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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421화 (420/1,000)

421화. 넘치는 의욕

조종은 안색이 점점 창백해졌고 계속 식은땀을 흘렸다. 목진의 패배를 예상하던 사람들은 깜짝 놀랐고 8왕은 부도탑 속의 황금색 화염에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 화염은…….”

그 모습에 가장 높은 연화대에 앉아있던 천취황과 영동황마저 놀랐고 느긋하게 앉아있던 수황마저 눈을 비스듬히 뜨고 중얼거렸다.

“대단한 화염이군.”

황금색 화염은 닥치는 대로 태워버려 조종이 아무리 반항해봐야 소용없었다.

그의 지존법신이 빠르게 작아지자 어느덧 체내에서 엄청난 고통이 찾아왔다. 조종은 비록 본체와 지존법신을 융합하지 않았지만 아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러니 본체에 고통이 전해지는 것도 당연했다.

그런데 잔뜩 불안해진 조종은 끝까지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독기를 품고 목진을 바라보며 반격할 기회를 노렸다.

“멍청한 녀석.”

상대방의 눈빛에 목진은 인상을 찌푸리더니 더는 봐주지 않기로 했다. 그가 옷깃을 휘날리자 황금색 화염이 녀석의 지존법신을 제대로 녹이기 시작했다.

목진은 구유궁의 통령이 되려면 진짜 실력을 선보여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인정받기 위해서는 실력으로 연민 따위는 집어치우고 상대방을 철저하게 짓밟아야 한다.

“완전히 태워 없애버려!”

목진이 손을 아래로 휘두르자 조종의 지존법신이 전부 녹아 물이 되었고 눈 깜짝할 사이에 증발해 사라졌다.

잇따라 부도탑에 물안개가 일었고 조종은 피를 토하며 드러누워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소년을 바라봤다.

그는 목진이 지존법신을 녹여 없앨 줄은 꿈에도 몰랐다.

수군거리던 대전은 조용해졌고 통령들은 한껏 어두워진 안색으로 목진을 바라봤으며 8왕마저도 깜짝 놀랐다. 비록 조종이 수련한 지존법신이 평범했다 하더라도 이를 녹여 없애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목진의 실력은 조종보다 훨씬 뒤처져 있었다.

“녀석……. 제법이군.”

늘 표정에 변화가 없던 수라왕의 눈빛이 파르르 떨렸고 그 뒤에 서 있던 서청도 조금 놀란 듯한 표정으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년의 전투력은 보기보다 훨씬 강했고 조종은 처음부터 이런 상대를 무시했으니 큰코다칠 수밖에 없었다.

“우와! 목진이 이렇게 대단했어?”

당유는 화색이 되어 외쳤다. 그녀마저도 소년이 이길 거라고 여기지 않았다. 게다가 목진은 지존법신도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빠르고 깔끔하게 대결을 마칠 줄은 생각지도 않았다.

조종은 1각도 안 되는 사이에 패배했을 뿐만 아니라 지존법신까지 잃었다.

당빙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구유 언니가 중히 여기는 사람은 남달랐다.

반면, 구유는 전혀 놀라지 않았고 생긋 웃으며 소년을 바라봤다.

그때 한기 어린 눈빛으로 목진을 노려보던 혈응왕은 낭패를 본 조종을 힐끗 보며 언짢은 듯 말을 내뱉었다.

“등신 같은 녀석.”

그는 조종을 이용해 목진을 물리치려 했다. 그리되면 구유는 계획했던 바를 이루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게 될 게 뻔했다. 그런데 소년이 이렇게까지 강할 줄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이에 조종은 시무룩하게 고개를 푹 숙이고는 목진을 한껏 노려보며 물러났다.

목진은 녀석의 눈빛 따위는 무시하고 고개를 들어 혈응왕을 바라봤다.

목진이 히쭉 웃으며 물었다.

“혈응왕님, 이 정도면 자격이 충분히 증명되었나요?”

혈응왕은 소년의 맹랑함에 안색이 어두워진 채 손으로 가볍게 의자를 두드렸고 갑자기 엄청난 위압감이 휘몰아쳤다.

이는 굶주린 독수리가 사냥감을 덮치는 것처럼 치명적이었다.

목진은 아직 5급 지존을 상대할 실력이 안 되기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러나 이전에 낙천신의 위압감도 견뎌냈었기에 그보다 훨씬 못한 혈응왕의 위압감 정도는 충분히 견딜 수 있었다.

“흥.”

그때 구유가 기합을 넣자 목진 주위의 위압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에 혈응왕 뒤에 서 있던 오천이 씨익 웃었고 웃음에 한기가 드리웠다. 조종으로 소년을 짓밟으려 했는데 오히려 목진이 실력을 증명하도록 도와준 꼴이 되었다.

소년이 선보인 수단과 방법으로 보면 확실히 보통 통령보다 뛰어났다.

“내가 괜히 손이 근질근질해서 그러는 데 나와 힘을 겨뤄볼까?”

오천이 상냥하게 웃으며 물었다.

오천은 혈응왕이 구유궁에서 뺏어온 것을 돌려주기 싫어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상대방의 기를 꺾기 위해서라도 자신이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안 그럼 구유궁이 기세등등해져 원하는 바를 이루게 될 것이다.

오천의 말에 통령들이 몰래 투덜댔다. 천라대역의 통령 중에서 최정예에 속하는 사람이 이곳에 온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소년을 상대하려 하는 것은 지나친 일이었기 때문이다.

“통령끼리 싸워서 해결될 것 같지 않네. 다들 우리 구유궁이 자격 미달이라고 생각하나 본데 그럼 나와 싸웁시다. 싸움에서 패배한 사람이 원 없이 상대방의 소원을 들어주는 거지.”

구유가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목진은 수단과 방법이 많긴 하지만 지존법신이 없어 1급 지존이면 몰라도 2급 지존을 상대하기에는 조금 버거웠다.

한편, 구유가 무덤덤하게 한 말에 사람들은 심장이 철렁하였다.

통령 사이의 대결이 아닌 왕들 사이의 대결은 엄중한 문제로 일단 누군가 패배하면 대라천역에서의 명성에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이에 혈응왕마저도 깜짝 놀랐다. 구유의 실력이 전과 비슷했다면 그가 이미 나섰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겁난을 건넌 그녀의 실력을 절대 무시할 수가 없었다.

구유의 실력을 완전히 파악하기 전까지 무턱대고 싸우는 것은 멍청한 짓이었다.

그때 천취황이 콜록거리며 입을 열었다.

“구유궁은 대라천역의 왕급 세력으로 대라금지를 쟁취할 자격이 응당 주어져야 한다. 그러니까 구유가 자리를 비웠을 때, 다른 곳에 잠시 맡겨뒀던 몫은 돌려받는 것이 마땅할 것 같구나.”

노인의 말에 영동왕은 가만히 웃기만 했다. 이에 혈응왕은 그쪽을 힐끗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천취황의 말을 따르겠습니다. 그리고 그날 줬던 지존영액 천 방울은 돌려받지 않을게요. 구유궁은 지금 한창 지존영액이 많이 필요한 시기 아닌가요?”

혈응왕이 비웃듯 히쭉 웃으며 구유를 바라봤다.

“대라금지 일은 해결되었으니 이제 구유궁이 관리했던 도성에 대해 말해볼까?”

구유도 한기 어린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에 혈응왕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목진이 대라금지 대결에 참여한다고 해도 수많은 수령 사이에서 4위권에 드는 건 어려운 일이라 양보했지만 도시의 권할권을 뺏으려 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혈응왕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가 빼앗은 도성에서 대량의 지존영액을 바치고 있고 혈응전이 빨리 발전하려면 지존영액은 필수라 양보할 수 없었다.

“구유야, 돌아오자마자 이러는 것은 무리가 아니야?”

“구유궁의 것을 돌려받으려는 것뿐인데 무슨 문제라도 돼?”

“그 도시는 우리가 일부러 빼앗은 것이 아니야. 네가 구유궁을 떠나 믿고 따를 사람이 없어 저들은 자연스럽게 다른 버팀목을 찾은 것뿐이다.”

혈응왕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혈응왕, 다들 바보가 아닌데 과연 당신의 말을 믿을까? 몰래 협박해서 얻어낸 걸 모를까 봐 그래?”

구유와 혈응왕은 서로 한 치도 물러나지 않고 혈전을 벌였고 나머지 7왕은 나 몰라라 조용히 지켜보았다. 흙탕물에 발을 담그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만 싸우거라.”

여태껏 침묵을 지키던 영동황이 갑자기 웃으며 입을 열었다.

“대라천역은 규칙이 있고 그 규칙에 어긋나지만 않으면 전부 가능하단다. 그리고 도성의 관할권은 각 왕이 규칙만 지키면 뭘 하든 우린 간섭하지 않을 것이다.”

노인의 말에 구유는 미간을 찌푸렸고 혈응왕은 득의양양하게 웃었다.

대라천역에는 도성이 정말 많았고 대부분은 대라천역에서 직접 관리하고 나머지를 9왕에게 나눠주었는데 서로 사이가 안 좋은 왕들은 땅의 관할권을 주장하며 싸우곤 했다.

이에 대라천역에서도 한 번도 막아 나선 적은 없지만 왕이 직접 싸움에 참여하면 안 된다는 규칙이 존재했다.

그런데 구유궁은 아홉 갈래의 세력 중 최약체였고 통령 자격을 가진 사람마저 목진 한 명뿐이라 강자가 가득한 다른 왕급 세력과 비교하면 승산이 없었다.

하여 영동황은 사실 구유에게 도시의 관활권을 뺏으려는 생각을 접으라고 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목진 한 사람만 믿고 다른 세력에 덤빌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그럼 대라금지 대결에서 승패를 가르자.”

구유가 이를 악물고 또 뭐라 말하려 했는데 천취황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을 발견하고 하려던 말을 삼켰다.

“얼마든지 상대해주지.”

혈응왕은 구유궁이 전혀 두렵지 않았기에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말했다. 두 세력의 실력 차가 너무 현저했기 때문이었다. 목진이 비록 조종을 이겼다고 해도 녀석은 혈응전에서 실력이 중간 정도밖에 안 됐다.

이에 목진은 조용히 구유한테 돌아갔다.

“목진아, 넌 참 대단해.”

당유가 다가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결론적으로 목진이 구유궁의 체면을 세운 것만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당빙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살짝 미소 지었다.

“이렇게 애를 써야 당빙 누이가 웃네요. 누이가 웃는 모습을 보는 건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목진이 피식 웃었고 당유도 히쭉 웃었다. 목진의 말 속에 담긴 뜻을 제대로 이해한 모양이었다.

당빙은 순간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소년을 노려보더니 표정이 다시 전처럼 돌아왔다.

“네가 대라금지에 들어가게 되면 만족할 때까지 웃어줄게!”

“그럼 열심히 해야겠네요.”

목진의 의욕 넘치는 태도에 당빙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휙 돌렸는데 입꼬리만은 씰룩거렸고 답답했던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한편, 구유는 오늘 빼앗긴 도성을 돌려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목진을 위해 한몫 챙긴 것만으로도 일단 만족했고 도성을 돌려받는 일은 아직 시간이 충분했다.

그 후로 회의는 한 시진 정도 더 진행되었다. 구유는 조용히 앉아있다가 목진 등과 함께 대전을 빠져나왔다.

“허허, 구유야. 젊어서 의욕이 넘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도가 지나치면 안 된다는 것도 명심해라.”

대전 문 앞에서 구유와 마주친 혈응왕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구유가 한기 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는데 주위가 순식간에 얼어버릴 것만 같았다.

“욕심도 과하면 화를 부른다는 걸 부디 잊지 마.”

“하하하, 난 구유궁 전체를 꿀꺽해도 끄떡없을 거야.”

말을 마친 혈응왕은 부하들과 함께 떠났고, 그 자리에 다시 오천이 멈춰서더니 히쭉 웃으며 목진의 어깨를 다독였다.

“대라금지 대결에 참여하고 싶은 것 같은데…….”

오천은 사악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내 손에는 죽지는 마.”

녀석은 호탕하게 웃으며 떠났다. 목진은 떠나가는 오천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저걸 확 죽여버릴까…….”

목진의 말을 들은 구유는 이내 웃으며 말을 건넸다.

“녀석은 말이 너무 많은 것 같으니까 죽여도 될 것 같아.”

“노력할게.”

그들의 대화에 당빙과 당유는 씁쓸하게 웃었다. 소년이 무슨 자신감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은 탓이었다. 오천은 조종보다 훨씬 강력한 상대로 대라천역의 통령 중 최정예라 할 수 있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목진이 지금 딱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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