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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441화 (440/1,000)

441화. 먹히지 않는 협박

“난 기회를 줬는데 당신이 포기한 겁니다.”

나망이 팔짱을 낀 채 한기 어린 눈빛으로 목진을 노려보며 말했다.

“일곱 명이 한 사람을 상대하겠다니…….”

나망을 노려보며 중얼거리던 목진은 씨익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과연 어느 쪽 사람이 적을까?”

잇따라 뒤쪽에 나타난 기세등등한 구유위에 나망은 흠칫 놀랐다.

“흥, 저들은 절대 우리 상대가 아니죠.”

나망은 콧방귀를 뀌며 말하고는 금세 마음을 다스렸다. 구유위는 9왕이 이끄는 군대 중 최하위로 여태껏 구유궁에서 나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과연 그럴까?”

목진은 미소를 짓더니 구유위한테 다가가 외쳤다.

“구유위!”

“네!”

뇌명 같은 소리와 함께 이루 말할 수 없는 영력 파동이 휘몰아쳐 구름이 쩍 갈라졌다.

엄청난 광경에 사람들은 흠칫 놀랐다. 대라천역에서 조용히 지내던 구유위는 잠에서 깨어난 사자와도 같았다.

“구유 전의!”

목진의 나지막한 소리와 함께 구유위의 수중에 검은색 장창이 나타나더니 다들 이를 힘껏 내리찍었다.

꽈르릉!

엄청난 소리와 함께 웅장한 전의가 하늘 높이 솟아오르더니 미친 듯이 모여들었고, 어두운 전의는 바다를 이뤘는데 그 속에서 부단히 뇌명이 들렸다.

“전의를 만들다니!”

나망 등은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 오랜 시간 함께 합을 맞추며 훈련해온 군대라야 무형의 전의를 실체로 만들 수 있는데 구유위가 이를 해낸 것이다.

“겁먹지 말게. 비록 구유위가 전의를 만들 수 있다지만 이를 완벽하게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네. 목진은 구유위의 통령이 된 지 며칠밖에 안 되지 않나?”

나망은 눈가가 파르르 떨린 채 구유 전의를 보고는 바로 정색하며 외쳤다.

이에 나머지 성주들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전의를 잘 다스리려면 이와 융합해야 하는데 목진은 대라천역에 온 지도 며칠 되지 않았고, 구유위와 알고 지낸 시간은 더 짧았다. 그러니 절대 전의를 조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때, 대일불멸신 위쪽에 앉아있던 목진은 씨익 웃더니 길쭉한 손을 가볍게 들었다.

쿵!

나망 등은 눈앞에 일어난 광경에 화들짝 놀랐다.

목진이 손을 들자 웅장한 전의의 바다에 돌풍이 일기 시작했다. 이렇게 구유위의 전의를 조종한 목진은 혼자서 천 명도 상대할 힘을 지녔으니, 이제 나망 등은 수천 명이나 상대하는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었다.

나망은 순간 사색이 되었다.

구유위가 서 있는 곳의 위쪽 하늘에 어두운 빛을 띤 전의가 모였는데 전투 의지가 활활 타올랐다. 그들의 포효에 천지가 흔들렸다.

구경꾼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상황을 지켜봤다. 전의를 실체로 전환하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다.

이는 군대에서 오랜 시간 동안 합을 맞추며 일종의 평형점을 찾아야 할뿐더러 한마음, 한뜻으로 밀고 나아가는 마음가짐도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야 이들이 의지를 영력에 불어넣었을 때, 서로 다른 사람들의 전의가 한곳에 모여 무서운 힘을 이룰 수 있었다.

전의를 가져야 비로소 군대라 불릴 수 있고 무서운 위력을 지닐 수 있었다.

하지만 전의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해서 전부 해결되는 것은 아니고, 이를 다스리는 사람도 아주 중요했다.

군대의 전의를 다스리는 자 역시 잘 어울려야 그 속에 깃든 힘을 완벽히 이용할 수 있는데 이는 장시간의 훈련이 필요한 일이었다.

조종자가 일단 전의를 조종하면 체내에 전의가 스며들어, 의지가 확고하지 않으면 엄청난 후과를 초래하기 때문이었다.

전의를 다스리는 것은 이렇게 까다로운 일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목진의 가벼운 손짓에 포효하는 전의를 보고 화들짝 놀랐던 것이다.

목진은 대라천역에 온 지 3개월밖에 안 되었고 구유위를 맡은 시간은 더 짧았다. 다들 그가 구유 전의를 이 정도까지 다스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망 등도 사색이 되어 눈앞의 광경을 바라봤다. 목진이 정녕 구유 전의를 다스릴 수 있다면 이들한테 승산은 없었다.

목진은 여전히 대일불멸신 위쪽에 조용히 앉아 상대방을 바라봤는데 체내에 스며든 전의에도 끄떡없었다. 천 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의 의지가 모여 만들어진 전의는 엄청났지만 여태껏 수련해온 덕분에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대신, 구유위의 웅장한 전의에 목진도 의지가 활활 타올라 나망 등을 바라보며 손을 천천히 들다가 다시 내렸다.

목진은 손을 아주 느리게 내렸지만 앞쪽 공간이 순식간에 유리가 부서지듯 육안으로도 확인 가능한 균열이 빠르게 생겨났다.

크으으으!

그때, 아래쪽 전의의 바다에서 포효가 들리더니 어두운 전의가 하늘 높이 날아올라 거대한 검은색 빛줄기를 형성했다.

아무리 3급 지존이라도 구유위의 전의와 영력으로 만들어진 빛줄기에 목진의 힘까지 더한 엄청난 위력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쿵!

나망 등은 사정없이 내리꽂히는 전의의 빛줄기에 안색이 한껏 어두워진 채 체내의 영력을 전부 끌어올려 앞쪽에 방대한 영력 광막 일곱 개를 만들었다.

쿵!

그런데 전의의 빛줄기는 사정없이 영력 광막을 때렸다.

퍽! 퍽! 퍽!

그 무서운 힘에 광막들은 순식간에 부서졌고, 구경꾼들은 성주들의 방어벽이 맥없이 무너지는 광경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풉.

나망 등은 피를 토하며 뒤로 물러났고 주위의 영력 파동은 잔뜩 무질서해졌다.

쿵!

그런데 전의의 빛줄기는 공격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뒤로 튕겨 나간 나망 등에게 향했다.

이토록 무서운 공격에 적중하면 이들은 죽지는 않을지언정 중상을 입을 것이 분명했다. 목진은 역시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이에 나망 등은 드디어 구유궁의 새 통령에게 두려움을 느꼈다. 목진은 이들한테 항복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는데, 이는 혈응전과 나머지 사람들한테 본때를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슉!

전의의 빛줄기가 눈 깜짝할 사이에 나망 등의 앞쪽에 나타나자 주위에 생성된 공간 균열에 그들은 눈가가 파르르 떨렸고 너무 무서워 차마 말조차 내뱉을 수 없었다.

뒤쪽에 서서 지켜보던 성주들도 온몸이 파르르 떨렸다. 다들 구유위의 새 통령이 나망 등을 이용해 구유궁의 위엄을 바로 잡으려 한다는 것을 눈치챘다.

“이제 우린 죽었군!”

나망 등이 절망의 눈빛으로 빛줄기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끼욱!

잇따라 선홍빛이 공간을 가르며 놀라운 속도로 날아와 검은색 전의의 빛줄기를 때렸다.

쿵!

두 갈래의 무서운 힘이 한데 부딪쳐 영력 폭풍을 일으키자 나망 등은 순식간에 멀리 튕겨 나가 도성의 널찍한 거리에 깊숙한 흔적을 남기며 내리꽂혔다.

목진은 미간을 찌푸린 채 휘몰아치는 영력 폭풍을 보다가 정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하늘이 갑자기 선홍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는데, 선홍빛이 사라지자 혈운을 밟고 군대 하나가 나타났다.

선홍색 갑옷에 혈창을 든 그들은 체내에서 살기를 내뿜었다.

잠시 후, 그 위쪽에도 선홍빛 전의가 모여 혈운을 형성하였고 누군가 뒷짐을 진 채 사람들 눈앞에 나타났다.

“저건…… 혈응전의 혈응위야!”

“사대 통령 중 한 명인 오천도 있어. 혈응전에서 역시 사람을 보냈어!”

“혈응위까지 나서다니, 상황이 점점 흥미로워지는걸!”

* * *

혈응위가 나타나자 사람들은 곧바로 수군대기 시작했다. 구유궁과 혈응전이 서로 군대까지 파견해 싸우려 하다니, 양쪽은 이제 완벽한 적이 되었다.

당빙도 혈응위의 출현에 안색이 조금 어두워져 목진한테 다가갔다.

“오천이야.”

이에 목진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더니 혈운에 서 있는 청년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나타났군.”

오천은 몰래 숨어 목진이 험한 꼴을 당하는 모습을 보려고 했다. 그런데 소년이 파죽지세로 나망 등을 밀어붙이자 계속 숨어있다가는 혈응전의 체면이 바닥이 날 것 같아 나선 것이다.

“목진, 당장 구유위들과 함께 꺼져. 여긴 혈응전 땅이야!”

“나망 등은 이미 성주의 자리에서 물러났어. 그리고 이 도성들은 앞으로 구유궁에서 맡을 거니까 혈응전에서 함부로 나서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목진이 미소를 지으며 한 말에 오천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입만 살았군? 너 따위가 이 도성들을 전부 빼앗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 그건 절대 불가능해!”

“혈응위!”

오천의 말과 함께 혈응위가 동시에 고함을 지르자 엄청난 살기가 하늘 높이 솟아오르더니 웅장한 전의가 형성되었고 피비린내가 주위에 퍼졌다.

혈응위는 혈응전의 중요한 전력으로 5천 명 가까이 되어 인원수만으로도 구유위를 꺾을 수 있었다. 오늘은 그중 절반도 안 나왔지만 이미 구유위의 2배나 되었다.

구경꾼들은 기세등등한 혈응위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혈응전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도성 사람들을 전부 죽일 정도로 흉악했고, 그들의 악행은 이미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그때 오천이 혈운을 딛고 한기 어린 눈으로 목진을 바라보며 외쳤다.

“당장 마망성에서 물러나. 안 그럼 구유궁 사람들은 오늘 이곳에서 전부 죽을 거야!”

오천의 협박에도 목진은 피식 웃으며 피비린내를 뚫고 대답했다.

“미안하지만 거절할게.”

목진이 말을 마치자 그 구역에 순간 정적이 흘렀다. 사람들은 조용히 서서 그와 오천의 신경전을 지켜봤다.

“허허, 대단하군.”

오천은 목진의 답변에 전혀 놀라지 않은 것 같았다. 그가 씨익 웃으며 주먹을 쥐자 혈해처럼 들끓던 웅장한 전의에서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구유궁에서 그렇게 결정했다니 내가 뭐라 하지는 않겠지만, 구유왕께서 나설 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오천은 히쭉 웃으며 말하더니 살기를 가득 품고 목진을 바라봤다.

“그 말 그대로 돌려줄게. 혈응왕께서는 아마 초라해진 혈응위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상당히 아프실 거야.”

“하하, 과연 그럴까?”

목진이 말에 오천은 호탕하게 웃으며 손을 휘익 휘둘렀다.

“그럼 과연 누가 누구를 쓰러뜨리는지 볼까?”

“쿵!”

잇따라 선홍색 갑옷을 입은 혈응위가 기합을 넣자 선홍빛 영력은 엄청난 살기를 싣고 솟아올라 하늘을 빨갛게 물들였고 오천 밑에 있던 혈해도 점차 그윽해져 엄청난 위압감을 형성하며 주위에 돌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이러한 광경에 당빙은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오천은 혈응위를 다년간 거느려 전의를 다스리는 실력이 상당했다. 얼마 되지 않은 목진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목진아…….”

당빙이 걱정되어 목진을 불렀는데 목진은 상냥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말아요. 누이가 정성껏 키워온 구유위는 절대 패배하지 않아요. 그리고 누이가 나한테 이들을 맡겼으니 난 어떻게든 이들을 지킬 거예요.”

구유궁은 여태껏 구유가 자리를 비워 상황이 점점 나빠졌지만, 당빙이 자신에게 주어진 지존영액까지 희생해가며 구유위만은 끝까지 책임졌다.

구유위는 당빙이 심혈을 기울여 키워온 자식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당빙의 이러한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구유위 역시 그녀를 배신하지 않고 열심히 수련해온 것이다.

하여 구유위의 수는 비록 혈응위의 절반밖에 안 되지만 그 실력과 마음만큼은 절대 뒤처지지 않았다.

당빙은 목진의 상냥한 미소에 코끝이 찡했다. 다들 그녀에게 왜 구유위를 포기하지 않냐며 비웃곤 했는데 누군가 그 노력을 알아주니 마음이 뭉클했다.

“그럼 조심해.”

당빙은 한껏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이에 목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검은색 갑옷을 입은 구유위한테 눈길을 돌렸다. 그러나 그들에게서는 두려움은커녕, 오랜 시간 억눌러온 전의가 물씬 느껴졌다. 그들도 오래도록 기다려온 모양이었다.

“너희가 구유위를 믿는다면 우리는 그 어떤 상대든 물리칠 수 있다.”

목진은 말을 마치고 진지해진 얼굴로 손을 휘둘렀다.

“구유 전의!”

쿵!

구유위들이 수중의 검은색 장창을 힘껏 내리찍으며 고함을 지르자 우렁찬 목소리가 뇌명처럼 하늘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고 어두운 전의가 서서히 솟아올라 먹구름처럼 하늘을 덮었다.

이렇게 두 갈래의 전의는 하늘을 두 가지 색으로 물들였고 사람들은 조용히 전의로 감싸진 구역에서 물러났다. 일단 쌍방이 싸우기 시작하면 도성마저 순간 아수라장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구유위든, 혈응위든 이러한 결과에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그곳은 어느새 쥐 죽은 듯 조용해졌고 하늘에 형성된 웅장한 전의만이 요동치며 상대방을 공격할 준비를 했다.

쿵!

목진과 오천이 거의 동시에 공격을 개시하자 두 갈래의 웅장한 전의가 하늘 높이 솟구치다가 서로에게 향했다.

그런데 그때, 공간이 갑자기 일그러지더니 누군가 나타나 손을 뒤엎자 두 갈래의 웅장한 전의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갑작스러운 변고에 다들 화들짝 놀랐고 그 정체를 확인하고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사람은 대라천역의 3황 중 수황이잖아!”

“무려 수황께서 이곳에 오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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