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주재-447화 (446/1,000)

447화. 지천단

“이번 일에 난 나서지 않을 것이다. 천현전이 뒤를 봐주지 않고서야 백전역 따위가 감히 대라천역을 건드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역주의 말에 다들 흠칫하였다.

“백전역이 점차 기세등등해진 데는 다 이유가 있었군요.”

천취황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천현전이라…….”

천현전이란 말에 목진은 멈칫하였다. 상지대륙에서 목진은 천현전의 어린 주인한테서 허공대일과와 구룡구상술을 빼앗았었다.

“하여 이번에 내가 나서면 유천도가 나설 수도 있으니 천현전이 끼어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별수가 없구나.”

역주가 무덤덤하게 내뱉은 말에 3황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천도는 실력이 엄청나 그가 나서면 일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질 것이다.

“걱정하지 마세요, 역주님. 백전역은 우리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러길 바란다.”

영동황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역주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대전을 쓰윽 훑었는데 다들 감히 그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바로 고개를 숙였다.

한편, 목진은 구유의 뒤에 서 있었는데도 그녀를 뚫고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에 소름이 쫙 끼쳐 바로 고개를 숙였다.

“이번 토벌전에서 획득한 땅은 획득자한테 줄 것이고 나는 따로 큰 상을 내릴 것이다.”

이에 대전은 순식간에 떠들썩해졌고 사람들은 의지가 활활 타올랐다. 여태껏 토벌전에서 얻은 땅은 대부분 대라천역이 다스렸는데 이번에는 전부 하사하다니. 이 얼마나 큰 유혹이란 말인가?

“또한, 젊은이 중 전공이 가장 뛰어난 자는 대라천역을 대표해 용봉천에 들어가게 할 것이다.”

잇따라 이어진 역주의 말에 젊은이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특히 서청, 주악, 오천 등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용봉천이 뭐야?”

목진이 어리둥절하여 묻자 구유가 작은 목소리로 설명해주었다.

“용봉천은 북계에 있는 신비한 곳으로 원고 시기에 용족과 봉황족의 엄청난 존재가 혈전을 벌이다가 함께 목숨을 거둔 곳이야. 용족과 봉황족의 피와 긴 세월의 누적으로 신비로운 힘이 생겼는데 그곳에 들어간 사람은 용신관정이나 봉신관정을 받고 불사불멸의 경지에 이를 수 있게 돼.”

“죽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니!”

목진은 화들짝 놀랐다. 용봉관정만으로 정녕 그 엄청난 것을 이룰 수 있단 말인가?

“용족과 봉황족도 해낼 수 없는 걸 우리가 무슨 수로 해낼까? 불사불멸이란 과장된 말이지만 용봉관정을 받은 자는 용족과 봉황족만큼 오래 살 수 있어 수련에 엄청 이로운 것만은 사실이야.”

구유가 생긋 웃으며 한 말에 목진은 혀를 끌끌 찼다.

용족과 봉황족은 오래 사는 것으로 유명한 종족으로 수명이 인간의 몇 배는 되는데 인간이 그 생명력을 갖게 된다면 사람의 형태를 갖춘 죽지 않는 신수나 다름없었다.

“대신 용봉천을 여는 조건이 엄청 까다로워. 실력이 지지존에 이른 강자들이 동시에 나서야 가능한 일로 북계에서는 젊은이 중 최정예만 들어갈 수 있게 정했어. 혈투를 벌여야만 비로소 기회가 주어질 거야.”

목진은 그제야 서청 등이 왜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 깨달았다. 용봉천에 들어간다는 것은 북계의 젊은이 중 최정예임을 의미했고 이것만으로도 상당히 영예로운 일이었다.

그때 역주가 갑자기 화두를 돌렸다.

“혈응위와 구유위가 대결을 벌였다고 들었는데 누가 이겼지?”

이에 다들 흠칫하더니 멍하니 서 있는 목진과 안색이 어두워진 오천을 번갈아 바라봤다. 사람들은 대라천역의 역주께서 이런 작은 일에 관심을 기울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하여 혈응왕도 안색이 한껏 어두워졌다.

“허허, 역주님. 구유위가 이겼습니다.”

천취황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래?”

눈부신 빛을 뒤집어쓴 역주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구유왕이 대라천역에 엄청난 신인을 데려왔군. 이번 대결은 쌍방에서 무언가를 걸고 한 내기였다고 들었다. 대결에서 졌으니 혈응왕은 약속했던 바를 제 때에 내주거라.”

역주의 말에 혈응왕은 입가를 파르르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주께서 이리 말씀하셨으니 더는 발뺌할 수가 없었다.

잇따라 역주는 손을 휙 젓더니 사람들 눈앞에서 사라졌고, 대전을 감쌌던 무서운 위압감도 함께 사라졌다.

사람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지존이 형성한 위압감은 상당히 무서웠다.

그러다 다들 구유 뒤에 서 있는 소년한테 눈길을 돌렸다. 목진이 역주에게 엄청난 신인이란 평가를 받았으니 앞으로 그를 건드릴 사람은 없을 것이다.

수황도 조금 놀란 듯한 표정으로 목진을 바라봤다. 그는 역주를 가장 오래 따른 사람으로서 어린 통령을 이렇게 높이 평가하는 것은 처음 보았다.

“목진이란 소년은 참 재미있는 친구군…….”

왕들의 회의는 끝났지만 대라천역은 순식간에 들끓었다. 여태껏 다른 세력의 만행을 참아왔던 이들은 드디어 마음껏 복수할 수 있게 되었다.

녀석들은 잠에서 깨어난 사자가 얼마나 무서운지 제대로 느낄 것이다.

그 후, 대라천에서 내린 명령에 수많은 세력이 토벌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엄청난 싸움이 예상되었다.

* * *

구유궁은 환호성이 흘러넘쳤고 다들 화색이 돌았다. 그들은 오랜 시간 맺혔던 한을 시원히 풀어 아주 통쾌했다.

이제 대라천역에서 구유궁을 멸시할 사람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구유전에서는 사람들이 호탕하게 웃으며 축배를 들었는데 정작 목진은 대전의 지붕에 누워 하늘 높이 걸린 달을 바라보며 그녀를 떠올렸다.

“낙리야…….”

어느덧 낙리와 헤어진 지 반년이나 되었는데 소녀가 낙신족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무척 궁금했다. 어린 소녀가 낙신족을 이끌기 위해 짊어질 짐은 상당히 무거울 것이다. 목진은 그녀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그는 아직 소녀를 도와줄 처지가 못 되어 감히 나설 수도 없었다. 지금 나서면 오히려 낙리한테 짐이 될 것이다. 비록 낙리는 전혀 개의치 않겠지만 목진은 절대 그런 일을 용납할 수 없었다.

“낙리야, 나도 더 강해지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언젠가 절세의 강자가 되어 너를 찾아갈게. 그때가 되면 아무도 감히 너를 괴롭히지 못할 거야.”

절세의 강자가 되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대부분은 소년이 절대 이를 이루지 못할 거라 비웃곤 했는데 낙리는 늘 조건 없이 그를 믿어주었다.

“또 정인을 그리워하는 거야?”

그때 청량한 목소리가 들려 목진이 고개를 돌려보니 구유가 머리를 드리운 채 처마에 앉아있었다.

그러다 목진이 머쓱하게 웃자 구유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이번엔 고마웠어.”

이에 목진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네가 구유궁 전체를 걸었는데 나라고 대충할 수 있을까?”

“걱정하지 마. 내가 널 북창령원에서 데리고 나왔으니까 끝까지 책임질게. 네가 언젠가 천라대륙에서 이름을 날리게 되면 그땐 낙신족에 가도 될 거야. 그리고 최선을 다해 내가 너를 도와줄게. 이건 너한테 하는 약속이야.”

구유가 생긋 웃으며 다가와 목진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이자 소년은 감동했다. 돌이켜보면 구유는 늘 목진이 가장 위험한 순간에 도움을 주곤 했다. 그녀가 비록 불순한 목적으로 목진의 몸에 들어오긴 했지만, 우연히 혈맥을 연결한 뒤로는 지금은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고마워.”

목진의 진심 어린 말에 구유는 손을 휙 저으며 웃었다.

“감동한 거면 얼른 집어치워. 우리는 혈맥을 연결한 사이라 네가 죽으면 나도 함께 죽어야 하잖아? 난 그렇게 허무하게 죽고 싶지 않아서 널 도와주는 것뿐이야.”

이에 목진은 좋은 분위기를 망쳤단 생각에 구유를 한껏 노려봤다.

“구유궁도 곧 백전역에 갈 건데 그곳엔 별의별 사람들이 모여 상대하기 쉽지 않을 거야. 암튼 넌 반드시 이번 토벌전에서 두각을 나타내야 해.”

“혹시 용봉천 때문에 그래?”

목진이 묻는 말에 구유는 어느새 진지해져 고개를 끄덕였다.

“용봉천은 네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좋은 곳이야. 족내 어르신들한테서 들었는데 네가 용신관정과 봉황신관정 중 어떤 것을 받든 앞으로의 수련에 상당히 도움이 될 거야. 이건 대라금지 따위에 비길 수 있는 것이 아니야.

또 젊은이 중 최정예만 용봉천에 들어갈 수 있는데 아직 이곳에서 경험이 부족한 네가 이번 기회를 노리지 않으면 앞으로는 훨씬 어려워질 거야.”

“너도 용봉천에 들어갈 자격이 있지 않아?”

목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구유를 바라보았다.

구유의 본체는 구유명작으로 구유작의 나이로 따지만 막 성년이 되어 당연히 젊은이에 속했다.

“난 신수라 용봉천에 들어가도 큰 도움이 안 돼.”

구유가 그에게 양보하려 한다는 걸 눈치챘지만 목진은 더는 뭐라 하지 않고 묵묵히 고개만 끄덕였다.

“최선을 다할게.”

목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구유는 투명한 옥병을 꺼냈는데 그 속에 순수한 파동을 풍기는 녹색 단약이 들어있었다.

“이건 지천단인데 수련에 도움이 될 거야. 네가 얻은 전리품이기도 해.”

구유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나머지 네 알은 내가 알아서 나눌게. 많이 먹어봐야 너한테 좋을 건 없어.”

이에 목진이 옥병을 건네받고 지천단을 빤히 쳐다보며 히쭉 웃었다.

“혈응왕이 이렇게 빨리 내줄 줄 몰랐어.”

“역주님만 아니었으면 혈응왕은 분명 끌 수 있을 때까지 끌었을 거야.”

구유가 피식 웃으며 말하더니 괴상한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봤다.

“역주께서는 아랫사람의 싸움에 관여하지 않는데 이번에는 왜 먼저 여쭈신 건지 모르겠어. 우리가 운이 좋았던 걸까?”

대라천역의 역주한테 구유위와 혈응위의 대결은 애들의 소꿉장난과 같아 무시하는 것이 오히려 정상이었다.

“역주께서 나를 좋게 봐주신 건 아닐까?”

목진은 대라천역의 역주에 대해 잘 몰라 머리를 긁적이며 뻔뻔하게 말했다.

이에 구유는 소년을 노려보고는 손을 휙 저으며 대전으로 향했다.

목진은 흐뭇하게 웃으며 구유를 떠나보내고 수중의 옥병으로 다시 눈길을 돌렸다. 지천단만 있으면 그는 바로 2급 지존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지천단 한 알에 그렇게까지 좋아할 일이야? 못났어, 참.”

갑자기 들려온 앳된 목소리에 목진이 황급히 돌아서자 검은색 치마를 입은 만다라가 맨발로 목진한테 다가왔다.

“네가 내 처지가 돼 봐, 분명 나처럼 좋아했을 거야.”

목진은 입을 삐쭉 내밀며 말을 이어갔다.

“대라천역의 역주께서 수련을 마쳤으니 조심해. 그러다 발견되기라도 하면 큰일이야.”

대라천역의 역주는 실력이 지지존에 이른 엄청난 강자라 아무리 실력을 가늠할 수 없는 만다라라도 들키지 않을 거란 보장은 없었다.

이에 만다라는 목진을 힐끗 보더니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내가 원치 않으면 아무도 날 알아채지 못할 거야.”

“그래, 너 참 대단하다.”

목진은 소녀의 기고만장한 말에 눈을 흘기며 떠나려 했다.

“잠시만.”

만다라가 갑자기 목진을 불러 세웠다.

“왜 그래?”

목진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바람에 날려갈 것 같은 가녀린 소녀를 바라보았다.

“사흘 뒤, 내 체내의 저주가 폭동을 일으킬 예정인데 그때, 네 체내의 신비로운 종이의 힘이 필요해.”

잠시 머뭇거리다가 내뱉은 만다라의 말에 목진은 흠칫 놀랐다.

“그렇게나 빨리?”

“지금부터 난 몸 상태를 최고로 끌어올려서 저주를 최대한 빨리 진압해야 해.”

만다라의 말에 목진은 잠시 고민하고는 그녀의 청을 들어주기로 했다. 그는 소녀의 실력이 엄청난데 왜 몸 상태를 최고로 끌어올려야 하는지 궁금했다. 설마 앞으로 위험한 상황이 닥칠 거란 말인가?

“내가 저주를 제압하면 대일불멸신의 수련법을 가르쳐줄게. 지금의 넌 전혀 대일불멸신의 진정한 힘을 끌어올릴 줄 몰라.”

만다라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목진은 멈칫하더니 이내 화색이 되었다. 그건 소년한테 엄청난 유혹이었다. 대일불멸신이 강하긴 하지만 너무 심오해서 목진도 겨우 수련하는데 성공했을 뿐, 그 힘을 전부 끌어올리는 방법은 몰랐다.

“넌 어떻게 대일불멸신의 수련법을 아는 거야?”

목진의 호기심 넘치는 질문에 만다라는 자기 말만 남기고 눈앞에서 사라졌다.

“사흘 뒤에 다시 만나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