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4화. 변고
쿵!
흑련 세 송이가 하늘을 가르며 천염지갑을 입은 천염법신을 공격하자 액체처럼 진득한 검은빛이 폭발해 놀라운 속도로 천염지갑을 감쌌다.
검은색 액체가 닿은 곳의 암장은 순간 꺼졌고 조금씩 녹아내렸다.
목진의 공격은 큰 파장은 일으키지는 않았지만 상대방을 녹여 서서히 무너뜨려 더 무서웠다.
이에 천염법신은 꼼짝없이 서서 자기 몸에 퍼지는 검은빛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의 천염법신 중 검은빛이 닿은 곳은 꼭 오염된 것처럼 빠르게 힘을 잃어갔다.
“젠장, 도대체 이게 무슨 영진이란 말인가?”
화들짝 놀란 유명이 이를 악물고 포효하자 천염법신은 다시 암장을 내뿜어 괴이한 검은빛을 씻어내려고 했다.
두 갈래 힘이 부딪치자 하얀 안개가 일었다.
빨간 암장은 난폭한 힘을 미친 듯이 방출했지만 몸에 찰싹 달라붙은 검은 액체는 끄떡없었고 오히려 조금씩 암장을 집어삼켰다.
그때 목진은 다시 인법을 바꾸며 외쳤다.
“흑련침식(黑蓮侵蝕)!”
위잉!
검은색 액체의 속도는 더 빨라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방대한 천염법신의 몸을 절반쯤 뒤덮었고 그 속의 영력은 전부 사라졌다.
드디어 겁이 난 유명이 철수하려고 했는데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나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천현전에서 너를 죽일까 봐 두렵지도 않아?”
그러나 목진은 상대방의 말을 전혀 개의치 않고 공격에만 집중하였다.
유명은 위협이 전혀 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공격에 박차를 가하는 소년을 보고는 황급히 애원했다.
“잠시만, 이번엔 내가 졌어. 내가 불멸신엽과 구룡구상술을 너한테 줄게!”
그러나 목진은 비웃는 듯한 눈빛으로 유명을 바라봤다.
“지금에서야 그런 말을 하다니…….”
목진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을 이어갔다.
“너무 멍청하군!”
원한을 맺은 이상 더는 봐줄 필요가 없었다. 그래 봐야 더 큰 화를 부를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유명은 뒷배가 엄청나 녀석을 무사히 돌려보냈다가 언제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슉!
액체 같은 검은빛은 빠르게 퍼져 천염법신의 목을 지나 얼굴까지 감쌌다.
이에 천염법신은 온몸이 굳었고 포효하려던 유명은 입조차 움직일 수 없게 되었으며 끓어오르던 영력마저 신속하게 사그라들었다.
결국 위풍당당했던 천염법신은 식은 암장처럼 어둡고 차가운 돌덩이가 되었고 그 속에 영력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목진은 차갑고 어두운 바위 거인을 보더니 발을 힘껏 굴러 날아오르며 손바닥에 보라색 영력을 모았는데 그 속에 살기가 가득했다.
“네가 감히!”
그때 구유와 싸우던 검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의 안색이 한껏 어두워진 채 외쳤다. 그는 유명이 목진과의 대결에서 패배할 줄 몰랐다.
이에 검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이 뒤로 물러나 유명을 도우러 가려고 했다. 만약 소전주가 이곳에서 무슨 봉변이라도 당하면 천현전의 전주는 그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흥.”
그러나 구유의 보라색 화염이 들끓는 날개가 하늘을 가르며 신속하게 그를 공격했다.
그 무서운 파동에 노인은 안색이 어두워졌는데 보라색 화염은 절대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공격을 제대로 맞으면 아무리 5품 지존이라도 꽤 큰 상처를 입을 것이다.
하여 노인은 손을 휘둘러 영력 거수를 만들었다.
쿵!
순간 난폭한 영력 파동이 일었고, 이와 동시에, 어느새 까맣게 그을린 암장 거인의 앞에 나타난 목진은 녀석의 가슴팍을 향해 웅장한 영력이 담긴 장풍을 쐈다.
퍽!
난폭한 영력이 휘몰아치자 온몸이 굳은 암장 거인의 가슴팍에 균열이 일더니 눈 깜빡할 사이에 온몸에 퍼졌고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폭발해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잇따라 한껏 어두워진 빛의 그림자가 피를 토하며 한 산맥에 내리꽂혔는데 엄청난 여파에 산 전체가 부서져 녀석은 바로 파묻혔다.
목진은 허공에 서서 무덤덤한 표정으로 폐허가 된 산맥을 보더니 조용히 다가가 녀석 몸 위에 덮인 바위를 치웠다.
그러자 피투성이가 된 유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사색이 된 채 맥없이 자리에 누워 눈가를 파르르 떨며 목진을 바라봤다.
“네 천염법신이 생각보다 별로인 것 같지 않아?”
목진은 화들짝 놀란 유명을 보며 무덤덤하게 물었다.
이에 유명은 이를 갈며 소년을 노려봤는데 정작 목진은 이를 무시하고 녀석의 개자탁을 가져왔다. 그는 바로 개자탁을 열어 확인하지 않았지만 불멸신엽과 구룡구상술이 들어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넌 참 좋은 사람이야, 고마워.”
목진이 히쭉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유명은 너무 화가 나 피를 토하더니 한에 서린 눈빛으로 소년을 바라봤다.
“내가 그렇게 죽이기 쉬운 사람인 줄 알아? 난 천현전의 소전주야!”
그의 원한 가득한 말에 목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바로 살수를 뒀다. 그러자 무서운 영력 홍류가 녀석의 머리로 향했다.
“인마장로(人魔長老), 언제까지 숨어있을 거야? 내가 죽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그때 유명이 고래고래 외치자 목진은 흠칫 놀라 사정없이 장풍을 쐈다.
쿵!
그런데 목진의 공격이 녀석의 머리에 닿기도 전에 그는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독한 녀석, 네가 저 아이를 죽이면 난 전주한테 뭐라고 할까?”
갑자기 들려온 노인의 목소리에 목진이 고개를 들자 폐허의 위쪽에 회색 도포를 입은 삐쩍 마른 노인이 나타났다.
회백색 눈동자를 가진 노인은 목진을 노려보고만 있는데도 저절로 소름이 끼쳤다.
“저 사람은…….”
갑작스러운 변고에 목진 뿐만 아니라 멀리서 몰래 훔쳐보던 심호 선녀와 중년 남자마저 안색이 어두워졌다.
“천현전의 삼대 장로 중 하나인 인마 장로라니, 악마 같은 노인네가 몰래 숨어서 유명을 보호하고 있었을 줄이야!”
심호 선녀가 한껏 정색하며 말했다.
중년 남자도 잔뜩 긴장한 채 노인을 바라봤다. 인마 장로는 천라대륙에서 명성이 자자한 8품 지존으로 천현전에서 지위가 상당히 높았다.
“소년이 내일 떠오르는 태양을 못 볼 것 같네요.”
중년 남자가 아쉬워하며 말했다. 인마 장로까지 모습을 드러냈으니 이곳에 더 이상의 이변은 없을 것이다.
그는 8품 지존으로 목진과 구유가 감히 덤빌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목진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회색 도포를 입은 노인을 보더니 갑자기 뒤로 물러서며 외쳤다.
“임정아, 얼른 떠나!”
이에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던 임정이 바로 뒤로 물러났다.
“누굴 떠나보내려고 그러는 거지? 난 절대 네 뜻대로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거다.”
회색 도포를 입은 노인은 씨익 웃더니 바로 임정의 앞쪽에 나타나 메마른 손을 가볍게 휘둘렀다.
8품 지존의 실력에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임정은 이를 악물고 맞을 준비를 했다.
슉!
그런데 이때, 누군가 귀신처럼 나타나 그녀를 안고 도망가려 했다.
“사람을 구하려면 네 목숨을 내놔야지.”
회색 도포를 입은 노인이 가볍게 한숨을 쉬더니 메마른 손으로 공간을 가르며 임정을 끌어안은 목진의 등을 때렸다.
풉.
목진은 피를 토하며 튕겨 나갔고 등은 이미 피투성이가 되어 뼈까지 보일 정도였다. 그의 뇌신체가 9문 뇌체에 이르지만 않았다면 상대방의 공격에 육신이 뚫렸을 것이다.
“목진아!”
임정은 얼굴에 튄 소년의 피에 눈을 뜨고 황급히 외쳤다.
소년은 소녀를 꼭 끌어안은 채 추락했고, 피투성이가 된 목진은 등이 암석에 부딪혀 다시 왈칵 피를 토했다.
이러한 광경에 구유는 눈시울이 붉어져 소년을 구하러 가려고 했지만 검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한테 발목이 잡혔다. 이에 미친 듯이 공격을 개시하자 노인은 꼼짝도 못 했다.
“목진아, 괜찮아?”
“얼른 떠나!”
목진이 이를 악물며 소녀를 밀쳐내자 소녀는 목진의 옷자락을 꼭 잡으며 외쳤다.
“안 가!”
그녀가 떠나면 목진은 죽을 것이 뻔했다.
“야!”
목진은 너무 화가 났지만 엄청난 고통에 숨쉬기조차 어려웠다.
그는 상황이 이렇게 나빠질 줄은 몰랐다. 유명을 너무 쉽게 생각한 탓이었다. 천라대륙의 정예 세력은 역시 지금의 그가 감히 덤빌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수를 잘 못 뒀군.”
목진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감히 천현전의 소전주를 죽일 생각을 하다니, 너도 어지간히 멍청해.”
회색 도포를 입은 노인이 어느새 목진과 임정의 앞쪽에 나타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만 죽어.”
말을 마친 노인은 메마른 손으로 소년의 머리를 공격했다.
이에 목진은 광기 어린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며 신비로운 종이를 소환하려 했다. 지금 상황에서 도망갈 수는 없어도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그때, 그곳 공간이 번쩍하더니 눈부신 빛이 스치자 노인의 손은 목진의 머리가 아닌 가슴에 떨어졌다.
회색 도포를 입은 노인은 잠시 멈칫하다 갑자기 잘려나간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서서히 고개를 들었는데 목진 뒤쪽 공간이 일그러지며 한 여인이 나타났다.
그리고 차가운 목소리도 함께 전해졌다.
“감히 무경의 공주님을 죽이려 하다니, 너도 어지간히 멍청하구나.”
익숙한 목소리에 임정은 고개를 번쩍 들더니 이내 화색이 되어 외쳤다.
“어머니!”
“어머니?”
목진의 뒤쪽 공간에 파문이 일더니 한 여인이 나타났는데 점차 뚜렷해지는 모습에 임정은 이내 화색이 되었다.
이에 목진도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는데 하얀 치마를 입은 여인이 조용히 뒤쪽에 서 있었다. 무척 아름답게 생겼고 생김새는 임정과 비슷했지만 차가운 느낌만은 전혀 달랐다.
그런데 이 여인이 임정의 어머니라니, 목진은 모녀보다 자매라고 하는 것이 더 그럴듯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경이라니…….
목진은 화들짝 놀란 채 품에 안긴 임정을 쳐다봤다. 그는 소녀가 무경의 공주님일 거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못했다.
대천세계의 한쪽 땅을 점령한 거장이 바로 무경이고 그 창시자인 무조는 명성이 자자한 엄청난 존재로 천현전 따위가 감히 비교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목진은 그제야 임정이 온몸에 방어력이 상당한 호신 영옥을 지니고 다닌 것이 이해되었다. 그녀는 진짜 무경의 공주님이었다!
“어머니, 여긴 왜 왔어요?”
임정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백의 여인을 바라보더니 이내 화색이 되어 달려가 안겼다.
이에 여인은 소녀의 반듯한 이마를 가볍게 때리며 말했다.
“겁도 없이 감히 집에서 몰래 뛰쳐나와?”
여인은 차가운 기운을 풍겼지만, 소녀를 볼 때만큼은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집에만 있으면 심심하잖아.”
임정이 머리를 감싸고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버지께서 이번에 돌아가면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하셨어.”
“어머니, 부디 살려줘요!”
임정은 울상이 되어 백의 여인의 옷깃을 잡고 늘어졌다.
“전 수련하러 나온 거잖아요? 그리고 하마터면 죽을뻔했다고요.”
이에 백의 여인이 흠칫하더니 한기 어린 눈빛으로 회색 도포를 입은 노인을 바라봤다.
“넌 참 담대하구나.”
“당신은 누구야?”
회색 도포를 입은 노인은 잘린 손을 걱정할 때가 아닌 것 같아 한껏 정색하며 물었다.
“설마 무경 사람이야?”
여인이 방금 했던 말이 생각난 노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머니, 저 사람을 절대 가만두지 마세요. 날 죽이려고 한 사람이에요. 목진이 아니었으면 전 지금쯤 어딘가 잘려나갔을 거예요.”
임정은 어렵게 모습을 드러낸 강력한 뒷배를 이용해 몹쓸 노인네를 처리하려고 했다.
딸의 말에 백의 여인은 등이 피투성이가 되어 뼈까지 보이는 목진을 바라보며 상냥하게 웃었다.
“고마워, 넌 좀 괜찮아?”
여인의 말에 목진은 적응이 안 된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히쭉 웃었다.
“괜찮아요, 전 몸이 튼튼해서 크게 다치지 않았어요.”
이에 백의 여인이 다시 등을 확인하자 보라색 화염이 깃든 영력이 요동치며 빠르게 상처를 치유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깜짝 놀라더니 안심하고 다시 눈가를 파르르 떨고 있는 상대방을 바라봤다.
“어린아이한테 이렇게까지 하다니, 우리 무경이 그렇게 쉽게 보여?”
여인의 말에 회색 도포를 입은 노인은 갑자기 공간을 가르며 바로 유명한테 다가가 그와 함께 도망치려 했다.
심호 선녀와 중년 남자도 심장이 철렁하였다. 저 여인은 도대체 누구이기에 실력이 8품 지존경에 이른 인마 장로마저 황급히 도망가게 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