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6화. 만다라
목진은 어느새 무릎을 꿇고 앉았는데 피와 땀이 뚝뚝 떨어졌고 꽉 깨물고 있는 이 사이로도 피가 스며들었으며 눈마저 빨갛게 상기되었다.
그런데도 황금색 진흙은 계속 몰려와 대일불멸신 전체를 감쌌고 몸통이 녹아내리는 것처럼 점차 작아졌다.
엄청난 고통에 목진은 피를 줄줄 흘리며 점차 의식을 잃어갔다. 그런데 황금색 진흙 밑에 깔린 금룡 여덟 마리가 조금씩 대일불멸신에 녹아들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끝까지 버티기만 하면 분명 대라금신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바닥에서 황금색 진흙이 부단히 날아올라 대일불멸신을 향하고 있는데 갑자기 이상한 파동이 느껴져 목진은 간신히 눈을 뜨고 아래쪽을 바라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대라금지의 가장 깊숙한 곳에 황금색 진흙이 부단히 날아오르더니 1장 정도 되는 황금색 석대가 조금씩 형태를 드러냈고 그 위에 아담한 소녀가 조용히 누워있었다.
대라금지 밑에 사람이 있었다니!
목진은 너무 놀란 나머지 잠시 고통을 잊고 아래쪽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분명 황금색 석대 위에 발가벗은 여자아이가 누워있었다. 11살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는 소녀는 머리가 까맣고 길었으며 아담한 체격을 지니고 있었다.
“저 아이는 누구지? 왜 여기 있는 거지?”
그러나 목진은 소녀가 전혀 귀여워 보이지 않았다. 이런 곳에 있는 소녀라면 절대 범상치 않을 것이 분명했다. 목진은 소녀한테서 상당히 위험한 파동을 느꼈다.
그때 소녀가 갑자기 눈가를 파르르 떨더니 천천히 눈을 떴는데 목진은 소녀의 황금색 눈동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대라금지의 가장 깊숙한 곳에 누워있던 괴상한 소녀가 눈을 뜨자 목진은 깜짝 놀라 엄청난 고통에도 대일불멸신을 이끌고 피신하려 하였다.
그런데 소녀는 목진을 발견하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슉.
목진은 순간 움직일 수 없어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귀신처럼 앞쪽에 나타난 소녀를 바라봤다.
소녀는 순식간에 목진을 보호하는 지존법신을 뚫고 본체 앞에 나타났다.
이에 목진은 너무 무서워 식은땀을 흘리며 움직이지 못했다. 그는 소녀의 황금색 눈동자에서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목진은 눈앞에 서 있는 신비로운 소녀가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그를 죽일 수 있다고 확신했다.
더구나 소녀의 눈에서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목진이 용기 내어 고개를 들었는데 소녀는 무뚝뚝한 표정을 한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소녀는 새하얀 피부에 아름다운 얼굴, 아담한 몸매와 가슴까지 내려온 검은색 장발까지 더해져 밖에서 봤으면 분명 귀엽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절대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고 발가벗은 소녀의 몸을 쳐다볼 수 없었다.
그때 조용히 서서 목진을 바라보던 소녀가 눈을 깜빡이더니 자그마한 손으로 목진의 머리를 잡으려 했다. 잔뜩 겁에 질린 소년은 바로 도망가려 했지만 주위 공간이 갑자기 응고되었고 대일불멸신과의 연결마저 끊겼다.
소녀의 실력은 역시 대단했다.
목진은 어쩔 수 없이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소녀는 그의 이마를 가볍게 만지며 입을 열었다.
“엄청 고통스러워 보여…….”
잇따라 그녀의 손에서 은은한 적광이 발하더니 목진의 몸을 감쌌다. 잠시 후, 체내의 통증이 점차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목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완벽히 사라진 통증에 깜짝 놀란 채 고개를 들었는데 온몸을 감쌌던 적광이 미간을 통해 다시 소녀의 손에 돌아갔고, 그녀는 온몸을 파르르 떨며 그 아픔을 떨쳐냈다.
목진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어린 소녀가 타인의 고통을 흡수해 대신 아파하다니…….
더구나 목진이 죽기보다 못하다고 여겼던 고통이 소녀한테는 미간을 살짝 찌푸릴 정도밖에 안 되다니!
이 아이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한편, 목진 체내의 고통을 흡수한 소녀는 고개를 들어 대일불멸신을 바라봤다. 지존법신 곳곳을 탐색하는 듯한 황금색 눈동자에서 금광이 발사되더니 입술을 깨물며 물었다.
“이건 대일불멸신이야?”
목진은 소녀의 속삭이는 듯한 말에 다시 한번 놀랐다. 대일불멸신을 첫눈에 알아본 사람은 그녀가 처음이었다.
“대일불멸신을 알아?”
목진이 되묻자 소녀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잠시 생각하더니 갑자기 소년을 노려봤고, 새하얀 손이 공간을 가르며 그의 가슴에 닿았다.
잇따라 목진 체내의 지존해가 파르르 떨렸고 그 속에 숨어있던 신비로운 종이마저 심상치 않은 파동을 일으켰다. 무형의 손이 그것을 강제로 끄집어내려고 하는 것만 같았다.
이에 목진은 순간 안색이 어두워지며 화가 났다. 소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기분이 나빠진 것이다.
신비로운 종이는 목진의 가장 큰 비밀로 만고불후신에 관한 정보가 적혀있어 무슨 수를 써서든 절대 빼앗겨선 안 된다. 그가 발을 힘껏 구르자 대일불멸신에서 눈부신 빛을 발하며 구속하던 힘에서 벗어나 뒤로 물러났다.
슉!
그런데 앞쪽에 빛이 모이더니 소녀는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목진의 가슴에서 손을 떼지 않으려 했다.
하여 목진이 이를 악물고 인법을 바꾸자 지존해에 숨어있던 신비로운 종이에서 신비로운 보랏빛을 발했다. 그건 지존해에서 나와 그의 머리 위쪽에 거대한 암자색 만다라 꽃을 형성했고 보랏빛을 발하며 서서히 피어나더니 덩굴처럼 소녀의 몸을 감쌌다.
소녀가 그제야 움직임을 멈추자 목진은 한껏 경계하며 뒤로 물러났는데 정작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서서히 피어난 만다라 꽃을 바라보고는 생긋 웃었다.
그 모습은 좋아하는 물건을 본 것 같은 얼굴이었다.
만다라 꽃의 보랏빛이 소녀를 비추자 조금씩 몸에 스며들었고 그녀의 무덤덤했던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목진은 몰래 대일불멸신의 상태를 살폈는데 지존법신을 감쌌던 황금색 진흙이 벗겨지면서 눈부신 금광을 발하기 시작했다.
목진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대일불멸신을 바라봤다. 자신이 정말 대라금신을 만들어냈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어느새 황금색 진흙이 전부 벗겨지자 눈부신 금광을 발하는 대일불멸신이 눈앞에 나타났다. 이는 황금으로 만든 것처럼 엄청 단단해 보였고 표면에 여덟 마리의 금룡이 새겨져 있었다. 녀석들은 살아 숨 쉬는 것처럼 각자 부동의 자태를 취하며 목진의 지존법신을 지켜주고 있었다.
대라금신을 입은 대일불멸신은 더욱 강해졌고 대라금지의 가장 깊숙한 곳에 조용히 앉아있는 모습이 꼭 황금으로 빚은 불상 같았다. 이제 그곳의 무서운 압력은 더는 지존법신을 위협할 수 없게 되었다. 아마, 현재의 대일불멸신은 3급 지존의 공격도 거뜬히 막아낼 수 있을 것이었다.
이러한 생각에 목진은 흐뭇하게 웃으며 법신을 바라봤다.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는 생각에 괜히 뿌듯했는데 금세 정신을 차렸다. 그 앞에는 아직 신비롭고 무서운 소녀가 서 있기 때문이었다.
이에 목진은 잔뜩 경계하며 만다라 꽃의 보랏빛을 마음껏 즐기고 있는 소녀를 바라봤다. 그가 아무리 대라금신을 만들어냈어도 소녀한테는 벌레만도 못한 존재란 것을 잘 알았다. 그가 조용히 인법을 바꾸자 만다라 꽃이 한 줄기 보랏빛이 되어 다시 체내로 돌아갔고 소녀의 몸을 감쌌던 보랏빛도 사라졌다.
소녀는 순간 미간을 찌푸리며 목진을 쏘아봤다.
“그게…… 이건 내 물건이야. 난 이만 떠나야 해.”
목진이 머쓱하게 웃으며 말하자 소녀는 고개를 기웃거리며 잠시 생각하더니 갑자기 폴짝 뛰어 목진한테 안겼다. 소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목진은 저도 모르게 손을 내밀어 그녀를 품에 안았다.
목진은 자신의 반응에 조금 놀랐는데 바로 정신을 차리고 소녀를 내던지려다가 그 무서운 실력에 결국 참고 고개 숙여 소녀를 바라봤다. 소녀는 목진의 가슴팍에 얼굴을 붙이고 조용히 안겨있었고 지존해 속의 신비로운 종이를 소환해 보랏빛을 흡수하고 있었다.
목진은 가만히 눈을 꼭 감고 있는 소녀의 얼굴에 조금이나마 안심이 되었고, 그녀가 신비로운 종이를 유난히 좋아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넌 누구야? 이름은 뭐야?”
목진은 아담한 소녀를 안고 씁쓸하게 웃더니 옷을 꺼내 덮어준 뒤,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만다라.”
눈을 감고 한참 고민하던 소녀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만다라?”
목진은 소녀의 괴상한 이름에 흠칫했고 조심스럽게 그녀를 힐끗 봤는데 정작 소녀는 목진한테 아무런 관심도 없어 보였다.
비록 소녀의 정체를 모르나 엄청난 실력자인 것만은 확실했다. 소녀는 무려 대라천역의 3황을 훨씬 뛰어넘는 실력을 지녔을 것이다.
또한, 소녀는 불후도록에 대해 아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다면 단번에 목진이 수련한 대일불멸신을 알아볼 리 없었다. 이는 99등급 지존법신에 없는 아주 희귀한 법신이었다.
하여 목진은 소녀를 잔뜩 경계했는데 정작 그녀는 목진한테 들러붙어 떠날 마음이 없어 보였다. 이에 목진은 소녀를 쫓아내고 싶었지만 혹시라도 자신을 죽일까 봐 감히 반항도 못 했다.
그는 이렇게 허무하게 죽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목진이 정말 죽기라도 하면 그 몸에 깃들었던 불후도록은 소녀한테 넘어갈 수도 있었다.
“휴…….”
목진이 만다라를 안고 이내 한숨을 쉰 뒤, 한 손으로 결인하자 대일불멸신은 진득한 황금빛 호수를 가르며 빠르게 솟아올랐다.
대라금신을 만드는 데 성공한 목진은 더는 이곳에 머무를 필요가 없었다. 대라금지가 닫히기 전에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 * *
며칠이 지났지만 금지봉 밖의 분위기는 여전히 들끓었다. 그건 가장 눈부신 금광을 발하는 황금색 부적 때문이었다.
이토록 강렬한 빛은 최근 몇 해 사이, 대라금지에서 처음 보는 빛이었다.
다들 누군가 대라금신을 수련하고 있다는 것만 짐작했는데 이쯤이면 성공했을 수도 있다고 여겼다.
이에 사람들은 놀라는 한편, 4대 통령 중 과연 누가 이토록 엄청난 일을 해냈는지 궁금해졌다.
여태껏 대라금신을 수련하고자 무리를 했다가 실패한 사람이 수도 없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3황은 여전히 조용히 허공에 서서 눈부신 금광을 발하는 황금색 부적을 지켜봤고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부적의 빛은 나흘 정도 계속됐고 전혀 어두워지지 않았다. 이는 대라금지의 가장 깊숙한 곳에 들어간 녀석이 그 시간 동안 버텼다는 것을 뜻하기도 했다.
“흥미롭군.”
수황은 미소를 지으며 흥미진진하게 부적을 바라봤다. 그마저도 가장 눈부신 빛을 발하는 부적의 주인이 궁금했다.
천취황과 영동황도 조금은 놀란 듯한 표정으로 가장 눈부신 금광을 발하는 부적의 주인에 대해 추측했다. 최근 몇 년 동안, 대라금지의 가장 깊숙한 곳에 들어간 것은 오늘이 처음이라 그 주인공이 누구인지 너무 궁금했다.
9왕 중, 구유를 제외한 기타 8왕마저 놀란 기색이 역력하였다. 특히 수라왕, 열산황, 혈응왕은 잔뜩 긴장한 채 상황을 살폈다. 만약 그들 휘하의 통령이 해낸 거라면 크게 명성을 떨칠 것이 분명했다.
“이 정도면 된 것 같군. 대라금지도 곧 닫을 때가 되었어.”
수황이 갑자기 입을 열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웅장한 산봉우리가 금광을 발했다. 다들 고개를 들어보니 커다란 세 그림자가 금광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의 시선이 닿은 곳은 바로 3개의 지존법신으로 눈부신 금광을 발해 상당히 단단해 보였고 그 강력한 영력 파동에 돌풍이 휘몰아쳤다.
그러나 다들 금세 실망하였다. 3개의 지존법신이 강하긴 해도 대라금신과는 차이가 있었다.
쿵!
그런데 그때, 금지봉 정상에 커다란 황금색 기둥이 하늘 높이 솟아오르더니 금광을 발하는 거대한 그림자가 그 속에서 걸어 나왔다.
황금으로 빚은 듯한 그림자의 머리 뒤에는 커다란 태양이 있었고 방대한 몸 표면에는 용 여덟 마리가 요동치며 포효하였다.
이는 엄청난 위압감을 형성하며 눈부신 금광을 발했는데 다른 세 지존법신의 빛마저 억제되었다.
엄청난 광경에 사람들은 화들짝 놀랐다.
“용의 무늬가 여덟 개면 대라금신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