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0화. 파면
길고 깊은 균열은 거대한 이무기처럼 생겼는데 사람들은 눈앞의 광경에 눈가가 파르르 떨렸고 나망에 대해 잘 아는 강자들은 안색이 한껏 어두워졌다.
그들은 나망이 1급 지존밖에 안 되는 소년과의 대결에서 밀리자 깜짝 놀랐다.
구유궁의 새 통령은 역시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한편, 검은색 도포를 입은 소년은 여전히 주먹을 휘두른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금광을 발하는 그한테서 상당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성주들도 목진이 육신의 힘만으로 나망을 날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때, 소년은 천천히 주먹을 거두고 손을 바라봤는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나망 역시 괜히 마망성의 성주가 된 것이 아니었고 여러 해 동안 성주들의 우두머리가 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목진은 처음으로 뇌신체를 끝까지 끌어올렸는데도 나망을 완전히 제압할 수 없다는 걸 느꼈다.
목진은 뇌신체를 수련한 뒤로 강한 육신으로 동급 상대와의 대결에서 상당한 우세를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그보다 강한 상대에게도 전혀 뒤처지지 않았는데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아마 나망이 수련한 단체신결도 뇌신체 못지않게 강한 것이 틀림없었다.
“뇌신체보다 더 강력한 단체신결을 수련해야겠군.”
목진의 실력이 급격하게 늘면서 뇌신체 역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뇌신체를 수련하는 과정에서 벼락의 힘이 육신을 더욱 강화해준 것에 보람을 느꼈다.
이는 목진이 육신을 단련하는 일에 단단한 기초를 다져준 것과 같았는데 앞으로 어떤 단체신결을 수련하든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퍽!
그때 균열의 다른 한쪽 끝에서 갑자기 돌 파편이 튕기더니 난폭한 영력 파동과 함께 나망이 다시 사람들 눈앞에 나타났다.
어느새 윗옷이 산산조각이 난 나망은 암석처럼 단단한 몸을 드러냈는데 검은색 이무기 무늬에서 음산한 기운이 풍겼다.
“구유궁의 통령은 역시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네요. 1급 지존경 밖에 안 되는 실력인데 그렇게나 강한 육신을 지녔다니.”
나망이 음침하게 바라보며 한 말에 목진은 무덤덤하게 웃기만 했다.
“그런데…….”
나망은 멈칫하다가 다시 살기를 품은 채 말을 이어갔다.
“나망성은 절대 구유궁의 품에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나망은 목진 때문에 제대로 화가 난 모양이었다. 그는 변명 하나 없이 단칼에 목진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러나 정작 목진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럼 나도 명확하게 말하겠다. 넌 파면되었어. 넌 더 이상 나망성 성주가 아니니 이제 네 말은 나망성을 대표할 수 없다.”
“웃기고 있네!”
나망은 피식 웃더니 살기 가득한 눈으로 목진을 바라봤다. 소년이 나망성은 물론이고 그의 자리까지 위협하려 들 줄 몰랐다.
이에 그가 발을 힘껏 구르자 대지가 쩍 갈라지며 난폭하기 그지없는 영력 폭풍이 일었고 뒤쪽에 어둡고 큰 그림자가 형성되었다.
나망을 휘감은 어두운 그림자가 나타나자 천지의 영력마저 파르르 떨렸는데 녀석은 소년을 노려보며 고함을 질렀다.
“당신 따위가 무슨 수로 나를 파면한다고 하는지 어디 두고 봅시다.”
나망을 휘감은 거대한 법신의 출현에 그곳은 순식간에 떠들썩해졌다.
“저건 마망법신 아닌가? 나망이 중상을 입은 천마망(天魔蟒)을 죽이고 그 정혈을 삼켜 마망법신을 수련했다고 들었어. 이는 비록 99등급 지존법신에 속하지는 않지만 위력은 충분히 순위권에 들 만큼 강하다고 하더군.”
많은 이들이 나망의 위험천만한 수련법에 놀란 듯했다.
두 가지 부동의 혈액을 몸에 들이면 배척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다 나망의 정혈이 폭동을 일으켜 육신이 폭발하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다행히 나망은 천운이 따라 마망법신을 수련하는 데 성공한 모양이었다.
“제법이군.”
목진도 마망법신에 깜짝 놀랐다. 그 역시 이토록 괴이한 지존법신을 수련한 나망이 꽤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나도 네가 육신으로도 지존법신으로도 안 된다는 걸 제대로 보여주지.”
말을 마친 목진의 머리에서 눈부신 금광이 발하더니 엄청난 위압감과 함께 거대한 그림자가 그 구역에 나타났다. 커다란 태양을 머리에 얹은 법신은 눈부신 금광을 발했고 마치 금으로 빚어진 불상처럼 보였다.
쿠쿵!
목진의 지존법신이 나타나자 주위의 천지의 영력이 밀물처럼 휘몰아쳤는데 엄청난 광경에 사람들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센 척하기는!”
나망은 목진의 지존법신에서 내뿜는 위압감에 깜짝 놀랐지만 그렇다고 물러날 수는 없었다. 망설이다가는 전세를 뒤엎는 일이 더욱 불가능해질 것이다.
“마망인(魔蟒印)!”
나망이 고함을 지르자 어두운 빛이 하늘 높이 솟아오르더니 마망법신을 휘감고 있던 거대한 이무기가 꿈틀거리며 황금빛 지존법신으로 향했다.
그러나 목진은 피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는 곧바로 황금색 거수를 휘둘렀는데 손바닥에서 금광을 발하는 것이 꼭 황금색 태양이 떠오르는 것만 같았다.
퍽!
금광 거수는 난폭한 영력 장애를 뚫고 이무기를 낚아채더니 눈부신 금광으로 상대방의 어두운 빛을 완전히 제압했다.
“뱀 따위가 감히 나한테 덤벼!”
목진의 말과 함께 이무기는 맥없이 추락했고 황금빛 산맥처럼 묵직하게 내려앉은 법신의 거대한 손은 녀석을 완전히 진압했다.
쿵!
그러다 대지가 움푹 꺼지며 이무기는 산산조각이 났다.
사람들은 목진이 나망의 기세등등한 공격을 단숨에 무산시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녀석이 수련한 법신이 이렇게 강하단 말인가!
이에 나망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육신으로 서로 승부를 가릴 수 없어 지존법신을 소환했는데 오히려 열세에 처하고 말았다.
“젠장, 저 녀석은 도대체 어떤 지존법신을 수련했기에 이렇게까지 강하단 말인가?”
나망은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질렀다.
“이제부터 내가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제대로 보여주지!”
마망광인을 부순 목진은 황금빛의 커다란 눈으로 나망을 바라보며 하늘 높이 날아오르자 눈부신 금광이 비췄는데 백 리 밖에서도 보일 정도였다.
“나와 함께 공격합시다.”
난폭하기 그지없는 영력 파동에 안색이 한껏 어두워진 나망이 혈취성과 흑암성 성주한테 고개를 돌리자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더니 이를 악물고 함께 나섰다.
위잉!
그런데 그때, 하늘에서 갑자기 이상한 영력 파동이 퍼지더니 흑련 여섯 송이가 두 갈래의 굵직한 검은색 빛의 기둥으로 변해 유성처럼 날아가 두 성주의 몸을 가격했다.
무서운 영력 파동에 나서려던 두 성주는 지면에 내리꽂혔다.
쿵!
그때, 황금색 유성도 내려앉았는데 태양처럼 눈부신 황금색 거수가 나망에게 향했다.
엄청난 압력에 아래쪽 대지는 갈기갈기 찢어졌고 나망은 사색이 되어 목진을 바라보았다.
“나를 쓰러뜨리는 건 절대 쉽지 않을 거야!”
나망이 한껏 일그러진 표정으로 포효하며 두 손을 높이 들어 체내의 영력을 남김없이 내뿜었다. 그러자 어두운 영력은 먹물처럼 하늘을 물들였고 순간, 광풍이 일었다.
그의 지존법신은 비록 목진보다 못하지만 그는 2급 지존경 정상이었고 영력은 분명 소년보다 그윽할 거라 여겼다.
오늘의 대결은 기껏해야 쌍방의 부상으로 끝날 것이다. 그는 새로운 통령의 기만 꺾을 수 있다면 그는 아무리 부상을 입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쿵!
그때 황금색 태양과 어두운 영력이 힘껏 부딪쳤다.
사람들은 눈을 부릅뜨고 상황을 지켜보았다. 이번 대결로 드디어 승패가 갈릴 것이다.
황금색 태양이 눈부신 빛을 발하며 내려앉아 상대방의 엄청난 영력에 맞섰다.
쿵!
육안으로도 확인 가능한 충격파가 홍수처럼 몰려와 견고한 광장이 와르르 무너졌고 바닥에 균열이 일었다.
이에 광장에 서 있던 사람들은 괜히 불똥이라도 튈까 봐 황급히 물러났다.
“마망서천경(魔蟒噬天勁)!”
그때 마망법신 속 나망의 체내에서 어두운 영력이 괴상한 소리를 내며 커다란 선홍색 눈 한 쌍이 살기를 잔뜩 품은 채 나타났다.
나망도 천마망의 정혈을 흡수해 그 영력에 난폭한 살기가 깃들어 있어 보통 영력보다 더 강력했다.
이로 인해 지금까지 수많은 상대를 꺾었는데 이번에는 그 효과를 볼 수 없게 되었다.
목진은 영력을 불사화와 융합했을 뿐만 아니라 대일지염의 힘까지 더해 그 위력은 천마망의 정혈을 흡수한 살기가 깃든 영력 따위와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망이 포효할 때, 황금색 태양은 점차 눈부신 빛을 발하며 내려앉아 짙은 안개를 일으키며 놀라운 속도로 녀석을 녹여 없앴다.
나망은 마망의 처량한 비명에 안색이 잔뜩 어두워졌다. 그는 영력만큼은 자신만만했는데 이렇게까지 쉽게 무너질 줄은 몰랐다.
쿵!
게다가 목진은 상대방에게 반응할 시간조차 주지 않았으니, 황금빛 태양은 마망법신의 방대한 몸을 힘껏 내리쳤다.
쿵!
마망법신은 바로 바닥에 꽂혔고 드넓은 광장은 와르르 무너졌으며 마망 조각상은 산산조각이 났다.
금광이 사라지자 황금빛이 비치는 그림자가 나타나 하찮은 벌레를 쳐다보듯 아래쪽을 쳐다봤다.
잠시 후, 광장의 연기가 가시자 사람들은 눈앞에 나타난 광경에 화들짝 놀랐다. 움푹 파인 곳에 쓰러져 있는 마망법신은 만신창이가 돼 있었고 주위의 영력 파동은 무질서해지다가 점차 투명해지더니 완전히 사라졌다.
잇따라 그 속에서 안색이 창백해진 나망이 입가에 피를 머금고 나타나 휘청이며 겨우 서 있었다.
마망법신이 부서진 탓에 나망은 부상을 당했다.
“나망의 마망법신이 부서졌어!”
사람들은 차마 그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2급 지존경 정상에 이른 나망의 실력에 특수한 마망법신의 힘까지 더하면 2급 지존 중 최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1급 지존경 밖에 안 되는 소년 때문에 법신을 잃다니…….
이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주위에서 상황을 살피던 성주들도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구유궁의 새 통령이 이렇게 강하다니. 구유궁이 정녕 일어선 것인가?
그 모습에 조금전에 나섰던 혈취성 성주와 흑암성 성주도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들은 예상치 못한 목진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해 나망을 도울 기회도 없었다.
“이제는 확실히 내가 네 성주 자리를 빼앗을 자격이 있는 것 같군.”
허공에 선 대일불멸신은 황금빛 눈으로 나망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말에 녀석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채 괴이하게 웃더니 혈취성 성주와 흑암성 성주한테 고개를 돌렸다.
“혈응왕의 말씀을 잊지들 말게. 오늘 이 녀석 말을 따르면 앞으로 큰 화를 입을 걸세!”
이에 두 성주는 흠칫 놀라 다시 나섰고 뒤쪽에 서 있던 성주들고 잠시 고민하더니 네 사람이 연이어 앞으로 나왔다. 그들은 혈응전과 가깝게 지내던 터라 구유궁의 뜻대로 했다가는 큰코다칠 것이 분명했다.
하여 그들은 목진의 뜻대로 일이 흘러가게 놔둘 수는 없었다.
비록 목진의 실력에 조금 놀라긴 했지만 여러 명이 함께 나서면 소년은 절대 상대가 안 될 것이다.
성주들은 이제 명성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다 함께 대일불멸신 주위를 둘러싼 채 웅장한 영력을 끌어올려 광풍을 일으켰다.
구경꾼들은 성주들의 반응에 몰래 혀를 끌끌 찼다.
“하하, 목진, 당신이 아무리 대단해 봐야 혼자서 우리 일곱 명을 상대할 수는 없을 겁니다.”
나망이 사악하게 웃으며 말하더니 득의양양하게 목진을 바라봤다.
“비겁한 놈!”
이러한 광경에 당빙이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그때, 목진이 지존법신의 머리 위쪽에 나타나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나망 등을 바라봤다.
그의 1급 지존의 실력으로는 나망과 비슷한 실력의 여섯 명과 싸워서 이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목진, 난 너를 괴롭힐 생각이 없다. 그러니까 지금 떠나면 무사히 보내줄게.”
나망의 말에 목진은 피식 웃더니 뒤쪽에 조용히 서 있는 성주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더 나설 사람이 있나요?”
목진의 태연한 모습에 더는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나망과 달리 어쩔 수 없이 혈응성에 제안에 응했고 여태껏 핍박을 받아왔기에 그들에게 호감이 전혀 없었다. 지금까지는 구유궁의 실력이 약하다는 생각에 감히 나서지 못했는데 지금 상황으로 보면 구유궁은 이제 더는 당하고만 있을 않을 것 같았다.
“너희 일곱 명뿐이구나.”
목진은 이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혈응성에 완전히 넘어간 성주는 역시 소수로 이들만 잘 해결하면 오늘 일은 순조롭게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