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화. 유천도(柳天道)
“앞으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무경으로 와.”
능청죽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녀는 소년의 거절에 기분이 나쁘긴커녕, 오히려 그 답변이 만족스러웠다.
“고마워요, 능 이모. 정말 그런 날이 있으면 꼭 찾아갈게요.”
목진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임정아, 넌 일단 무경에 돌아가서 실력부터 키워. 앞으로 네가 충분히 강해지면 나와 함께 놀자. 하지만 지금은 그만 헤어지는 게 좋을 것 같아.”
목진은 미소를 지으며 소녀한테 말을 건넸다. 그리고 능청죽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하고는 구유와 함께 그곳을 떠났다.
이에 임정은 화가 나 발을 동동 굴렀는데 능청죽은 소년의 뒷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참 재미있는 소년이야.”
“바보가 따로 없어요.”
임정이 입을 삐쭉 내밀며 말했다. 무경에만 가면 대우 자체가 달라질 것이고 수련도 훨씬 수월하게 할 수 있는데 이렇게 좋은 기회를 마다하는 소년이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 아이는 절대 바보가 아니란다.”
능청죽은 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생긋 웃었다.
“참 야심만만한 소년이야. 네 아버지의 젊었을 때를 보는 것 같구나.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지 무척 궁금하네…….”
“목진을 아버지와 비교하신 거예요?”
임정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물었다. 그녀한테 아버지 임동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었다. 그해, 임동이 빙 이모를 구해내기 위해 혼자 빙령족을 뒤집어놨었는데 그 일을 떠올릴 때마다 소녀는 아버지가 너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목진은 아직 그 정도 실력이 되려면 한참 멀었다. 이에 능청죽이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말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단다…….”
목진은 한 갈래 빛이 되어 하늘을 가르며 전진했다. 그리고 그의 등에 난 상처는 어느새 완전히 나아있었는데, 불사화의 엄청난 치유력에 깜짝 놀랐다.
예전 같았으면 한참이나 휴식을 취해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었다.
“불사화는 역시 신기해.”
목진은 이내 감탄하며 말했고 고개를 돌려 멀리 떨어진 뒤쪽을 바라봤다. 그는 아직도 임정이 무경의 공주님이란 사실이 놀라웠다.
“왜, 헤어지려니까 아쉬워?”
구유가 갑자기 나타나 소년을 노려보며 물었다.
“무경은 대라천역보다 훨씬 강한 곳인데 왜 거절한 거야?”
이에 목진이 미소를 지으며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내가 무경에 입성하면 안전은 확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게 과연 좋을까? 절세의 강자는 그렇게 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
“넌 참 야심만만한 사람이야.”
“하하, 아직은 내 실력이 더없이 평범하지만, 그 정도 용기마저 없으면 절세의 강자는 절대 될 수 없다고 생각해.”
호탕하게 웃으며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소년의 모습에 구유도 생긋 웃더니 앞쪽을 바라봤다.
“우리가 곧 도착할 도시에 천라대륙으로 통하는 전송 영진이 있을 거야. 드디어 두 달 동안의 긴 여정이 끝나가네.”
두 달간의 순조롭지만은 않았던 여정이 드디어 끝날 거란 생각에 목진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는 유명한테서 빼앗은 개자탁을 소환해 그 속에서 두 보물을 꺼냈다.
메마른 나뭇잎과 태양처럼 뜨거운 빛을 발하는 물건은 소년의 손에서 기이한 영력 파동을 내뿜었다.
목진은 대일불멸신을 수련하는 데 필요한 재료를 드디어 전부 수집했다는 생각에 저절로 웃음이 났다.
이를 이루기까지 참 많은 고생을 했다.
하지만 목진이 계속 북창령원에 있었다면 이 재료들을 전부 수집하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지존법신은 언제부터 수련할 거야?”
구유도 두 보물을 한참 쳐다보더니 질문을 던졌다. 만약 목진이 대라천역의 통령 자리를 꿰차려면 치열한 싸움을 벌여야 할 텐데 경쟁자들은 그곳의 정예들로 천현전의 풍족한 자원으로 실력을 갖춘 유명 못지않게 강했다.
목진이 적어도 지존법신을 수련해야 비로소 승산이 있을 것이다.
“지존법신의 수련은 하루, 이틀 만에 되는 것이 아니라서 대라천역에 도착하면 시작하려고 해.”
목진이 수련할 대일불멸신은 보통의 지존법신이 아니라 수련 도중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또 밖에서 떠돌아다니며 수련하다가 돌발 상황이라도 생겨 수련에 실패하면 손해가 상당할 것이다. 목진은 어렵게 구한 세 가지 재료를 허무하게 잃고 싶지 않았다.
이에 구유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서두르자.”
먼 곳을 바라보는 구유의 눈빛은 그리움으로 가득 찼다. 대라천역을 떠난 지 여러 해 되어 그녀의 구유궁이 어찌 되었는지도 궁금해졌다.
이렇게 두 사람은 다시 웅장한 영력을 끌어올려서 한 줄기 빛이 되어 신속하게 하늘을 가르며 전진했다.
* * *
천라대륙 북쪽에 있는 천현전은 정예 세력으로 지위가 상당했고, 확보한 땅도 어마어마했다. 면적으로만 보면 북창대륙의 10배는 넘을 것이다.
넓디넓은 땅에는 천현전뿐만 아니라 다른 세력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유일한 지배자인 천현전에 의지해 살아가기 때문에 그들에게 매년 대량의 지존영액을 바치곤 했다.
천현진의 중심에 있는 황금 전각은 구름으로 감싸인 것이 꼭 선경같이 위엄있고 신비로웠다. 그리고 금전의 가장 깊숙한 곳은 영광으로 가득 찼는데 그 중심에 광련 한 송이가 있었고 그 위에 누군가 조용히 앉아있었다.
그가 숨을 한 번씩 쉴 때마다 바람 소리와 뇌명이 들렸고 웅장한 영력이 요동쳤다.
그런데 수련 상태에 푹 빠져있던 그가 눈을 번쩍 뜨더니 잔뜩 화가 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손바닥을 내밀어 옥패를 소환하자 그 빛이 점차 어두워지고 있었다.
“명이의 신백인이 점차 약해지고 있어. 누가 감히 내 아들을 건드렸단 말인가!”
예사롭지 않은 목소리에 대전 내부에 순간 광풍이 일었다.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옥패는 허공으로 날아올랐고 인법을 바꾸자 영광이 옥패를 감싸며 유명의 구체적 위치를 탐색했다.
그런데 아무리 탐색해도 옥패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럴 수는 없어!”
그는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러자 온몸을 감쌌던 영광이 사라지면서 모습이 드러났다. 그는 그윽한 눈을 가진 청색 도포를 입은 중년 남자로 가벼운 움직임마저 무서운 위압감을 형성했다.
그는 다름 아닌 천현전의 전주이자 천라대륙에서 명성이 자자한 정예 강자, 유천도였다.
안색이 어두워진 유천도는 아들이 어딘가에 갇혔을 거란 생각에 눈가를 파르르 떨렸다. 그를 가둔 사람의 실력은 상당할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가 유명의 위치를 알아내지 못할 리 없었다.
“감히 누가 내 아들을 죽이려고 하나 보자!”
유천도가 콧방귀를 뀌며 옷깃을 휘날리자 커다란 팔괘 광반(八卦光盤)이 나타났고 손가락을 튕기자 신백인이 부서지며 한 갈래 빛이 광반에 들어갔다.
위잉!
잇따라 팔괘 광반이 회전하며 오묘한 빛의 무늬를 수도 없이 내뿜더니 위쪽 공간이 조금씩 일그러졌다. 광반은 공간을 가르며 무언가를 수색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공간이 한껏 일그러지며 공간 균열이 일었는데 유천도가 접근하자 바로 눈앞에서 사라졌다가 유명이 갇힌 상지대륙 주위에 나타났다.
그는 눈에 영광을 모아 대지를 꿰뚫어 보더니 그 속에 숨은 영광 산맥을 발견했다.
“천지지상이라니, 지지존이 나섰단 말인가?”
유천도가 흠칫 놀라 화를 가까스로 잠재우며 옷깃을 휘날려 대지를 가르자, 그 사이로 웅장한 영광 산맥이 나타났다.
이에 유천도는 영광 산맥위로 뛰어오르더니 두 손을 모아 결인했다. 그러자 한 갈래 빛줄기를 내뿜어 영력 산맥 전체를 감쌌다.
그는 영력의 산맥을 녹여 원래 형태로 되돌리려고 했지만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큰 효과가 없어 안색이 점차 어두워졌다.
영력 산맥에는 어떤 힘이 버티고 있었는데 그것은 유천도의 아들을 공격한 누군가의 강력한 의지였다.
“참 독한 사람이군.”
유천도는 이내 정색하였다. 상대방은 유명을 이곳에 오래도록 묶어둘 생각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현재 유명의 실력으로는 언젠가 죽을 것이다.
지지존인 유천도는 영력 산맥을 없앴을 수 없어 답답했다. 그렇다고 강제로 산을 부수면 유명이 다칠 것이 분명했다.
유명이 건드려서는 안 될 사람을 건드린 게 분명했다.
“당신이 누구든 내 아들을 이 꼴로 만들 필요는 없지 않나?”
유천도는 눈가를 파르르 떨며 콧방귀를 뀌더니 어딘가로 떠났다. 신비로운 강자가 그한테 도전장을 내밀었으니 끝까지 상대해주기로 한 것이다.
유천도가 떠나자 영력 산맥은 다시 내려앉았고 대지는 원래대로 복귀되었다.
* * *
한편 목진과 구유는 이 같은 상황을 전혀 모른 채 목적지에 도착하여 전송 영진을 가동했다.
목진은 깊게 숨을 들이켜더니 잔뜩 흥분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천라대륙, 내가 곧 간다. 내 강자의 길은 천라대륙에서 시작할 것이다.”
* * *
대천세계의 유명한 초대륙 중 하나인 천라대륙은 목진의 예상한 것보다 훨씬 넓고 번화했다.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초대륙은 단 한 번도 통일된 적 없었지만, 그것은 그 어떤 세력도 이룰 수 없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천지존이라도 천라대륙을 통일시키기는 불가능했다.
천라대륙의 땅은 너무 크고 실력자도 엄청나게 많기 때문이었고, 천라대륙에서는 매년 천재와 강자가 나타났고 이름을 알렸다.
* * *
천라대륙의 또 다른 정예 세력인 대라천역도 넓은 땅을 가지고 있었는데, 북창대륙보다 큰 이곳은 천라대륙에서 놓고 보면 엄청 작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여 천라대륙에 도착한 목진은 7일 동안 전송 영진을 10번 더 갈아타서야 대라천역 근처에 이르렀고, 또 이틀이 지나서야 대라천역의 본부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목진은 현재, 대라천의 우뚝 솟은 산봉우리에 서서 앞쪽을 바라보더니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는 하늘에 떠 있는 섬을 바라보고 있었다.
섬이라기보다는 소형 대륙으로 상당히 웅장했다.
눈부신 빛을 발하는 대륙에는 수많은 전각이 있었고, 빛줄기가 부단히 넘나드는 것이 상당히 놀라웠다.
목진은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그곳에서 엄청나게 강력한 영력 파동이 느껴졌다.
“여기가 바로 대라천역의 본부인 대라천이야.”
옆에 서 있던 구유가 앞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가 돌아보자 구유의 길쭉한 키에 새하얀 피부, 굴곡진 몸매와 늘씬한 다리가 눈에 띄었는데 아무리 목진이라도 힐끗거릴 수밖에 없었다.
“참 대단하군.”
소년은 구유가 또 화를 낼까 봐 바로 눈길을 거두고 이내 감탄하며 말했다. 북창령원은 대라천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대라천역은 역시 소문대로였다.
“얼른 가자. 우린 앞으로 한동안 여기서 지내야 할지도 몰라.”
구유가 생긋 웃으며 말했고 목진도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허공에 떠 있는 대라천을 보고는 주먹을 꽉 쥐었다. 대천세계에서의 그의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구유가 앞장서서 대라천으로 향하자 목진은 바로 뒤를 따랐다.
가까이 갈수록 하늘에 걸린 대라천은 점차 또렷해졌는데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은 땅을 스쳐 지나가는 빛줄기들이 가득했다.
거대한 영진이 대라천에서 만 장 정도 떨어진 범위까지 주위를 감싸 이를 보호하고 있었다. 그 무서운 영력 파동에 주위의 공간이 부단히 일그러졌다.
“이건 대라천의 호종영진(護宗靈陣)으로 지지존마저도 뚫을 수 없다고 들었어.”
구유가 거대한 영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말에 목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고, 그 역시 영진의 위력이 충분히 느껴졌다.
또한, 대라천 외의 하늘에 천 장 정도 되는 거대한 광문과 기다란 빛의 통로가 있었는데 이는 대라천 내부로 통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하여 구유와 목진은 그 앞에 내려앉았다.
“멈추시오, 대라천은 외부인 출입 금지고 이를 어기는 자는 모두 격살이오!”
그때 검은색 갑옷을 입고 예리한 눈빛을 뿜어내는 빛의 그림자 수백 명이 장창을 들고 나타나 살기를 내뿜었다.
이에 구유가 무덤덤하게 손을 휘익 젓자 흑광 한 줄기가 흑갑 대장의 손에 내리꽂혔다. 이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흑작을 새긴 검은색 영패로 새의 맑은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