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주재-438화 (437/1,000)

438화. 복수

구유는 결국 괴상한 눈빛으로 목진을 보다가 결국 아무 말 없이 떠났다.

목진은 소녀의 말에 딱히 해명할 방법이 없어 한숨을 쉬며 만다라를 안고 방으로 돌아갔다.

“내 체내의 불후도록 때문에 이러는 거지?”

목진이 소녀를 조심스럽게 침대에 눕힌 뒤, 잠시 고민하다가 묻자 소녀는 눈을 비스듬히 뜨더니 느긋하게 답했다.

“그럼 내가 너 때문에 이러겠어?”

“불후신전에 대해 알아?”

목진의 질문에 만다라는 눈가가 파르르 떨렸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목진은 바로 눈치채고 깜짝 놀랐다.

소녀는 역시 불후신전에 대해 알고 있었고 만고불후신도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럼 대체 이 아이는 누구란 말인가?

“물어보면 안 되는 건 묻지 마. 안 그럼 너한테 해가 돼.”

목진이 계속 질문하려고 하자 만다라가 먼저 입을 열고 위엄 넘치게 말했다.

이에 목진은 미소를 지으며 나긋하게 물었다.

“그럼 내 체내의 신비로운 종이가 너한테 어떤 존재인지는 물어봐도 돼?”

“네 체내의 신비로운 종이에 상고의 만다라 꽃이란 신의 무늬가 있는데 이는 신화로 만물을 봉인하는 힘이 있어. 난 그것으로 체내의 저주를 봉인하려고 해.”

만다라의 답변에 목진은 흠칫하였다.

“저주라니…….”

“사람을 죽기보다 못하게 괴롭히는 저주야.”

만다라는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어갔다.

“이 저주는 극한의 고통을 끊임없이 발산하는데 9급 지존이라도 괴로워 죽을 정도라고 보면 돼.”

목진은 순간 아찔했다. 9급 지존경에 이른 실력자를 죽도록 괴롭힐 고통이라면 과연 얼마나 괴로울까?

“한번 느껴볼래?”

만다라는 갑자기 피식 웃더니 가녀린 손을 내밀었는데 한 줄기 빛이 목진의 몸으로 빠르게 스며들었다.

이에 목진은 갑자기 몸을 격렬하게 떨기 시작했고 눈은 금세 충혈되었으며 훤칠한 얼굴은 잔뜩 일그러진 채 고통스러웠다.

그는 온몸에 퍼진 극한의 고통에 미칠 것 같았는데 다행히 바로 사라졌다.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의자에 철푸덕 앉았다.

“뭘 하는 거야!”

목진은 만다라를 한껏 노려보며 외쳤다.

“난 이런 고통을 끊임없이 받고 있는데 넌 그 한순간도 못 견디겠어?”

만다라가 투덜대자 목진은 금세 어쩔 바를 몰랐고 다리를 끌어안고 침대에 앉아있는 소녀가 괜히 불쌍하게 느껴졌다. 그는 그 엄청난 고통을 잠시나마 느낀 것만으로도 죽고 싶어졌는데 소녀는 지금도 그런 고통에 시달리고 있으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다니. 그건 만다라의 엄청난 실력과도 관계가 있겠지만 놀라운 의지력이 큰 작용을 하는 것만은 확실했다.

“신비로운 종이에 깃든 만다라 꽃무늬가 네 저주를 풀 수 있어?”

“그럴 리가…….”

목진의 질문에 만다라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기껏해야 억제하는 정도야. 진정한 상고의 만다라 꽃만이 이 저주를 깰 수 있어.”

처음 들어보는 이름에 목진은 대일불멸신을 수련하는 데 필요한 세 가지 재료보다 훨씬 희귀할 거라 짐작했다.

“걱정하지 마. 난 그 종이를 빼앗지는 않을 거야. 너와 융합되어 있어서 강제로 걷어내려 하면 그 속에 깃든 만다라 꽃무늬까지 손상될 수도 있어.”

목진의 침묵에 만다라는 입을 삐쭉 내밀며 말했다.

“너 이름이 만다라가 아니지?”

목진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소녀를 바라봤다.

“그까짓 이름 따위에 연연하지 마.”

“그리고…….”

목진은 만다라를 쓰윽 훑으며 말을 이어갔다.

“지금 모습도 가짜지? 너 같은 실력자가 여자아이일 리 없어.”

목진은 상대방이 소녀의 탈을 쓴 노인네라고 생각했는데 방금 그녀를 안은 것을 떠올리고는 괜히 소름이 끼쳤다.

“나를 인간의 기준으로 짐작하려 하지 마. 그렇게 말하면 구유작도 너보다 나이가 훨씬 많지 않아?”

목진의 말에 만다라는 괜히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넌 인간이 아니야?”

그런데 소녀는 목진을 노려보더니 질문에 답하지 않고 이불로 들어갔다.

“난 네 주위에만 있으면 상고의 만다라 꽃무늬의 힘을 빌려 저주를 억제할 수 있으니까 넌 수련이나 해.”

“그럼 난 뭘 얻을 수 있어?”

목진이 피식 웃으며 묻자 만다라가 이불에서 나와 이상한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봤다.

“너를 죽이지 않는 것보다 더 큰 보상이 있을까?”

이에 목진은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래, 내가 졌어!”

목진은 이내 침대 옆에 앉아 눈을 감고 수련하기 시작했고 만다라는 이불에서 나와 소년을 지그시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대일불멸신이 다시 나타날 줄이야…….”

* * *

구유는 목진한테는 수련에 집중하라고 하고, 구유궁 사람들과 함께 바쁘게 돌아다녔다.

대라금지의 대결에서 체면을 살린 구유는 구유궁의 명성을 되돌리고 싶었다. 구유위는 현재, 9왕의 병력중에서 최하위로, 실력을 키우려면 최소한 구유궁의 땅 정도는 되찾아야 했다.

그건 소유하고 있는 지역에서 해마다 대량의 지존영액을 바치기 때문이었는데 구유궁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지존영액이었다. 목진이 구유위한테 약속까지 했으니 더 많은 양이 필요했다.

지존영액이 부족하면 구유궁은 생존마저 어려워질 것이고, 실력을 키우는 일에도 차질이 생길 것이다. 더구나 대라천역의 수많은 파벌이 구유궁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들은 대라금지의 대결에서 승리를 거둔 구유궁이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지 궁금해했다.

구유는 구유궁의 소속이었던 도성들에 사람을 보내 그녀의 말을 전했다.

“다시 구유궁에 돌아오거라.”

그녀의 간단한 말에 사람들은 적잖게 놀랐지만 대부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피식 웃었다. 구유궁은 결국 여인의 궁전이라 강력하게 밀어붙이지 못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람들은 말 한마디에 혈응전에 넘어갔던 성주들이 다시 돌아올 거라고 여기는 구유가 너무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 역시 예상대로였다. 쉰 개도 넘는 도성 중 혈응전의 팝박에 더는 참을 수 없는 성주 몇 명만 제외하고 대부분 답을 주지 않았다. 혈응전과 관계가 좋은 성주들은 오히려 구유궁에서 보낸 사람을 쫓아내기까지 했다.

또한 혈응전이란 든든한 뒷배만 믿고 대라천역에서 최약체였던 구유궁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는 것이다.

이에 대라천역 사람들은 몰래 혀를 내둘렀고 목진 때문에 시무룩했던 혈응전은 다시 기세등등해졌다.

그러나 구유궁은 여전히 평온했다.

구유궁의 한 대전 앞에 구유위가 모였는데 이들의 살기에 주위의 온도마저 내려가 냉기가 감돌았다.

한편, 검은색 갑옷을 입고 머리를 축 늘어트린 구유는 구유위의 앞쪽에 서서 도성들의 답장이 적힌 족자를 보고 씨익 웃으며 아래쪽에 서 있는 목진한테 이를 넘겼다.

“이건 명단이니까 어떻게 처리할지는 전부 너한테 맡길게.”

목진은 미소를 지으며 족자를 건네받고는 돌아서서 구유위를 쓰윽 훑어보며 말했다.

“다들 요즘 대라천역에 떠도는 소리를 들었을 거야. 누군가는 새 주인이 생겼다고 근본을 잊은 것 같은데 이들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

“죽여야 합니다.”

구유위의 말소리가 하늘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고 다들 살기 가득한 얼굴로 자리에 서 있었다. 참기만 하던 구유위는 이제 없었다.

“다들 우리 구유궁은 입만 나불거릴 줄밖에 모르는 멍청이로 알던데…….”

목진은 한기를 품은 채 웅장한 영력을 끌어올리며 말을 이어갔다.

“지금부터 구유위가 주먹으로 도리를 따지는 조직이란 걸 제대로 보여줍시다. 그럼 이만 떠납시다.”

말을 마친 목진이 먼저 한 줄기 빛이 되어 떠나자 당빙이 바로 구유위와 함께 그 뒤를 따랐다. 엄청난 살기에 대라천의 파벌들은 깜짝 놀라 하늘을 바라봤다.

구유궁에서 전해진 엄청난 살기에 대라천의 수많은 파벌이 하늘을 바라봤다.

구유궁이 그들 소속이었던 도성에 사람을 보냈지만 그 뜻을 따르겠다는 성주가 몇 명 없었다는 사실이 널리 퍼져 다들 피식 웃으며 넘겼고, 혈응전에서 특히 좋아했다.

다만, 구유궁에서 이 일을 절대 그냥 넘기지 않을 거란 걸 다들 잘 알고 있었다. 그냥 넘어가면 구유궁은 더는 대라천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천취황이라도 체면을 구길 대로 구긴 구유궁을 옹호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데 구유궁에서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다들 흥미로운 눈으로 지켜보았다.

구유궁은 여태껏 9왕 중 최약체로 발전이 가장 느려 구유가 아무리 겁난을 건네는 데 성공해서 돌아왔다고 해도 그녀 한 사람만으로 구유궁 전체를 보듬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휘하에 강자로 흘러넘치는 다른 8왕과 비교하면 대라천역에 온 지 얼마 안 되는 목진 외에 구유궁에는 특별히 뛰어난 사람이 없었다.

더구나 대라천역에서는 왕들이 나설 수 없었기에 오늘 구유궁이 뭘 하든 성공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목진이 아무리 대라금지의 대결에서 대라금신을 만들어냈어도 혼자서 보통이 아닌 성주들을 상대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더구나 그들 중에는 대라천역에서 꽤 유명한 정예들도 있었다.

오늘 구유궁이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한편, 혈응왕은 왕좌에 앉아 선홍색 눈동자를 굴리며 씨익 웃었다.

“구유궁에서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군.”

혈응왕은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아래쪽에 서 있는 오천을 바라봤다.

“준비는 마쳤어?”

“성주들이 전부 마망성(魔蟒城)에 모였으니 녀석이 정말 그곳에 모습을 드러낸다면 체면은커녕 영원히 돌아오지도 못할 거예요.”

오천이 사악하게 웃으며 답했다. 성주가 한 도성의 주인이 되려면 상당한 실력을 갖춰야 하는데 그중 최정예는 4대 통령 못지않은 실력자들이었다. 다만, 그들은 나이가 있는 편이라 젊은 4대 통령과는 비교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런 사람들이 한곳에 모이면 얘기가 달라진다. 구유궁은 구유를 제외하면 목진 한 사람만 겨우 정예에 속할 뿐, 나머지는 그들을 상대할 만한 이들이 아무도 없었다.

“이래서 여인은 큰일을 못 한다는 거야.”

혈응왕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구유가 실력이 부쩍 늘어서 돌아왔다고 해도 마음만 앞서고 있다고 생각했다.

구유궁 자체의 실력이 상당히 뒤처져 있는데 돌아오자마자 빼앗겼던 땅을 전부 돌려받으려 하다니. 구유는 정녕 혈응왕이 여태껏 숨만 쉬고 살았다고 생각하는 건가?

목진이란 소년이 제법이긴 하지만 혈응왕을 뒷배로 한 성주들을 상대로 하기에는 버거울 것이다. 구유궁은 대라금지에서 겨우 되찾은 체면을 오늘 다시 잃을 것이다.

그리되면 구유는 구유궁과 혈응전 사이의 차이를 제대로 실감할 것이다.

* * *

대라천역의 서북쪽에 있는 마망성은 상당히 큰 도성으로 대라천역에서도 상당히 번화한 곳이었다.

하여 그해, 구유궁이 이 도성을 자기의 것으로 만든 것에 질투가 난 혈응왕은 그녀가 사라지자마자 이곳부터 빼앗았다.

그런데 오늘의 마망성은 유난히 떠들썩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하늘에서 수많은 빛줄기가 이곳으로 향했고 도성에 있는 전송 영진도 부단히 빛을 발했다.

바로 전날, 마망성 성주 나망(羅莽)은 50명의 성주를 이곳으로 모이라고 소식을 전했는데 사람들은 그가 구유궁을 상대하기 위함이란 걸 잘 알았다.

비록 다들 대라천역에 속해 있지만 야심만만한 나망은 최약체였던 구유궁보다 혈응전에 잘 보이고 싶었다. 그한테 구유궁은 비교 대상이 아니었다.

물론 그가 이렇게까지 겁 없이 일을 벌일 수 있었던 것에는 혈응전의 도움도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