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1화. 보물을 빌리다
목진은 하루가 지나서야 구유가 왜 자신의 힘만으로 지존해를 채우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거라고 얘기했는지 이해했다. 그가 하루 동안 제련한 영력은 지존해의 1할도 채우지 못했다.
이대로라면 적어도 3개월은 지나야 지존해를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이건 너무 느려.”
잠시 사색에 빠졌던 목진은 갑자기 두 손을 모아 결인했는데 연꽃대에 앉아있는 그의 몸은 짙은 영무에 완전히 덮여 전혀 보이지 않았고 주위에서 영무가 계속해서 몰려왔다.
천지의 영력이 갑자기 격렬하게 떨려 멀지 않은 곳에 앉아있던 구유마저 흠칫하여 고개를 들었다.
그때 커다란 검은색 광탑이 나타나 무서운 흡인력을 자랑하며 만 장 범위의 영무를 흡수했다.
크으으으!
잇따라 검은색 광탑 표면에 새겨졌던 오래된 금룡은 포효하더니 황금색 화염이 되어 탑에 들어가 영무를 제련했다.
이에 영무는 빠르게 증발해 탑 내에 비를 내렸고 목진은 빗방울을 모조리 흡수했다.
빗방울은 지존영액보다 훨씬 못하지만 가장 순수한 영력이 한데 모여 생긴 거라 영무보다 흡수하기가 더 쉬웠다.
“엄청난 화염이네.”
구유는 흠칫 놀라 황금색 화염을 바라봤다. 그녀가 구유작일 때는 구유화가 있었고 지금은 더 강력한 불사화가 있지만 황금색 화염의 위력에 자못 놀랐다. 그건 절대 보통 물건이 아니었다.
부도탑을 소환한 목진이 영력을 흡수하는 속도는 무서운 정도에 이르렀고 그 격렬한 영력 파동에 북창령원의 장로들마저 깜짝 놀랐다.
이렇게 목진은 수련에 푹 빠져 부단히 영력을 제련해 흡수하는 데만 집중했다.
그런데 소년이 영력을 흡수하는 과정이 점차 요란해져 장로는 물론이고 학생들마저 뒷산의 격렬한 영력 파동을 느꼈다.
다행히 태창 원장의 명이 있어 다들 목진이 수련하며 일으킨 파동이란 것을 알았지만, 그 모습에 다들 감탄을 금치 못했다.
어느덧 한 달이 지나 눈을 감고 수련만 하던 목진이 갑자기 눈을 번쩍 뜨고 고개를 들었다. 이에 검은색 광탑이 파르르 떨며 조금씩 사라졌고 목진은 허공에 내려앉았다.
그의 주위는 텅 비어 무형의 방어막을 형성한 것 같았는데 천지의 영력마저 접근하지 못했다.
소년한테서 아무런 영력 파동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그 주위에 엄청난 위압감이 형성되었다.
그때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앞쪽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그가 귀신처럼 높은 곳에 나타나 두 손을 펼치고 고함을 질렀다!
우레와 같은 소리가 퍼져나가자 소년의 체내에서 수천 장 크기의 영력 빛기둥이 솟아올라 하늘과 땅을 연결하며 다시 한번 엄청난 위압감을 형성하였다.
북창령원 학생들은 화들짝 놀라 굵은 빛기둥을 쳐다봤다. 그들은 그 속에서 익숙한 위압감을 읽었다.
이는 지존 강자의 위압감이었다!
목진이 드디어 지존경에 이르른 것이다.
백 리 밖에서도 하늘 높이 솟아오른 굵직한 빛기둥이 현저히 보였는데 다들 그 속에서 엄청난 위압감을 느꼈다. 이는 지존경에 이른 학원 장로들이 내뿜는 위압감과 비슷했다.
빛기둥의 주인도 분명 지존경에 이르렀을 것이다.
북창령원의 한 산봉우리에 있던 심창생과 이현통도 복잡해진 눈빛으로 빛기둥을 쳐다봤다.
“녀석은 역시 괴물이야.”
심창생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목진이 대단하단 생각이 들면서도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그가 처음 목진을 봤을 때까지만 해도 소년은 마형천한테 쫓기는 신세였는데 3년도 안 되는 사이에 그를 훨씬 뛰어넘고 먼저 지존경에 이르기까지 했다.
이에 이현통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현통은 심창생보다 더 감회가 깊었다. 한때, 목진은 자신의 공격을 세 번 막아내는 것도 힘겨워 낙리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그 후로 무서운 성장 속도를 보여 지금의 성과를 이뤘다.
이제 이현통은 낙리가 좋은 사내를 골랐다는 생각을 했다. 비록 낙천신은 목진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지만 직접 목진의 성장 궤적을 지켜본 바로는 낙천신도 언젠가 생각이 바뀔 것이다.
소년은 늘 엄청난 기적을 만들어내곤 했기 때문이다.
“목진이 곧 북창령원을 떠날 것 같군.”
심창생은 목진한테 꽤 호감이 있었기에 그가 떠나는 것이 왠지 아쉬웠다.
“그럼 넌?”
이현통이 심창생을 보며 물었다. 심창생도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녀석이기 때문에 평생 북창령원에 있을 위인이 아니었다.
“나도 수련을 시작할 거야. 그러다 지존경에 이르면 대천세계에 나가게 되겠지. 그럼 언젠가 목진을 다시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기회가 되면 난 그와 제대로 싸워볼 거야. 우리의 진정한 실력을 따져보는 거지.”
심창생은 기대에 가득 찬 눈빛으로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와 함께 수련하자. 그런데 내가 먼저 지존경에 이를 수 있을지도 몰라.”
이현통의 훤칠한 얼굴에 미소가 드리웠다.
“하하하, 나를 뛰어넘기가 절대 쉽지 않을 거야. 넌 목진이 아니잖아!”
“기대해도 좋아.”
이현통이 상냥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심창생을 진정한 상대로 존중하고 그를 보면서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아 보완하곤 했다.
반면, 목진은 요물이나 마찬가지라 그와 비교당해 상처받고 싶지 않았다.
* * *
북창령원의 대전에 서 있던 북명룡곤, 태창 원장, 맥유 전주 등도 고개를 들어 굵직한 빛기둥을 보더니 흐뭇하게 웃었다. 목진이 3년 동안 이룬 성과는 북창령원에서 볼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다.
“녀석, 엄청나네요. 우리 북창령원에 계속 머무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맥유 전주가 이내 감탄하며 말했다.
“우물 안의 개구리가 따로 없군. 누구 앞길을 망치려고 그런 말을 하는 건가?”
북명룡곤이 인상을 쓰며 나무라자 맥유 전주는 순간 시무룩해졌다.
“그냥 해본 소리예요.”
이에 태창 원장은 피식 웃더니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목진의 잠재력은 엄청난데 북창령원은 이를 완전히 끌어낼 수 없네. 드넓은 대천세계야말로 소년이 활개를 펼칠 무대지. 북창령원에 남아도 실력은 늘겠지만 절대 진정한 강자가 될 수는 없을 것이네. 맥유, 자네가 이 말을 믿을지는 모르겠지만 목진이 다시 우리 북창령원에 돌아왔을 때, 우리는 물론이고 아마 북명 형님도 그의 상대가 되지 않을 걸세.”
맥유는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태창 원장이 목진을 이렇게까지 높이 살 줄은 몰랐다.
그런데 옆에 서 있던 북명룡곤도 그 말에 의견을 달지 않았다. 그마저도 태창 원장의 말이 일리 있다고 여긴 것이다. 소년은 잠재력과 더불어 수련에 대한 집착과 결연한 태도, 굳건한 마음을 고루 갖췄다.
진정한 강자가 되려면 천부적 재능도 있어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수많은 고난에도 흔들림 없는 마음가짐이었다.
목진은 분명 엄청난 존재가 될 것이다.
* * *
“영계 언니, 목진 오라버니가 드디어 지존경에 이른 건가요?”
정원에서 순아가 손으로 눈을 살짝 가리고 이내 화색이 되어 굵직한 빛기둥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마도?”
영계는 대나무집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차를 따라 마시며 굵직한 빛기둥을 힐끗 보고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 왜 오라버니 일에 관심을 두지 않는 거예요?”
순아는 영계의 태도에 입을 삐쭉 내밀며 물었다.
“곁에 미인이 있으니까 나 같은 건 없어도 돼.”
“그런 거였어요?”
영계의 무심한 듯한 대답에 순아는 배시시 웃으며 다가갔다.
“영계 언니가 그 예쁜 언니를 질투하는 거였군요.”
“그렇게 예뻐?”
영계는 눈을 한껏 부릅뜨고 순아를 노려보며 물었다.
“영계 언니처럼 예쁘…… 지만 언니가 훨씬 예뻐요!”
순아는 영계의 표정에 불길한 예감이 들어 바로 말을 바꿨다.
“쳇.”
영계는 콧방귀를 뀌더니 고개를 들어 천지에 우뚝 솟은 빛기둥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목진이 수련하러 가기 전, 그녀는 도움을 주고자 먼저 그를 찾아갔었다. 그런데 감히 거절한 것이다. 몹쓸 놈!
순아는 어리둥절했다. 영계 언니가 평소에 쌀쌀맞게 굴어도 마음은 따뜻해서 낙리 언니와도 잘 지냈는데, 왜 구유 언니한테는 이런 태도를 보이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영계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한껏 뿌듯한 눈빛으로 굵직한 빛기둥을 바라봤다.
“역시 정 이모의 아들은 남달라. 언젠가 목진도 이모처럼 대단한 사람이 되겠지?”
이리 생각하던 영계는 그날이 오면 그녀마저도 목진을 좋아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워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황급히 마음을 다스렸다.
* * *
빛기둥은 한참 지나서야 사라졌고 빛줄기 두 갈래가 하늘을 가르며 날아와 북창령원의 허공에 나타났다.
이에 학생들이 고개를 들어보니 소년은 그대로였고 주위의 웅장한 영력 파동은 말끔하게 사라지고 없었다. 그가 위풍당당하게 서 있지 않았다면 아마 다들 목진이 도전에 실패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목진 옆에는 구유도 함께 서 있었는데 그녀의 인기는 나날이 치솟았다. 길쭉한 다리에 새하얀 피부, 아름다운 몸매에 야성미 넘치는 눈빛은 사내라면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목진은 학생들의 시선에 미소를 짓더니 숨을 길게 내뱉고 가볍게 주먹을 쥐었다. 그러자 체내에서 화산이 폭발하듯 요동치는 무서운 영력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는 신백난 세 번째 단계 따위와 비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지금 가볍게 손가락을 움직이기만 해도 신백난 세 번째 단계에 이른 고수를 수백 명도 넘게 쓰러뜨릴 수 있을 정도로 강해졌다.
더구나 목진이 지금 얻은 힘은 순수한 영력일 뿐이라 지존법신까지 수련하면 그 위력은 더 강해질 것이다.
“빠져들 수밖에 없는 힘이로군.”
목진은 지존의 힘에 푹 빠져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구유와 함께 태창 원장을 찾아갔다.
“허허, 목진아, 축하한다.”
맥유 전주가 먼저 목진을 발견하고 웃으며 반겼다. 이에 목진은 인사를 올리고 태창 원장을 보더니 잠시 머뭇거렸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바로 말하거라. 이제 와 뭘 고민하는 것이냐?”
태창 원장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목진은 조금 긴장한 얼굴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원장님, 오대원의 심판지경을 빌리고 싶은데 가능한가요?”
그것은 목진한테 엄청 중요한 문제였다. 만약 안 된다고 하면 불후도록을 찾는 일은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이다.
태창 원장은 예상치도 못한 목진의 질문에 미간을 찌푸리며 이내 정색했다. 그 모습에 소년의 심장이 철렁했다.
“심판지경이라…….”
태창 원장은 미간을 찌푸리며 한참 생각하더니 목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심판지경은 오대원의 공동 소유로 우리 학원의 힘만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오대원 원장들의 동의가 필요한 일로 적어도 세 명은 찬성해야 너한테 심판지경을 빌려줄 수 있다.”
이에 목진은 머리를 긁적이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도 심판지경을 빌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잘 알았지만 불후도록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었다.
“오대원 중에서 성령원은 아마 반대할 거고 나머지 세 학원은 희망이 있긴 하지.”
옆에 조용히 서 있던 북명룡곤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삼대원에 다녀오겠네. 그들이라면 내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까?”
태창 원장 등은 순간 깜짝 놀랐다. 학원 일에 간섭하지 않는 북명룡곤이 목진을 위해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설 줄은 몰랐다.
목진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는데 바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