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8화. 2급 지존
그 후로 며칠간 대라천역은 분위기가 점점 삭막해졌다. 왕들은 휘하에 사람들을 모으기 바빴고 백전역에 광한 정보들도 부단히 대라천에 전해졌다. 대라천역이 드디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덩달아 구유궁도 유난히 바쁘게 돌아갔다. 혈응전에서 건네받은 도성 백 군데로 바로 부유해질 수는 없었지만 구차했던 예전보다는 훨씬 나았다. 더구나 백전역의 토벌전에서 기회만 잘 잡으면 구유궁은 제대로 번창해질 수 있을 것이다.
구유궁 전체가 바쁠 때, 정작 목진은 2급 지존에 이르기 위해 수련에 몰두하고 있었다. 어차피 구유궁 일은 당빙이 책임져 그가 할 일은 딱히 없었다.
구유도 당빙처럼은 못했다. 하여 목진은 구유궁 수련실에 앉아 마음을 가다듬고 투명한 옥병을 꺼냈다. 그 속에 들어있는 녹색 단약에서 짙은 향기가 뿜어져 나왔다.
목진은 지천단을 한참 바라보다가 옷깃을 휘날렸다. 그러자 옷깃에서 눈부신 홍류가 날아올랐는데 이는 전부 지존영액으로 웅장한 영력 파동을 발산해 수련실의 공기가 순간 진득해졌다.
지존경의 단계를 돌파하는 일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수련자들이 다년간 수련해도 더 높은 단계에 이르지 못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아무리 목진이라도 대량의 지존영액을 사용해야 지천단의 효과를 최대치로 끌어올려 진정한 돌파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또 지존영액을 2천 방울 가까이 사용하겠군…….”
목진은 왠지 마음이 아팠다. 그는 구유위의 수련에 도움을 주고자 수중에 있는 지존영액을 대부분 당빙한테 넘겨 겨우 5천 방울밖에 남지 않았다. 그건 그가 취영완에 들어있는 지존영액을 전부 끌어모은 결과물이었다.
목진은 지존경에 들어서고 나서야 지존영액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지존영액은 끼니만큼 중요한 존재라 지존급 강자들이 일부 세력에 몸을 담고 이를 얻으려 하는 것이었다.
“2급 지존에 이르는 데에도 이렇게 많은 양의 지존영액이 필요한데 앞으로는 또 얼마나 더 필요할까?”
목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대량의 지존영액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번에는 지존영액이 충분하지 않아 경지를 돌파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깊게 숨을 들이켜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지천단을 꺼냈다. 그러자 순식간에 수련실이 단약의 향기로 가득 찼다.
잇따라 목진이 입을 쩍 벌리자 지천단은 한 줄기 빛이 되어 그의 입으로 들어갔고 두 손을 모아 빠르게 결인하자 뒤쪽 공간이 일그러지며 웅장한 지존해가 나타났다. 그는 지극히 방대하고 순수한 영력이 체내에서 휘몰아치는 것이 느껴졌다.
목진은 눈을 감고 곧바로 수련 상태에 들어섰다. 그는 최대한 빨리 2급 지존에 이르러야 했다.
* * *
눈 깜짝할 사이에 사흘이 지났다. 수련실은 여전히 그윽하고 진득한 영무로 가득 차 있었고 목진마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시선이 닿지 않은 곳 어딘가에서 영력 파동이 계속 강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영무는 사흘째가 돼서야 점차 사라졌다. 목진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 지존영액을 전부 삼키자 주위를 맴돌던 놀라운 영력이 빠르게 사라지며 그가 천천히 눈을 떴다.
쿵!
순간, 눈동자에 벼락처럼 눈부신 빛이 스쳐 가더니 무서운 영력 파문이 일었다.
퍽! 퍽!
공기가 폭발해 형성한 충격파가 부단히 수련실을 공격했는데 건물에서 그윽한 빛이 발하더니 충격파를 전부 막아냈다.
1각 정도가 지나서야 목진의 눈은 정상으로 돌아왔고 놀라운 영력 파동도 다시 사그라들었지만 피부가 발하는 눈부신 빛은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이는 체내의 영력이 너무 그윽한데 목진이 아직 이를 다루는 법을 잘 몰라 생긴 현상이었다.
목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지존해 속의 더욱 웅장한 영력을 느끼며 흐뭇하게 웃었다. 지존경의 등급 차이는 역시 엄청났다. 현재, 그의 지존해에 깃든 영력은 돌파 전에 비하면 몇 배는 더 그윽해졌다.
지금의 그는 4대 통령 중 으뜸인 서청도 거뜬히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에 곧 있을 토벌전에서의 승산이 더욱 커졌다.
잠시 후, 목진은 체내의 웅장한 영력을 완벽히 가라앉히고 수련실에서 나왔다. 그러자 밖을 지키고 있던 구유위가 바로 인사를 올렸다.
“준비는 어떻게 돼가?”
목진이 손을 휘익 저으며 한 질문에 무리 중 한 명이 공손하게 답했다.
“준비는 마쳤으니 언제든지 떠날 수 있습니다.”
이에 목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빙 덕분에 목진은 구유궁 사무에 신경 쓸 필요가 전혀 없었다. 목진이 구유위를 돌려보내고 고개를 들어보니 멀지 않은 곳에 어린 소녀가 귀신처럼 나타나 황금색을 띤 눈으로 목진을 지켜보고 있었다.
만다라는 바로 목진한테 다가와 그를 쓰윽 훑었다.
“2급 지존경에 이르렀구나. 제법 빠른걸?”
“지천단과 대량의 지존영액의 도움이 있는데도 실패하면 안 되지.”
목진이 히쭉 웃으며 답했다.
“그럼 이제 나와 함께 가자.”
만다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앞장서자 목진은 잠시 고민하더니 뒤를 따랐다.
이렇게 두 사람은 대라천의 깊숙한 곳으로 향했는데 망설임 없이 전진하는 소녀의 모습에 목진은 왠지 두려워졌다.
대라천은 깊게 들어갈수록 수비가 강해지고 대라천역의 역주께서 거느리는 대라천군이 직접 지키고 있어 섣불리 뛰어들었다가는 큰코다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다행히 목진이 걱정할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허공에 순찰 부대가 계속 지나갔지만, 만다라와 함께 한 목진은 무인지경을 건너듯 순조로웠다.
목진은 다시 한번 만다라의 실력에 감탄하였다. 이 정도 실력이라면 대라천역에서 분명 손에 꼽힐 정도의 강자일 것이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커다란 검은색 산맥 앞에 멈춰 섰는데 만다라가 손을 가볍게 휘두르자 산봉우리에 거대한 검은색 광진이 나타났다.
쿵!
잇따라 산맥에 커다란 균열이 일자 만다라는 바로 뛰어들었고 목진도 얼른 그 뒤를 따랐다.
균열에 뛰어든 목진은 눈앞의 광경에 화들짝 놀랐다. 산의 내부는 텅 비었고 산의 벽에 새겨진 오래된 검은빛 무늬는 아주 신비로워 보였다.
목진은 검은빛 무늬를 한참 지켜보다가 깜짝 놀랐다. 그건 아주 큰 광진을 이뤘는데 상상 이상으로 복잡한 것이 절대 보통 영진이 아니었다.
“이거 다 네가 한 거야?”
목진은 눈앞의 광경이 쉽게 믿어지지 않았다. 만다라가 무슨 수로 대라천역의 수많은 강자들의 눈을 피해 이곳에서 산의 내부를 비우고 이렇게 복잡한 광진까지 만들었단 말인가? 대라천역의 역주는 정녕 모르는 건가? 아니면 설마 그가 만다라와 일종의 거래라도 한 건가?
그러나 만다라는 목진의 말을 무시하고 산의 중심 구역으로 다가갔다. 그곳에 있는 자그마한 못에 검은색을 띤 물이 솟아올랐는데 그 속에서 소름 끼칠 정도의 한기가 느껴졌다. 목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내가 뭘 어떻게 도와줘야 해?”
“내 명을 기다려. 그때 가서 넌 신비로운 종이만 소환해내면 돼.”
만다라가 앳된 목소리에는 절대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깃들었다.
이에 목진은 입을 삐쭉 내민 채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금세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소녀는 목진이 앞에 있는데도 거리낌 없이 옷을 벗기 시작한 것이다.
“눈이 사라져도 좋다면 계속 봐!”
소녀의 말에 목진은 순간 소름이 끼쳤다.
“누가 예고도 없이 옷을 벗으래? 난 네 몸매에 아무 관심도 없어.”
퍽!
목진은 말을 마치자마자 엄청난 힘에 튕겨 나갔는데 간신히 몸을 추스르고 씩씩거리며 고개를 들어오니 소녀는 이미 물속에 뛰어든 후였다.
첨벙!
만다라가 물에 뛰어들자 솟아오르던 검은색 물의 움직임이 더 난폭해졌다.
목진은 눈 앞에 펼쳐진 기이한 광경에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만다라의 가녀린 몸에 검은색 가시가 돋아나더니 부단히 그녀를 옥죄며 탐욕스럽게 정혈을 흡수하고 있었다.
또한, 만다라는 물속에 가만히 앉아 미간을 찌푸렸는데 엄청난 고통을 견디고 있는 것 같아 괜히 마음이 아팠다. 목진한테 죽기보다 못한 고통도 거뜬히 참아내는 소녀가 미간을 찌푸릴 정도라면 그건 상상도 못 할 엄청날 고통일 게 분명했다.
그러다 눈 깜짝할 사이에 검은 가시는 소녀의 몸의 절반 정도를 차지했다.
“이것이 바로 만다라 체내의 저주란 말인가?”
목진은 도대체 누가 이렇게 실력이 엄청난 만다라한테 이런 무서운 저주를 심었는지 궁금했다.
한편, 검은색 가시 때문에 하얀 만다라의 피부는 점차 어두워졌지만 그녀의 황금빛 눈만은 빛을 잃지 않았다. 목진은 소녀가 최선을 다해 무언가를 억제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그때, 만다라의 장발이 휘날리더니 등에 흑광이 요동치며 거대한 가시가 갑자기 솟아올랐다.
스읍!
만다라는 검은색 가시가 요동칠 때마다 나지막하게 비명을 질렀고 입술을 깨물며 참으려 애썼는데 어느새 입가에는 피가 흘러내렸다.
그건 너무나도 무서운 광경이었다.
위잉!
검은색 가시가 돋아나자 오래된 빛의 무늬도 갑자기 눈부신 빛을 발하더니 부드러운 영력 빛줄기를 발사해 만다라의 등에 생긴 가시를 공격했다.
치칙!
순간, 안개가 일며 검은색 가시에서 비명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꼭 가시가 살아 숨 쉬는 것 같았다.
그러나 빛줄기들은 검은색 가시를 완전히 제압하지 못했고 녀석은 천천히 기어 나와 소녀의 생기를 앗아갔다. 그러다 검은색 가시가 완전히 돋아나면 만다라는 죽을 것만 같았다.
검은색 물도 격렬하게 끓어오르며 검은색 광선을 내뿜어 가시를 당겼는데 이는 기껏해야 가시의 움직임을 조금 늦출 수 있을 뿐이었다.
목진은 만다라의 몸에서 뽑히는 피가 묻은 검은색 가시를 보고 있노라니 너무 무서웠다.
그 엄청난 고통에도 만다라는 큰소리로 비명 한번 지르지 않은 채 이를 악물고 버텼다.
“목진아!”
그때 만다라가 땀범벅이 된 채 이를 악물고 소년을 불렀다.
이에 목진은 바로 고개를 끄덕이고 결인해 지존해에 숨겨뒀던 신비로운 종이를 소환했다. 신비로운 무늬에서 은은하게 발사되는 보랏빛에 소년은 괜히 마음이 편해졌다.
목진은 신비로운 종이와 만다라를 번갈아 보다가 이를 악물고 소녀한테 물건을 넘겼다. 만다라를 믿기로 했으니 더 이상의 고민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만다라는 어렵게 신비로운 종이를 건네받고 한 줄기 어두운 빛을 발사했는데 신비로운 종이는 암자색 빛을 발하며 거대한 만다라 꽃을 만들어 아래쪽에 있는 만다라를 감쌌다.
치칙!
잇따라 날뛰던 검은색 가시는 불안한 듯 파르르 떨기 시작했고 보랏빛에 닿은 부분은 바로 녹아내렸다.
검은색 가시가 돋아나는 속도가 느려지더니 점차 만다라의 몸속으로 돌아갔다.
쿵!
그런데 그때, 갑자기 흑광이 폭발하더니 검은색 가시가 공간을 가르며 신속하게 소녀를 공격했다. 그러나 만다라 꽃이 형성한 보호막은 끄떡없었고 오히려 보랏빛에 녹아내렸다.
목진은 드디어 안심한 듯 숨을 내뱉었다.
만다라 꽃 덕분에 만다라는 안색이 조금이나마 좋아졌고 찌푸리고 있던 인상도 어느새 펴졌다. 소녀는 겨우겨우 입가의 피를 닦았다. 그녀는 지금 무서운 고통 때문에 힘을 잃어 이토록 작은 동작도 해내기가 어려웠다.
허공에 떠 있는 만다라 꽃이 점차 기세등등해지자 검은색 가시는 하나, 둘씩 소녀의 몸으로 돌아갔고 만다라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긴장을 푼 탓에 엄청난 고통이 몰려와 저도 모르게 풀썩 주저앉아 식은땀을 흘렸다.
반 장 정도 제압되었던 검은색 가시는 이때다 싶어 갑자기 폭주해 소녀의 숨통을 겨눴는데 소녀의 실력으로도 피할 수 없을 정도라 순간 안색이 창백해졌다.
슉!
만다라는 검은색 가시의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고 이를 꽉 깨물었는데 가시는 갑자기 공격을 멈추고 목에 가벼운 상처를 내었다.
이에 만다라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목진이 가시를 손으로 꽉 잡고 있었다.
소년은 예리하기 그지없는 가시에 손이 뚫려 피를 철철 흘렸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엄청난 고통에 못 이겨 바로 주저앉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가시를 조금씩 잡아당겼다.
이에 만다라가 이를 악물고 손을 휘두르자 허공에 떠 있던 만다라 꽃에서 눈부신 보랏빛을 발하더니 검은색 가시는 더는 참지 못하고 목진의 손에서 벗어나 소녀의 몸으로 돌아갔다.
풀썩.
목진은 몸이 나른해져 물속에 빠졌고 한참 지나서야 온몸을 파르르 떨며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