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9화. 허공대일과
공간선의 가격은 1각도 안 되는 사이에 지존영액 3,000방울이 되었는데 다들 그제야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이는 절대 싼 가격이 아니었다. 실력이 5품 지존에 이른 강자라도 지존영액 3,000방울을 얻으려면 한시도 쉬지 않고 반년 정도 애써야 간신히 만들어낼 수 있는 양이었다.
결국 해쓱한 중년 남자가 지존영액 3,100방울에 공간선을 낙찰받았는데 목진은 오늘 경매장에 오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역시 첫 경매품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두 번째 경매품은…….”
첫 물건의 경매가 끝나자 노인은 다시 주먹을 쥐었고 다시 빛덩이가 나타나더니 그 속에 암장처럼 생긴 선홍색 액체가 흘렀다. 불씨가 튀기는 듯한 액체는 온도가 유달리 높아 경매장 전체가 후끈거렸다.
“이 물건은 천화옥수(天火玉髓)로 암장 바다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만들어낸 화옥인데 이를 만 년 동안 제련해야 비로소 옥수를 형성할 수 있소. 그리고 99등급 지존법신 중에도 이 물건을 재료로 하는 법신이 있다고 들었소. 이 물건의 경매가는 지존영액 천 방울이오.”
이에 다들 두 번째 경매품을 뚫어져라 쳐다봤는데 용도가 제한적이라 바로 생각을 접었다. 이 물건은 지존법신을 수련하는 사람한테만 필요한 물건이었다.
하여 목진도 바로 눈길을 거뒀는데 옆을 힐끗 보니 임정이 입술을 깨물며 천화옥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이 물건이 욕심이 난 듯했다.
그러나 그녀는 집에서 바삐 나오느라 지존영액이 모자라 별다른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또 목진한테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다. 지존영액 천 방울은 결코 적은 양이 아니었다.
임정은 결국 어쩔 수 없이 고개를 휙 돌렸는데 소녀의 이러한 모습에 목진은 피식 웃었지만 옥석 손잡이를 만지작거릴 뿐, 도와줄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1,200방울이오!”
“1,500방울이오!”
천화옥수의 작용은 한정적이었지만 얻기 어려운 천재지보였기 때문에 원하는 사람이 꽤 존재했다. 1각도 안 되는 사이에 가격이 지존영액 1,700방울까지 치솟았다.
이에 임정은 자리에 턱을 괴고 앉아 치열하게 다투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투덜댔다.
“내가 바삐 나오지만 않았어도 지존영액으로 바로 물건을 낙찰받았을 거야!”
한편, 목진은 옥석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며 관중석을 훑었는데 천화옥수의 경매에 참가한 사람들은 정예 세력 출신은 아닌 것 같았다. 그중 단 한 명이라도 정예 세력 출신이 있었으면 절대로 값을 이렇게까지 조금씩 올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여 목진은 조금이나마 시름이 놓였다.
그 후로 또 1각 정도가 지나자 경매가는 지존영액 2,300방울에서 멈췄고 하얀색 도포를 입은 노인은 잠시 기다렸다가 결과를 알리려 하였다. 임정은 여전히 씩씩거리며 앉아있었다.
“2,500방울이오.”
목진이 드디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에 다들 흠칫 놀라 소년을 바라봤고 임정도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목진을 쳐다보더니 입술을 깨물며 뭐라 중얼거렸다.
목진 바로 전에 값을 불렀던 사내는 미간을 찌푸리며 잠시 고민하더니 끝내 포기했다. 방금 부른 값은 그가 낼 수 있는 최대치였다.
잇따라 묵청 대사가 옷깃을 휘날리자 종소리가 들렸고 천화옥수의 주인이 가려졌다. 그리고 경매는 계속되었다.
임정은 눈을 굴리며 목진을 힐끗거리더니 쭈뼛거리며 수중의 부채를 만지작거렸다.
그녀는 감히 소년한테 천화옥수를 구매한 이유를 묻지 못했다. 자신을 위해 산 것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면 이보다 창피한 일은 없을 것이다.
목진은 한참 기다려도 아무 말 없는 소녀을 보고 피식 웃으며 먼저 말을 건넸다.
“천화옥수는 너한테 사준 거야.”
이에 임정은 얼굴이 순간 발그레해졌다.
“고마워! 나도 지존법신을 수련하고 있는데 여러 가지 옥수가 필요하던 참이었어.”
소녀의 말에 구유는 깜짝 놀랐다. 여러 가지 옥수가 필요한 99등급 지존법신은 절대 많지 않았다. 그중 63위인 천옥법신(天玉法身)은 각종 속성의 옥수를 재료로 해야 하는데 천화옥수가 그중 하나였다.
만약 임쟁이 천옥법신을 수련하기 위해 천화옥수를 원하는 거라면 그 뒷배는 엄청날 것이다. 해당 법신은 실력이 7품, 심지어 8품에 이른 지존급 강자도 엄청 탐을 내는 것이었다.
비록 천옥법신이 순위가 앞쪽에 있는 법신보다 못하긴 하지만 지존경에 막 이른 이한테는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
수련하고자 하는 지존법신의 위력이 너무 강하면 장악하기 힘들고 너무 약하면 수련해봐야 큰 의미가 없었다. 임정의 가족이 그녀에게 천옥법신을 권한 것도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정일 것이다.
그러나 지존법신에 대해 잘 모르는 목진은 구유와 같은 생각을 할 리 없었다.
“집에서 재료를 갖춰주지 않았나 봐?”
목진은 뒷배가 범상치 않은 소녀가 천화옥수쯤은 쉽게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여겨 의아해했다.
“무슨 일이나 가족의 덕을 보면 재미없어.”
임정이 다리를 느긋하게 흔들며 말했다. 그 말에 목진은 무안한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참, 난 신세는 안 진다고 했으니까…….”
임쟁은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길쭉한 목에 걸린 옥패를 꺼냈다. 유백색을 띤 옥패는 액체가 흐르는 것 같았는데 생긴 건 수수했지만 엄청난 파동이 느껴졌다.
“이건 호신 영옥인데 가장 위험한 순간에 자동 소환돼 너를 보호해줄 거야. 상대방의 실력이 5품 지존을 넘지만 않으면 치명적인 공격을 한 번 정도는 막아줄 거야.”
목진과 구유는 순간 흠칫 놀랐다. 5품 지존의 필살기를 막아줄 수 있다니, 평범해 보이는 옥패가 예사롭지 않은 위력을 지녔다.
“네 가족이 너한테 준 물건을 내가 어떻게 가질 수 있겠어?”
목진은 결국 소녀의 호의를 거절했다.
“그리고 호신 영옥은 천화옥수보다 더 값질 거야.”
“안 돼, 네가 이걸 가지지 않으면 나도 천화옥수를 받지 않을 거야.”
임정은 한껏 진지해진 목소리로 목진을 노려보며 고집을 부렸다.
소녀도 자기만의 원칙이 있었다.
“그리고 내 걱정은 마. 나한테는 호신 영옥만 있는 게 아니야. 안 그러면 내가 몰래 집에서 나왔을 리 없지.”
임쟁은 히쭉 웃더니 팔목을 보여줬는데 그곳에도 자그마한 옥패가 걸려있었다.
그걸 보고 목진은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진귀한 호신 영옥을 몸에 치렁치렁 달고 다니다니, 역시 뒷배가 든든한 소녀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목진이 우연히 취영완을 얻지 않았으면 그녀와 이러고 있지 못했을 것이다.
“자.”
임쟁은 호신 영옥을 바로 목진한테 건넸다.
“오히려 네가 밑지는 장사를 했어.”
목진은 씁쓸하게 웃더니 호신 영옥을 건네받고 한숨을 쉬었다.
“그럴 필요 없어, 목진아. 넌 참 좋은 사람이야!”
임쟁은 배시시 웃으며 소년을 향해 엄지를 척 내밀었다.
임정은 목진이 천화옥수를 사준 것이 썩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만난 지 반나절도 되지 않는 사람을 위해 지존영액을 2,000방울도 넘게 쓰면서 자기한테 필요없는 물건을 구매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임정은 목진이 지존영액을 마구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부유한 사람이 아니란 걸 잘 알아 더 고마웠다.
소녀는 비록 어리지만 목진보다 해박했다. 보기에 데면데면한 그녀가 정말 천진난만한 것만은 아니었다.
목진은 호신 영옥을 거두고 경매에 다시 집중했는데 어느새 경매품이 네 가지나 팔렸다.
경매에 나타난 신기와 신술은 하나같이 예사롭지 않은 보물로 치열한 경쟁을 거쳐 낙찰되어 경매장의 분위기는 점차 뜨거워졌다.
그러나 허공대일과와 불멸신엽은 아직도 나타나지 않았고 목진의 안색은 점차 어두워졌다. 뒤로 갈수록 경매품의 가격은 점차 올라갈 텐데 앞쪽 방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아직 한 번도 나서지 않았다.
취영완의 봉인 중 일부를 뚫은 목진은 현재, 지존영액을 만 팔천 방울을 확보하고 있었다. 하지만 두 가지 천재지보를 모두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다 일곱 번째 경매품이 모습을 드러내자 목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노인 수중의 물건이 눈부신 빛을 발했는데 태양이 떠오르는 것처럼 경매장 전체를 훤히 비추며 특이한 파동을 내뿜었다.
그 순간, 경매장에 정적이 흘렀고 다들 눈부신 빛덩이 속 물건에 집중했다. 그것은 바로 유백색 화염이 활활 타오르는 열매가 눈부신 빛을 내는 것이었다.
목진은 정신을 번쩍 차렸다. 드디어 허공대일과를 찾았다.
그때 가장 앞쪽에 있는 방에도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들도 이 물건에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
“이 보물은 허공대일과로 다들 들어봤을 것이오. 이를 제련해 지존해에 넣으면 힘이 깃들어 더 강력해질 것이오. 그 희귀성은 말해봐야 입만 아프니까 바로 가격을 부르겠소. 허공대일과의 경매시작가는 지존영액 7천 방울이오!”
묵청이 말을 마치자 관중석은 다시 떠들썩해졌다. 엄청난 가격이었지만 영력의 위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보물을 마다할 사람은 없었고 그런 물건이 많지도 않았다.
목진도 가격을 듣고 심장이 철렁했다. 경매 최저 가격이 지존영액 7천 방울이라면 정작 낙찰될 가격은 얼마나 높을 거란 말인가?
후우.
목진은 깊게 숨을 들이켜더니 이내 정색했다. 가격이 아무리 높아도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이번 기회에 물건을 얻지 못하면 대일불멸신을 언제 수련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경매장 전체에 퍼진 눈부신 빛에 다들 이글거리는 눈으로 허공대일과를 바라봤다.
목진도 마찬가지였는데 바로 깊게 숨을 들이켜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주위 상황을 살폈다. 가장 앞쪽 방에 있는 사람들도 목진과 같이 그 물건을 눈여겨보는 눈치였다.
지존급 강자라면 영력의 위력을 올려주는 천재지보가 탐 날 수밖에 없었다.
한편, 묵청은 관중석을 쓰윽 살피더니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부터 경매를 시작하겠소.”
그의 말에 주위가 순간 조용해졌다. 지존영액 7천 방울은 아무나 내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지만 다들 일단 상황을 살피기로 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1각도 지나지 않아 누군가의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
“7,300방울이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차가운 인상의 중년 남자로 주위에 강력한 영력 파동이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실력이 범상치 않은 듯했다.
“7,500방울이오!”
그 가격은 얼마 가지 못하고 바로 대체되었다.
“7,800방울이오!”
경매장의 분위기는 어느새 들끓었다. 허공대일과를 원하는 사람들이 더는 참지 못하고 나선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가격은 지존영액 8,500방울까지 치고 올라갔고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정도 양이면 그들의 수련 속도를 몇 배는 끌어 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정도 가격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어 경쟁자는 점점 줄어들었고, 지금부터 나서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실력자였다.
“9,500방울이오!”
그때 한 여인이 느긋하게 외쳤다. 이에 다들 앞쪽을 바라보자 요염한 여인이 얇은 천막을 들고 생긋 웃고 있었다.
“선호종의 심호(心狐) 선녀군.”
“그녀도 허공대일과에 관심이 있었다니…….”
관중석이 순간 떠들썩해졌다. 다들 이 여인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값을 부르는 사람이 더는 없었다. 심지어 일부 강자들은 그녀한테 밉보이지 않기 위해 경쟁을 포기하기까지 했다.
이에 목진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만 방울이오!”
사람들은 화들짝 놀라 목진을 바라보며 그 출신을 추측했다. 지존영액 만 방울은 아무나 내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작 목진은 무덤덤하게 허공대일과를 노려볼 뿐이었다.
심호 선녀도 조금 놀란 듯한 표정으로 소년을 바라봤는데 목진은 미안한 마음을 담아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자 심호 선녀는 생긋 웃더니 더는 나서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