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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418화 (417/1,000)

418화. 사대 통령

“빙아, 지존경에 이르려면 지존영액 몇 방울이 필요해?”

구유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빙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최대한 양을 적게 불렀다.

“적어도 천 방울은 필요할 것 같아요.”

이에 목진은 방긋 웃더니 눈부신 빛을 발하는 옥병을 꺼내 당빙에게 건넸다.

“당빙 누이, 여기에 지존영액이 2천 방울 들어있으니까 지존경에 이르는 데 큰 문제는 없을 거예요.”

유명의 개자탁에서 지존영액을 꽤 얻은 목진은 2천 방울쯤은 흔쾌히 내놓을 수 있었다.

당빙은 구유의 눈치를 살피더니 구유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옥병을 받았고 표정도 부드러워졌다.

“고마워.”

“앞으로 목진도 우리 구유궁 식구야. 우린 한 가족이야.”

구유는 두 소녀의 손을 꼭 잡으며 미소 지었다.

“난 목진을 구유궁의 통령 자리에 앉혀 대라금지에 들어가게 하려고 하는데 어때?”

구유의 말에 당빙과 당유는 깜짝 놀라며 하려던 말을 삼켰다.

“왜 그래? 빙이도 가고 싶어?”

구유가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그건 아니에요. 이런 일은 언니의 뜻을 따라야죠.”

당빙이 황급히 고개를 젓더니 잠시 고민하다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혈응왕이 2년 전에 구유궁이 대라금지에 들어갈 기회를 지존영액 천 방울에 사 갔어요. 우린 반대할 능력이 없었고요. 그래서 구유궁은 현재 대라금지에 들어갈 자격조차 없어요.”

소녀의 말에 구유의 안색이 확 어두워지더니 이를 악물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혈응왕, 이 개자식, 너무하네!”

구유는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보아하니 8왕 때문에 화가 잔뜩 난 모양이었다.

옆에 서 있던 목진도 이내 인상을 찌푸렸다. 혈응왕이란 녀석이 좋은 놈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가 지금까지 한 짓만 봐도 입에 올리기 싫을 정도였다.

잠시 후, 드디어 마음을 가라앉힌 구유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말했다.

“내가 내일 9왕 회의에 참석해서 우리 구유궁에서 응당 받아야 할 걸 전부 돌려받을 거야. 이제 내가 돌아왔으니 지금부터 아무도 너희를 괴롭힐 수는 없어.”

이에 당빙과 당유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구유가 겁난을 건너는 데 성공해 실력이 폭등했으니 이제 다른 왕들에 뒤처지지 않을 것이다. 구유궁이 드디어 든든한 뒷배가 생겼다.

“빙아, 현재 천라대역에서 대라금지에 들어갈 유력한 후보가 몇 명이나 돼?”

구유는 목진이 그곳에 들어가려면 경쟁자를 몇 명이나 쓰러뜨려야 하는지 궁금했다.

구유의 말에 당빙은 옆에 서 있는 목진을 바라봤다. 현재 천라대역에서 유명한 통령들과 비교하면 그의 실력은 조금 뒤처지는 것 같았고, 소년이 과연 그들과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천라대역에 있는 통령은 총 18명으로 전부 8왕의 부하들이에요. 구유궁에도 한 명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녀가 말한 사람은 구유궁을 배신한 조봉이었다.

이에 구유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18명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4대 통령인데, 그중에서도 수라왕 휘하의 서청(徐青)이 제일이에요. 그는 2품 지존에 이르렀는데 언니도 아마 알고 있을 거예요.”

당빙이 피식 웃으며 한 말에 구유가 흠칫 놀라 물었다.

“서청이라…… 한때는 별 볼 일 없던 녀석이 그렇게까지 강해졌단 말이야?”

“구유 언니, 서청이 언니를 연모한다는 소리가 있어요. 여태껏 대라천역에는 그를 좋아하는 여인이 적잖게 있었는데 아무한테도 마음을 주지 않았거든요.”

당유가 입을 가리며 생긋 웃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난 그와 몇 번 만나지도 않았어.”

구유는 당유의 이마를 가볍게 때리더니 말을 이어갔다.

“빙아, 계속 말해봐.”

“4대 통령 중 2위는 열산왕(裂山王) 휘하의 주악(周嶽)이에요.”

당빙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3위는 혈응왕 휘하의 오천(吳天)으로 몇 해 전에 이곳으로 데려온 사람인데 짧은 시간에 4대 통령 중 한 명이 되었어요.”

이에 구유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럼 마지막 한 사람은 누구야?”

“4위도 혈응왕 휘하 사람이에요.”

“혹시 조봉이야?”

구유의 질문에 당빙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얼마 안 되는 사이에 이렇게까지 발전했다니, 녀석이 뒷배를 잘 뒀어.”

구유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녀는 조봉이 천부적 재능이 뛰어난 걸 보고 구유궁 통령으로 임명했던 것이다.

“4대 통령 중에서 조봉을 빼고 전부 2품 지존일 거고, 조봉도 곧 2품에 이른다고 들었어요. 1품 지존 중에서는 최강이라고 볼 수 있어요.”

당빙은 목진을 힐끗 보더니 말을 이어갔다.

“대라금지에는 네 명밖에 들어갈 수 없으니까 이 중 한 명을 쓰러뜨려야 가능해요.”

당빙은 네 사람 중 가장 실력이 약한 조봉을 공략하란 뜻으로 말했다. 그러나 당빙은 소년이 절대 해내지 못할 거라고 믿었다. 그녀는 비록 조봉을 혐오하지만 4대 통령에 올랐다는 것만으로 그 실력은 이미 충분히 증명되었다.

“어때, 자신 있어? 자신 없으면 이번엔 포기할까?”

구유가 고개를 돌려 미소를 지으며 물었는데 눈빛에는 소년에 대한 기대가 느껴졌다. 만약 목진이 자신 없다며 거절한다면 구유는 무척 실망할 것이다.

“4대 통령의 실력이 과연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지지존도 두려워하지 않는 내가 2품 지존을 상대로 물러설까?”

목진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올해 대라금지에는 구유궁 몫도 있을 거야.”

이에 구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당유도 깜짝 놀라며 자신만만한 목진을 바라봤는데 정작 당빙은 소년의 용기가 가상하다고 생각했다.

이어 구유는 뒤돌아서서 대전으로 향했는데 대문에 들어가기 전에 갑자기 멈춰 섰다.

“네가 그렇게까지 말했으니 어떻게든 반드시 네 몫을 챙겨줄게!”

말을 마친 구유는 바로 대전으로 들어갔고 당유는 목진을 힐끗 보더니 그 뒤를 따랐다.

목진은 기둥에 기대어 구유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구유는 북창대륙에서 떠난 뒤로 늘 목진을 위해 고민하고 계획을 세웠다. 절세의 강자가 되겠다는 소년의 목표를 잘 아는 그녀는 능력이 닿는 선에서 늘 최선을 다했다.

“구유 언니가 너한테 엄청 잘해주나 봐.”

다시 차가운 표정으로 돌아온 당빙이 팔짱을 낀 채 목진을 노려보며 말했다.

“구유 언니와 무슨 사이야?”

당빙은 아직 목진한테 경계를 풀지 않은 모양이었다. 기세등등한 그녀의 모습에서 위압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목진한테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고, 소년은 방긋 웃으며 답했다.

“내가 중상을 입는 한이 있어도 절대 구유를 다치게 하지 않을 관계죠. 참…….”

목진은 바로 화두를 돌렸다.

“구유가 구유궁에게 주어져야 할 통령의 수를 확보하는 것이 어려울까요?”

“대라천역에는 아홉 명의 왕이 있고, 각자 한 명씩 추천할 수 있는데 혈응왕이 구유궁의 몫을 빼앗아 여태껏 누렸는데 그걸 쉽게 내놓을까?”

당빙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비록 천취황께서 구유 언니의 뒤를 봐주고는 있지만 대라천역에서 그분의 말은 절대적인 권력이 아니야. 안 그럼 구유궁이 이렇게까지 궁핍하게 살지는 않았겠지. 그러니까 내일 구왕 회의는 평화롭지 않을 거야.”

당빙은 멈칫하더니 목진을 노려보며 말했다.

“구유 언니가 너한테 잘해주는 걸 고맙게 생각해. 그리고 난 네가 두 번째 조봉이 되지 않길 바라. 그럼 언니가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내가 너를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이에 목진이 콧등을 쓸어내리며 히쭉 웃었다.

“누이는 사람을 위협할 때마저도 참 예쁘네요.”

당빙은 순간 눈가가 파르르 떨렸고 히쭉거리는 소년을 한껏 노려봤다.

구유궁 사람들은 진지하고 엄숙한 당빙을 무서워해서 감히 이렇게 말하지 못했다. 그래서 소녀는 목진의 장난을 받아들이기가 조금 어려웠다.

“걱정하지 마세요, 누이. 조봉은…….”

목진은 가볍게 숨을 내쉬더니 한기 어린 눈빛으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내가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구유는 조봉의 배신에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목진은 그녀가 슬퍼하는 것이 느껴졌다. 배신자를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에 당빙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다행이고……. 그런데 조봉은 절대 상대하기 쉬운 사람이 아니니까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알겠어요.”

목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주위를 훑으며 말했다.

“당빙 누이, 구유궁 구경이나 좀 시켜줘요. 인제 나도 이곳 사람인데 어디에 뭐가 있는지는 알아야죠?”

소년의 말에 당빙은 괜히 목진을 노려봤지만 거절은 하지 않았다. 소녀는 바로 자리를 떴고 그도 바로 소녀의 뒤를 따랐다.

이튿날 아침, 구유궁 대전 앞에 사람이 잔뜩 모였는데 꼭 닫힌 문이 열리자 예쁘장한 여인이 걸어 나왔다.

소녀가 입은 검은색 갑옷은 몸에 찰싹 달라붙어 각선미가 그대로 드러났고 그 위에는 명작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구유는 어제보다 훨씬 멋진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존경하는 왕이시어, 귀환을 축하합니다!”

구유궁 앞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한쪽 무릎을 꿇고 질서정연하게 외치자 구유는 주위를 쓰윽 훑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만 가볼까? 오랜만에 녀석들을 만나는군. 지금부터 구유궁에서 빼앗아간 물건들 다시 돌려받으러 가 볼까.”

구유가 한기 어린 눈빛으로 말하더니 한 줄기 빛이 되어 먼저 떠났고, 목진, 당빙, 당유가 그녀의 뒤를 따랐다.

* * *

대라천의 중심 구역은 소형 대륙처럼 생겼고 거대한 산맥 한 채가 예리한 장검처럼 구름을 가르며 하늘 높이 솟아올라 있었다.

대라봉(大羅峰)이라 불리는 산맥은 대라천의 가장 중요한 곳으로 삼황이 이곳에서 대라천역을 다스릴 뿐만 아니라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역주마저도 이곳에서 수련 중이라고 전해졌다.

이곳은 대라천 전체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곳이었다.

지금 대라봉은 상당히 떠들썩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부단히 들리며 사람들이 멀리서부터 다가와 웅장한 산봉우리에 내려앉았다.

오늘은 대라천역의 반년에 한 번씩 개최하는 9왕 회의를 하는 날로 중요한 회의라 자리를 비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한편, 대라봉 정상에 놓인 웅장한 대전은 오래된 느낌이 물씬 났는데 저도 모르게 경외의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대전 앞쪽에는 만장석제(萬丈石梯)가 있는데 다들 돌계단 앞에 내려앉아 계단을 밟고 올라섰다.

많은 이들이 계단 앞쪽에 조용히 서 있었는데 무리가 확연히 갈라져 있었다.

사람이 있는 곳에는 다툼이 있기 마련이었고, 방대한 대라천역도 다를 바가 없었다. 각 파벌은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느라 서로 얽히고설켜 관계가 복잡했다.

슉!

그때 저 멀리 하늘에서 갑자기 빛줄기 몇 갈래가 날아와 이곳에 내려앉았다.

이에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보고는 화들짝 놀랐고 이내 수군대기 시작했다.

“저건 구유왕이잖아? 역시 돌아왔다는 소문이 거짓이 아니었어!”

“어제 나도 소식을 들었는데 역시 사실이었어. 구유왕께서 겁난을 건너려고 떠난 거라고 하던데 보아하니 성공한 것 같네.”

“어린 나이에 신수가 되다니, 대단한걸.”

“오늘의 9왕 회의가 꽤 흥미롭겠는걸. 구유궁은 혈응왕 때문에 적잖게 괴롭힘당했으니, 구유왕께서 절대 잠자코 있지만은 않으실 거야.”

“구유왕께서 겁난을 건너시기 전까지는 천취황이 뒤를 봐줬지만 지금은 전혀 다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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