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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420화 (419/1,000)

420화. 자격

“자리를 비운 사이에 말솜씨가 많이 늘었네?”

혈응왕이 엄청난 영력 위압감을 형성하며 노려보자 구유도 씨익 웃으며 돌 탁자를 힘껏 내리쳤다. 그러자 균열이 일며 혈응왕에게 향했다.

“어디서 감히!”

구유가 먼저 공격하자 잔뜩 언짢아진 혈응왕은 이내 정색하며 역시 돌탁자를 내리쳤다. 선홍색 균열이 일며 소녀의 공격에 맞섰다.

쿵!

커다란 돌 탁자는 파르르 떨며 충격파를 형성했는데 갑자기 온화한 힘이 몰려와 두 갈래의 힘을 무산시켰다.

“회의 중에 싸움은 금지다.”

천취황이 옷깃을 휘날리며 무덤덤하게 한 말에 혈응왕은 소녀를 노려보며 피식 웃었다.

“구유궁에 통령이 없는데 너희 몫을 챙긴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어차피 대라금지의 대결에 참석할 자격이 없는 건 마찬가지야.”

실력이 지존경에 이르러야 통령을 맡을 수 있는데 구유궁에는 구유를 제외하면 아무도 지존경에 이르지 못했다.

“우리 구유궁에 통령이 없다고 누가 그래?”

구유는 씨익 웃더니 목진을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오늘부터 저 아이가 우리 구유궁의 새로운 통령이야!”

구유의 차가운 목소리에 대전은 순간 조용해졌고 다들 구유의 뒤에 조용히 서 있는 소년을 바라봤다.

“저 사람은 누구지? 꽤 어린 것 같은데…….”

“영력 파동으로 보아 막 지존경에 이른 것 같은데 정녕 통령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나 내세운 건 아닐까?”

* * *

목진이 형성한 위압감만으로 사람들을 설득하기가 어려웠다.

수라왕은 무덤덤하게 목진을 힐끗 보기만 했는데 뒤에 서 있던 서청이 소년을 한참 쳐다봤다.

혈응왕도 미간을 찌푸리며 소년을 노려봤다. 독사 같은 눈빛이 소름 끼칠 정도로 무서웠다. 목진을 쓰윽 훑은 그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물었다.

“저 아이는 누구야? 우리 대라천역 사람이 아니지 않나?”

“지금부터는 대라천역 사람이야. 난 구유궁 궁주로 우리의 통령을 임명할 권리가 있어. 이건 너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말은 그렇지만 구유궁도 대라천역 휘하이고 이곳 통령은 수많은 혈전을 통해 선출되는데 네가 아무나 그 자리에 앉히면 다른 통령은 뭐가 돼? 그리고 네가 선택한 통령의 실력이 뒤처지면 다른 세력에서 우리 대라천역을 비웃을 것이 뻔한데 아무나 내세우면 안 되지.”

그 말에 혈응왕 뒤에 서 있던 오천과 조봉이 목진을 노려봤다. 특히 조봉은 구유가 그를 데려와 통령으로 임명했던 것이 생각나 마음이 썩 좋지 않았다.

비록 구유가 떠난 뒤, 그가 먼저 구유궁을 배신했지만, 구유가 없는 구유궁은 혈응전보다 훨씬 뒤처졌단 생각에 한 결정이었는데 그는 구유가 다시 돌아올 줄 몰랐다. 게다가 소년을 데려온 건 더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저 아이로 날 대체할 생각인가요?”

조봉은 한기 어린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는 저따위 실력이라면 눈을 감고도 이길 수 있을 거라 여겼고, 구유의 눈높이가 많이 낮아졌다고 생각했다.

나머지 7왕도 혈응왕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는데 사실 그들은 혈응왕과 힘을 합쳐 구유궁을 해산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구유는 그들의 행동에 놀라지 않았고, 처음부터 이 일을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여기지도 않았다.

한편, 천취황과 영동황은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기만 했고 수황 역시 신경 쓰지 않았다.

당빙과 당유는 이를 갈며 혈응왕 무리를 바라봤다.

“혈응왕께서는 제가 어떻게 해야 통령의 자리에 앉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때 목진이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나가 예리한 눈빛으로 노려보며 물었는데 정작 혈응왕은 소년을 힐끗 보고는 아무런 답변도 주지 않았다. 목진이 자신과 말을 섞을 자격조차 없다고 여긴 것이다.

하긴, 그는 대라천역의 9왕 중 한 명으로 무려 5급 지존이었다. 손가락만 가볍게 움직여도 사람을 죽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휘하에 강자가 수도 없이 많으니 목진 따위에는 신경 쓰지 않는 게 당연했다. 구유만 없었다면 그는 이미 소년을 죽였을 것이다.

혈응왕의 태도에 구유의 표정은 더 어두워졌는데 목진은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봤다.

“자격을 증명할 방법은 아주 간단해.”

혈응왕 뒤에 서 있던 4대 통령 중 한 명인 오천이 히쭉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네가 현존하는 통령 중 한 명을 쓰러뜨릴 수만 있으면 돼.”

오천은 살기 가득한 얼굴로 소년을 바라봤다. 이에 목진이 피식 웃으며 오천한테 눈길을 돌렸다.

“괜찮은 의견이군.”

잇따라 소년은 주위를 쓰윽 훑으며 물었다.

“어느 분이 나설 건가요?”

목진은 겸손 따위 떨지 않았다. 힘으로 모든 걸 결정짓는 이곳에서 겸손해 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제대로 실력을 증명해 보이지 않으면 앞으로 목진이 설 자리는 없을 것이다.

“꽤 담대한 녀석이군.”

영산왕 뒤에 서 있던 주악이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지만 나설 마음은 없었다. 비록 그도 혈응왕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구유왕과 혈응왕 사이의 일에 열산왕 소속인 그가 끼어드는 것은 옳지 않았다.

다른 왕들도 흥미진진하게 상황을 살폈는데 혈응왕과 관계가 제법 좋은 파벌에서도 감히 나서지 못했다. 겁난을 건너 실력이 폭등한 구유를 경계한 것이다.

“허허.”

그때 오천이 피식 웃으며 소년을 바라봤다. 그는 목진의 자신만만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목진이 어린 나이에 지존경에 이른 것으로 천부적인 재능을 충분히 증명할 수도 있지만, 이 세상에는 요절한 천재들이 너무 많았고 그중 대부분이 근거 없는 자신감 때문에 숨을 거뒀다.

또한, 오천은 목진이 지존경에 이른 지 얼마 되지 않아 영력 파동이 같은 등급의 지존들보다 뒤처진 것을 눈치챘다.

“조종(趙鐘), 네가 그 자격을 증명해 봐.”

오천은 뒤쪽에 서 있는 사내를 보며 씨익 웃었다. 이에 조봉도 옆에 서서 팔짱을 낀 채 목진을 노려봤다. 그도 오천과 똑같은 생각이었다.

잇따라 두 사람 뒤에 서 있던 조종이 씨익 웃었다. 그도 혈응왕 휘하의 통령이었고 오천이나 조봉보다 유명하지는 않아도 1급 지존에 이른지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전쟁에 참여한 탓에 몸에 살기가 가득했다. 그건 생사를 오가는 혈전에 참여한 이들한테만 있을 수 있는 살기였다.

혈응왕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오천한테 맡겼는데 좋은 구경거리가 생겼다는 표정을 지었다.

조종은 바로 대전의 중심에 나타나 사악하게 웃으며 소년을 바라봤다. 그는 여태껏 목진과 비슷한 소년 천재를 많이 마주쳤는데 대부분 그의 손에 죽었다.

“난 절대 봐주지 않으니까 못 이길 것 같으면 지금이라도 나가거나 우리 혈응전으로 넘어와. 여인의 말을 따르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아?”

“저 자식이!”

조종이 피식 웃으며 한 말에 당유가 화가 나 순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옆에 있던 당빙도 안색이 한껏 어두워졌는데 정작 구유는 무덤덤하게 목진만 바라봤다.

목진은 태연하게 서 있다가 상대방의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

“지존법신을 소환해.”

조종이 입맛을 다시며 말하자 목진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난 아직 지존법신이 없어.”

이에 다들 깜짝 놀라 어리둥절해 소년을 바라봤다. 지존법신도 없는 녀석이 감히 나서서 덤비다니.

당빙과 당유도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들도 목진이 지존법신이 없는 것을 몰랐다.

“유감이군.”

조종은 가볍게 한숨을 쉬더니 사악하게 웃으며 웅장한 영력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거대한 빛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극한법신(極寒法身)!”

거대한 하늘색 법신이 나타나자 엄청난 한기에 공기마저 얼어붙었다. 조종은 지존법신을 수련하지 못한 목진을 봐주기는커녕, 바로 지존법신을 소환했다. 그는 최대한 빨리 목진을 쓰러뜨리고 싶었다.

그의 지존법신은 99등급 지존법신에 속해 있지는 않지만 지존법신마저 없는 소년을 상대하기에는 충분했다.

“지존법신이 없다고 패배한다는 보장은 없지. 네 지존법신은 내가 녹여주마.”

그때 목진이 한기 어린 눈빛으로 거대한 지존법신을 보며 나지막하게 말하고 한 손으로 결인했는데 머리에서 영력 기둥이 솟구치더니 검은색 광탑이 사람들 눈앞에 나타났다.

쿵!

목진의 머리에서 솟구친 영력 기둥에 검은색 광탑이 보였는데 소년이 인법을 바꾸자 영력의 빛이 요동치다가 검은색 부도탑이 허공에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오래된 탑의 표면에 새겨진 금룡은 눈부신 빛을 번쩍이며 상당한 위압감을 형성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검은색 부도탑을 주의 깊게 지켜봤고 천취황과 영동황마저 깜짝 놀랐다. 그들도 검은색 부도탑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흥, 센 척하기는.”

그러나 조종은 콧방귀를 뀌고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는 수많은 전쟁을 겪었고 자신보다 실력이 뒤처지고 지존법신마저 없는 그라면 아무리 수단과 방법이 많아도 절대 이길 수 없다고 확신했다.

“극한빙지(極寒冰指)!”

조종이 발을 힘껏 구르며 인법을 바꾸자 차가운 얼음으로 만들어진 법신이 극한의 영력이 깃든 손가락을 내밀었다.

쿵!

손가락은 공기마저 얼리며 빙산처럼 내려앉았고 이에 목진은 바로 힘껏 발을 굴렀다. 그러자 대전 전체가 파르르 떨며 뒤쪽 공간이 일그러졌고 보라색 바다가 어렴풋이 나타났다.

유명이 수련한 천염법신에도 끄떡없던 목진은 그보다 훨씬 뒤처진 지존법신은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했다.

슉!

수백 장 크기의 보라색 영력이 거대한 이무기처럼 하늘을 가르며 신속하게 상대방의 공격에 맞섰는데 귀청을 찢는 듯한 소리와 함께 두 갈래의 강력한 영력이 서로를 삼키려고 애를 썼다.

“감히 영력으로 지존법신을 상대할 생각을 하다니…….”

조종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지존법신은 지존급 강자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데 영력 따위로 이를 막으려 하는 목진이 우스웠다.

“당장 얼려버려!”

조종이 인법을 바꾸자 지존법신에서 미친 듯이 한기를 내뿜어 보라색 영력을 얼리려 하였다.

“태워버려!”

그때 목진이 입꼬리를 씰룩거리자 보라색 화염에 닿은 지존법신의 손가락의 한기가 빠르게 사라지며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다가 손이 점차 사라졌다.

“이럴 수는 없어!”

조종은 순간 흠칫 놀랐다. 그의 지존법신에 깃든 한기는 수많은 한옥으로 어렵게 수련한 거라 보통 영력은 얼어붙지 않아도 흐름이 느려질 텐데 목진은 이런 그의 지존법신을 바로 녹여 없애버렸다.

“인제 내 차례인가?”

목진이 씨익 웃으며 옷깃을 휘날리자 검은색 부도탑이 하늘 높이 날아오르며 순식간에 커지더니 조종의 지존법신을 삼켜버렸다.

크으으으!

용음이 들리며 부도탑 표면에서 눈부신 금광이 비치더니 부도탑이 5층까지 밝아졌다.

학원 대회에서 유청운을 상대할 때까지만 해도 부도탑을 네 층밖에 밝히지 못했던 목진은 지존경에 이르러 이제는 다섯 번째 층까지 밝힐 수 있게 되었다.

크으으으!

잇따라 탑 표면에 새겨진 금룡 다섯 마리가 포효하며 탑에 들어가 황금색 화염으로 변신해 파란색 법신 주위를 감쌌다.

조종은 황금색 화염에서 위험한 파동을 느끼고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는 숨을 깊게 들이켜고 인법을 바꿨다. 이에 극한법신에 파란빛이 다시 감돌았고 한기로 가득 찼다.

슉!

이와 동시에 황금색 화염은 거인을 완벽하게 감싸더니 놀라운 속도로 녀석을 녹였다. 조종은 황금색 화염의 위력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젠장, 이건 꿈일 거야!”

조종은 이를 악물고 지존해를 소환해 지존법신에 부단히 웅장한 영력을 공급했는데 제아무리 애를 써도 황금색 화염이 닿은 곳은 빠르게 녹아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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