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6화. 우승자
가슴이 뚫린 희현은 피를 튀기며 뒤로 멀리 물러났는데 목진은 바로 다가가 장풍을 쐈다.
“어디서 감히!”
그때 성령원의 천성 원장이 화가 난 듯 외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천지가 순간 어두워지며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위압감이 형성되었다. 이에 목진은 꿈쩍도 할 수 없었다.
“흥!”
잇따라 태창 원장도 기합을 넣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천성 원장을 노려봤다.
이에 목진은 그 틈을 타 바로 희현을 때렸는데 뇌광이 번쩍이는 힘은 난폭하기 그지없었다.
퍽!
희현의 가슴팍에 뇌광이 번쩍이더니 움푹 파였고 부서진 내장은 흘러나온 채 멀리 튕겨 나갔다. 그러나 눈빛만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슉!
그는 허공에 떠 있던 구유명작이 갑자기 입을 쩍 벌려 자금색 화염을 내뿜는 것을 보고는 두려웠다.
희현은 엄청난 고온이 느껴지자마자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었는데 그 자리에 미세한 빛이 반짝이며 나타났다. 그것은 희현의 신백으로 육신이 파괴되긴 했지만 일단 신백만 무사하면 언제든 부활할 수 있었다.
슉.
그런데 그때 또 한 갈래의 보라색 화염이 미세한 빛을 공격하자 주위에 무서운 영력이 난폭하게 퍼지며 폭발하였고 처량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네 이놈!”
천성 원장이 포효하며 손을 휙 젓자 영력 홍수가 순식간에 생성되어 요동치는 영력 안으로 들어가 거의 사라지고 있던 미세한 빛을 구했다.
천성 원장은 엄청난 타격을 입은 희현의 신백을 보더니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가 애써 희현을 부활시킨다고 해도 오늘 입은 상처는 절대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녀석이 수련한다고 해도 지금과 같은 성과를 내기는 불가능했다.
“너희가 감히!”
천성 원장은 안색이 잔뜩 어두워진 채 목진과 구유명작을 쳐다봤는데 순간 그 구역이 음산한 기운으로 가득 차 으스스해졌다.
천성 원장의 포효에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것 같았고, 천지의 영력이 요동치며 무서운 위압감을 형성했다.
성령원의 원장인 천성 원장은 포효 한 번만으로도 원고천룡매보다 훨씬 뛰어난 실력을 선보였다.
한편, 그 무서운 위압감의 중심에 서 있던 목진은 곧 무너질 것처럼 안색이 썩 좋지 않았다.
슉.
그때 허공에 떠 있던 구유명작이 신속하게 작아져 구유로 돌아오더니 목진의 앞에 나서서 차가운 눈빛으로 천성 원장을 노려보며 그 위압감을 대신 막아줬다. 그녀는 상대방의 실력이 엄청난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전혀 두렵지 않았다.
“흥, 천성 원장이 신분에 맞지 않게 학생을 상대하려 하다니. 우리 북창령원을 너무 무시하는 것 아닌가?”
태창 원장이 천성 원장의 맞은편에 서서 그 위압감을 모조리 받아내며 말했다.
이에 학생들은 이내 혀를 끌끌 찼고 다른 학원의 원장들도 감히 끼어들지 못했다. 천성 원장과 태창 원장은 이곳에 있는 이들 중에서도 최정예라 겁 없이 덤빌 사람은 없었다.
“태창 원장, 희현은 이미 대결에서 패배했는데 계속해서 죽이려 하다니, 너무 잔인한 거 아닌가?”
천성 원장은 안색이 잔뜩 어두워진 채 물었다.
“일전에 희현도 목진을 그런 식으로 상대하지 않았나? 그리고 이런 대결은 워낙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한데 나라고 알았겠나?”
태창 원장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규칙에 따르면 상대방이 패배를 인정한다고 말하기 전까지는 대결은 계속 진행되게 되어 있네. 자네가 갑자기 끼어들어 규칙을 어겼으니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걸세!”
“목진이 밀어붙이지만 않았어도 희현은 이미 패배를 인정했을 것이네!”
천성 원장이 멈칫하다가 내뱉은 말에 태창 원장이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천성 원장, 이건 학원 대회의 1위를 겨루는 자리지. 아이들 장난이 아니네!”
이에 천성 원장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고 그의 뒤쪽 공간도 함께 일그러졌다. 태창 원장의 말에 잠시 말문이 막힌 그는 영력을 끌어올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억지는 그만 부리시게. 난 목진의 출전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고 생각하네.”
“절대 그럴 수는 없네!”
태창 원장도 바로 정색하자 뒤쪽 공간이 잔뜩 일그러지며 천 장 정도 되는 커다란 그림자를 만들었다.
짙푸른 색의 커다란 그림자가 형성한 엄청난 위압감에 주위의 공간이 파르르 떨렸다.
“태창 원장, 나와 힘이라도 겨뤄보려는 건가?”
천성 원장이 피식 웃더니 그 주위에 성광을 발하는 그림자가 나타났는데 눈부신 빛이 공간 곳곳을 비췄다.
지존 법신을 소환한 두 사람이 이곳에서 싸움이라도 벌이면 이 자그마한 공간은 절대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들의 대치에 현장에 있는 학생들은 엄청난 위압감에 숨조차 쉬기 어려워졌다.
목진은 허공에 떠 있는 두 그림자를 진지하게 쳐다봤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지존 법신으로 일단 소환하면 가벼운 손짓 하나만으로도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질 것이다.
“이렇게 많은 학생들을 앞에 두고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다니, 두 분은 오대원의 명성이 아무렇지도 않나 보지?”
그때 만봉령원, 무령원, 청천령원의 세 원장이 드디어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고 무서운 위압감은 그제야 사라지기 시작했다.
“태창 원장, 아직 좋아하기에 너무 이른 것 같네. 석대에 북창령원 학생만 남아있는 건 아니지 않나?”
천성 원장이 점차 마음을 가라앉히며 물었다.
이에 아래쪽에 서 있던 온청선은 낙리와 함께 목진한테 다가가 생긋 웃으며 답했다.
“천성 원장님, 제가 목진과 1위를 겨룰 만큼 실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전 그가 1위를 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온청선은 천성 원장이 만봉령원의 당추 원장을 이용하려는 속셈을 꿰뚫어 봤다. 하여 당추 원장은 소녀를 흘겨보더니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만봉령원은 올해 학원 대회 1위를 따낼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규칙대로 합시다.”
천성 원장은 순간 입가가 파르르 떨렸지만 말문이 막혀 자리에 돌아가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오늘, 아무도 목진이 1위를 따내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전 빠질게요.”
온청선이 생긋 웃으며 손을 들고 말하자 낙리도 함께 손을 들었다. 결국 전장에 유일하게 남은 목진이 자연스레 학원 대회의 1위가 되었다.
이에 천성 원장을 제외한 다른 원장들은 인정하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낙리와 온청선까지 태도를 밝혔으니 이번 학원 대회의 최종 우승자를 선포하겠다. 그는 바로 북창령원의 목진이다!”
당추 원장의 점잖은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주위에 순간 정적이 흐르더니 하늘이 떠나갈 듯한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이에 공간 전체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시무룩해진 일부 성령원 학생들만 제외하고 다들 경외의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보며 진심으로 그의 승리를 축하해 주었다.
목진은 그들과 같은 학원 출신은 아니었지만, 그가 선보인 놀라운 실력에 진심으로 탄복했다.
그는 이번 학원 대회에서 가장 눈부신 존재일 뿐만 아니라 최근 백 년 이래 선출된 1위 중 최강자일 것이다.
“목진 형, 멋져요!”
그중에서 북창령원 학생들이 가장 기뻐했다. 그들은 한껏 상기된 얼굴로 목진의 이름을 외쳤다.
목진의 승리는 북창령원 창립 이래, 학원 대회에서 얻은 제일 좋은 성적이었다.
만봉령원 무리에 서 있던 당천아도 오늘의 주인공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3년 전에 비해 월등히 성장한 소년은 놀라운 잠재력으로 조금씩 눈부신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이에 그녀는 진심으로 기뻤지만, 옆에 서 있는 훌륭한 여인들의 모습에 시무룩해졌다.
목진은 더는 당천아를 누이라 부르며 손을 꼭 잡고 그녀만 따라다니던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그는 앞으로 더 뛰어난 존재가 되어 대천세계에 이름을 날리는 진정한 강자가 될 것이다. 당천아는 목진이라면 반드시 해낼 것이라 믿었다.
“목진아, 힘내. 삼촌께서 지금 너의 모습을 보면 분명 기뻐하실 거야. 넌 우리 북령경의 자랑이야.”
당천아는 주먹을 꽉 쥔 채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 * *
석대에 서 있던 목진은 엄청난 환호에 그제야 긴장을 풀었는데 순간 몸이 휘청거렸다.
이에 곁에 서 있던 두 여인이 그를 부축하려고 손을 뻗었다가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멈칫하였다.
다행히 목진은 안색이 조금 창백해졌을 뿐 쓰러지지는 않았다. 희현과의 대결로 영력이나 체력 소모가 엄청났던 모양이었다.
그때 구유가 낙리와 온청선을 힐끗 보더니 조용히 목진의 체내로 들어갔다.
“1위가 된 걸 축하해.”
온청선이 방긋 웃으며 한 말에 목진은 씁쓸하게 웃기만 하였다. 그는 지금 말할 힘조차 없었다.
그러한 목진의 모습에 마음이 아픈 낙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용기 내어 소년의 손을 잡았다. 그제야 조금이나마 정신을 차린 목진도 낙리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그래, 고마워!”
눈앞의 광경에 부러워진 북창령원 학생들이 아우성치자 낙리는 부끄러워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이번엔 약속을 지켰네? 축하해.”
낙리는 수많은 사내의 부러운 눈빛을 뒤로 한 채 용기 내어 목진한테 말을 건넸다.
목진은 이날을 위해 영로에서 떠난 그 순간부터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소년이 이룬 성과만 봤지만 낙리는 그가 그것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고 있었다.
“낙리야…….”
목진은 소녀의 유리처럼 맑은 눈동자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들며 말했다.
“왜?”
“날 믿지? 언젠가 꼭 절세의 강자가 되어 너를 지켜줄 거야.”
이에 소녀의 아름다운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나타났다.
“기다리고 있을게.”
낙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목진의 손을 꼭 잡았다.
드디어 학원 대회의 최종 우승자가 나타나자 긴장감 가득했던 분위기가 조금 완화되었다. 변수가 많았던 결승전 때문에 마음을 졸였던 사람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목진과 희현이 계속 싸웠다면 다들 더는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비슷한 나이에 자기보다 실력이 훨씬 뛰어난 사람들의 대결을 보는 것은 결코 기쁜 일만은 아니었다.
학원 대회가 끝나자 석대와 각 학원 구역을 덮었던 광막도 사라졌다. 마무리를 짓기 전에 학생들을 위해 보다 많은 자유를 부여한 것이다.
그때, 높이 걸려있던 커다란 심판지경이 천천히 회전하더니 그 속에 갇혔던 사람들을 뱉어냈다.
심창생, 이현통, 소훤도 바로 목진한테 다가와 엄지를 척 내밀었다. 그들은 비록 심판지경에 갇혔지만 밖에서 일어난 일을 전부 보고 있었다.
이에 목진은 히쭉 웃더니 돌아서서 느긋하게 기지개를 켜는 온청선을 바라봤다.
“바로 만봉령원으로 돌아가는 거야?”
“그래.”
온청선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학원 대회가 끝나면 이곳은 곧 닫힐 것이고 학생들도 각자 학원으로 돌아가 다시 교류회 때나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왜, 벌써 내가 보고 싶어?”
온청선이 히쭉 웃으며 목진을 바라봤다.
“그럼 우리 만봉령원으로 와. 우리 학원은 비록 여학생만 받아들이지만 학원 대회의 최종 우승자니까 특례로 들일 수 있을 거야.”
이에 목진은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걱정 마, 앞으로 다시 만날 기회가 있을 거야. 그런데 그때는 아마 지금의 신분이 아니겠지?”
온청선이 머리를 쓸어넘기며 한 말에 목진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쯤이면 목진은 아마 실력을 더 끌어올리기 위해 북창령원을 떠났을 것이고 온청선도 만봉령원에 있지 않을 것이다.
“목진아, 다음번에 만났을 때는 좀 더 의기양양한 모습이었으면 좋겠어. 넌 학원 대회의 최종 우승자잖아? 대천세계에 비하면 오대원은 비록 먼지처럼 미세한 존재지만 네가 지금의 모습을 잃으면 정말 실망할 거야.”
온청선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지만 전혀 농담 같지 않았다.
목진은 앞으로 갈 길이 절대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적어도 북창령원에서는 수련에만 집중할 수 있지만 대천세계에 발을 들이면 그가 상대해야 할 것이 점차 많아져 훨씬 험난해질 것이다.
비록 지존경이 바로 코앞이라 해도 이는 진정한 강자가 되기 위한 길의 시발점일 뿐이었다.
다만, 강자란 천부적 재능보다 무슨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 가장 중요한 법이었다. 여태껏 수많은 일을 겪어오면서 목진이 단 한 번이라도 마음이 흔들렸었다면 절대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