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9화. 구양의 힘(九陽之力)
“죽고 싶어 환장했어?”
목진이 무사한 것을 확인한 만다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가 금세 정색하며 소리쳤다.
“난 널 도와주고 싶었을 뿐이야.”
목진은 소녀를 도우려고 나섰다가 되레 비난을 받아 조금 언짢아졌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함부로 뛰어들지 마. 네가 신비로운 종이의 주인만 아니었으면 이 저주가 너한테 옮겨갔을 거야!”
만다라의 말에 목진은 바로 손바닥을 확인했는데 이글거리는 검은색 흔적이 남아있는 것이 보였다. 다행히 그의 체내에서 보랏빛이 발하며 조금씩 흔적을 지웠다. 그건 신비로운 종이에서 비롯된 힘이었다.
만다라 체내에 있는 저주의 힘을 몸소 느낀 목진은 저주가 일단 옮기라도 하면 신비로운 종이가 없이는 죽기보다 더한 고통을 시도 때도 없이 느껴야 한다는 것을 잘 알았다.
“이제 괜찮아진 거야?”
“잠시일 뿐이야.”
목진이 던진 질문에 만다라는 간단히 답하고는 체내의 힘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다시 미간을 찌푸렸다.
이에 목진은 신비로운 종이를 거두고 입을 삐쭉 내민 채 검은색 외투로 소녀의 몸을 가리고는 그녀를 차가운 물 속에서 건져냈다.
소녀는 조용히 목진한테 안겼고 목진은 물에서 나와 소녀를 커다란 암석 위에 내려놓았다.
잠시 후, 체력이 조금 회복된 소녀는 옆에 조용히 앉아있는 목진한테 고개를 돌렸다.
“고마워. 보상으로 대일불멸신의 밀술을 알려줄게.”
이에 목진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만다라는 텅 빈 산속에서 널찍한 검은색 외투로 몸을 감싼 채 두 눈이 반짝이는 소년을 힐끗 보며 말을 이어갔다.
“대일불멸신은 만고불후신을 수련하는 기초로 99등급 지존법신의 순위권에는 없지만 굳이 따지자면 30위권에 드는 엄청난 법신이야.”
“30위 권이라고? 대일불멸신이 그렇게까지 대단해?”
목진은 대일불멸신이 그렇게까지 대단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30위권에 든 지존법신은 원고 종족과 정예 세력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취급을 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대라천역에서도 그 정도 지존법신은 없었다.
“만고불후신은 이 세상에 얼마 남지 않은 원시 법신이라 그 기반인 대일불멸신도 엄청난 거야.”
만다라의 말에 목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원고의 재앙 끝에 현재, 이 세상에는 원시법신이 다섯 개밖에 남지 않았는데 만고불후신이 그중 하나로 일반 지존법신보다 훨씬 강했다.
“지금 넌 대일불멸신을 수련하는 데 성공하긴 했지만, 그 엄청난 힘을 완벽히 장악한 것은 아니야.”
만다라는 비웃듯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목진을 바라봤다.
이에 소년은 괜히 머쓱했다. 그는 대일불멸신을 수련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를 완벽히 장악하기란 어려웠고 신비로운 종이 역시 대일불멸신의 수련법만 가르쳐줬을 뿐, 나머지는 그가 스스로 터득해야 했다.
“그럼 만다라님이 가르쳐 주시죠.”
목진은 아주 공손하게 말했다.
“지존의 신통이 무엇인지 알지?”
이에 목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존의 신통이란 강대한 지존법신에만 존재하는 특수한 수단인데 목진은 아직 지존의 신통이 있는 법신을 보지 못했다.
“대일불멸신에 지존의 신통이 있단 말이야?”
“대일불멸신 같은 지존법신마저 지존의 신통이 없다면 어떤 법신에 신통이 있을까?”
만다라가 입을 삐쭉 내밀며 말했다.
“대일불멸신의 지존의 신통은 구양의 힘이라고 불러.”
“구양의 힘이라…….”
목진은 멈칫하더니 뭔가 떠올랐다.
“혹시 구양신지와 연관이 있어?”
이에 만다라는 흠칫 놀라며 목진을 바라봤다.
“정말 멍청한 건 아닌가 봐?”
소녀의 말에 목진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구양신지를 제련해 흡수하면 대일불멸신에 대일지정(大日之晶)이 9개 정도 생기는데 이를 전부 배양하는 데 성공하면 넌 구양의 힘만으로 하늘을 부술 수도 있어.”
“대일지정이라…….”
만다라의 말에 목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생각하다 곧바로 두 눈을 감고 대일불멸신을 소환했다. 영력의 흐름을 관찰한 그는 체내 곳곳에서 이상한 파동이 느껴졌다.
이는 영력에 숨어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발견하기 힘들었다.
잇따라 목진은 영광이 요동치는 아홉 군데를 자세히 살폈는데 둥근 황금색 결정체가 강력한 파동을 내뿜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이 바로 대일지정이란 말인가?”
목진은 다시 대일불멸신을 거두고 천천히 눈을 떴다.
“대일지정은 어떻게 배양해야 해?”
그는 대일지정에 깃든 놀라운 힘을 느꼈고 이를 배양하면 실력이 부쩍 늘 거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영력으로 배양하면 돼. 만약 영력이 미약하면 지존영액의 힘을 빌리면 되는데 대일지정 한 알을 배양하는 데 지존영액 6만 방울 정도면 충분할 거야.”
만다라가 대수롭지 않게 내뱉은 말에 목진은 숨이 턱 막혔다. 그가 허공대일과를 구매하는 데 지존영액이 만 방울 조금 넘게 들었는데 대일지정 한 알을 배양하는 데 6만 방울이나 필요하다니. 그건 그를 팔아넘겨도 절대 얻을 수 없는 양이었다.
“그렇게나 많이? 이건 첫 번째 대일지정을 배양하는 데 필요한 지존영액의 수일 뿐이고 뒤로 갈수록 더 많이 필요해.”
만다라가 어깨를 들썩이며 한 말에 목진은 안색이 한껏 어두워졌다. 구양의 힘은 수많은 지존영액으로 쌓아 올린 거나 다름없었다.
“불쌍한 척하기는…….”
만다라가 히쭉 웃으며 목진을 바라보더니 느긋하게 손을 저었다.
“네가 나를 도우려고 나섰으니 첫 번째 대일지정은 내가 도와줄게.”
그 말에 목진은 금세 화색이 되었다.
“당신은 역시 엄청난 영웅입니다.”
“넌 참 자존심도 없어.”
“자존심은 이럴 때 세우는 게 아니야.”
만다라가 흘겨보며 한 말에 목진은 히쭉 웃으며 답했다.
“대일불멸신을 다시 소환해.”
목진은 바로 금광을 발하는 대일불멸신을 소환했는데 내부가 눈부신 금광으로 가득 찼다.
잇따라 만다라가 손을 내밀자 어두운 영광이 손끝에 모이더니 신속하게 대일불멸신에 스며들어 미간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에 대일지정이 숨어있었다.
어두운 빛이 대일지정을 감쌌는데 목진은 대일지정에 웅장한 힘이 스며드는 것이 느껴졌다.
덩달아 대일지정은 점차 눈부신 빛을 발하며 무서운 힘이 요동쳤다.
그런데 대일지정의 배양이 목진이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았다.
“뭐지?”
목진은 눈을 번쩍 뜨고 손을 거두는 만다라를 바라봤다. 이에 소녀는 조금 지친 듯 머리를 만지더니 목진을 흘겨보며 말했다.
“닭이 알을 낳는 것처럼 쉬운 일인 줄 알아? 내가 한 줄기 영력을 남겨뒀으니 알아서 대일지정을 배양할 거야.”
목진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피식 웃었다.
“나선 김에 몇 알 더 배양해주지 그래?”
만다라가 대충 손을 휘두른 것뿐인데 지존영액 5만 방울에 버금가는 영력을 내뿜었다.
“그래도 되긴 한데 네 실력으로 대일지정을 세 알만 배양해도 대일불멸신은 그 무서운 힘을 견디지 못하고 폭발할 거야.”
만다라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손끝에 다시 영력을 모았다.
“자, 그럼 계속해볼까?”
이에 목진은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그냥 내가 알아서 할게.”
만다라는 그제야 손을 거뒀고 목진은 안심하고 옆에 앉았다.
“그런데 넌 왜 대일불멸신에 대해 이렇게까지 잘 아는 거야?”
목진은 언젠가 꼭 묻고 싶었다. 만다라는 생각 이상으로 대일불멸신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이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어야 정상인데 말이다.
“이 세상에서 너만 대일불멸신을 수련한 게 아니야.”
만다라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그 말에 목진은 흠칫했다.
“너도 대일불멸신을 수련했어?”
“아니.”
만다라는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어갔다.
“대일불멸신을 수련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어. 말이 나온 김에 한 가지만 귀띔해줄게. 앞으로 대일불멸신을 수련한 사람과 마주치면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왜?”
“넌 왜 대일불멸신을 수련한 거야?”
“그거야 당연히 만고불후신 때문이지.”
아무렇지 않게 대답한 목진은 순간 뭔가를 깨달았다. 대일불멸신을 수련한 사람은 그뿐만이 아니겠지만 만고불후신을 수련하는 데 성공한 사람은 오직 한 사람일 것이다. 그러니 대일불멸신의 수련자들은 서로 적이나 다름없었다.
“만고불후신은 이 세상에 얼마 남지 않은 원시 법신 중 하나로 이를 성공적으로 수련하려면 치열한 전쟁을 치러야 할 거야. 넌 그 첫 단계인 대일불멸신을 수련하는데 성공한 것뿐이고. 일단 성공하긴 했지만 앞으로는 모두 네 실력에 달렸어.”
만다라가 무덤덤하게 한 말에 목진의 안색이 점차 어두워졌다. 보아하니 만고불후신에 엄청난 비밀이 숨어있는 것 같았다.
“다른 원시 법신도 그래?”
“그럴 수도.”
만다라가 명확한 답은 주지 않자 소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앞으로 조심할게. 그런데 네 말을 들으니 만고불후신이 더 궁금해지는걸?”
이에 만다라는 조금 놀란 듯한 표정으로 목진을 바라봤다. 목진은 참 담대한 녀석이었다.
“나를 구하려고 나서줘서 주는 상일 뿐이니 고마워할 필요는 없어.”
만다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대라천역의 토벌전이 곧 시작될 테니 개죽음당하지 않도록 조심해. 그럼 대일불멸신을 수련한 것이 너무 아깝잖아?”
소녀의 말에 목진은 미소를 지으며 주먹을 꼭 쥐었다. 앞으로 대일불멸신을 수련하는 게 아무리 어려워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만고불후신도 반드시 수련할 것이다.
그건 그가 절세의 강자가 되기 위해 반드시 해내야 하는 일이었다.
* * *
며칠 사이, 대라천역의 분위기는 고조되어 엄청난 전의가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천라대륙처럼 분쟁이 많은 곳에서 전쟁이란 아주 흔한 일이었다. 이는 굳이 정의를 가르기 위해 하는 싸우는 게 아니라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당연히 일어나는 일이었다.
백전역에서도 전쟁을 여러 번 일으켜 대라천역의 도성을 약탈하곤 했는데 이번엔 대라천역이 나설 차례가 된 것뿐이었다.
한편, 구유궁의 고층들은 대전에 모여 석대에 놓인 거대한 영력 지도를 보며 열렬한 토론을 펼쳤다.
“대라천역의 왕급 세력들은 이미 나섰고 다른 부속 세력들도 힘을 모으고 있어.”
구유가 복잡한 지도를 바라보며 말했다.
“대라천역의 움직임이 이렇게까지 큰데 백전역에서 이미 눈치챘겠지?”
목진의 말에 구유는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상관없어. 이 정도 규모의 전쟁이라면 알아챈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어.”
이에 목진도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대라천역처럼 방대한 세력을 상대로 제아무리 철저하게 방어를 한다고 해도 절대적인 힘을 당해낼 사람은 없었다.
“그럼 구유궁은 어디를 공격해야 할까요?”
당빙의 질문에 구유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잠시 고민하더니 지도의 서남쪽을 가리켰다. 그곳에 번쩍이는 빨간 점 옆에 뇌마종(雷魔宗)이란 글이 적혀있었다.
“뇌마종이요?”
당빙 등은 화들짝 놀라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궁주님, 뇌마종은 백전역에서 명성이 자자하고 그 주인인 진천강(秦天罡)의 실력은 이미 5급 지존경에 이르렀는데 위험하지 않을까요?”
약탈을 위주로 한 토벌전은 보통 가장 쉬운 목표물부터 공격하기 마련인데 뇌마종은 그 범위에 들어있지 않았다.
“어느 정도 위험 부담이 있어야 성취감도 있지.”
구유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뇌마종은 몇 년 사이, 대라천역의 땅을 몇 번이나 약탈해서 지존영액을 얼마나 많이 빼앗았는지 몰라. 그러니 우리는 이번 기회에 빼앗긴 물건을 전부 돌려받을 거야. 그리고 진천강은 내가 직접 상대하겠어.”
구산 등은 구유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이렇게 자신만만한 데는 다 이유가 있을 테니 그들도 겁먹을 필요가 없었다. 더구나 이번엔 대라천역 전체가 움직이는 거라 뇌마종에서도 감히 정면으로 맞서려 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