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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397화 (396/1,000)

397화. 학원 대회의 끝

“그럼 어디 지켜봐.”

목진이 고개를 들어 온청선을 보며 속삭이자 소녀는 생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가서 네가 나를 실망시키지 않으면, 내 마음을 움직일 수도 있을 거야.”

온청선이 낙리와 목진을 흘겨보며 말하자 낙리는 무안한 듯 소녀를 힐끗거렸다.

“목진, 축하해.”

그때 무령원의 무령, 무영영, 온불승 등이 축하하러 다가왔다. 그는 화색이 되어 그들을 맞이하였다. 학원은 이들의 수련에 있어 잠시 머무르는 곳일 뿐이라 여기서 헤어지면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날지 아무도 몰랐다.

또한, 그때가 되면 지금의 순수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여 목진은 많지 않은 친구들이 애틋하게 느껴졌다.

무령, 온불승 등도 눈빛이 조금 복잡했다. 다들 이번 학원 대회의 1위는 가장 유명한 희현이 아니면 영로의 영관자였던 온청선이 될 거라 예상했었다.

그런데 목진이 심판지경에서 다시 나와 희현을 쓰러뜨리는 모습을 보니 소름 끼칠 정도로 무서웠다. 평소에는 상냥해 보이는 소년지만 일단 잘못 건드리면 상대방이 죽을 때까지 사정을 봐주지 않을 것이다.

무령, 온불승 등은 자존심이 강했지만 이번만큼은 목진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의 미래는 절대 평범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언젠가 대천세계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강자가 될 것이 분명했다.

“나한테 빚진 게 있는 거 기억해?”

무영영이 두 손을 허리에 꽂고 기세등등하여 말하더니 목진과 눈을 마주치자마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어떻게 갚았으면 좋겠어?”

목진이 가볍게 웃으며 묻자 무영영은 그를 한참 노려보더니 그제야 쭈뼛거리며 답했다.

“아직 생각해둔 건 없어. 생각나면 알려줄게.”

목진은 소녀의 귀여운 반응에 피식 웃더니 바로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때 가서 무슨 일이든 절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나설게.”

“사내의 말은 함부로 믿을 게 아니야. 너 같은 변태의 말은 특히 말이지.”

무영영이 콧방귀를 뀌며 말하자 목진은 괜히 머쓱해 헛기침했다.

“그런데 방금 꽤 멋있었어. 우리 오라버니보다 더 멋있었어. 너를 응원한 보람이 있어서 다행이야.”

무영영은 부끄러워 다시 얼굴이 빨개진 채 눈을 커다랗게 뜨고 소년을 바라봤다.

“그래…… 고마워.”

희현을 상대할 때와는 달리, 목진은 상냥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에 옆에 서 있던 온청선이 입을 삐쭉거리며 낙리한테 다가가 물었다.

“목진은 여자 복이 너무 많은 것 같은데 혼자 둘 수 있겠어? 이번 기회에 헤어지고 나와 함께 하자.”

온청선은 일부러 작게 말했지만 목진에게 들릴 정도였다. 목진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낙리가 그녀를 흘겨보고 있었다.

잠시 후, 낙리가 심창생 등과 담소를 나누러 가자 온청선은 히쭉 웃으며 목진한테 다가와 만봉령원 쪽을 가리키며 물었다.

“우리 만봉령원에 지인이 있다고 들었는데 만나지 않아도 돼?”

“천아 누이를 말하는 거야?”

목진은 이내 화색이 되어 만봉령원을 바라봤는데 연두색 치마를 입은 소녀가 그를 지그시 쳐다보고 있었다.

2년이 넘는 사이, 소녀는 앳된 모습을 걷어내고 예뻐져 수많은 여인 속에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당천아는 목진이 다가오는 것을 보더니 이내 미소를 지었다.

“천아 누이, 오랜만이야.”

목진은 곧장 만봉령원 구역으로 가서 당천아에게 향했다.

소녀는 여전히 머리를 하나로 묶은 채 방긋 웃으며 소년을 바라봤고 목진을 향해 몸을 살짝 기울이며 말했다.

“꽤 잘 나가나 봐?”

“천아 누이야말로 날이 갈수록 예뻐지는 것 같아. 만봉령원이 아니라 우리 북창령원에 왔더라면 인기가 엄청났을 거야.”

목진이 당천아를 쓰윽 훑어보며 말했다. 목진 쪽으로 몸을 기울여서인지 목진은 소녀의 몸매가 유난히 영롱해 보였다. 당천아라면 북창령원에서 소훤보다 인기가 더 많을 것이다.

“지금 날 놀리는 거야?”

당천아는 부끄러워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주먹을 꽉 쥐고 말했다.

“만봉령원에서는 잘 지내지?”

“아니, 한 나쁜 남자 때문에 엄청 괴로워!”

옆에 서 있던 한 소녀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녀는 당천아의 친구처럼 보였는데 목진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았다.

이에 당천아가 흘겨보자 소녀는 바로 도망갔고 목진은 머쓱하게 웃었다. 당천아를 상대로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축하해.”

반면, 당천아는 바로 화제를 돌려 미소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삼촌께서 아시면 정말 뿌듯해하실 거야.”

소녀의 말에 목진도 이내 미소를 지었고, 문득 아버지가 그리워졌다.

“네가 좋아한다던 여인이 저 사람이야?”

당천아가 갑자기 먼 곳에 있는 낙리를 보며 묻자 목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예쁘고 훌륭하네.”

당천아는 눈을 깜빡이며 애써 웃었다.

“고마워.”

목진이 웃으며 한 말에 당천아는 고개를 숙여 발을 비비적거리더니 갑자기 머리를 번쩍 들었다.

“사실 난 만봉령원에 온 걸 후회하고 있어…….”

그 말에 목진은 머리를 긁적이기만 했다. 그는 당천아와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사이라 사이가 각별하긴 하지만, 그녀를 여인으로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목진아…….”

당천아는 생각을 정리한 듯 두 눈을 빛내며 활짝 웃었다.

“난 앞으로 더 열심히 수련해서 널 따라잡을 거야!”

소녀는 주먹을 꽉 쥐고 결연하게 말했다. 그녀는 만봉령원에 온 걸 후회했으나 지금부터라도 더욱 수련에 집중해 낙리처럼 곁에 서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기로 했다.

이에 목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열심히 살아갈 목표가 생긴 것은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 누이가 날 따라잡기만을 기다릴게.”

목진은 상냥하게 웃으며 고개를 들었고, 그 구역을 쓰윽 훑으며 깊게 숨을 들이켰다.

드디어 학원 대회가 끝났다.

3년 동안 북창령원에서 열심히 수련해 비로소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었단 생각이 들었다. 비록 진정한 수련의 길은 지금부터 시작이지만 말이다.

학원 대회가 끝난 지 열흘이 흘렀는데도 그 여파는 전혀 가시지 않았다. 북창령원은 여전히 그 열기로 뜨거웠다.

그런데 원장과 장로들도 이를 전혀 제지하지 않았다. 북창령원이 생긴 이래, 정상을 찍은 뒤로 이런 성적을 거둔 것은 거의 처음이라 오랜만에 사람들 앞에 체면을 차릴 수 있게 되어 뿌듯했다.

* * *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우뚝 솟은 한 산봉우리에서 내려다보면 마침 낙신회 본부가 눈에 들어오는데 현재 그곳의 방대한 수련장에도 사람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소년은 조용히 산 정상에 누워 눈을 감고 산들산들 부는 바람을 느끼고 있었다.

이는 목진이 반년 동안 학원 대회에서 감히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하지만 그토록 숨 막히고 치열한 대결을 치러서야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때 그윽한 향기와 함께 청색 치마를 입은 한 예쁘장한 소녀가 조용히 다가와 소년의 훤칠한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풀잎으로 가볍게 얼굴을 쓸어내렸다.

목진은 느긋하게 눈을 뜨고 히쭉 웃으며 낙리의 허리를 끌어안으려 했다. 이에 낙리는 바로 물러나며 생긋 웃었다.

“학원 전체가 축제 분위기인데 정작 주인공인 너는 여기서 이러고 있네?”

“그럴 힘이 없어서 말이야.”

목진이 일어나 뒤쪽의 커다란 암석에 기대더니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낙리는 괜히 마음이 아파 소년 옆에 다가가 앉았다.

“넌 충분히 잘했어. 그거 알아? 네가 학원 대회의 최종 우승자라고 발표되었을 때, 난 정말 뿌듯했어.”

낙리의 나긋한 목소리에 목진의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잘했다고 수천 번을 말해도 목진한테는 낙리의 한마디 말보다 못했다.

“낙리야…….”

“왜 그래?”

소녀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한 번만 안아보자.”

목진이 배시시 웃으며 손을 내밀자 낙리는 부끄러워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싫어?”

“좋아!”

그때 목진이 갑자기 튀어오더니 빠르게 소녀의 가녀린 허리를 끌어안고 잔디밭에 쓰러트려 함께 누웠다.

바로 코앞에 다가온 소년의 모습에 낙리는 주먹으로 가볍게 때리며 말했다.

“허튼짓은 하지 마.”

다행히 목진은 낙리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한때 앳되어 보였던 소녀는 이제 점점 아름다워져 훌륭한 여인이 되었다. 그녀의 모습에 목진은 황홀했다. 성장하고 있는 건 목진 뿐만이 아니었다.

언젠가 그녀는 낙신족 백성을 위한 진정한 여황이 될 것이고 그때가 되면 대천세계에서도 명성이 자자해질 것이다.

그녀는 천부적인 재능이 뛰어날 뿐 아니라 뒷배도 든든했기 때문이다. 목진도 가끔 그 차이가 느껴지곤 했지만 단 한 번도 어머니를 원망한 적은 없었다.

그는 다른 누군가에게 기대게 되면 진정한 강자가 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눈을 꼭 감고 소년의 무례를 받아들일 생각을 하고 있던 낙리는 목진이 아무런 미동이 없자 서서히 눈을 떴다.

파르르 떨리던 목진의 눈빛은 다시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고, 미소를 지으며 소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낙리는 이런 목진의 밝은 미소와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

“곧 떠날 거지?”

목진이 낙리의 백옥같은 피부를 쓸어내리며 묻자 유리 같은 소녀의 눈동자가 금세 어두워졌다. 여태껏 일부러 말하지 않았는데 목진이 눈치챘을 줄은 몰랐다.

“할아버지께서 나한테 2년밖에 주지 않았는데 이미 그 시간이 지났어…….”

낙리는 목진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이번에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날지 알 수 없었다. 낙리는 항상 목진과 함께 하고 싶지만 낙신족의 차기 여황으로서 그럴 수는 없었다. 그녀한테는 지켜야 할 수많은 백성이 있었다.

“목진아, 미안해…….”

낙리의 눈가가 어느새 촉촉해졌다. 그녀는 목진이 앞으로도 진정한 강자가 되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런 뒷배도 없는 소년이 대천세계에서 얼마나 험난한 길을 걷게 될지 충분히 짐작했기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

대천세계는 그들이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컸고 천재들도 많았다. 그들 대부분은 이름을 날리기도 전에 자아를 잃고 어디론가 사라지곤 했고, 극소수만이 간난신고를 겪고 비로소 성공에 이를 수 있다.

하여 낙리는 오히려 목진이 평범했으면 했다. 그럼 소년의 밝은 미소만 남을 것이고 그녀의 곁에 서기 위해 만신창이 되지 않을 것이다.

낙리는 이럴 때일수록 목진의 곁에 있고 싶었지만, 짊어져야 할 짐이 있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

“나도 너를 계속 곁에 두고 싶지만 그럼 너무 비겁하잖아? 네가 날 아끼는 걸 잘 알아. 비록 2년밖에 안 되지만 너는 낙신족을 내려놓고 내 곁에 와줬잖아. 그런데 내가 너를 위해 노력하지 않을 수 있을까?”

목진은 낙리의 붉어진 눈시울을 보고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낙리야, 난 널 진심으로 좋아해. 비록 지금은 낙신족이 나한테 너무 높고, 네 할아버지와 백성의 동의를 얻을 수 없겠지만…….”

목진은 소녀의 파르르 떨리는 눈을 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부디 믿어줘. 언젠가 내가 낙신족에 갔을 때,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세상에 널린 그런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그들을 모조리 물리칠 수 있는 가장 눈부신 존재란 걸 알게 해줄 거야. 그리고 그날을 위해 난 최선을 다할 거야.”

낙리는 그 말에 감동해 기쁜 마음으로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은 그만하고 이제 너만 생각해. 너도 쉽지만은 않을 거야. 대신 무슨 일이 있더라도 꼭 날 기다려야 해!”

목진은 소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미소를 지었다.

“내가 널 찾으러 꼭 낙신족으로 갈게. 내가 약속할께.”

말을 마친 목진이 가볍게 입을 맞추자 소녀도 소년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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