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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415화 (414/1,000)

415화. 무경의 안주인, 능청죽(綾清竹)

“어머니, 저들을 놓치면 안 돼요!”

임정이 황급히 외치자 백의 여인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더니 손을 살짝 들었다.

쿠쿵!

대지가 갑자기 격렬하게 떨리더니 커다란 산맥이 솟아올랐고, 오색 찬란한 색상을 띤 산맥은 엄청 눈부셨는데 자세히 관찰하면 그냥 바위가 아니라 순수한 영력으로 만든 물건으로 영력 파동이 엄청났다.

슉!

커다란 영력 산맥은 눈 깜짝할 사이에 어딘가를 향해 내리꽂혔는데 그곳 공간이 파르르 떨리더니 인마 장로와 유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인마 장로는 화들짝 놀란 채 자신에게 향하는 거대한 산맥을 보며 외쳤다.

“천지지상(天地之相)이라니!”

몰래 숨어있던 심호 선녀와 중년 남자도 깜짝 놀랐다. 천지지상은 적어도 지지존이 되어야 부릴 수 있는 수법이었다.

그럼 백의 여인이 설마 지지존이란 말인가!

천지지상이란 가벼운 손놀림만으로도 산맥과 하천을 만들 수 있고 지형까지 바꿀 수 있는 아주 오묘한 수법이다. 목진의 실력으로도 지형을 파괴할 수 있지만 지형을 만들어내는 건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었다.

쿠쿵!

영력 산맥이 내려앉자 그곳 공간은 완전히 봉쇄되었고 회색 도포를 입은 노인은 꼼짝할 수가 없었다.

풉.

노인은 온몸의 뼈가 부러지는 것만 같았다. 그는 피를 토하며 산맥과 함께 내려앉아 바닥에 꽂혔다.

영력 산맥은 주위에서 가장 높은 산이 되었고 그 밑에 깔린 노인은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엄청난 광경에 목진은 소름이 끼쳤다. 그는 지지존이 직접 나서는 것을 처음 봤는데 가볍게 손을 흔드는 것만으로도 무서운 위력을 뿜어냈다.

멀리서 구유와 대치 중이던 검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도 화들짝 놀라 곧바로 도망갔다.

그때 갑자기 무서운 힘이 느껴지더니 도망가던 그는 큰 타격을 입은 것처럼 맥없이 추락해 바닥에 거대한 구멍을 내며 내리꽂혔다.

이에 구유명작은 다시 작아져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돌아와 목진에게 다가가 갑자기 나타난 신비로운 여인을 쳐다봤다.

“이분은 임정의 어머니야.”

목진이 간신히 일어나 말했고, 구유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소년을 부축했다.

“어머니, 저들을 어떻게 처리할까요?”

임정이 배시시 웃으며 물었다.

“이곳에 5년쯤 가둬두자꾸나.”

백의 여인은 무덤덤하게 말하고는 손을 휘익 저었다. 그러자 검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도 영력 산맥에 갇혔는데 산맥이 천천히 내려앉더니 눈앞에서 사라졌다.

목진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영력 산맥이 가라앉은 곳을 바라봤다. 매끈한 대지를 보면 아무도 그 아래에 멍청한 세 녀석이 갇혀있다는 걸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5년 동안 갇혀있는 것은 8품 지존인 회색 도포를 입은 노인한테는 별 상관없었지만 막 지존경에 이른 유명은 살아남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목진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았다. 임정의 어머니가 아니었으면 그의 처지도 그리 좋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어머니, 제 때에 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임정은 백의 여인의 팔을 꼭 끌어안고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네 실력으로 무경에서 몰래 도망갈 수 있을 거라고 여겼던 거야?”

백의 여인이 피식 웃으며 딸을 바라봤다.

“내가 몰래 네 뒤를 밟지 않았다면 네 아버지는 이미 너를 끌고 집으로 돌아갔을 거다.”

이에 임정이 순간 울상이 되었다. 완벽한 줄 알았던 도주 계획은 완전히 무산되었다.

옆에 있던 목진도 몰래 식은땀을 흘렸다. 임정한테 나쁜 마음을 먹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자신도 온전치 못했을 것이다.

대천세계는 역시 위험천만한 곳이었다.

목진은 유명을 상대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해 이번 일을 계획했던 것인데 몰래 장로가 숨어있을 줄은 몰랐다. 하마터면 죽을뻔했다.

“저기…….”

백의 여인이 다시 목진한테 눈길을 돌렸다.

“저는 목진이라고 부르면 돼요.”

소년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하자 여인은 생긋 웃었다. 임정을 따라다니면서 그녀도 목진한테 호감이 생겼다.

“일전에 받은 개자탁을 나한테 주렴.”

이에 목진은 바로 물건을 건넸다. 소년은 여인이 이따위 물건은 안중에도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백의 여인은 소년의 태도마저 마음에 들었다.

잇따라 개자탁을 건네받은 여인은 물건에 빛을 쏘더니 다시 목진에게 돌려줬다.

“이 개자탁 안에 지지존이 남긴 인법이 있어 네가 막무가내로 가져가면 감지하고 다시 찾아올 것이다. 지금 내가 없앴으니 마음 편히 사용하거라.”

백의 여인의 말에 목진은 식은땀을 주르륵 흘렸다. 아직 개자탁을 열지는 않았지만, 그 속에 지지존이 남긴 흔적이 있을 줄은 몰랐다. 그는 아마 천현전의 전주일 것이다.

“고마워요, 선배님.”

목진이 감사의 인사를 표하자 여인은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네가 우리 정이를 구했으니 앞으로 나를 능 이모라고 부르거라.”

목진은 백의 여인의 상냥한 말투에 경계심이 많이 줄어들었다. 여인의 인상은 차가웠지만 임정이 있어서 그런지 유난히 인자해 보였다.

목진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능 이모.”

임정이 무경의 공주라면 백의 여인은 무경의 안주인일 것이다. 이런 엄청난 뒷배를 가까이 두면 상당히 든든할 것이다.

그러나 목진이 이를 염두에 두고 임정을 가까이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귀여운 소녀한테 단순하게 호감이 갔을 뿐, 뒷배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진정한 강자한테 가장 든든한 뒷배란 자기 자신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세상에서 스스로 장악한 힘만큼 든든한 것은 없었다.

소년의 말에 백의 여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자 저도 모르게 어머니가 떠올랐다.

목진의 어머니도 임정의 어머니처럼 멋진 분이었다.

“난 일단 상황을 정리할게.”

백의 여인은 갑자기 고개를 돌리더니 먼 곳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에 목진 등은 흠칫 놀라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또 다른 누군가가 그들을 노리고 있단 말인가? 그럼 오늘 목진은 때를 잘못 택한 거나 다름없었다.

그때 멀리서 숨어있던 심호 선녀와 중년 남자는 재빨리 흩어졌는데 바닥에서 갑자기 검처럼 예리한 돌가시가 지면에서 빠르게 솟아올랐다. 오색 찬연한 빛을 발하는 돌가시는 일전의 영력 산봉우리처럼 가장 순수한 영력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그들 몸에 바짝 붙어 감히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선배님, 우린 일부러 따라붙은 것이 아니에요.”

심호 선녀가 간신히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이들 앞쪽 공간이 파르르 떨리더니 백의 여인이 인상을 찌푸리며 두 사람 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이들까지 처리해야 할지 고민했다.

“선배님, 우리는 선호종에서 왔습니다. 선호 마마를 봐서라도 부디 살려주세요.”

중년 남자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선호종이라…….”

백의 여인은 피식 웃더니 말을 이어갔다.

“선호종 여우년의 제자였군.”

“우리 마마를 아세요?”

심호 선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 번 본 적 있는데 그녀가 내 남편한테 정신이 팔렸었지. 그런데 그녀의 선호대법도 별것 없더군.”

백의 여인이 히쭉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심호 선녀와 중년 남자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고 뭐라 반박하고 싶어도 감히 그럴 수 없었다. 백의 여인은 선호 마마 못지않게 아름다웠고 그 실력은 심호 선녀와는 천지 차이였다.

“선배가 누구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심호 선녀가 이를 악물고 물었다. 선호 마마는 그녀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었다. 다들 그녀를 미소 짓도록 만들기 위해 물불 안 가리는데 한낱 사내 때문에 체면을 버리면서까지 선호대법을 사용했단 것이 믿기지 않았다.

“난 무경의 능청죽이야.”

백의 여인의 무덤덤한 말에 심호 선녀는 화들짝 놀랐다.

“무경의 안주인, 능청죽이라…….”

백의 여인이 무경의 안주인이면 그 남편은 무경을 만든 사람이고 대천세계에 명성이 자자한 무조, 임도일 것이다.

심호 선녀는 이정도 사람이라면 마마께서 설렐만하단 생각이 들어 더는 뭐라 하지 않았다.

이에 능청죽이 손을 휘익 젓자 돌가시가 다시 바닥에 스며들었다. 그 괴이한 모습에 다들 소름이 끼쳤다.

“오늘 일은 못 본 것으로 해.”

그녀는 천현전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지만 목진은 그렇지 않았기에 소식이 새어나가면 큰 화를 부를 수도 있었다.

“걱정 마세요, 선배님.”

심호 선녀는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총명해 바로 여인의 말을 알아들었다. 무경은 선호종 따위가 감히 건드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능청죽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리에서 사라졌고 심호 선녀와 중년 남자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는데 이마에 식은땀이 가득 흘렀다.

“너무 무섭네요.”

중년 남자는 온몸을 파르르 떨며 말했다.

“무경 안주인의 실력은 엄청나요. 아마 마마께서도 상대가 안 될 거예요.”

“마마께서도 지지존이신데 차이가 어느 정도 있긴 할지라도…….”

심호 선녀가 깜짝 놀라 말했다.

“그녀의 실력은 보기보다 훨씬 강력해요. 난 감응 신술을 수련한 적 있어서 실력에 대한 예측이 정확한 편인데 능청죽의 실력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예요. 지지존도 엄청나긴 하지만 이정도까지는 아니거든요…….”

중년 남자가 침을 꼴깍 삼키며 말했다.

“설마…….”

이에 심호 선녀는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무경의 안주인께서 실력이 천지존에 이르렀단 말이야? 무경의 실력이 이정도로 엄청나다고?”

보통 한 세력에 천지존이 한 명만 있어도 대천세계에서 정예급 세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데 남자의 예측대로라면 무경에 천지존은 한 명뿐이 아니었다.

“빙력족처럼 역사가 유구한 종족에서 무경에 의지한 것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죠. 그리고 무경에는 안주인이 두 명 있다고 들었는데 전부 실력이 엄청나다고 들었어요. 우리가 만난 건 그중 한 사람일 뿐인데…….”

중년 남자는 이내 감탄했다. 만약 백의 여인이 진정한 천지존이 아니더라도 무경의 실력이 상당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저 녀석은 어쩌다 무경과 인연이 닿은 거지? 무려 무경의 안주인을 직접 나서게 하다니…….”

심호 선녀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 존재는 아무 곳에서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백의 여인이 백의 소녀와 비슷하게 생긴 것 같았어요.”

중년 남자가 잠시 생각하다가 한 말에 두 사람은 순간 깨달았다.

“유명이 이번에 사람을 잘 못 건드렸군. 그런데 천현전이 이렇게 된 것이 우리한테는 제법 좋은 소식이지 않아?”

심호 선녀는 활짝 웃더니 재빨리 떠났고 중년 남자도 바로 그 뒤를 따랐다.

한편, 목진은 자신을 몰래 염탐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에 조금 부끄러웠다. 그가 이번에 저지른 실수는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반면, 임정은 능청죽의 팔을 잡고 배시시 웃었는데 여인은 소녀의 이마를 가볍게 때리며 말했다.

“허튼수작은 그만 부려. 네 아버지께서 오늘 어떻게든 너를 데려오라고 했어. 안 그럼 다음번엔 네 아버지가 직접 나설 거야.”

능청죽이 미소를 지으며 한 말에 임정은 순간 죽상이 되었다.

“어머니, 밖에 조금만 더 있을게요.”

딸의 애원에 능청죽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에 임정은 시무룩하게 고개를 푹 숙이더니 다시 고개를 번쩍 들어 기대에 찬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봤다.

“목진아, 나와 함께 무경에 가자. 무경은 엄청 재미있어. 그리고 내가 있는 한 너를 괴롭힐 사람은 없을 거야!”

목진은 순간 머쓱해졌다. 무경은 대천세계에서도 유명한 최정예 세력으로 다들 그곳에 들지 못해 안달인데 정작 그는 크게 생각이 없었다. 그는 뒷배를 두려고 대천세계에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무경에 있으면 아무도 목진을 괴롭힐 수는 없겠지만 그가 원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또 정말 그렇게 되면 소년은 낙리를 만나러 갈 용기조차 사라질 것만 같았다.

하여 소년은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정중하게 거절했다.

“무경은 좋은 곳이지만 나한테는 안 어울려.”

“왜?”

임정이 입을 삐쭉 내밀며 물었다.

능청죽은 목진의 말에 괜히 그한테 눈길이 더 갔다. 그녀는 소년의 집착에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오래전, 그녀가 임정만큼 어렸을 때 목진처럼 집착이 강한 소년을 만났었는데 그 소년은 어느새 커서 여인의 남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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