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3화. 상고의 천궁(上古天宮)
열흘 정도가 지나자 북명룡곤이 돌아왔다.
목진은 바로 그를 만나러 갔다. 연로한 북명룡곤의 얼굴에 미소가 드리운 것을 보고 소년은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대원 중 성령원의 천성 원장이 역시나 반대했는데 다행히 나머지 세 사람이 동의해서 뭐라 할 수 없었지.”
북명룡곤이 히쭉 웃고는 목진을 바라보며 말했고, 소년은 흥분되었다.
“심판지경을 언제쯤 사용할 거냐?”
“당장이라도 될까요?”
목진은 더는 기다릴 수 없었다.
“그럼 지금 바로 가자꾸나.”
북명룡곤은 목진의 반응에 전혀 놀라지 않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손을 휙 젓자 앞쪽 허공에 공간 균열이 생겼다.
“나를 따르거라.”
이에 목진은 구유와 함께 북명룡곤을 따라 공간 균열로 향했다.
공간 균열은 자그마한 혼돈의 공간으로 수천 장 정도 크기의 오래된 동경이 조용히 떠 있었고 엄청 무서운 파동을 내뿜어 부단히 떨렸다.
그리고 공간에는 오래된 동경에 이르는 돌계단이 있었는데 북명룡곤은 먼저 동인을 소년에게 건네주었다.
“이 물건을 사용해 심판지경을 소환할 수 있단다. 그러나 네 실력으로는 아직 심판지경 같은 신기를 제대로 다룰 수 없어 공격은 할 수 없단다. 그리고 명심하거라, 심판지경을 마음대로 사용하면 오히려 너한테 해가 될 것이다.”
목진은 동인을 건네받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난 먼저 나가마.”
북명룡곤은 말을 마치더니 바로 떠났다. 그는 비록 목진이 심판지경을 사용하려는 목적이 궁금했지만 사람마다 비밀이 있는 법이라 캐묻지 않았다.
목진은 커다란 심판지경을 바라보다 수중의 동인에 영력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은은한 빛이 솟구쳐 심판지경의 흐릿한 거울 면에 꽂혔다.
위잉.
거울 면에 미세한 파문이 일더니 심판지경은 점차 선명해졌는데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깊고 어두웠으며 신비로웠다.
이에 목진은 깊게 숨을 들이켜더니 신비로운 종이를 소환해 심판지경에 보냈다.
위잉.
거울 면이 파르르 떨리더니 빛줄기 한 갈래가 솟아올라 신비로운 종이를 감쌌다.
치칙.
잇따라 심판지경이 갑자기 격렬하게 떨리기 시작했고 거울 면은 통제가 안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목진과 구유는 순간 긴장했다. 불후도록 한 장으로 나머지 부분을 찾으려 했는데 심판지경이 이렇게 격하게 반응할 줄은 몰랐다.
그런데 1각이 흐른 후에도 심판지경에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고, 목진은 인상을 한껏 찌푸렸다.
“불후도록이 이렇게까지 엄청난 존재란 말인가? 심판지경마저 그 존재를 찾지 못하다니…….”
구유도 이내 감탄하며 말했다. 역시 말로만 듣던 원시 법신이라 그런지 남달랐다.
또 1각이 흐르고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심판지경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목진은 점차 안색이 어두워졌다. 구유도 가볍게 소년의 어깨를 다독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때, 끄떡없던 거울 면이 갑자기 격렬하게 떨리더니 어두웠던 곳에 흐릿하게나마 화면이 나타났다.
목진과 구유는 이내 화색이 되었다. 불후도록 나머지 부분을 드디어 찾아낸 것이다.
오래된 청동 거울 면에 파문이 일더니 어둡고 신비로운 색이 사라지고 화면에 흐릿하게 무언가가 나타났다.
이에 목진과 구유가 뚫어져라 쳐다보니 커다란 청동 거울에 엄청 큰 대륙이 나타났다. 그곳에는 산들이 우뚝 솟아있었는데 아주 높은 곳에서 아래쪽을 바라보던 청동 거울이 점차 바닥과 멀어졌다.
목진은 낯선 대륙을 멍하니 쳐다봤다. 그는 대륙의 정체를 알지 못했는데 옆에 서 있던 구유가 산과 지형을 관찰하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사색에 잠겼다.
그러다 화면은 대륙의 전체 판도를 비췄는데 그 엄청난 크기에 목진은 씁쓸하게 웃었다. 대천세계에는 수많은 대륙이 있는데 심판지경도 불후도록의 구체적인 위치를 알려주지 않으면 이것만 가지고는 물건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심판지경에 다시 빛이 모이더니 오래된 궁전이 나타났다. 궁전 위에는 해와 달이 공존한 채 빛을 비췄다.
구유는 오래된 궁전과 그 위에 뜬 해와 달을 보더니 화들짝 놀랐다.
화면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사라졌고 심판지경은 다시 어두워졌다. 잇따라 신비로운 종이 주위를 감쌌던 빛도 함께 사라졌다.
이에 목진은 신비로운 종이를 거두며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전혀 감히 안 잡혀.”
낯선 대륙이든 오래된 궁전이든 목진은 도무지 어디서부터 수색을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글쎄…….”
심판지경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구유가 갑자기 씨익 웃으며 말했다. 목진은 깜짝 놀라 화색이 되어 그녀를 바라봤다. 구유는 뭔가 알고 있는 눈치였다.
“내 추측대로라면 심판지경에 나타난 대륙은 대천세계에서 10대 초대륙 중 하나인 천라대륙(天羅大陸)일 거야.”
구유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10대 초대륙 중 하나인 천라대륙이…….”
“지금의 대천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10대 초대륙이야. 대천세계의 핵심 구역이라 엄청 번화하고 강자도 상당히 많아. 북창령원이 자리 잡은 북창대륙은 천라대륙과 비교하면 새 발의 피야. 천라대륙의 정예 세력 중에서 북창령원에 뒤처지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어.”
이에 목진은 혀를 끌끌 찼다. 북창대륙이 대천세계에서 비중이 크지 않다는 걸 알기는 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북창령원은 북창대륙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초대륙과 비교하면 별 볼 일 없으니 말이다.
“왜 난 네가 천라대륙에 대해 아주 잘 아는 것 같지?”
목진은 조금 놀란 듯 구유를 바라봤다. 그녀는 천라대륙에 대해 잘 아는 것 같았다.
“내가 겁난을 건너는 데 실패하기 전에 어디서 왔다고 생각해?”
구유가 히쭉 웃으며 묻자 목진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천라대륙이야?”
“그래.”
“구유작 종족이 천라대륙에 있어?”
“그건 아니고. 수련하러 나온 뒤에 나는 바로 천라대륙으로 갔었어. 그래서 그곳에도 지낼 수 있는 곳이 있어.”
목진이 잔뜩 놀란 채 묻자 구유는 득의양양하게 답했다.
“설마 그곳에 세력을 만들었어?”
목진은 다시 한번 놀랐다.
“아니, 한 어르신의 소개로 정예 세력에 가입했을 뿐이야. 뒷배 하나 없이 밖을 떠돌아다니면 엄청 위험하잖아. 특히 강자가 수없이 많은 천라대륙에서 말이야.”
구유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답했다.
“과연 어떤 세력이기에 네가 가입까지 했을까?”
“그때의 난 아직 신수가 아니었고 지존의 실력조차 갖추지 못했어. 이런 실력은 천라대륙에서 별 볼 일 없지. 그렇다고 내가 가입한 세력이 별 볼 일 없다는 건 아니야. 대라천역(大羅天域)이라 불리는 이 세력은 천라대륙의 정예 세력으로 북창령원보다 더 강해. 그리고 이 세력에서 난 지위가 꽤 높은 편이야.”
구유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지존경에도 이르지 않은 네가 무슨 수로 높은 지위에 앉았단 말이야?”
“난 뒷배가 든든하거든.”
구유가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말했다. 그 말에 목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심판지경을 바라봤다.
“심판지경에 나타난 대륙이 천라대륙이라면, 해와 달이 공존하는 궁전은 어딜까?”
이에 구유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잠시 고민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천라대륙에 상고의 천궁이란 궁전이 숨어있다고 들었어. 그 주인은 원고 시기에 천지를 뒤흔들 정도로 엄청난 실력을 지닌 존재로 천지존이라도 감히 덤비지 못한다고 했어.”
목진은 순간 흠칫 놀랐다. 천지존마저 감히 상대할 수 없는 존재라면 얼마나 무서운 존재란 말인가?
“그리고 상고의 천궁에 지지존은 물론이고 천지존마저 탐내는 신물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곳을 발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냥 소문으로 떠돌 뿐이야.”
구유는 한껏 진지해진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만약 불후도록이 상고의 천궁에 있다면 그 엄청난 존재는 원고의 시기에 원시 법신을 익혔던 열 명의 강자 중 한 명일 가능성이 커. 어쩌면 처음으로 만고불후신을 수련하는 데 성공한 사람일 지도 몰라.”
구유의 말대로 불후도록이 상고의 천궁과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그곳이 실제로 존재하는지는 막론하고 정말 찾아냈다고 해도 수많은 강자와 싸워 불후도록을 빼앗는 것은 상당한 힘든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목진은 어렵게 얻은 이 단서를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갈 곳이 생겼군.”
목진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천라대륙으로 갈 거야? 그곳도 꽤 괜찮은 수련지이기도 해.”
구유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난 앞으로 더 강해지고 싶어. 마침 천라대륙도 초대륙 중 하나이니 북창대륙보다 더 위험천만하고 흥미롭겠지?”
목진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목진은 천라대륙에서 수련하면서 상고의 천궁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면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정말 기회가 생기면 한발 앞서 보물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대신, 그는 먼저 실력을 끌어올려야 했다. 안 그러면 아무리 상고의 천궁을 찾았다고 해도 보물을 빼앗을 자격조차 없을 것이다.
“다시 천라대륙으로 돌아가게 될 줄은 몰랐는데 꽤 그리운걸?”
구유는 감탄하며 말했다.
그녀는 집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천라대륙으로 갔고 겁난을 건너야 해서 돌고 돌아 자그마한 북령경에서 목진과 혈맥까지 연결했다. 그리고 지금은 목진 때문에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역시 인연이란 신기했다.
“이만 나가자. 천라대륙에 가면 잘 부탁해.”
“내 이름만 대도 그곳에서 활개를 치고 다닐 수 있을 거야.”
구유가 히쭉 웃으며 말했고, 목진은 묵묵히 그녀를 흘겨보았다. 구유가 아무리 대라천역에서 지위가 높고 그 세력이 천라대륙의 정예 세력이라 해도 수많은 강자가 있는 그곳에서 거리낌 없이 활개를 치고 다닐 수는 없을 것이다.
목진은 길고 긴 돌계단에서 내려와 공간 균열을 넘었다. 그는 비록 대체적인 정보만 얻었을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적어도 어디쯤 있다는 것은 알았으니 길을 헤매지는 않아도 되었다.
공간 균열에서 나온 목진과 구유는 바로 북창령원의 대전 앞에 나타났는데 북명룡곤이 앞쪽에서 흐뭇하게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다 된 것이냐?”
이에 목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동인을 돌려주며 인사를 올렸다.
“감사해요, 북명 선배님.”
“그럼 곧 떠나겠구나!”
북명룡곤이 옷깃을 휘날려 공간 균열을 없애고 부드러워진 눈빛으로 소년을 바라보며 물었다.
“사흘 뒤에 떠나려고요.”
목진은 아쉬운 마음을 다스리고자 깊게 숨을 들이켰다.
“앞으로 너에 관한 소식을 자주 들었으면 좋겠구나. 아마 넌 언제나 우리한테 기적을 선물하겠지?”
북명룡곤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난 북창령원의 자랑거리인 네가 대천세계의 천재들에게 파묻히는 꼴은 절대 보지 못 보니 잘하거라.”
“노력할게요.”
목진은 히쭉 웃더니 돌아서서 활기찬 학원을 쓰윽 훑었는데 학생들은 하늘을 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낙신회, 뇌역, 취영진, 영치전…….
어느덧 해가 지며 하늘에 노을이 드리웠다가 완전히 어두워져 낯익은 곳들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목진은 미소를 지으며 두 손을 벌려 온몸으로 이 공간을 느꼈다. 그는 북창령원을 떠나고 싶지 않지만 앞으로 펼쳐질 미래가 더 기대되었다. 이곳은 그의 시발점일 뿐, 절대 종착지가 아니었다.
북창령원,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