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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395화 (394/1,000)

395화. 만다라 꽃

성령원의 천성 원장은 아무렇지 않은 듯 보였지만 의자를 잡은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태창 원장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는데 이내 화색이 되어 중얼거렸다.

“녀석도 참, 사람을 놀라게 하는 데는 도가 텄군.”

희현의 육신을 차지한 원고천룡매도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정녕 신수가 된 거야?”

원고천룡매는 구유의 모습에 괜히 질투가 났다. 신수가 되는 것은 모든 영수의 꿈이었다. 영수의 수련에서 진화는 특수한 경로로 혈맥이 더없이 평범해도 진화할 기회가 주어져 대천세계에도 엄청난 고난을 겪고 진화에 성공해 이름을 날린 존재가 수두룩했다.

그렇다고 원고천룡매의 혈맥이 평범한 것은 아니었으나 진화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구유도 여러 번의 실패를 거쳐서야 겨우 성공했고 그 어려움은 겪어본 자만 알 것이다.

원고천룡매도 여러 번 시도했지만 지금껏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그 역시 뇌겁을 건너려고 했지만 하마터면 잿더미가 될 뻔해 더는 감히 도전하지 못했다. 뇌겁의 위력은 영수의 실력에 정비례하여 녀석의 실력이 오를수록 그 위력은 더 강해진다.

더구나 겁난은 아무도 도와줄 수 없어 스스로 건너야만 했다.

이에 원고천룡매는 진화에 성공한 구유가 질투가 났다. 아직 성년도 안 된 소녀가 이런 성과를 이뤘다는 것은 그를 훨씬 뛰어넘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지금 구유가 형성한 위압감에 영혼마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건 혈맥의 위압감으로 강자가 약자에게 풍기는 압박이었다.

영수계에서 신수는 최강의 존재나 다름없었다.

“내가 너라면 바로 도망갈 거야.”

구유는 존귀한 여왕이 비굴한 천민을 보듯 무덤덤하게 원고천룡매를 보며 말했다.

이에 원고천룡매는 빨갛게 상기된 눈으로 구유를 노려봤다. 비록 상대방의 위압감이 엄청났지만 용족의 혈맥을 이어받은 그 역시 절대 평범하지 않은 혈맥으로 계승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다.

그는 싸워보지도 않고 이렇게 물러날 수는 없었다. 또한 구유가 진화에 성공했다고는 하지만 실력이 비슷해 정말 싸운다고 해도 자신이 크게 뒤처지지는 않을 거라 여겼다.

아직 성년도 되지 않은 구유에 비해 원고천룡매는 긴 세월을 살며 생사를 오간 전쟁을 수도 없이 치렀다.

“내가 여태껏 얼마나 많은 일을 겪었는데 너 같은 어린 녀석의 말에 겁을 먹을까? 넌 아직 그럴 자격이 없어.”

원고천룡매가 살기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네가 정녕 나와 싸울 거라면 결과는 절대 네 생각대로 되지 않을 거야.”

원고천룡매의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보랏빛이 휘몰아치며 방대한 영수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는 원고천룡매의 본체였다.

그의 본체가 나타나자 엄청난 영력 파동이 일어 천지가 흔들렸다.

“천룡소(天龍嘯)!”

원고천룡매가 입을 쩍 벌리자 주위가 바로 어두워졌고 커다란 입에서 무서운 영력을 내뿜으며 울부짖었다. 음파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용의 위압감을 형성해 구유가 형성한 위압감을 물리쳤다.

녀석의 음파 천룡에는 진정한 천룡의 기운이 깃들어있었다.

원고천룡매는 진화에 성공한 구유를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진정한 신수를 상대해야 하는지라 전력을 다해 공격했다.

구유는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강적이었다.

용의 포효에 천지가 뒤흔들렸다.

천룡은 방대한 몸을 이끌고 공간을 가르며 구유에게 향했는데 천지가 그 힘에 부서질 것 같았다.

이에 구유는 차가운 눈빛으로 공간을 가르며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원고천룡매를 보더니 구유명작의 커다란 머리 위에 올라타 발을 가볍게 굴렀다.

잇따라 새의 맑은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구유명작이 입으로 보라색 화해를 내뿜자 구유는 이를 흡수하고 다시 내뱉었다. 그러자 자금색 화염은 한 갈래 불줄기가 되어 하늘을 가르며 상대방에게 향했다.

그 엄청난 고온에 그 구역은 순식간에 더워졌고 영력마저 비등했다.

“불사지염(不死之炎).”

구유의 나지막한 소리와 함께 새의 울음소리가 더 맑고 거세지더니 자금색 불줄기는 온몸에 불이 활활 타오르는 정교한 작은 새가 되어 날개를 퍼덕이며 하늘을 날아다녔다.

자그마한 새는 수천 장도 넘는 방대한 천룡과 부딪쳤는데 크기가 어마어마하게 차이 나는 그들의 대결에 다들 화들짝 놀랐다.

서로 부딪치는 순간, 작은 새는 한 줄기 불광이 되어 파죽지세로 천룡의 방어막을 뚫고 녀석의 몸을 가로질렀는데 자금색 화염에 온몸이 불타오른 천룡은 순식간에 위엄을 잃었다.

원고천룡매는 처량하게 비명을 지르며 잔뜩 화가 나 소리쳤다.

“설마 불사화란 말인가?”

불사화는 상고의 불사조한테만 주어지는 것으로 이를 얻으면 죽지도 소멸되지도 않아 다들 꿈에도 그리는 신물이었다. 하지만 너무 난폭해 이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조금만 닿아도 지존해마저 타서 없어질 정도였다.

이러한 불사화는 가장 순수한 불사조 혈맥을 물려받은 신수라야 진화할 수 있었다. 원고천룡매는 구유가 이를 얻은 것에 깜짝 놀란 것이다.

그때 구유가 무덤덤한 표정으로 허공에 손가락을 누르자 자금색 불줄기 열 갈래가 서로 얽히고설켜 무서운 파동을 내뿜으며 원고천룡매를 향해 돌진했다.

이에 녀석은 바로 뒤로 물러났고 날개를 퍼덕이어 수많은 보라색 용린으로 앞쪽에 커다란 방패를 만들었다.

그러나 구유의 공격에 용린으로 만든 방패는 맥없이 무너졌고 결국 원고천룡매의 거대한 체구를 사정없이 때렸다.

퍽!

원고천룡매는 너무 괴로워 신음을 내뱉었고 사방에 피를 튕기며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자금색 화염에 잿더미가 되었다.

녀석은 드디어 구유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구유도 그와 똑같은 사품 지존이지만 실제 전투력은 엄청났다.

이에 원고천룡매는 희현의 육신을 조종해 패배를 인정하려고 하였다. 학원 대회에서 일단 패배를 인정하면 구유와 목진이 그를 죽이지 않을 거란 걸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곁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목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천부적 재능이 뛰어나고 술수를 잘 두는 희현이 원고천룡매의 도움까지 받으면 앞으로 얼마나 더 성장할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이대로 후환을 없앨 기회를 놓치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목진은 절대 그런 멍청한 짓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목진은 바로 구유명작의 방대한 몸에 올라타 두 눈을 감고 체내의 기해에 있는 신비로운 검은색 종이를 소환했다.

“구유, 네 힘을 한 번만 더 빌릴게!”

목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엄청난 힘이 몰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신비로운 검은색 종이도 점차 격렬하게 떨렸고 어두운 표면에 보라색 무늬가 나타나더니 어느새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그때, 목진은 눈을 번쩍 뜨고 연꽃을 그리듯 신기한 인법을 그렸는데 보랏빛이 폭발하며 지극히 아름답고 요염한 보라색 만다라 꽃이 사람들 눈앞에 나타났다.

“불후의 봉인(不朽封印)!”

목진이 허공에서 손을 내리찍자 커다란 보라색 만다라 꽃은 파르르 떨며 사라졌다가 원고천룡매의 방대한 몸에 나타났다.

이에 원고천룡매는 안색이 잔뜩 어두워졌다.

아름답고 요염한 만다라 꽃이 활짝 피며 영롱한 보랏빛을 발하자 그곳 공간은 유난히 심하게 일그러졌다.

그러다 보랏빛이 광막을 형성해 원고천룡매의 방대한 몸을 감싸자 녀석은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신비로운 꽃을 바라봤다. 그는 순간 생명의 위협을 느꼈는데 이는 구유가 나타났을 때보다 훨씬 강력했다.

쿵!

하여 녀석은 커다란 날개를 퍼덕이며 보라색 광막을 뚫고 나오려고 애썼다.

그 무서운 충격에 보라색 광막에 파문이 일자 목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다시 인법을 바꿨다.

이때, 요염한 만다라가 갑자기 보라색 덩굴을 내뱉었는데 수많은 부적이 모여 만들어진 것 같이 오묘한 덩굴에 예리한 가시가 잔뜩 나 있었다.

슉! 슉!

보라색 덩굴은 원고천룡매를 빠르게 휘감았다.

끼익!

이와 동시에, 원고천룡매는 처량하게 울기 시작했고 방대한 몸에서 내뿜던 무서운 파동은 놀라운 속도로 사그라들었다. 꼭 무언가에 제대로 제압당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를 본 구유는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야말로 신비로운 만다라 꽃의 위력을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처음에 목진의 체내에 숨어들었다가 큰코다친 기억이 있었다.

한편, 실력이 폭등한 목진이 구유의 힘까지 빌려 신비로운 만다라 꽃을 소환했으니 이제 원고청룡매는 제대로 걸려든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쿵! 쿵!

난폭한 영력 파동이 미친 듯이 폭발하였다. 잔뜩 불안해진 원고천룡매가 미친 듯이 발버둥 쳐 파동이 일었는데 제아무리 애를 써도 절대 보라색 덩굴의 구속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가 움직일수록 덩굴의 가시가 몸에 더 깊숙이 박혀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봉인!”

목진이 정색하며 인법을 바꾸며 외치자 수많은 덩굴이 원고천룡매를 끌고 활짝 피어난 만다라 꽃으로 돌아갔다.

원고천룡매가 끌려가는 속도는 비록 느렸지만 그가 발버둥 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내가 졌어. 다시는 너와 희현 사이에 끼어들지 않을게!”

점차 가까워지는 신비로운 만다라 꽃에 어느새 사색이 된 원고천룡매가 황급히 입을 열었지만 목진은 태연하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제야 패배를 인정하다니, 너무 늦었다.

또한, 목진은 이런 중요한 시기에 그따위 말 때문에 마음이 약해질 자가 아니었다.

보라색 덩굴의 속도는 점차 빨라져 드디어 녀석을 보라색 만다라 꽃 속에 가뒀는데 요염한 꽃의 꽃잎은 하나, 둘씩 모여 녀석의 몸을 완벽히 감쌌다.

잇따라 꽃잎에 오묘하기 그지없는 보랏빛의 무늬가 나타나 신기한 봉인처럼 원고천룡매의 모든 파동을 그 속에 묶었다.

쿵! 쿵!

꽃은 가끔 격렬하게 떨렸는데 이는 원고천룡매가 최후의 발악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 꽃을 뚫고 나오지는 못했다.

사람들은 허공에 떠 있는 거대하고 요염한 꽃봉오리를 멍하니 쳐다봤다. 아무도 위풍당당했던 원고천룡매가 이토록 무기력하게 당할 줄 몰랐다.

그는 실력이 무려 4품 지존에 이른 엄청난 영수였다!

현장에 있던 학원 원장들도 안색이 조금 어두워진 채 허공에 떠 있는 소년을 쳐다봤다.

이 소년은 절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때 목진이 손을 휘익 젓자 커다란 꽃봉오리가 되돌아왔고 구유명작이 이를 꿀꺽 삼켰다.

목진의 실력으로 구유의 힘을 빌려 원고천룡매를 봉인한다고 해도 이를 제련해 없앨 수는 없었기에 구유가 직접 나서야만 했다.

구유의 실력과 불사화의 위력으로 원고천룡매 따위를 해결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한편, 구유명작이 꽃봉오리를 삼키자 아래쪽에서 눈을 꼭 감고 있던 희현이 눈을 번쩍 뜨고 사색이 되어 피를 토했다.

비록 원고천룡매가 육신을 조종했지만 희현도 모든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이에 그는 화들짝 놀라 허공에 떠 있는 목진을 쳐다봤다. 녀석이 4품 지존의 원고천룡매를 쓰러뜨렸다니!

희현은 원고천룡매와의 연계가 전부 끊어진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녀석이 완전히 목진한테 구속되었다는 것을 뜻했다.

“이럴 수가…….”

희현은 한껏 창백해진 얼굴로 중얼거렸는데 이제 기세등등했던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고 눈빛은 흐릿해졌다.

그는 자신이 패배할 거라는 사실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가 지금껏 수많은 이들을 뛰어넘고 목진마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은 그가 지니고 있던 필살기 때문이었다. 이는 동년배 중 그 누구든 절대 상대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한 수였다!

하지만 현실은 그에게 엄청난 타격을 안겨주었다.

영로에서 희현의 모함으로 쫓겨났던 소년은 다시 그를 뛰어넘어 진정한 강자가 되었다.

희현은 구유명작의 방대한 몸에 올라타 있는 소년을 쳐다봤다. 온몸에서 눈부신 빛을 발하는 목진은 어느새 이 구역에서 가장 눈부신 존재가 되었다.

그는 자신이 누려야 마땅할 영광을 한 몸에 안은 목진한테 질투가 났고 그가 미워 견딜 수가 없었다.

이대로 물러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목진은 살기 가득한 눈으로 희현을 노려보더니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졌다.

슉!

그 모습에 희현은 순간 아찔했다. 그는 목진이 자신을 죽이려는 걸 알아챘다.

“내가 졌…….”

희현은 안색이 한껏 어두워진 채 이를 악물고 말하려 했다. 조금만 더 주저했다가는 정말 목진의 손에 죽을 수도 있었다.

목진과의 대결에서 패배한 것은 자존심이 상했지만 여기서 목숨까지 잃고 싶지는 않았다. 체면은 다시 되돌릴 수 있지만 목숨은 절대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살아만 있으면 언젠가 목진한테 복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목진은 희현 못지않게 그를 잘 알고 있었고, 절대 그에게 그럴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다.

목진은 희현이 말을 채 내뱉기도 전에 귀신같이 그의 앞쪽에 나타나 두 손가락에 웅장한 영력을 실어 녀석의 가슴팍을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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