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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398화 (397/1,000)

398화. 낙천신

그 후로, 목진과 낙리는 한 시도 떨어지지 않고 지냈고 북창령원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한 쌍이 되었다. 다들 부러운 눈빛을 보냈지만 낙리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은 눈치채지 못했다.

낙리는 최대한 아닌 척하려고 애를 썼지만 마음처럼 잘되지 않았다.

낙리와 목진은 여느 때처럼 높은 곳의 암석에 서로 등지고 앉아 낙신회 본부에서 회원들이 수련하고 있는 것을 느긋하게 지켜봤고 그 모습은 회원들의 부러움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미소를 지은 채 손을 꼭 잡고 해가 질 때까지 그대로 있었는데 갑자기 소녀가 손을 파르르 떨더니 먼저 소년의 얼굴에 입을 맞추고 자리에서 일어나 먼 곳 하늘을 쳐다봤다.

그때 그곳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거대한 공간 소용돌이가 나타났고 그 속에서 누군가 위풍당당한 모습을 드러냈다.

북창령원 전체가 순간 천신 같은 그림자에 가려졌는데 목진은 낙리의 반응을 보고 그 사람의 정체를 짐작했다.

그는 바로 현재 낙신족의 지배자이자 낙리의 할아버지인 지지존 낙천신이었다.

공간이 찢어져 형성된 커다란 공간 소용돌이는 다른 세계와 연결된 것처럼 보였는데 어둡고 무서운 공간 소용돌이 앞에 누군가 위풍당당하게 나타났다.

방대했던 체구는 금세 어디론가 사라지고 정상으로 돌아온 그는 검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이었다. 수염과 머리는 하얗게 세고 조금은 창백한 얼굴에는 엄청난 위엄이 묻어났는데 이에 목진 주위의 공간마저 미세하게 떨렸다.

이곳 천지마저 그의 통치에 승복한 것만 같았다.

엄청난 위압감에 들끓었던 북창령원은 순간 조용해졌고 학생들은 물론 장로들마저 안색이 창백해진 채 하늘을 쳐다봤다. 그것은 북창령원의 최강자인 북명룡곤한테서도 느낀 적 없던 위압감으로 다들 갑자기 찾아온 정체불명의 사람의 신분이 궁금해졌다.

그때 노인 뒤에 있던 소용돌이에서 빛이 번쩍이며 영수의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수백 마리의 거대한 학이 난폭한 벼락을 온몸에 휘감은채 퍼덕이며 나타났고, 그 위에는 은색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은창을 들고 숙연하게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그들은 수많은 전쟁을 치른 진정한 전사들이라 일단 공격을 개시하면 지존급 강자라고 해도 절대 막기 어려웠다.

목진도 자리에서 일어나 검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과 그 뒤의 뇌학을 지켜보았는데, 이는 영수방 24위인 탄뢰학(吞雷鶴)으로 그 수량만으로도 낙신족의 무서운 실력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들의 등장에 북창령원의 장로들도 달려와 잔뜩 경계하며 지켜봤고 형전 사람들도 경계하며 나서려 했는데 노인이 주위를 쓰윽 훑다가 유난히 아름다운 소녀를 발견하고 인자하게 웃다가 그 옆에 서 있는 목진한테 눈길을 돌렸다.

순간, 목진은 지극히 무서운 위압감이 공간을 가르며 형성되는 것이 느껴졌다. 그 위압감은 아래쪽 거대한 암석에 균열이 일 정도였다.

그러나 노인은 이를 아주 완벽하게 제어해 목진이 서 있는 곳에만 압박감이 형성되었다.

그때 낙리가 무언가 눈치채고 인상을 찌푸리며 나서려 하자 목진은 소녀의 팔을 잡고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처음부터 낙리를 앞세우면 낙리의 할아버지는 그에게 실망할 것이다. 비록 처음부터 기대 따위는 하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목진은 여전히 태연한 얼굴로 서 있었지만 낙리의 팔을 잡은 손은 미세하게 떨렸고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려 옷이 흠뻑 젖었다.

지지존이 형성한 위압감은 역시 엄청났다.

만약 낙천신이 살기라도 품으면 목진은 오늘 이 자리에서 바로 죽을 수도 있었다.

이런 위압감은 얼마 지속되지 않았는데 목진은 온몸이 저릿저릿했고 잠시 움직이지 못했다. 손에 너무 힘을 준 탓에 낙리의 팔에 빨갛게 손자국이 났다.

“참을성은 제법이군. 그렇게까지 별 볼 일 없는 건 아니야.”

하늘에 서 있던 낙천신이 눈길을 거두며 무덤덤하게 말했다.

낙천신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는 탄뢰학 두 마리가 있었고 그 위에는 나이가 27세 전후로 보이는 청년들이 은갑을 입은 채 앉아있었다. 서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어 두 사람 사이가 그렇게 좋아 보이지는 않았으나 낙신족에서 지위가 어느 정도 있는 것 같았고 수라처럼 살기를 내뿜었다.

또한, 뒤쪽 기사들이 경외의 눈빛으로 이들 둘을 바라본 것으로 보아 절대 평범할 리 없었다.

무덤덤하던 두 사람은 낙천신의 말에 목진 쪽을 힐끗 보더니 표정이 이상해졌다.

슉.

그때 태창 원장이 하늘 높이 날아오르더니 한껏 정색하며 낙천신을 바라봤는데 익숙한 웃음소리가 먼저 들렸다.

“허허, 희한한 일일세. 우리 북창령원에 낙신족이 올 줄이야, 맞이하러 나가지 못해 미안하네.”

태창 원장 옆에 또다른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바로 북창령원의 북명룡곤이었다.

북명룡곤이 나타나자 학생들은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야말로 북창령원의 진정한 뒷배나 다름없었다.

그의 등장에 낙천신도 흠칫했는데 북명룡곤의 실력에 조금 놀란 모양이었다.

똑같은 지지존의 실력이었다.

“이분은 북창령원의 북명룡곤인가? 난 낙천신이라고 하네. 실례인 줄 알지만 갑자기 찾아올 수밖에 없었네.”

낙천신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낙신족의 족장이군.”

북명룡곤도 웃으며 인사했다. 그는 여느 때와 달리 정중하게 낙천신을 상대하였다. 그도 지지존이긴 하지만 상대방과의 실력 차이가 엄청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오래전에 지지존에 이른 낙천신에 비해 북명룡곤은 한해 전에 경지를 돌파하였고 낙천신이 대천세계에 이름을 날렸을 때, 그는 무명인사일 뿐이었다.

“낙 족장님, 우리 북창령원에는 무슨 일로 오셨나요?”

북명룡곤이 나타나자 태창 원장도 조금이나마 시름을 놓고 이내 웃으며 물었다.

“손녀딸을 데리러 왔네만 반대하지는 않겠지?”

이에 태창 원장은 북명룡곤과 마주 보더니 낙신회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북창령원에서 낙신족과 연관이 있는 사람은 낙리 뿐인데 그녀가 낙천신의 손녀일 줄은 몰랐다. 그 말은 즉 낙리가 낙신족의 차기 여황이란 말이었다.

“북창령원의 학생들은 규칙에 어긋난 일만 하지 않았으면 떠나고 말고는 자기 의지에 달렸어요. 우리는 절대 간섭하지 않아요.”

“고맙네.”

태창 원장의 말에 낙천신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뒤쪽 두 사내와 함께 눈앞에서 사라졌다가 낙리와 목진 앞에 나타났다.

“낙리야, 나와 함께 돌아가자.”

낙천신은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훌륭해지는 손녀딸을 보더니 흐뭇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이에 낙리는 목진을 힐끗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목진은 이미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슬픈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주먹을 꽉 쥔 채 마음을 다스렸다. 그가 만약 충분히 강했다면 아무도 낙리를 데려갈 수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목진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

그는 더 강한 힘이 필요하단 걸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때 낙리가 갑자기 멈춰서더니 돌아서서 목진을 꼭 끌어안았는데 입술을 너무 꽉 깨물어 피가 아른거렸다.

목진도 소녀를 꼭 끌어안았다.

이러한 광경에 낙신회 회원들은 마음이 아팠다.

반면, 낙천신은 무덤덤하게 두 사람을 바라봤고 뒤쪽에 있는 두 청년은 목진을 힐끗 보더니 몰래 눈길을 피했다.

목진은 천천히 낙리를 풀어주며 속삭였다.

“다음번에는 아무도 내 곁에서 너를 데려갈 수 없을 거야. 아무도, 절대 안 돼!”

소년의 느릿하지만 확고한 신념으로 가득 찬 말에 낙리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목진이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할 것을 알았지만 지금 와서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다는 걸 잘 알았다.

이번에 낙리는 결연하게 돌아섰는데 낙천신의 손을 잡지 않고 홀로 앞으로 걸어갔다. 할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소족장님.”

그때 낙천신 뒤에 서 있던 두 청년이 미소를 지으며 허리를 굽혔다.

“기사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이 손을 휙 젓자 온몸에 눈부신 빛을 발하는 탄뢰학 세 마리가 먼 곳에서 날아왔다. 낙리는 그중에서 유난히 우아하고 가녀린 녀석에 올라탔다.

떠나기 전, 낙천신은 처음으로 목진을 제대로 쳐다봤고 목진도 고개를 들어 낙신족의 마지막 빛을 부여잡고 있는 노인을 바라봤다.

나이든 그의 얼굴에서 표정을 읽을 수 없듯 소년의 앳된 얼굴에서도 두려운 감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바람이 불어 구름이 움직이자 바닥에 커다란 그늘이 드리웠다.

그 그늘에 목진과 낙천신이 서 있었는데 다들 두 사람에게 눈길을 돌렸다. 상황을 잘 모르는 이들이라도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쯤은 쉽게 눈치챘을 것이다.

그들과 조금 떨어진 하늘에서 태창 원장이 이를 보더니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북명룡곤을 바라봤다. 그러나 그는 아무렇지 않게 손을 휘익 저으며 말했다.

“괜찮네. 낙신족이 아무리 상대하기 어려워도 북창령원에서 우리 학생을 괴롭히게 놔두지 않을 걸세. 게다가 낙천신은 낙리의 할아버지로 손녀가 좋아하는 사람을 보러 온 거니까. 우리가 끼어들기도 그렇지 않나?”

이에 태창 원장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노인네가 다정한 한 쌍을 갈라놓으려 하실까 봐 그러는 거네.”

“그게 목진한테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네.”

북명룡곤은 목진이 진정한 보석이 되려면 아직 갈 길이 멀었다고 생각했다.

태창 원장이 가볍게 한숨을 쉬며 입을 열려는데 멀리 떨어진 산봉우리에서 영광이 번쩍이더니 빛줄기 한 갈래가 목진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이에 낙천신 뒤에 서 있던 청년 중 한 사람이 미소를 지으며 나섰다.

“그만 멈추게.”

슉!

그런데 상대방은 전혀 멈출 생각이 없는 듯 오히려 속도를 한껏 끌어올렸고 청년은 은색 뇌망이 번쩍이는 장창을 소환해 앞을 힘껏 찔렀다.

쿵!

순간 뇌명이 일며 그곳 공간이 찢어졌다. 커다란 창영이 공간을 뚫고 빠르게 빛줄기를 찌르자 상대방은 잠시 멈칫하더니 손끝이 반짝반짝 빛나는 가녀린 손을 튕겨 거대한 영진을 쳤다.

쿵!

영진 속 방대한 화산이 폭발해 난폭하기 그지없는 영력이 휘몰아쳐 창영과 부딪쳤다.

엄청난 소리를 내며 두 갈래의 무서운 힘의 충격파가 만들어졌다.

흠칫 놀란 청년은 다시 공격을 개시하려 했는데 주위가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공간이 일그러지며 오묘한 영진이 생겨났다. 그는 무서운 영력 파동을 내뿜는 영진에 갇혀버렸다.

그때 한 여인이 낙신회 본부의 위쪽 하늘에서 나타났다. 그녀는 비록 목진과 낙천신 중 그 누구한테도 가까이하지 않았지만 다들 목진을 위해 온 것을 잘 알았다.

청년은 드디어 오묘한 영진을 뚫고 나와 조금 놀란 표정으로 하얀색 치마를 입은 여인을 보며 피식 웃었다.

“영진 대가였군, 내가 당신을 너무 쉽게 생각했어.”

그녀는 바로 영계였다. 영계는 청년이 아닌 목진과 낙천신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에 목진은 멍하니 영계를 바라보았고 이내 감동했다. 영계는 목진의 뒷배가 되기 위해 나타난 것이었다.

비록 그녀의 실력은 낙천신과 엄청난 차이가 나지만 목진을 위해 고민하지 않고 나선 것이다.

끼익!

그런데 그때, 목진의 체내에서 맑은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보랏빛이 하늘 높이 날아올라 커다란 흑작으로 변했는데 온몸에 보라색 화염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구유명작이었다.

그녀가 날개를 퍼덕이자 엄청난 바람이 일었고 영계처럼 허공에 가만히 떠 있었다.

“구유명작이라…….”

낙천신을 따라온 두 청년은 흠칫 놀라 영계와 구유명작을 번갈아 보다가 다시 목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보기에 약해 보이는 소년에게 남다른 구석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곁에 영진 대가와 구유명작을 둘 리 없었다.

“영진 대가에 구유명작이라…….”

낙천신도 고개를 들어 그들을 보더니 가볍게 웃으며 목진을 바라봤다.

“이것으로 시위하는 거라면 너무 어리석구나.”

“시위할 거였으면 제가 직접 했을 거예요. 저들은 제 친구일 뿐이에요.”

목진이 태연하게 말했다. 낙천신은 잠시 소년을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목진이 적어도 처음부터 자신을 실망시키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만약 오늘 그를 만났는데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낙리가 평생 자신을 원망하더라도 두 사람을 만나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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