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화. 불멸신엽
“허허, 심호 선녀가 허공대일과에 관심이 없으면 내가 계속하지.”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음침하게 생긴 청년이 나서며 히쭉 웃었다.
“난 재력이 그 정도까지는 안 되어 여러분과 더는 함께하지 못할 것 같소. 그런데 천현전의 소전주가 의향이 있다면 물러나야 하지 않겠나?”
심호 선녀가 미소를 지으며 한 말에 청년은 가볍게 인사를 하고 목진한테 고개를 돌렸다.
“만 천 방울이오!”
이에 목진은 순간 미간을 찌푸렸다.
“나쁜 놈, 왜 저렇게 얄미울까!”
임정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일전에 청년이 그녀를 농락한 것도 미운데 목진의 앞길까지 막아 더 화가 났다.
“목진아, 값은 마음껏 불러. 정 안 되면 내 몸에 지닌 물건을 팔면 돼.”
임정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니까 진정해. 어디 부를 수 있을 때까지 불러보라지?”
목진은 무덤덤하게 웃으며 한기 어린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봤다. 청년이 천현전에서 지위가 상당하긴 해도 지존영액을 몇만 방울씩 걸고 목진과 싸우지는 못할 거라고 여겼다.
지존영액은 마시는 물처럼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어찌 됐든 목진은 꼭 허공대일과를 취하기로 마음먹었다.
“만 이천 방울이오.”
목진의 느긋한 말에 다들 몰래 혀를 끌끌 찼다. 다들 목진도 유명한 종족 출신이 분명하다고 여겼다.
이에 청년은 미간을 찌푸리며 소년을 바라봤다. 일전에 임정의 일로 언짢았던 참이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목진과 백의 소녀는 남매가 아니란 걸 다 알았다.
더구나 목진은 실력이 막 지존경에 이르러 곁에 서 있던 예쁘장한 흑의 여인만 아니었으면 그는 바로 내쳤을 것이다.
“소전주님, 당신이 상성에 온 목적은 허공대일과가 아니에요.”
그때 뒤에 서 있던 검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이 말을 건넸다.
“나도 알아.”
청년은 인상을 살짝 찌푸리더니 손을 휙 저으며 외쳤다.
“만 삼천 방울이오!”
청년은 씨익 웃고 목진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녀석, 겁도 없이 감히 나한테 덤벼?”
“만 오천 방울이오.”
목진은 다시 느긋하게 입을 열었는데 지존영액을 2천 방울이나 올려 말했다.
이에 심호 선녀를 포함해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다들 화들짝 놀랐다. 소년의 담력이나 씀씀이가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청년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채 한기 어린 눈빛으로 목진을 쏘아봤지만 정작 소년은 허공대일과에만 집중할 뿐, 그쪽은 거들떠보지 않았다. 이에 청년은 입가를 파르르 떨며 값을 더 비싸게 부르려고 했다.
“소전주님!”
뒤에 서 있던 검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이 인상을 쓰며 외치자 청년은 이를 악물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국 포기했는데 눈빛만은 예사롭지 않았다.
“목 장로, 저 녀석을 절대 잊지 마. 내 물건은 아무나 빼앗을 수 있는 것이 아니잖아?”
“걱정하지 마세요, 소전주님. 소년은 엄청난 대가로 당신을 위해 허공대일과를 구매했을 뿐이에요.”
검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청년의 안색이 조금이나마 돌아왔다.
한편, 다들 그의 엄청난 패기에 놀란 듯 더는 목진과 경쟁하지 않았다. 그렇게 허공대일과는 목진의 몫이 되었다.
묵청이 경매 결과를 선포하고 나서야 목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는데 음산한 기운이 느껴져 고개를 돌려보니 천현전의 소전주가 그를 한껏 노려보고 있었다.
녀석만 아니었으면 이렇게까지 값을 비싸게 부를 필요도 없었다는 생각에 목진의 눈빛도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이미 대량의 지존영액을 소비한 그는 불멸신엽을 얻지 못할 수도 있었다.
“녀석이 너를 죽이고 싶어 하는 것 같아.”
구유도 한기 어린 눈빛으로 녀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목진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녀석을 따르는 검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이 오품 지존이라도 구유를 이기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다름 아닌 신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작 노인의 비호를 받는 청년은 일품 지존이라 정말 싸움이 나도 전혀 두렵지 않았다.
사색에 잠겼던 목진은 바로 정신을 차렸는데 묵청 대사가 어느새 아홉 번째 경매품을 선보이고 있었다. 역시나 목진의 예상대로 그가 대일불멸신을 수련하는데 필요한 마지막 재료인 불멸신엽이었다.
묵청 대사의 메마른 손에 암황색을 띤 손바닥만 한 마른 잎이 나타났는데 나무 무늬가 가득 난 잎사귀는 한없이 평범해 보였다. 아마 묵청 대사가 들고 있지 않았으면 아무도 이 물건이 말로만 듣던 불멸신엽일 줄 몰랐을 것이다.
이 세상에는 불멸신수(不滅神樹)란 나무가 있는데 수명이 상당히 길고 수도 없는 겁난을 겪고도 죽지 않았다.
이런 신수는 천 년마다 나뭇잎이 하나 생기는데 이것이 바로 불멸신엽(不滅神葉)으로, 이 나뭇잎으로 ‘체신엽(替身葉)’을 만들면 목숨이 두 개가 되는 신기한 능력을 갖추게 된다.
그것이 수많은 강자가 그것을 좋아하는 이유였다. 이 세상에 보물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목숨만큼 소중한 것은 없기 때문이었다.
하여 불멸신엽이 나타날 때마다 사람들이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드는 것이다. 지금도 사람들은 혈안이 되어 불멸신엽을 바라봤다. 아마 이곳에서 싸우면 안 된다는 규칙이 없었으면 불멸신엽을 얻기 위해 이미 싸움이 벌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묵청 대사는 무덤덤했다.
“불멸신엽의 경매가는 지존영액 만 방울이오.”
이에 다들 깜짝 놀랐다. 지존영액 만 방울은 사실 엄청난 양이라 아무나 선뜻 내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떡하지?”
구유도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녀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는데 문제는 앞으로 가격이 더 오를 거라 남은 지존영액으로는 턱도 없었다.
“일단 상황을 살피자. 정 안 되면 학원 대회에서 얻은 천재지보와 신기를 팔면 되지.”
목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대천세계에서 지존영액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제야 제대로 실감했다. 북창령원에 있을 땐 전혀 감이 안 잡혔는데 대천세계에서 지존영액이 없으면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적었다.
그에게 비록 취영완이 있다지만 봉인이 너무 강력해 아무리 구유라도 전부를 뚫고 그 속의 영액을 취할 수는 없었다.
하여 구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지존영액을 많이 모았었지만 겁난을 건네는 데 전부 사용해 목진을 도와줄 수 없었다.
“내 물건을 좀 팔아서 지존영액으로 바꿀까?”
옆에 있던 임정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임정은 목진이 천화옥수를 구매하는데 자신의 지존영액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았기에 가만히 있으려니 괜히 미안했다.
이에 목진은 그저 웃기만 했다.
어느새 불멸신엽의 경매가 시작되었고 목진의 예상대로 가장 앞쪽 방에 들어간 사람들의 경쟁이 치열했다.
모두 강력한 뒷배가 있는 이들이라 재력도 상당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가격이 지존영액 만 오천 방울까지 올라가 허공대일과의 낙찰가와 맞먹었다. 그런데도 경매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목진은 태연하게 앉아 상황을 지켜봤는데 아직 포기하지 않은 세력은 세 군데로 재수 없는 청년, 선호종의 심호 선녀, 소매에 검은색 해골이 새겨진 회색 도포를 입은 노인이었다.
“저 사람은 해골마산(骷髏魔山) 소속일 거야. 해골마산은 해골대륙의 패주로 실력이 막강하긴 한데 대라천역과 천현전보다는 뒤처져.”
구유가 옆에서 회색 도포를 입은 노인의 신분을 밝히자 목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천라대륙은 초대륙이니만큼 아무나 정예 세력이 될 수 없었고 그들과 감히 비교할 수도 없었다.
해골마산도 보통 세력이 아니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감히 천현전, 선호종과 경쟁을 벌이지 않았을 것이다.
“만 칠천 방울이오.”
그때 회색 도포를 입은 노인이 다시 입을 열자 다들 흠칫 놀랐다.
“허허, 이건 내가 낼 수 있는 최고가라 이보다 더 높으면 그만두겠네. 천현전과 선호종의 체면도 생각해야지 않겠나?”
회색 도포를 입은 노인이 청년과 심호 선녀를 보며 히쭉 웃자 심호 선녀는 느긋하게 웃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귀고(鬼骷) 장로가 가격을 이렇게까지 끌어올렸는데 소녀가 무슨 수로 경쟁할 수 있을까요? 지금부터는 천현전의 유명(柳暝) 소전주와 당신의 몫인걸요.”
이에 청년은 피식 웃더니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럼 더는 봐주지 않겠어요. 우리 천현전에서 원하는 물건을 빼앗는 건 절대 쉽지 않을 거예요.”
말을 마친 유명은 차가운 얼굴을 한 채 목진을 힐끗 봤다.
“지존영액 2만 방울이오.”
유명이 씨익 웃으며 해골마산의 장로를 바라보자 다들 소름이 끼쳤다. 역시 천현전에서는 불멸신엽을 노리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지존영액 2만 방울은 자그마한 세력이 한 해 동안 애를 써도 절대 벌어들일 수 없는 금액이었다.
순식간에 3천 방울이 더해져 폭등하자 노인은 눈가를 파르르 떨더니 묵묵히 자리에 앉았다. 그의 말대로 그가 부른 가격보다 높으면 더는 살 수 없기 때문이었다.
불멸신엽이 진귀하다고는 하나 지존영액을 2만 방울이나 주고 사기에는 아까웠다.
구유는 경매가 곧 끝날 것 같아 목진을 힐끔거렸는데 그는 한기 어린 눈으로 불멸신엽을 한참 보더니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포기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언제 다시 불멸신엽을 얻을 수 있을지 몰라. 그럼 지존법신을 언제 수련할 거야?”
구유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아직 그런 말을 하기에는 일러.”
“그게 무슨 말이야?”
목진이 피식 웃으며 한 말에 구유는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누군가가 내가 얻은 허공대일과까지 수중에 넣으려고 해.”
목진은 무덤덤하게 말을 이어갔다.
“상대방도 내 물건을 탐내는데 나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 있어?”
“저들을 상대하려는 거야?”
구유는 목진이 이렇게까지 담대할 줄 몰랐다.
“내가 아니라 저들이 언젠가 날 덮칠 거야. 노인네를 상대할 자신이 있어?”
목진이 말한 노인네는 유명 곁에 있는 검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이었다.
“그는 비록 오품 지존이지만 신수의 전투력을 따라가기는 어려워. 그렇다고 해도 난 저 사람을 죽이지는 못할 거야.”
“유명은 일품 지존이라 지존법신을 수련했을 거야. 보기에 나보다 실력이 강해 보여. 분명 노인네더러 네 발목을 잡으라고 하고 녀석은 나를 상대하려고 할 거야.”
목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보아하니 그는 자존심이 무척 강하고 속도 좁아. 분명 나한테 복수하러 올 거야. 그러니까 우리가 여길 떠나는 건 절대 쉽지 않을 거야.”
“어디 해보라고 해.”
구유의 눈에도 어느새 한기가 서렸다. 유명이 감히 우리를 노린다면 그녀는 제대로 본때를 보여주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목진은 씨익 웃었다. 그는 가능한 밖에서 사건을 벌이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유명이 정말 도전장을 내밀면 불멸신엽을 가져올 완벽한 이유가 생겨 마침 잘 됐다고 생각했다.
그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정 안 되면 구유가 본체로 변신해 함께 도망가면 그만이었다. 구유명작의 속도는 검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이라도 절대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다.
어느새 불멸신엽의 경매는 끝났고 역시나 유명이 낙찰받았다. 지존영액 2만 방울이란 소리에 다들 겁에 질려 더는 감히 나서지 못했다.
묵청 대사가 옷깃을 휘날리며 불멸신엽의 낙찰을 알리자 유명은 흐뭇하게 웃으며 목진 쪽을 힐끗 쳐다봤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감히 내 물건을 탐내? 죽고 싶어 환장한 녀석.”
쿵.
경매장에 다시 맑은 종소리가 들리더니 다들 허리를 곧게 펴고 묵청을 바라봤다. 그때 가장 앞쪽 방에서는 얇은 천막까지 거두었다.
묵청이 곧 선보일 이 물건은 이번 경매에서 가장 진귀한 보물로 정예 세력 중 대부분이 사실 이 물건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목진도 고개를 들고 상황을 살폈다. 도대체 어떤 보물이기에 허공대일과와 불멸신엽보다 순서가 뒤에 있는지 궁금했다.
묵청 대사가 주먹을 쥐자 금광을 발하는 물건이 사람들 눈앞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