸에서 흐르던 피가 어느새 멈췄고 무질서해졌던 영력 파동도 서서히 안정되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그의 눈빛에는 음산한 기운이 물씬 풍겼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며 익숙하면서도 낯선 육신에 적응하며 피식 웃었다.
“드디어 이 몸을 지배할 수 있게 되었구나…….”
그는 고개를 들어 목진을 쳐다보며 히쭉 웃었다.
“이것도 다 네 덕분이야.”
이에 목진은 인상을 찌푸리며 희현을 쳐다봤다. 녀석 주위에 강력한 영력 파동은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그 눈빛에서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 서 있는 희현은 그가 알고 있던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넌 원고천룡매지?”
“똑똑한걸.”
목진의 질문에 희현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난 희현에게 너를 죽여주겠다고 약속했어. 그러니까 조용히 죽어줘.”
쿵!
녀석이 말을 마치기 무섭게 목진은 장풍을 쐈다. 보라색 화염이 요동치는 장풍이 상대방에게 향했다.
“너는 지존의 힘만 있을 뿐, 진정한 지존이 되려면 아직 멀었어.”
희현이 목진의 공격에 무덤덤하게 웃으며 가볍게 손을 내밀자 보라색 화염이 요동치는 장풍은 바로 무산되었다.
그런데 구경꾼들은 이러한 반전에 익숙해진 듯 아무렇지 않았다.
한편, 목진은 한껏 정색한 채 뒤로 물러났다. 희현은 힘이든 그 힘에 대한 제어력이든 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는 이제 진정한 지존이 되었다.
“넌 절대 내 손에서 벗어나지 못해.”
목진의 뒤쪽 공간이 갑자기 일그러지더니 희현이 나타나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진정한 지존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알려주지.”
녀석이 두 손가락을 굽히며 허공에 찍자 암자색 음산한 기운이 가득 찬 영력이 휘몰아쳤다. 그건 전보다 훨씬 짙었고 영성까지 있어 진짜 희현이 사용했던 영력의 힘을 훨씬 뛰어넘었다.
“검이 되어라!”
이에 암자색 영력은 곧바로 실체나 다름없는 보라색 검으로 변해 공간을 가르며 신속하게 목진의 머리를 겨눴다.
이에 목진은 바로 뒤로 물러나며 인법을 바꿔 웅장한 영력으로 공격을 개시했다.
퍽! 퍽!
그런데 검은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모조리 없애버리며 돌진했다. 이에 목진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보라색 검은 그다지 무서워 보이지 않았지만 극강의 위압감을 내뿜어 몸을 꼼짝할 수가 없었다.
슉!
보라색 검이 목진 눈앞까지 다가오자 뒤쪽에서 갑자기 하얗고 가녀린 손이 나타나 손가락을 튕기자 보라색 화염이 뿜어져 나와 검이 바로 사라졌다.
희현은 깜짝 놀라 한기 어린 눈빛으로 목진의 뒤쪽을 바라봤고 구경꾼들도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소년의 뒤에 나타난 예쁘장한 여인을 바라봤다. 아무리 변고가 많은 대결이라지만 갑자기 나타난 여인의 모습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건 또 누구지?”
사람들 눈앞에 나타난 여인은 검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가느다란 허리에 길쭉한 다리를 지녔고 야성미가 넘쳐 보였다.
그녀가 나타나자 맑은 새의 울음소리와 함께 뒤쪽에 보라색 화염이 일며 날개를 퍼덕이는 흑조가 흐릿하게 보였다.
“저건 구유작이야!”
광좌에 앉아있던 원장 중 한 명이 깜짝 놀라 말했다.
“구유작도 본체라니, 목진의 체내에도 엄청난 영수가 있었어. 요새 젊은이들은 정말 대단하군.”
“그런데 목진과 구유작도 기생하는 관계란 말인가?”
* * *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던 낙리와 온청선도 조금은 놀란 표정으로 낯선 미녀를 쳐다봤다.
“저건 누구야?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인데 설마 목진이 몰래 여인을 숨겨둔 거 아니야?”
온청선은 목진 뒤쪽에 서 있는 소녀를 유심히 바라봤다. 남다른 외모와 기품에 그녀마저도 놀랐고 야성미 넘치는 매력에 매료되었다.
“저 여인은 아마 구유작일 거야. 목진과 혈맥을 연결한 사이인데 지금까지 잠들어 있었어.”
“혈맥을 연결했다니, 구유작처럼 오만한 영수가 왜 인간과 혈맥을 연결했을까? 목진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런데 구유는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무시하고 희현을 쓰윽 훑으며 말했다.
“오늘 일은 대충 넘기려고 했는데 네가 날뛰는 모습이 너무 거슬려서 안 되겠어. 그렇게 다른 사람의 대결에 끼어들고 싶어 하면 내가 직접 상대해줄게.”
“구유작이었군.”
희현은 구유를 힐끗 보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
“구유작의 수명으로 보면 넌 아직 유년 시기 아니야?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감히 나한테 덤벼?”
원고천룡매는 영수방에서 순위가 구유작보다 높았기에 그녀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넌 말도 안 되는 영수방만 믿고 그렇게 날뛰는 거야?”
구유는 원고천룡매의 마음이라도 읽은 듯 피식 웃으며 손에 보라색 화염을 모아 녀석을 노려봤다.
“그리고 난 인제 더는 구유작이 아니라…….”
구유의 눈동자에서 이글거리던 보라색 화염이 점차 짙어지며 엄청난 위압감을 형성해 천지마저 어두워졌다.
“구! 유! 명! 작이야!”
이건 진정한 신수의 위압감이었다!
쿵!
허공에 떠 있는 구유가 이룬 위압감에 주위가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천지의 영기는 폭동을 일으켰다.
그 엄청난 위압감에 광좌에 앉아있던 원장들도 다들 조금씩 안색이 어두워졌다. 특히, 대수롭지 않게 두 소년의 대결을 보고 있던 원장들은 검은 옷을 입은 소녀가 구유명작이란 말에 화들짝 놀랐다.
“무려 구유명작일 줄이야…… 저렇게 어린 나이에 진화하는 데 성공했다니, 정말 엄청나군.”
“사품 지존의 구유명작이라…… 대단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