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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408화 (407/1,000)

408화. 경매

구유가 앉을 자리를 찾고 있을 때, 목진은 오른쪽을 쓰윽 훑었는데 멀지 않은 광문에서 한 무리가 들어오자 주위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무리에는 한 여인이 여우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있었는데 빨간 머리와 새하얀 피부가 사내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그 여인이 미소를 짓자 다들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여인 뒤에는 평범하게 생긴 중년 남자가 따라붙었는데 일 보 거리에 있는 사내가 가끔 고개를 들 때마다 무서운 파동이 느껴졌다.

평범해 보이는 사내는 보아하니 4품 지존의 실력을 지닌 것 같았다.

“저들은 호선종(狐仙宗) 사람이야. 호선종은 상지대륙의 정예 세력으로 실력이 엄청나. 이 대륙의 경매장을 누비고 다닌다고 들었어.”

구유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여인은 호선종에서 어느 정도 지위가 있을 거야. 그러지 않고서야 4품 지존이 신변을 보호할 리는 없어.”

“호선종이라…….”

목진은 이 파벌의 이름을 마음에 새겨두었다. 이는 북창령원에서 나온 후, 처음으로 알게 된 정예 세력이었다.

그런데 상대편의 중년 남자는 눈치를 챈 듯 고개를 들고 목진과 구유가 있는 쪽을 보더니 구유를 보고 흠칫 놀랐다.

사내의 움직임은 아주 민첩했지만 요염한 여인한테 들켜 덩달아 그쪽에서도 목진과 구유를 바라보았다.

목진은 고혹한 여인의 눈길에 심장이 벌렁거렸고 체내의 피가 더 빨리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왠지 불길해 바로 정신을 차리자 체내에 뇌명이 울리더니 이상한 느낌이 서서히 사라졌다.

“뭐지?”

요염한 여인은 흠칫 놀란 듯하다가 이내 미소를 짓고는 경매장의 가장 앞쪽에 있는 얇은 천으로 가려진 방으로 올라갔다. 그곳은 보통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여인은 방에 들어가서야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저씨, 방금 본 두 사람은 낯설던데 상지대륙 사람이 아니죠?”

“여인은 아마 실력이 나 못지않을 것이고 소년도 지존경에 이르렀을 거야. 어린 나이에 그 정도 실력을 갖추기는 절대 쉽지 않아.”

외모가 평범한 중년 사내가 잇따라 입을 열었다.

구유의 실력에 여인은 놀란 듯하다가 바로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 봐. 너 따위 실력은 성에도 차지 않을 거야.”

구유는 요염한 여인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목진의 눈빛에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이에 목진은 해명하기 귀찮아 자리를 잡고 앉으려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꺼져, 난 남자한테 관심 없어!”

목진이 고개를 돌려보니 경매장에 들어오는 다른 광문 쪽에서 백의 소녀가 씩씩거리며 서 있었다. 그리고 맞은편에는 하얀색 도포를 입은 청년이 서 있었는데 백의 소녀의 고함에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밖에서부터 백의 소녀가 여인인 것을 알아챈 청년은 그녀의 외모와 기품에 반하여 다가갔는데 입을 열기도 전에 이런 상황이 될 줄은 몰랐다.

“허허, 오해한 것 같은데 난 그대가 혼자인 것 같아 함께 경매를 구경하려고 하는 것뿐이야.”

청년은 이 같은 경험이 많은 듯 태연하게 서서 상냥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럴 생각 없어.”

그러나 백의 소녀한테는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그녀는 한껏 흘겨보더니 거절하고 떠나려 했다.

이에 청년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자 뒤에 서 있던 검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나서며 말했다.

“우리 공자께서 좋은 뜻으로 모시려 하는데 거절하지 마시죠?”

백의 소녀는 순간 인상을 찌푸리고 장풍을 쏘려 했는데 그때 누군가 손목을 덥석 잡았다.

소녀는 너무 당황해 바로 손을 뿌리치려다 낯익은 얼굴을 보고 경계를 풀었다.

“허허, 여동생이 뭘 모르고 그러는 것이니 개의치 마시게.”

목진이 백의 소녀 앞에 나서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청년은 목진을 잠시 노려보더니 옆에 있는 구유를 보고 눈이 뻔쩍 뜨여 뭐라 말하려 했다. 그때 검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이 막아 나서며 잔뜩 경계하는 눈빛으로 구유를 쳐다봤다.

노인은 구유한테서 엄청난 위압감을 느꼈다.

이에 청년이 미간을 찌푸린 채, 괴상한 표정으로 목진과 구유를 보더니 이내 웃으며 제자리를 찾아갔다. 그들도 역시 경매장의 가장 앞쪽에 있는 얇은 천으로 가려진 방에 자리를 잡았다.

“저들도 출신이 범상치 않아. 아마 천라대륙의 천현전(天玄殿) 사람들일 거야.”

구유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천현전이라…….”

“천현전도 천라대륙의 정예 세력으로 우리 대라천역 못지않아.”

구유의 말에 목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천라대륙에 이르기도 전에 벌써 정예 세력과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다니. 더구나 대범해 보이는 청년 같은 사람이야말로 속이 좁은 법이었다.

“이거 놔!”

임정은 청년이 떠난 것을 확인하더니 바로 목진의 손을 뿌리치고 그를 노려봤다.

“넌 참 사고뭉치야.”

목진이 한숨을 쉬자 임정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내가 왜, 난 저 나쁜 놈이 누군지도 몰라! 감히 나를 농락하다니, 이대로 넘어갈 수 없어. 아버지한테 전부 이를 거야. 아니지, 담비 삼촌이랑 호랑이 삼촌한테 이를 거야! 그들보고 저 녀석을 죽도록 혼내주라고 할 거야!”

임정은 이를 악물며 중얼거렸다. 보아하니 그녀는 조롱하는 사람을 처음 만난 것 같았고 저렇게 자신만만한 놈도 처음이었다.

이에 목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구유와 함께 앞쪽 자리를 찾아갔다. 임정도 잠시 머뭇거리더니 두 사람 뒤를 따랐다.

경매장에 사람들이 가득했지만 공간이 넓어 전혀 비좁지 않았다.

앞쪽에 자리 잡은 목진과 구유는 옥석으로 만들어진 좌석에 앉았는데 영기가 몸에 스며드는 것이 절대 보통 물건은 아닌 듯했다.

이 경매장은 목진이 여태껏 봐왔던 어떤 곳보다도 뛰어났다.

잇따라 임정도 목진의 옆에 앉자 소년은 그녀를 한껏 노려봤다. 소녀는 피부가 새하얗고 얼굴까지 고와 사내의 옷을 입었음에도 사랑스러워 보였다.

“날 내쫓지 말아줘. 옆에 앉아 조용히 보기만 할게.”

임정은 두 손을 모아 싹싹 빌었지만, 눈빛은 전혀 간절해 보이지 않았다.

“어디서 되지도 않는 연기는 하고 그래?”

“이렇게 알게 된 것도 인연인데 너무 매정한 것 아니야?”

목진이 단칼에 자르자 임정은 씩씩거리며 물었다.

“이미 자리에 앉았으니 함께 구경하자. 대신 절대 사고는 치지 마.”

반면, 구유는 미소를 지으며 소녀를 힐끗 보고 말했다.

“역시 언니밖에 없어.”

임정은 생긋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누군가 먼저 나를 괴롭히려 하지 않으면 난 절대 사고를 치지 않아.”

목진은 언짢은 척했지만 눈은 웃고 있었다. 그는 임정과 마주친 지 반나절밖에 안 되었지만, 소녀가 꽤 마음에 들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절대 두 번이나 도와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소녀한테 이상한 마음을 품은 건 아니었다.

임정은 결국 구유와 목진의 허락을 받더니 한시도 쉬지 않고 목진한테 말을 걸었다. 그러나 목소리가 듣기 좋아 귀찮지는 않았다.

소녀는 이름과 달리 쾌활하고 매력이 있었다.

그때 범상치 않은 세력들이 입장했는데 그들 역시 바로 경매장의 가장 앞쪽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이번 경매에 정예 세력이 꽤 모인 듯했다.

“오늘 경매에 유명한 세력이 적어도 다섯 군데는 왔어. 그런데 그중 실력이 가장 뛰어난 사람은 바로 천현전에서 온 그 녀석일 거야.”

구유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 녀석은 천현전에서 지위가 꽤 높을 거야. 그를 따르던 검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만 봐도 실력이 엄청나잖아. 아마 5품 지존은 된 것 같은데 그 정도 실력이라면 천연전에서도 장로급이야.”

“5품 지존이라고?”

목진은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이런 실력자를 호위무사로 세우다니 청년은 분명 천현전에서 지위가 상당한 것이 분명했다.

그 청년이 만약 허공대일과와 불멸신엽을 노린다면 목진한테는 썩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가 비록 취영완 덕분에 지존영액을 어느 정도 확보하긴 했지만, 천현전을 뒷배로 하는 사람과 경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저 녀석이 천현전 사람이야?”

임정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두려워할 필요 없어. 만약 녀석이 널 괴롭히려 하면 내가 나서서 혼내줄게!”

그녀는 자신을 조롱하려 한 녀석이 꽤 얄미웠던 모양이었다.

“고마워.”

그러나 목진은 소녀가 그저 홧김에 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나 천라대륙의 정예 세력인 천현전을 건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소녀는 눈을 부릅뜨고 목진을 바라봤고, 그가 자신을 믿지 못하는 것 같자 이를 악물고 말했다.

“알지도 못하면서!”

잠시 후, 경매장의 분위기가 정점에 이르자 빛기둥 한 줄기가 솟아오르며 종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하얀색 도포를 입은 노인이 나타났다.

머리와 수염이 하얗게 센 노인은 엄숙한 표정으로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다들 그의 등장에 적잖게 놀란 듯했다.

“묵청(墨青) 대사가 오늘 경매를 진행한다니, 물건들이 엄청난가 봐.”

“그러게. 묵청 대사는 상성의 수석 경매사로 한눈에 물건의 진위 여부를 판단할 수 있어. 보통 경매에는 절대 나서지 않으시니까 말이야.”

“이번에 오길 잘한 것 같아.”

* * *

목진은 주위 사람들이 말에 조금 놀란 표정으로 노인을 바라봤다.

“저 노인의 실력은 아마 3품 지존 정도일 거야.”

구유가 하얀색 도포를 입은 노인을 한참 살펴보더니 말했다. 이에 목진은 몰래 혀를 끌끌 찼다. 대천세계의 일개 수석 경매사의 실력마저도 3품 지존이라니, 북창령원에서 이정도 실력은 최정예급 장로였다.

하긴, 묵청 대사의 현재 지위도 범상치 않았다.

그때 묵청 대사가 수군대는 관중석을 쓰윽 훑더니 가장 앞쪽에 있는 방을 향해 인사하고 말을 이어갔다.

“여러분, 오늘의 경매를 지금부터 시작하겠소.”

“나는 매번 물건을 열 가지만 경매하는 건 다들 잘 알 거라 생각하오. 수량은 많지 않지만 다들 만족스러울 만한 물건들일 게요.”

노인의 자신만만한 말에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다들 이 규칙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흥미롭군.”

그는 이토록 개성 넘치는 경매사는 처음이었다. 물건을 열 가지밖에 경매하지 않는다면 분명 전부 엄청난 보물일 것이다.

그는 경매 대사가 고른 열 가지 보물이 과연 얼마나 진귀할지 궁금해졌다.

그러다 노인이 주먹을 쥐자 빛덩이가 나타났는데 그 속에 공간 파동을 내뿜으며 눈부신 빛을 발하는 쪽배가 들어있었다.

“이 물건은 하품 영기 공간선(空間船)으로 속도를 최대치로 끌어올리면 6품 지존이라도 절대 따라잡을 수 없소.”

묵청 대사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 물건의 경매가는 지존영액 2천 방울이오.”

이에 관중석은 떠들썩해졌다.

비록 하품이고 공격도 할 수 없지만 6품 지존마저 따라갈 수 없는 속도를 지녔다는 것이 놀라웠다.

공간선(空間船)만 있으면 도주할 때 쉽게 도망칠 수 있으니 공격력이 없어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물건이었다.

목진도 그 물건이 탐이 났지만 가격을 듣고 바로 생각을 접었다. 그가 원하는 보물을 전부 얻기도 전에 다른 물건에 지존영액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2,100방울이오!”

그 말고 그것을 원하는 사람은 많았다. 목숨만큼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에 공간선을 확보하면 상대로부터 안전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2,300방울이오!”

“2,500방울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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