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5화. 전의를 혈제하라!
슉! 슉!
수많은 혈창이 생성된 것을 확인한 오천이 옷깃을 휘날리자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혈창들은 선홍색 폭우처럼 구유위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그 범위가 너무 커 절대 피할 수 없을 정도였다.
“구유 전의!”
그때, 목진이 옷깃을 휘날리며 외치자 구유위가 수중의 장창을 힘껏 내리찍으며 그윽한 전의를 내뿜어 맑은 하늘을 까맣게 물들였다.
잇따라 목진이 빠르게 결인하고 힘껏 내리찍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어두운 전의가 파도처럼 휘몰아쳐 수천 장 크기의 방대한 전의 광막을 형성해 구유위를 감쌌다.
혈창은 결국 전의로 만들어진 광막을 때렸는데 안개가 일더니 그들은 바다에 빠진 암장처럼 차가운 돌덩이가 되어 떨어졌다.
“허허, 천 명밖에 안 되는 구유위로 혈응위의 전의를 뛰어넘으려는 거야?”
오천은 목진을 비웃으며 다시 손가락으로 허공을 찔렀다.
위잉! 위잉!
그러자 뒤쪽 하늘에 다시 선홍색 장창이 생성되어 부단히 구유위를 공격했다. 오천은 전의의 우세로 구유위와 소모전을 펼칠 작정이었다.
구경꾼들은 순간 미간을 찌푸렸다. 혈응위는 수의 우세만으로도 구유위보다 훨씬 강한 전의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더구나 오천이 아직 전력을 다해 공격하지 않아 이대로라면 목진과 구유위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정작 목진은 전혀 개의치 않고 옷깃을 휘날리며 부단히 방어벽을 강화하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동정 어린 눈빛으로 구유위를 바라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점점 변해갔다. 상대방의 난폭한 공격에도 구유위의 방어벽은 끄떡없었고 전혀 무너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럴 수가!”
대라천역의 강자들이 이내 감탄하며 말했다.
수라왕, 열산왕 등도 눈가를 파르르 떨며 구유위의 위쪽에 앉아있는 젊은이를 바라봤다.
“점차 흥미로워지는군.”
목진이 천천히 고개를 들더니 안색이 조금 어두워진 오천을 보며 피식 웃었다.
“장난은 그만해.”
소년의 말에 오천은 저도 모르게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너 역시 믿는 구석이 있어서 혈응위와의 대결에 나선다고 했구나. 너를 간과한 건 내 실수야.”
“네가 이 정도밖에 안 된다면 혈응위의 실력이 아쉽네.”
“넌 정말 사람을 약 올리는 재주가 있네. 일전의 공격은 떠보려고 한 것일 뿐이야.”
오천은 간신히 화를 가라앉히며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봤다.
“그런데 네가 그렇게까지 혈응위의 실력을 확인하고 싶어 하니 제대로 보여주는 수밖에!”
오천은 말을 마치자마자 눈이 빨갛게 상기되었고 천천히 두 손을 들자 아래쪽 혈응위가 미친 듯이 포효하였다.
크으으으!
그러다 오천이 두 손으로 천천히 결인하자 웅장한 선홍빛 전의에서 난폭한 포효가 들렸는데 이는 전보다 훨씬 강력했다.
오천은 구유위가 생각했던 것보다 상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곧바로 살수를 두기로 마음먹었다.
“혈응 전인(戰印), 진압팔황(鎮壓八荒)!”
오천이 갑자기 인법을 바꾸며 두 손을 들자 눈가의 붉은색이 한껏 짙어졌고 뒤쪽의 선홍빛 전의가 휘몰아치더니 산처럼 커다란 선홍색 광인으로 변했다.
잇따라 그 구역의 영력이 비등하며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위압감을 형성했는데 실력이 3급 지존에 이른 강자도 이러한 위압감에 흠칫 놀랄 정도였다.
그 외, 혈응위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강자들도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그들은 혈응 전의에 못 이겨 잿더미가 된 상대를 수도 없이 봐왔다.
한편, 목진도 상대방의 공격에 이내 정색하였다. 오천은 얄밉긴 해도 실력을 제법 갖춰 혈응위의 역량을 잘 끌어올렸다.
목진만 아니었으면 구유위는 진작 그들의 공격에 중상을 입었을 것이다.
“네가 무슨 수로 내 공격을 받나 보자!”
말을 마친 오천이 사악하게 웃으며 손을 휘두르자 산처럼 거대한 선홍빛 광인이 허공을 가르며 눈 깜짝할 사이에 구유위의 위쪽에 나타나 미친 듯이 내려앉았다.
쿠쿵!
전투장이 와르르 무너지며 주위에 커다란 균열이 일었다.
쿠쿵.
신속하게 퍼지는 균열에 대지는 계속 무너졌고 목진은 혈응위의 엄청난 위압감에 옷이 몸에 찰싹 달라붙었는데 아래쪽에 끄떡없이 서 있는 구유위를 보고는 이내 미소를 지었다.
“구유위여, 여태껏 참아왔던 모든 울분을 이곳에서 방출하라. 우리 구유위의 명성이 곧 대라천역에 널리 퍼질 것이다.”
구유위는 드디어 마음껏 분노를 방출할 수 있다는 목진의 말에 금세 의지가 활활 타올랐다.
쿵!
잇따라 구유위에서 굵직한 검은빛 기둥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는데 그 속에 깃든 엄청난 전의에 다들 화들짝 놀랐다.
구유위가 선보인 전의가 이렇게까지 강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때 목진이 천천히 두 손을 펼쳐 전의에 몸을 맡기고 한 손으로 결인하자 ‘위잉!’ 하는 소리가 들리며 빛의 기둥들이 한데 모인 공간이 찢어졌다. 그리고 그 속에서 방대한 날개를 형성하며 주위에 돌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구유익(九幽翼), 참창궁(斬蒼穹)!”
잇따라 목진이 손가락을 굽혀 앞쪽 공간을 휘익 긋자 ‘끼익’ 하는 맑은 울음소리와 함께 검은색 날개가 천검처럼 허공에 검은색 궤적을 그리며 내려앉아 선홍색 광인을 가볍게 때렸는데 그 구역에 순간 정적이 흘렀다.
슉!
검은색 날개는 하늘을 가르며 혈응 전인과 힘차게 부딪쳤다.
두 갈래의 웅장한 전의는 서로를 제압하려고 애를 썼고 이에 주위의 공간에 파문이 일었다.
이에 오천의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혈응위의 수가 구유위의 다섯 배나 되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둘 거라 예상했는데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버티나 보자!”
말을 마친 오천이 다시 인법을 바꾸자 뒤쪽의 선홍빛 전의가 부단히 혈응 전인을 향해 몰려갔다.
그는 이대로만 버티면 목진 등은 분명 패배할 거라 확신했다.
한편, 목진은 혈응 전인의 폭등한 힘에 흠칫하더니 깊게 숨을 들이켜며 손을 휘둘렀다.
슉!
이에 앞쪽 공간이 찢어지더니 귀청을 찢는 듯한 소리와 함께 검은색 날개가 혈응 전인에 커다란 구멍을 냈다.
“이럴 수가!”
구경꾼들은 혈응위의 웅장한 전의가 깃든 전인이 이렇게까지 쉽게 파손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오천도 이러한 광경에 너무 놀라 멍하니 서 있었는데 목진은 이때를 노려 바로 공격을 개시했다.
목진의 잇따른 공격에 실력자들은 구유 전의가 갑자기 활발해진 것을 느꼈다.
한 줄기 어두운 빛이 하늘을 가르며 내리꽂히자 혈응 전인의 균열은 점점 커지다가 결국 반으로 갈라졌다.
쿵!
혈응 전인은 결국 허공에서 폭발해 수많은 광반이 되어 천천히 사라졌고 오천과 혈응위는 순간 넋을 잃었다.
반면, 구경꾼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목진을 바라봤다. 소년이 도대체 무슨 수로 이를 해냈단 말인가?
분명 혈응위의 전의가 훨씬 그윽하고 강한데도 말이다.
“어떻게 된 거죠?”
서청도 흠칫 놀란 채 앞쪽에 서 있는 수라왕한테 물었다. 그의 예상대로라면 구유 전인이 부서져야 마땅했다.
이에 수라왕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목진은 역시 보통 사람이 아니야. 그런데 넌 무언가 발견하지 못했어?”
“구유위의 전의는 목진의 손에서 더 강해진 것 같아요.”
서청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답했다.
“너라면 이 정도로 해낼 수 있을 것 같아?”
잇따른 수라왕의 질문에 서청은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만약 그가 구유위의 통령이었다면 오늘, 절대 오천이 거느린 혈응위를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목진은 이미 전의에 대한 이해와 장악하는 힘이 너희를 훨씬 뛰어넘었어.”
“그럴 리가요!”
서청은 수라왕의 말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대라천역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소년은 전의라곤 구유위한테서 처음 느꼈을 텐데 무슨 수로 다년간 전의를 다스린 이들을 뛰어넘는단 말인가?
“그래서 내가 목진이 보통이 아니라는 거야.”
“그럼 이번 대결은 목진이 이기겠네요?”
수라왕이 무덤덤하게 내뱉은 말에 서청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직 단정 짓기는 일러. 목진이 전의를 너희보다 더 잘 장악하긴 했지만 혈응위라고 호락호락할까? 오천도 당하고만 있을 녀석이 아니야. 목숨을 걸고 싸우기라도 하면 아무리 목진이라도 버거울 거야. 구유위는 수적으로 많이 뒤처지잖아?”
이에 서청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고개를 들어 복잡미묘한 눈빛으로 허공에 떠 있는 늘씬한 소년을 바라봤다.
한편, 혈응왕은 구유위와 혈응위가 대치 상태에 처했을 때부터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혈응전인이 부서지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흥!”
잇따라 혈응왕의 뇌명과 같은 기합에 오천은 바로 정신을 차렸고 안색이 창백해졌다.
“사람이 많다고 우승할 수 있는 건 아닌가 봐?”
목진은 안색이 창백해진 오천을 보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 목진은 오천을 비꼴 기회를 그냥 놓쳐버릴 사람이 아니었다.
“혈응위가 이렇게 무너질 것 같아?”
오천은 한껏 일그러진 표정으로 목진을 쏘아보며 말했다.
“너무 우쭐거리지 마!”
말을 마친 오천이 수중의 혈창을 내리찍자 선홍빛 전의가 목진한테 홍수처럼 미친 듯이 몰려갔다.
한번 실패를 겪은 오천은 더는 전처럼 태연하게 응전할 수 없었다.
그런데 목진은 여전히 침착하게 서서 옷깃을 휘날렸고, 구유 전의를 소환해 상대방의 공격에 맞섰다.
쿵! 쿵!
두 갈래의 전의가 부딪치자 뇌명과 함께 광풍이 일었는데 상당히 무서웠다.
그러나 오천의 공격에 구유 전의는 끄떡없었고 목진과 구유위한테 아무런 피해도 가지 않았다.
오천은 역시 목진보다 전의에 대한 장악력이 뒤처졌다.
오천도 그 점을 발견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현실은 잔혹했다. 이 같은 공격을 계속하면 시간만 끌뿐, 목진과 구유위를 쓰러뜨릴 수는 없을 것이다.
“빌어먹을!”
오천은 손쉽게 승리할 줄 알았던 대결이 마음처럼 되지 않아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이를 악물고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봤다. 그는 무슨 대가를 치르든 반드시 오늘의 대결에서 승리를 거두리라 결심했다. 안 그러면 혈응왕께서 분명 노발대발할 것이다.
“이건 네가 자처한 일이야!”
오천은 공격을 거두고 목진을 힐끗 보더니 아래쪽에 있는 혈응위한테 눈길을 돌렸다.
“전의를 혈제하라!”
이에 혈응위는 멈칫하더니 결국 이를 악물고 입에서 혈검을 내뿜었다.
슉! 슉!
잇따라 혈검들이 웅장한 전의에 스며들자 전의의 색은 더욱 짙어져 멀리서 보면 꼭 혈하가 흐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정작 혈응위의 안색은 조금 창백해졌다.
쿵!
오천 뒤쪽에서 요동치는 진득한 혈해에 하늘은 곧 무너질 듯 어두워졌다.
“혈마쇄신창(血魔碎神槍)!”
오천이 결인하고 손을 번쩍 들자 혈해는 하늘 높이 솟아오르다가 한데 모여 혈우가 되어 떨어졌다. 곧 천 장 정도 되는 혈마 신창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며 주위에 소름 끼칠 정도로 음산한 바람이 불었다.
이에 구경꾼들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오천은 무려 혈응위의 최강 살수를 선보였는데, 이는 3급 지존마저도 순식간에 죽일 수 있을 정도였다.
당빙 등도 얼굴이 조금 창백해졌다. 다들 오천이 이렇게까지 물불 안 가리고 싸울 줄 몰랐다.
“혈응전 사람들은 참 독한 것 같아.”
구유가 차가운 눈빛으로 혈응왕을 보며 말했다.
“혈응전은 아무도 봐주지 않지.”
혈응왕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구유는 조용히 구유위 위쪽에 있는 늘씬한 소년한테 눈길을 돌렸다.
구유는 상황이 뒤틀어지면 규칙을 어기든 말든 바로 나서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