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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404화 (403/1,000)

404화. 안녕, 북창령원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사흘째 태양이 어둠을 가르며 솟아올라 대지를 비추자 북창령원은 다시 활기찬 하루를 맞이했다. 그러나 오늘 분위기는 평소와 조금 달랐다.

학생들은 북창령원의 중심에 있는 산 정상에 흐릿하게나마 보이는 늘씬한 소년을 바라봤다.

다들 목진이 북창령원을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부러움과 경외에 찬 눈빛으로 북창령원의 가장 눈부신 별을 바라봤다. 그는 학원 대회에서 북창령원을 위해 최고의 영광을 따낸 영웅이었다.

학생들은 자존심이 강해 누군가를 쉽게 인정하지 않는데 북창령원 학생들은 목진 만큼은 진심으로 대단하다고 여겼다.

한편, 낙신회 회원들도 시무룩해졌다. 낙신회의 버팀목이나 다름없는 목진과 낙리가 떠나 이들한테 타격이 꽤 컸다.

그러나 그들도 목진이 북창령원을 떠나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소년을 담기에 북창령원은 너무 작았다.

특히 엽경령, 우희, 소령아가 가장 아쉬워했는데 우희는 목진이 떠난다는 소식을 들은 뒤로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지금도 눈물이 글썽거려 훌쩍거렸다.

“그만 울어.”

엽경령이 미소를 지으며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앞으로 네가 낙신회의 버팀목이라고 한 목진의 말을 지켜내야지?”

이에 우희는 바로 눈물을 닦으며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세요, 엽 언니. 난 절대 낙신회를 망하게 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다음번 학원 대회의 1위는 저일 거예요!”

“그래.”

엽경령은 흐뭇하게 웃더니 고개를 들어 소년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목진아, 잘 가.”

산봉우리에 서서 북창령원과 학생들을 바라보던 목진도 어느새 슬퍼졌다. 그때 영계가 조용히 다가오더니 미소를 지으며 소년의 옷매무새를 정리해주었다.

“북창령원을 떠나면 만사에 조심해야 해.”

목진은 소녀의 말과 행동에 가슴이 뭉클해 그녀를 가볍게 끌어안았다가 놔주며 말했다.

“영계 누이도 조심해. 어머니는 내가 반드시 구할 거니까 위험할 것 같으면 바로 포기해야 해. 어머니와 누이는 내가 지켜.”

이에 멈칫했던 영계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소년의 진심 어린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구유야, 전에는 내가 너무 뭐라 해서 미안해. 마음에 두지 말았으면 좋겠어.”

영계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옆에 서 있는 구유한테 고개를 돌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구유는 영계가 먼저 미안하다고 할 줄 몰랐기에 깜짝 놀랐다. 그러나 이내 손을 휘익 저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괜찮아.”

“그럼 앞으로 목진을 잘 부탁해.”

“난 목진과 목숨을 함께한 사이니까 절대 그를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놔두지 않을 거야.”

영계가 나긋한 목소리로 말하자 구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북명룡곤과 태창 원장이 다가와 웃으며 말을 건넸다.

“전송 영진을 열어 너희를 북창대륙에서 내보내 주겠다. 너희가 가고자 하는 곳은 대륙의 대도시에 있는 전송 영진을 빌려야 한다.”

“감사해요! 북명 선배님, 원장님.”

목진은 뒤쪽 하늘에 나타난 커다란 전송 영진을 확인하더니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천라대륙은 너무 멀어 아무리 지존급 강자라도 전송 영진을 사용하지 않으면 반년 동안 쉬지 않고 달려야 겨우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게다가 각 대륙 사이에는 드넓은 바다가 있는데 그곳에는 험난한 상황들이 자주 벌어졌고 일부 대륙에는 무려 공간 홍류가 가로막고 있어 이를 건너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그럼 이만 떠날까?”

목진은 깊게 숨을 들이켜더니 바로 구유한테 물었다. 비록 북창령원을 떠나려니 아쉬웠지만 시간을 지체해봐야 달라질 건 없었다.

이에 구유도 고개를 끄덕였고 목진과 함께 전송 영진으로 향했다.

“목진아, 밖에서 북창령원의 체면을 깎는 일은 하지 마. 넌 우리 학원의 자랑이잖아!”

멀지 않은 곳에서 심창생과 이현통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목진아, 다시 만났을 때 우리 다시 한번 겨뤄보자! 그때는 절대 너를 봐주지 않을 거야.”

이현통의 훤칠한 얼굴에도 미소가 드리웠다.

목진은 두 사람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목진 형, 잘 가요!”

낙신회 본부에서 회원들이 질서정연하게 서서 외치더니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렸다. 이건 낙신회 회원들이 낙신회 창시자에게 보내는 존경의 마음이었다.

이러한 광경에 목진은 코끝이 찡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북명룡곤을 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북명룡곤이 손가락을 튕기자 영력 빛줄기가 전송 영진에 꽂히더니 빛을 발하며 공간이 격렬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고 목진의 시야는 점차 흐려졌다.

“여러분, 안녕.”

목진은 눈앞에서 사라지는 북창령원을 보며 속으로 외쳤다.

슉!

잠시 후, 전송 영진의 빛이 한껏 밝아지더니 공간 소용돌이를 만들어 목진과 구유는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난폭했던 공간 파동도 점차 사라져 하늘은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사람들은 다시 조용해진 북창령원을 둘러보고는 이내 시무룩해졌다.

태창 원장은 그 모습에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전에도 명성이 자자한 학생이 북창령원을 떠난 적이 있었는데 오늘처럼 학원 전체가 침울했던 적은 없었다.

“목진이 이렇게까지 영향력이 컸단 말인가?”

그렇다고 일부러 분위기를 북돋우지는 않았다. 모든 건 시간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북창령원에 다시 뛰어난 학생이 나타나면 목진은 사람들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그런데 과연 목진을 뛰어넘을 사람이 있을까?

이에 태창 원장은 아쉬운 듯 한숨을 쉬었는데 한편으로는 기대도 되었다. 북창령원을 떠난 소년이 과연 어디까지 성장할지 궁금했다.

언젠가 그가 예상했던 대로 목진은 대천세계를 뒤흔들 만큼 엄청난 사람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었다.

한편, 영계는 조용히 산봉우리에 서서 목진 등이 사라진 곳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에 태창 원장 등은 조용히 자리를 비켜줬다.

그녀는 하늘이 어두워져서야 정신을 차리고 드넓은 북창령원을 쓰윽 훑었는데 오늘따라 뭔가 부족하고 무미건조한 것 같았다.

영계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와 꼭 닫힌 대나무 방에 들어가 방 안에 걸린 아름다운 여인을 보며 가볍게 웃었다.

“정 이모, 인제 목진도 이곳을 떠났어요. 역시 이모의 아들이라 그런지 엄청 훌륭해요. 이제부터 나도 이모를 찾으러 갈 거예요. 누가 내 기억을 봉인했든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영계는 주먹을 꽉 쥐며 살기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정 이모, 내가 반드시 이모를 구해낼 거예요!”

영계는 조심스럽게 그림을 거두고 방에서 나와 오랜 시간 거주한 곳을 훑어봤다.

“영계 언니.”

그때 순아가 정원에 서서 눈가가 촉촉해진 채 물었다.

“언니도 북창령원을 떠날 건가요?”

이에 영계는 조용히 다가가 소녀를 꼭 끌어안고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래, 나도 해야 할 일이 있어. 그런데 순아야, 내가 떠나도 절대 수련을 게을리하면 안 돼. 안 그럼 다시 돌아왔을 때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영계 언니, 다음엔 목진 오라버니와 함께 돌아올 거죠?”

순아가 꼭 끌어안고 고개를 끄덕이며 묻자 영계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했다.

“걱정하지 마, 우린 반드시 돌아올 거야.”

영계는 조용히 품에 안긴 순아를 꼭 끌어안고 고개를 들어 북창령원에서의 마지막 밤을 즐겼다.

영계는 아무런 인사도 없이 조용히 북창령원을 떠났다.

* * *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에서 물고기처럼 생긴 거대한 영수가 날아올라 엄청난 파도를 일으켰는데 위쪽 하늘이 갑자기 일그러지더니 난폭한 공간 파동이 일며 공간 소용돌이가 생겼고 그곳에서 사람 두 명이 튕겨 나왔다.

두 사람은 흠칫 놀라 주위를 살폈다.

“여긴 어디지?”

목진이 머리를 긁적이며 묻자 경험이 풍부한 구유가 빛을 발하는 종이를 느긋하게 꺼내 펼쳤는데 복잡한 광선으로 그려진 내용으로 보니 지도 같았다.

그녀는 지도를 쓰윽 훑더니 길쭉한 손가락으로 한 구역을 가볍게 찍었다. 그러자 지도에 파문이 일더니 확대되어 이들이 나타난 구역이 보였다.

“자, 우리가 바로 여기 있어. 여긴 북창대륙 밖의 바다로 앞으로 가면 남릉대륙(南陵大陸)이야. 거기 가서 전송 영진으로 다른 대륙에 갈 수 있어.”

구유가 웃으며 말하자 목진은 흥미진진하게 지도를 바라봤다. 지도에서 영력 파동이 꽤 느껴졌다.

“이건 영기야?”

“그래, 이건 영도(靈圖)라는 물건으로 대천세계의 지도를 기록하지. 보통 수련하러 밖에 나오면 다들 하나씩 구하는데 이것도 내가 그때 준비했던 거야. 이 영도가 없다면 천라대륙에 가기 쉽지 않을 거야.”

구유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구유만 있으면 아무런 걱정 안 해도 되겠어.”

목진이 히쭉 웃으며 말했다. 만약 혼자 밖으로 나왔다면 지금쯤 뭘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을 것이다. 구유가 없었다면 아마 헤매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에 구유는 소년을 흘겨봤다.

“그럼 천라대륙에 가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려?”

“천라대륙에 가기 위해 우린 수십 개 대륙을 거쳐 그곳의 전송 영진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한시도 쉬지 않고 움직인다고 해도 두 달 정도 걸릴 거야.”

구유의 무덤덤한 말에 목진은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두 달씩이나…….”

“그리고 그 과정도 순조롭지 않을 거야.”

구유는 한껏 진지해진 채 말을 이어갔다.

“지금 넌 북창령원을 떠났고 우리가 갈 곳도 더는 학원처럼 안전한 곳이 아니야. 힘으로 우열을 가리는 대천세계에서 실력이 부족하면 넌 어딜 가든 천대받을 거야. 심지어 대라천역에도 절대적인 평화는 없어. 그곳의 눈치 싸움은 북창령원 따위와 비교할 바가 안 돼. 거기서는 내가 너를 지켜줄 테지만 네 성격에 그러길 원치 않을 거 아냐.”

이에 목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나도 잘 알아.”

대라천역은 북창령원처럼 그의 수련을 위해 성심껏 도와줄 사람이 없을 것이다. 목진 스스로 실력을 끌어올리지 못하면 누군가는 그를 사정없이 짓밟을 것이다.

구유는 그제야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말했다.

“넌 이미 지존경에 이르렀으나 아직 1품 지존도 아니야.”

“아직 지존법신을 수련하지 못해서 그래?”

목진이 무덤덤하게 물었다. 그는 사실 다른 지존법신을 수련해도 됐지만 대일불멸신을 제외한 다른 지존법신의 수련법도 없거니와 진귀한 지존영액을 평범한 지존법신의 수련에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대일불멸신의 나머지 두 가지 재료만 모으면 대량의 지존영액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평범한 것은 일절 거부했다.

“그것도 있긴 해.”

구유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지존경이 수련에서의 엄청난 갈림길인 이유는 지존해와 지존법신 외에 가장 중요한 이유가 있는데 바로 영성이 있는 영력이야. 이건 보통 영력의 힘을 훨씬 뛰어넘은 존재지.”

“영성이라…….”

목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대부분 지존급 강자의 영력은 그들만의 독특한 속성이 있어. 누군가의 영력은 차갑고 누군가의 영력은 난폭하면서도 뜨거운 것처럼 말이야. 이건 다 그들의 영력이 영성이 있어서고 위력도 훨씬 뛰어나지.”

그 말에 목진은 북창대륙에서 용마궁을 도우러 왔던 무량노조가 생각났다. 그 사람의 영력은 매우 강력했고 음산하고 어두운 빛을 발하는 바닷물이 휘몰아쳤는데 그 바닷물이 바로 무량노조의 영력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통 영력과 전혀 다른 존재였다.

“그럼 난 어떻게 내 영력에 영성을 부여해야 해?”

“네가 영력에 구유화를 융합했던 거 기억해? 그때, 너의 영력은 보통 영력보다 강해졌었지. 그것과 비슷한 건데 영성이 있는 영력은 훨씬 강해.”

목진은 바로 깨달았다. 영성이란 본인의 영력에 다른 물질을 융합해 더 강해지는 것이었다.

말은 쉽지만 이를 실현하기란 매우 어렵다. 영력은 아무나와 융합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일단 배척 반응을 나타내면 영성은커녕 수련자가 큰 타격을 입을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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