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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402화 (401/1,000)

402화. 말다툼

지지존을 나서게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고 북명룡곤의 자존심에 이런 일을 먼저 하겠다고 나서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그렇기에 목진은 상대방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만약 목진이 북명룡곤의 호의를 거절했다면 성질이 고약한 북명룡곤은 다시는 목진을 상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에 목진은 일단 이 은혜를 마음속에 간직해두기로 했다.

“네가 이번 학원 대회에서 1위를 하지 않았다면 우리 북창령원은 오대원에서 제명됐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내가 한번 나서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지 않느냐?”

북명룡곤은 흐뭇하게 웃으며 소년을 바라봤다.

“저도 북창령원 사람인걸요. 지금이든 앞으로든 언제든 말이에요.”

“좋다, 네가 그렇게까지 말했으니 마음 편히 삼대원에 다녀올 수 있겠구나.”

북명룡곤은 미소를 지으며 태창 원장 등을 향해 손을 저었다.

“난 바로 삼대원에 다녀올 테니 그대들은 북창령원에 남아있게. 그리고 목진은 좋은 소식을 기다리거라.”

말을 마친 북명룡곤이 앞으로 나아가자 앞쪽 공간이 갑자기 일그러지며 공간 균열이 일었다. 그는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가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졌다.

목진은 말을 내뱉자마자 행동에 옮기는 북명룡곤의 모습에 고마움을 느꼈다.

“이 일만 마치면 북창령원을 떠날 것이냐?”

태창 원장이 소년의 어깨를 다독이며 묻자 목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북창령원에 계속 있어 봐야 수련에 큰 도움이 되지 않으니 오히려 잘 됐구나. 지금의 너한테는 대천세계가 더 잘 어울린다.”

태창 원장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대신 내가 했던 말은 절대 잊지 말아라. 네가 북창령원에 해를 끼치는 일만 하지 않으면 넌 영원히 우리 학원 학생이란다. 그러니 네가 밖에서 아무리 어려운 처지가 되었더라도, 일단 이곳에 돌아오면 우리는 절대적으로 너를 보호할 것이다.”

목진은 상냥하게 웃는 태창 원장의 말에 감동해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죽을 때까지 이곳을 기억할 것이다.

목진은 태창 원장과 잠시 담소를 나누다가 구유와 함께 영계한테로 갔다. 대나무집 밖에 있는 탁자 앞에 앉아있던 여인은 그를 보자 미소를 짓더니 뒤쪽에 있는 구유를 발견하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드디어 지존경에 이른 걸 축하해.”

영계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목진도 이내 웃으며 그녀의 맞은편에 앉더니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영계 누이, 난 곧 북창령원을 떠날 것 같아.”

영계는 순간 손을 파르르 떨더니 목진을 힐끗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함께 갈래?”

목진이 조심스럽게 건넨 말에 영계는 한참 고민하더니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네가 이곳을 떠나면 나도 떠날 거야. 하지만 너와 함께하지는 않을 거야. 난 따로 할 일이 있어.”

“그게 뭔데?”

목진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앉아있는 여인을 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설마 어머니를 찾으러 가려는 거야?”

“내 기억은 대부분 봉인되어 있지만 조금씩 떠오르는 것이 있어. 그래서 일단 혼자 찾아보려고. 적어도 정 이모가 어디 있는지는 알아야 하잖아?”

영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껏 진지해진 얼굴로 말했다.

“안 돼, 혼자서는 너무 위험해! 나도 함께 가요!”

목진의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그는 어머니가 속한 종족을 상대해본 적은 없지만 충분히 무섭다는 사실은 알았다. 실력이 천지존에 이른 어머니마저도 그들한테 잡혀 있는데 사품 지존밖에 안 되는 영계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 말은 하지도 마.”

영계는 상냥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이모께서 너를 지키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그렇게 위험한 곳에 너와 같이 갈 수 있을까? 그리고 이번에는 살피러만 가는 거니까 걱정하지 마. 절대 무모하게 나서지 않을 거야. 너도 언젠가 이모를 찾으러 갈 텐데, 내가 먼저 가서 정보를 알아 오면 너한테도 도움이 될 거야.”

보기 드문 영계의 부드러운 미소에 결연함이 잔뜩 묻어났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그녀를 바라보던 목진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신백으로 신백인(神魄印)을 하나 만들어서 나한테 줘. 그렇지 않으면 난 절대 누이를 혼자 보내지 않을 거야.”

신백인이란 신백 중 일부를 꺼내어 만든 물건으로 주인이 위험한 상황에 빠지면 즉시 반응한다.

다만, 신백인이 일단 부서지면 그 주인한테도 영향을 줘서 엄청 가까운 관계가 아니고서는 아무도 자기 신백인을 타인에게 주려 하지 않는다.

“고집도 참…… 알겠어.”

영계는 목진의 고집에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하더니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길쭉한 손끝에 빛이 모이다가 금광이 번쩍이며 손바닥만 한 금인이 만들어졌다. 정교한 금인은 영계와 똑같이 생겼는데 그 차가운 인상마저 똑 닮아 있었다.

“자, 여기.”

영계가 생긋 웃으며 목진에게 신백인을 넘기자 소년은 자그마한 영계의 얼굴을 가볍게 만졌다. 그 모습에 앞에 있던 영계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씩씩거리며 그를 노려보았다.

가까운 거리에서 신백의 일부로 만든 신백인을 만지자 목진의 손길이 느껴진 것이다. 이는 영계가 보는 앞에서 그녀를 희롱하는 거나 마찬가지라 만약 상대방이 목진이 아니었다면 이미 영진의 공격에 잿더미가 됐을 것이다.

이에 목진은 헛기침하더니 신백인을 거두고 정색하며 말했다.

“영계 누이, 이 일은 내가 이제 해결할 거니까 무슨 일이 일어나든 절대 함부로 나서지 마. 어머니든 누이든 다 내가 보호할 거야.”

“일단 나부터 이기고 그런 말이나 해.”

영계는 그렇게 말은 했지만 기분은 좋았다.

“참, 비록 네 영력 실력이 지존경에 이르렀지만 영진 수련은 아직이라서 게을리하면 안 돼. 대천세계는 북창령원에 비해 훨씬 위험천만한 곳이야. 그러니 하나라도 더 많이 익히는 게 너한테 좋아.”

영계가 정색하며 충고의 말을 전하자 목진은 마음속 한쪽이 왠지 따뜻해졌다.

“그리고…….”

영계는 조용히 뒤쪽에 서 있는 구유를 힐끗 봤다. 구유는 가까이 오지 않았고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지도 않았다. 두 여인은 왠지 모르게 사이가 안 좋았다.

“혈맥 연결을 푸는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야.”

이에 구유는 순간 미간을 찌푸리며 영계를 노려봤다.

“날 그렇게 보지 마. 목진은 아직 어려서 뭘 잘 몰라서 그러는데 난 알아.”

영계는 구유의 차가운 눈빛에 한치도 물러나려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네가 이렇게 어린 나이에 진화를 마치고 불사화까지 소유한 걸 보면 구유작 종족에서 신분이 상당하겠지?”

영계가 피식 웃으며 물었다.

“구유작은 고지식하고 우매한 종족이야. 네가 그들한테 중요한 존재라면 인간과 혈맥을 연결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분명 노발대발할 거야. 너희 종족 특성상 목진보고 혈맥 연결을 풀라고 협박할 수도 있어. 그럼 목진은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 분명해.”

영계도 차가운 눈빛으로 구유를 바라봤다.

“아무도 우리의 혈맥 연결을 풀 수 없어.”

구유는 영계를 노려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아! 무! 도! 안! 돼!”

두 여인의 숨 막히는 대화에 분위기가 살벌해졌다.

분위기가 삭막해지더니 광풍이 일어 정원의 나뭇잎이 난폭하게 요동쳤다.

순아는 너무 무서워 몰래 나무 뒤에 숨어 구유와 영계의 대화를 엿들었고 목진은 이러한 상황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두 사람은 왜 만나기만 하면 싸우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입에 발린 말은 누구나 할 줄 알아. 대신, 목진이 혈맥 연결 때문에 피해를 보면 네가 아무리 구유작이라도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영계는 구유를 노려보며 말했다.

“네가 무슨 수로 감히 그런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네!”

구유도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피식 웃었다.

“그래?”

말을 마친 영계의 길쭉한 손에 눈부신 빛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흥.”

이에 구유가 기합을 넣자 하늘을 가릴 것 같이 거대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다들 그만해!”

목진은 더는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지르더니 영계의 손을 잡고 화를 내며 외쳤다.

“언제까지 싸울 거야!”

영계와 구유는 조용히 소년을 바라봤다. 목진은 정말 화가 난 듯 상냥했던 눈빛이 유난히 사나워졌다.

두 여인은 진짜 화가 난 목진을 처음 보는지라 순간 시무룩해져 각자 영력을 거두었다.

목진은 고개를 휙 돌린 후 두 여인을 보더니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어갔다.

“영계 누이, 나와 구유작은 서로 가장 위험한 상황에서 혈맥을 연결했어. 푸는 방법이 있어도 먼저 풀지는 않을 거야. 그리고 구유는 나한테 엄청나게 많은 도움을 줬어. 그녀가 아니었다면 난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야. 그러니까 혈맥 연결 때문에 내가 어떤 위험한 상황에 처하든 스스로 감당할 거고, 구유가 반대하면 절대 혈맥 연결을 풀지 않을 거야.”

정원에 퍼진 목진의 목소리에 결연함이 잔뜩 묻어났다.

소년의 말에 두 여인은 어느새 안색이 밝아졌고 구유 역시 소년의 진지한 모습을 힐끗 보고는 마음이 왠지 모르게 가벼워졌다.

영계는 목진을 노려보다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니까 더는 뭐라 하지 않을게.”

영계가 갑자기 피식 웃으며 소년을 쳐다봤다.

“그런데 어린 목진이 이렇게 책임감 넘치는 사내인지 몰랐네?”

“나와 누이는 두 살 차이밖에 안 나는데 어리긴 뭐가 어려!”

영계는 피식 웃더니 구유를 바라보는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난 네가 미워서 그러는 게 아니야. 내가 한 말이 사실인 것만은 알아줬으면 좋겠어. 만약 너희 종족에서 이 일을 알면 목진을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난 이미 어른이 되었으니 부모님이라도 간섭할 권리가 없어. 그러니까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먼저 나서서 목진을 지킬 거야.”

“난 여인의 뒤에 숨어있을 생각은 없어.”

목진이 입가를 파르르 떨며 말했지만 구유는 목진의 말을 무시하고 대화를 나누라며 자리를 떠났다.

“저 아이는 자존심이 참 강한 것 같아. 네가 구유를 완벽히 통제하려면 갈 길이 멀겠어.”

영계는 구유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며 미소 짓더니 느긋하게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틈만 나면 나한테 와. 영진 수련도 뒤처지면 안 되니까 네가 떠나기 전에 최대한 많이 가르쳐줄게.”

“알겠어.”

목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 후로 목진은 대부분 영계한테 가서 영진 수련에 집중했고 나머지 시간은 낙신회에서 회원들과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전에는 북창령원에서 수련에 집중하느라 여념이 없었는데 정작 떠나려고 하니까 이곳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그는 낙신회 회원들의 진심 어린 미소가 좋았다. 적어도 여기서만큼은 신분 따위에 연연하지 않고 동등한 북창령원의 학생으로 함께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이런 미소는 대천세계에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그곳은 북창령원처럼 마음 편한 곳이 아니었다.

목진은 밤마다 혼자 산봉우리에 앉아 밤하늘의 별을 보곤 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전에는 그의 옆에 아름다운 소녀가 머리를 기대고 조용히 앉아있었다는 것뿐이었다. 목진은 그런 애틋한 느낌이 너무 좋았다. 적어도 그때만큼은 그가 낙리의 전부가 되어 그녀를 지탱해주고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목진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단지 기억 속의 느낌을 살려 낙리와의 추억을 되새겨야 했다.

목진은 잔디밭에 누워 눈을 서서히 감으며 주먹을 꽉 쥐었다.

“낙리야,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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