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1화. 뇌마종
대라천역의 소각 부대는 뇌마종의 통치 구역에 들어서더니 눈앞의 광경에 흠칫 놀랐다. 그들이 지난 도성은 전부 수비를 하지 않고 있었다.
이상한 모습에 구유와 목진은 조금 놀라다가 금세 깨달았다. 뇌마종은 그들이 두려워 철수한 것이 아니라 힘을 한데 모아 엄청난 공격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었다.
“저들은 뇌마산(雷魔山) 아래에서 우리와 결전할 작정인가 봐.”
구유는 미소를 지으며 계속해서 앞으로 계속 전진했는데 뇌마종을 두려워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그렇게 반나절이 지나 그들은 드디어 속도를 늦췄다.
앞쪽 하늘은 어두운 빛을 띠었고 겹겹이 쌓인 산맥에는 식물이 전혀 자라지 않았다. 오직 뇌명만 들릴 뿐이었다.
또한, 지하에서 전해진 뇌명에 바닥은 계속 떨렸고 우뚝 솟아오른 검은색 산맥은 무척 견고해 보였다.
슉! 슉!
구유위가 멈춰서자 뒤쪽에서 전진하던 세력들도 어느새 다가와 그 구역을 포위하였다.
그들은 대라천역의 부속 세력들이었다.
한편, 목진은 구유위의 앞쪽에 서서 거대한 산맥들을 유심히 관찰했는데 난폭한 벼락으로 가득 찬 그곳에서 강력한 영력 파동이 느껴졌다.
하긴, 이곳은 뇌마종의 본부였으니 놀라울 게 없었다.
“지금까지 숨어다녔으면 모습을 드러낼 때도 되지 않았나?”
구유가 고개를 들고 외치자 우렁찬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뇌마산에 눈부신 뇌광이 번쩍였다.
“하하, 역시 구유왕은 여중 호걸이군.”
눈부신 뇌광 속에서 한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는데 여태껏 억제했던 영력 파동을 마음껏 선보여 천지가 순간 빛을 잃었다.
허공에 떠 있는 무리 중 절반 이상의 영력이 뇌마종과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들은 뇌마종 사람이 아닌 듯했다. 보아하니 뇌마종에서도 구유와 같은 생각을 한 것이다.
구유는 다른 부속 세력과 함께 뇌마종을 물리치려 했는데 상대방도 마찬가지로 구유궁을 없애기 위해 다른 세력을 끌어모은 것이다.
서남쪽 전장에 8할 정도의 전력이 모였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곧 엄청난 규모의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목진은 상대편 무리의 중심 구역에서 벼락의 힘이 가장 난폭한 곳을 발견했다. 무리의 맨 앞에 선 사내는 튼실한 몸에 팔짱을 끼고 서 있었는데 갑옷을 입은 그의 몸 표면에 회흑색 뇌광이 번쩍이며 엄청난 위압감을 형성했다.
뇌마종에서 이 정도 실력을 갖춘 사람은 종주 진천강 뿐이었다.
대라천역 사람들은 악마의 신처럼 강림한 진천강을 보더니 멈칫하였다. 그는 이미 유명한 인물로 그 실력이 구유를 뛰어넘었다.
“구유왕이 아름답다고 들었는데 오늘 보니 역시나 미인이군. 그런데 전쟁은 사내의 일이니 참여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걸세. 그러다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는가?”
진천은 호탕하게 웃으며 구유를 바라봤다.
이에 구유는 무덤덤하게 웃으며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갑자기 새의 맑은 웃음소리가 들리며 무서운 영력이 뒤쪽 하늘에 거대한 흑작을 만들었다. 그 엄청난 위력에 진천강이 형성했던 위압감은 금세 사라졌다.
“구유명작이라…….”
다들 구유가 구유작인 건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신수가 된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진천강도 구유명작을 보더니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구유는 4급 지존일 뿐이긴 하지만 신수라 아무리 5급 지존이라도 상대하기 버겁다. 신수의 강대한 생명력은 인간 따위가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구유왕, 정녕 뇌마종을 상대할 작정인가? 이 대결은 구유궁에도 좋을 게 없네. 뇌마종보다 좋은 목표물이 차고 넘치지 않나?”
“왜? 갑자기 내가 두려워진 건가?”
구유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싸우고 싶지 않으면 뇌마산을 내놔. 그럼 무사히 보내주지.”
이에 진천은 이내 정색하며 말했다.
“내가 좋은 말로 할 때 들었으면 좋았을걸. 우리 뇌마종을 꺾는 것이 그렇게 쉬운 줄 아는가?”
“그건 싸워봐야 알지 않을까?”
구유가 아무렇지 않게 건넨 말에 진천강이 피식 웃으며 이내 살기를 품었다.
“우리를 상대하기로 제대로 마음먹었나 보군. 오늘, 뇌마종이 구유위를 없앨 수만 있다면 앞으로 감히 우리를 건드릴 세력은 없겠지?”
뇌마종이 이번 기회에 구유궁을 없앴다면 만검곡, 마시종, 대비천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백전역의 네 번째 정예 세력이 될 것이다.
이에 엄청난 야심을 품은 그는 뿔뿔이 흩어졌던 세력을 한곳에 모아 구유궁을 상대하려고 했던 것이다.
“과연 네 생각대로 흘러갈까?”
구유는 진천강을 노려보며 말을 이어갔다.
“오래 준비했을 테니 그쪽에서 하고 싶은 대로 해보지 그러나? 구유궁은 끝까지 뇌마종을 상대할 생각이라네.”
“그렇단 말이지…….”
진천강은 피식 웃더니 구유 뒤에 서 있는 목진한테 눈길을 돌렸다.
“구유궁이 요즘 대라천역에서 유명해졌다고 들었는데 네가 그 일등 공신인 새 통령이지?”
“목진이 진 종주를 뵙습니다.”
목진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올렸다.
“구유위도 제법 유명해졌다고 들었어.”
진천강은 히쭉 웃으며 목진을 노려봤다.
“다들 구유위는 빈 껍데기만 남았다고 하는데 난 요즘 떠도는 소문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싶구나.”
“뭘 확인하고 싶으신 건가요?”
목진이 웃으며 묻자 진천강이 무덤덤하게 손을 휘익 저었다.
꽈르릉.
갑자기 나지막한 뇌명이 들리더니 뒤쪽에서 번쩍이던 뇌광이 서서히 사라지며 회흑색 철갑을 입은 부대가 나타나 난폭한 파동을 내뿜었다. 하나같이 굶주린 맹수처럼 목진 등을 노려봤다.
“저들은 뇌마종의 뇌마중(雷魔眾)으로 꽤 유명해.”
목진 뒤에 서 있던 당빙이 한껏 진지해진 얼굴로 알려주었다. 이에 목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는 길에 뇌마종에 대해 수소문했기에 목진은 뇌마중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들은 뇌마종에서 정성껏 키운 부대로 전투력으로만 보면 절대 구유위 못지않을 것이다. 그때 그 속에서 누군가 천천히 걸어 나왔는데 목진은 순간 흠칫 놀랐다.
“허허, 난 뇌마종의 장로, 진릉(秦陵)이네.”
진릉은 뇌마종 양대 장로 중 한 명으로 실력은 이미 3급 지존에 이르렀고 뇌마중의 통령이기도 했다. 뇌마중은 그와 함께 대라천역의 수많은 도성을 공략하였고 일부 부속 세력을 없애기까지 했다.
“유명한 분을 이제야 뵙네요.”
목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허허, 나도 목진 통령에 대해 적잖게 전해 들었네. 우리 역시 명성이 자자한 상대를 쓰러트린 적이 없는데, 오늘은 최선을 다해 싸워야겠군.”
“오늘이 지나면 백전역에 더는 뇌마중은 없을 거예요.”
진릉이 상냥하게 웃으며 말하자 이에 목진은 바로 웃으며 덧붙였다.
두 사람은 마주 보고 웃고 있었지만 엄청난 살기를 품고 있었다. 그 무서운 기세에 주위에 모인 세력들도 깜짝 놀랐다.
“구유왕, 구유명작이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봅시다.”
진천강은 호탕하게 웃다가 이내 정색하더니 곧바로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진릉, 구유위를 없애거라!”
“네, 종주님!”
진릉은 웃으며 답했고 사냥감 노리듯 목진을 바라봤다.
꽈르릉.
진천강은 뇌명과 함께 한 줄기 벼락이 되어 구천으로 향했고 난폭하기 그지없는 영력 파동은 순간 그곳을 휩쓸었다.
이에 구유는 한기 어린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다가 목진한테 고개를 돌렸다.
“난 진천강을 책임질 테니 뇌마중은 너한테 맡길게.”
대라천역 무리 중 그나마 내세울 만한 것이 바로 구유위였고 나머지는 뇌마중보다 실력이 훨씬 뒤처졌다.
“뇌마중은 나한테 맡겨.”
목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진릉의 실력이 3급 지존경에 이르렀지만 목진도 막 2급 지존에 이르러 전의로 싸운다면 충분히 자신 있었다.
“최대한 빨리 녀석을 쓰러뜨릴게.”
말을 마친 구유가 뒤쪽 구유명작에 올라타자 흑작은 맑은 울음소리를 내며 한 줄기 흑광이 되어 구천으로 날아올랐다.
진천이 있는 구천은 지면에서 수만 장 정도 떨어져 바람이 상당히 거세게 불었는데 실력이 그들쯤 되어야만 감히 이곳에서 싸울 생각을 할 것이다.
팔짱을 낀 채 구유명작에 올라탄 가녀린 소녀를 보던 진천강이 피식 웃으며 주먹을 쥐자 회흑색 뇌광이 몸 표면에서 요동쳤다.
뇌망이 번쩍이자 진천강의 육신이 점점 커졌다. 뇌 속성의 영력을 수련한 사람은 육신이 일반 사람보다 강했다. 진천강도 목진처럼 육신을 수련한 것 같았다.
“구유궁은 곧 뇌마종을 목표로 삼은 걸 후회하게 될 것이네.”
진천강이 씨익 웃으며 한 말에 구유명작은 길게 울부짖으며 날개를 퍼덕여 수많은 검은색 깃털을 쐈다.
“구유명작도 별거 없군.”
이에 진천강이 주먹을 꽉 쥐자 회흑색 뇌광이 폭발해 벼락으로 보호막을 형성했는데 검은색 깃털은 이에 닿자마자 바로 사라졌다.
“과연 그럴까?”
구유가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손가락으로 허공을 가볍게 내리찍자 검은색 깃털에 보라색 화염이 나타나 빠르게 벼락으로 만들어진 보호막을 때렸다. 그러자 보호막은 보라색 화염에 순식간에 녹아 없어졌고 깃털은 예리한 검처럼 진천강의 급소를 노렸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진천강은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으나 5급 지존의 실력을 지닌 진천강이 그대로 당할 리 없었다.
쿵!
그는 바로 장풍을 쏘고 수백 장 정도 떨어진 곳에 나타났다. 그가 서 있던 곳에는 지극히 난폭한 영력 파동이 휘몰아쳤는데 까맣게 타들어 간 손바닥을 확인하고는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이따위 벼락의 힘으로 불사화를 감당할 수 있을 거라 여기는 건가?”
구유가 피식 웃으며 한 말에 진천강이 콧방귀를 뀌며 발을 힘껏 구르자 체내에서 회흑색 벼락을 내뿜어 주위에 검은색 뇌운을 형성하였다. 엄청난 영력 파동에 지면에 서 있는 사람들마저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때 구유가 손을 휘익 젓자 체내에서 어두운 영력을 내뿜었는데 보라색 화염이 깃든 영력에 공간마저 격렬하게 떨렸다.
두 갈래의 방대하고 무서운 힘은 각자 반쪽 하늘을 차지하였고 세기의 대결을 펼쳤다.
두 사람이 동시에 공격을 개시하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구천에 난폭한 파동이 일었는데 매서운 강풍마저 순식간에 무산되었고 주위 수만 장이 두 사람의 영력으로 가득 찼다.
놀라운 대결이었다.
한편, 아래쪽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구천의 상황에 몰래 혀를 내두르다가 서서히 목진과 진릉한테 눈길을 돌렸다. 구유와 진천강의 대결은 승부가 그렇게 빨리 갈릴 것 같지 않아 아래쪽 대결이 관건이었다.
목진과 진릉의 대결 결과는 분명 구천에서 싸우고 있는 두 사람한테 엄청난 영향을 미칠 텐데 먼저 마음이 흔들리는 자가 패할 것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 곳에 서 있던 진릉은 미소를 지으며 목진을 바라봤다.
“종주께서 명령을 내리셨으니 오늘 난 절대 당신을 봐줄 수 없겠네.”
뇌마중은 수적으로 구유위를 훨씬 뛰어넘었고 실력이 2급 지존일 뿐인 목진에 비해 진릉의 실력은 3급 지존경에 이르러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 뇌마중을 거느리고 눈부신 성과를 내왔기에 대라천역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통령을 자신의 상대로 보지 않았다.
“결과에 실망하지나 말게.”
이에 목진이 태연하게 말을 내뱉었다.
“패기가 넘치는군.”
진릉은 엄지를 척 내밀고는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난 입을 놀릴 줄밖에 모르는 사람을 제일 싫어한다네!”
쿵!
진릉이 말을 마치고 허공에 날아오르자 뒤쪽에 뇌명이 들리더니 뇌마중도 뇌광이 되어 그 뒤를 따랐다.
이에 목진도 바로 손을 들어 올렸다.
“목진아, 조심해.”
실력이 3급 지존경에 이른 진릉은 대라천역의 4대 통령 중 으뜸인 서청보다도 더 강했다. 한 사람의 실력이 뛰어나다고 이기는 것은 아니지만 영향을 클 것이다.
“여긴 너한테 맡길게.”
현재 전장은 세 군데로 나누어졌다. 구유와 진천이 한 군데, 구유위와 뇌마중이 다른 한 군데, 마지막 한 군데는 지면에 있는 나머지 사람들로 가장 혼잡한 대결이 예상되었다.
“걱정하지 마. 저들은 절대 너희한테 손을 뻗지 못할 거야.”
당빙은 미소를 지으며 태연하게 말했다. 그녀는 어느새 이곳에 모인 대라천역의 세력들과 협상을 마친 상태로 여기서만큼은 전부 그녀의 명에 따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