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2화. 방해
목진은 소녀의 자신만만한 미소에 시름을 놓고 이내 정색하였다.
“구유위, 이만 싸우러 가볼까?”
“네!”
우레와 같은 대답과 함께 구유위는 허공에 날아올라 뇌마중 앞쪽에 나타났고 목진은 구유위 위쪽에 멈춰서서 웅장한 전의를 끌어모았다.
진릉은 목진을 잠시 노려보다가 나지막하게 외쳤다.
“뇌마 전의!”
이에 뒤쪽에 서 있던 뇌마중이 광기 어린 눈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며 울부짖었다.
쿵!
벼락이 번쩍이더니 회흑색 전의는 뇌망처럼 날아올라 진릉의 뒤쪽에 모였는데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대라천역에 이름을 날리고 있는 구유궁의 통령이 과연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봐야겠군!”
진릉은 피식 웃으며 손으로 목진을 가리켰다.
퍽!
백 장 정도의 뇌광 전의가 화가 난 용처럼 눈부신 빛을 발하며 구유위에게 향하자 구유 전의는 바로 방어막을 형성했다.
쿵!
상대방의 난폭한 공격에도 구유 전의로 만들어진 방패는 끄떡없었다. 이에 강자들도 깜짝 놀랐다. 규모로만 보면 뇌마중이 분명 우세를 차지하고 전의도 더 난폭해 보이는데 구유위가 무슨 수로 이토록 쉽게 상대방의 공격을 막아낸단 말인가?
“대단하군. 목진 통령이 구유위 천 명으로 혈응위 5천 명을 상대해 승리했다고 들었는데 역시 소문대로네. 목진 통령의 전의에 대해 장악도가 일반 통령을 훨씬 뛰어넘은 것 같군.”
* * *
대라천역 쪽 사람들은 이내 감탄하여 중얼거리더니 한시름 놓았다. 그들은 목진이 패하면 구유가 마음이 흔들려 실수할까 봐 걱정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쿵!
목진은 눈앞에서 사라진 뇌광을 확인하더니 예리한 눈빛으로 진릉을 노려봤다.
“오늘 과연 누가 누굴 없앨지 지켜봅시다.”
목진이 갑자기 결인하자 웅장한 구유 전의가 미친 듯이 폭등해 난폭한 뇌명마저 억제되었고 하늘도 서서히 어두워졌다.
목진은 드디어 살수를 두었다.
웅장한 구유 전의의 위력은 절대적인 우세를 차지하고 있는 뇌마중 못지않았다. 목진 주위를 맴도는 전의는 멀리서 보면 공간 균열에서 스며 나온 검은색 바다처럼 이곳 천지를 삼켜버릴 것만 같았다.
이토록 강력한 전의라면 아무리 3급 지존이라도 감히 정면으로 상대하기는 버거울 것이다.
진릉도 구유위의 웅장한 전의에 깜짝 놀랐다. 역시 들었던 대로 목진이란 소년은 전의를 완벽히 다룰 수 있었다. 안 그럼 구유위는 절대 뇌마중의 상대가 안 됐을 것이다.
그가 기합을 넣으며 발을 구르자 뇌마 전의로 만들어진 회흑색 뇌운이 한데 모였고 주위에 난폭한 뇌명이 울려 퍼졌다.
“뇌마중은 절대 대라천역의 겉치레만 번듯한 혈응위가 아니라네!”
진릉이 피식 웃으며 두 손을 들자 뇌마 전의는 놀라운 포효를 내뿜으며 미친 듯이 회흑색 뇌광을 끌어모아 거대한 벼락의 창을 만들었다. 회흑색 벼락을 휘감은 장창에서 천지를 뒤흔들 정도로 엄청난 뇌명이 들렸다.
진릉은 바로 살수를 뒀다. 그는 최대한 빨리 구유위를 쓰러뜨릴 생각이었다.
“뇌마의 창(雷魔之矛)!”
잇따라 진릉이 주먹을 휘두르자 회흑색 벼락의 창이 공간을 가르며 눈 깜짝할 사이에 구유위 위쪽에 나타났다.
“구유지우(九幽之羽)!”
이때, 목진이 인법을 바꾸자 전의의 바다가 요동치며 거대한 깃털을 만들어 뇌창에 맞섰다.
쿵!
엄청난 소리와 함께 난폭한 파동이 일었지만 쌍방의 전의는 끄떡없었다.
첫 번째 공격이 무산된 진릉은 바로 인법을 바꿔 웅장한 전의를 모아 수많은 벼락의 창을 형성해 하늘을 뒤덮었다.
엄청난 광경에 사람들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일반 3급 지존은 절대 이 정도 공격을 할 수 없는데 진릉은 손쉽게 이를 해냈다. 이것이 바로 전의를 이용한 우세로 3급 지존이 거느린 정예 부대를 상대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공격하라.”
진릉이 손가락을 튕기자 뇌창들은 천지를 부술 기세로 구유위에게 향했는데 목진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뇌마중은 비록 수적 우세를 차지하고 있지만 전의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그를 절대 쉽게 쓰러뜨릴 수 없을 것이다.
목진은 곧바로 구유 전의로 파도를 여러 겹 일으켜 뇌창의 공격에 맞섰다.
퍽! 퍽!
난폭한 소리와 함께 허공에 돌풍이 일어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지면에 서 있던 사람들은 계속해서 폭발을 일으키는 허공을 지켜봤는데 전혀 우세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는 진릉의 모습에 조금 놀랐다.
두 사람은 오직 전의로만 승부를 보고 있었는데 목진은 상대방의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냈다.
수많은 세력을 집어삼킨 뇌마중이 구유위한테 제압당하다니, 구유궁의 새 통령은 역시 대단했다.
쿠쿵!
1각 정도 지속되었던 난폭한 영력 파동은 점차 잠잠해졌다. 진릉은 무의미한 공격을 계속해봐야 시간을 낭비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공격을 잠시 멈췄다.
전의 대결은 통령의 신속한 판단과 절대적인 실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보통 상황에서는 그 수가 많으면 승리하게 되어있다.
또한, 포위전이면 수적 우세를 차지한 쪽이 적을 완벽히 둘러싼 것만으로도 절대적인 우세를 차지할 수 있는데 수적으로나 통령의 실력으로나 모두 뒤처진 구유위의 전의는 뇌마중 못지않았다.
이에 이대로 계속한다고 해도 승패는 갈리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진천강과 진릉이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진릉은 얇은 입술을 깨물며 목진을 노려봤다.
“왜 계속 공격하지 않고 멈춘 건가?”
진릉이 멈춰 서자 목진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당신이 전의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것은 사실이나 나를 이기려면 아직 멀었네.”
진릉이 음침한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보더니 갑자기 괴이하게 웃었다. 그 모습에 목진은 괜히 불안했다. 그때 녀석은 회흑색 뇌망이 번쩍이는 바위를 소환하더니 이를 으깨 버렸다.
쿵!
잇따라 회흑색 뇌광이 번쩍였는데 뇌광은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았지만 목진은 갑자기 안색이 어두워졌다.
뇌광이 방대한 역장을 이루더니 목진 주위를 감쌌던 전의가 갑자기 사라진 것이었다.
“뭐지?”
목진은 한결 차가워진 눈빛으로 진릉을 쳐다봤는데 그의 주위에 형성되었던 전의도 빠르게 사라졌다. 그와 함께 뇌광 속에 서 있는 진릉도 그 영향을 받은 듯했다.
그런데 녀석은 도대체 뭘 하려는 걸까?
“허허, 전의를 소환할 수 없지 아마?”
진릉은 히쭉 웃으며 말하더니 갑자기 손뼉을 쳤다.
“이건 뇌마정(雷魔晶)으로 뇌마산에서 터뜨리면 뇌장을 이뤄 전의를 쳐낸다네. 그러니 이 구역에서만큼은 절대 전의를 소환할 수 없지.”
목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눈을 감고 전의를 느꼈는데 무형의 힘이 그를 간섭해 전의를 끌어모을 수 없었고 그의 실력으로는 아직 이러한 간섭을 떨쳐낼 수 없었다.
이에 아래쪽에 있던 구유위들은 순간 당황하였다. 목진이 전의를 다스릴 수 없으면 이들은 폐인이나 마찬가지였다. 목진이 전의를 다룰 수 없고 전의를 잃으면 구유위는 일반인과 다를 바가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지면에 서 있던 강자들도 이를 발견하고 어리둥절한 얼굴로 진릉을 바라봤다. 진릉은 도대체 뭘 하려고 뇌마중과의 연결까지 끊어내며 목진을 역장에 가둔 걸까?
“지금, 당신은 구유위를 잃었고 난 뇌마중을 잃었지.”
진릉은 히쭉 웃더니 목진과 자신을 번갈아 가리켰다.
“이곳에는 당신과 나뿐이네.”
사람들은 순간 진릉의 뜻을 알아챘다. 구유위의 힘을 잃은 목진은 2급 지존일 뿐이지만 진릉은 여전히 명성이 자자한 3급 지존이었다.
목진이 구유위의 전의를 이용하면 진릉을 상대할 수 있지만 일단 전의를 잃으면 진릉한테 절대 상대가 안 될 것이다.
실력이 엇비슷하던 쌍방의 실력은 이제 현저하게 차이가 났다.
이것이 바로 진릉의 목적이었다.
“비겁한 놈!”
당빙은 이를 악물며 중얼거리더니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당장 뇌마종을 없애거라!”
이에 대라천역의 부속 세력들은 바로 영력을 끌어올려 공격을 개시했다.
“저들을 막아!”
백전역 사람들도 이에 맞섰다.
하늘에 펼쳐진 두 대결은 서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진릉이 목진을 가둔 상황에서 그들이 일단 상대 세력을 제압하면 오늘의 승자는 바로 백전역이 될 것이다.
그러니 절대 물러설 수 없었다.
그때 무서운 홍류가 허공에 모여 이곳 천지가 순간 파르르 떨렸다.
쿵! 쿵!
그들이 형성한 영력 파동에 대지는 부단히 흔들렸고 산맥들은 강자들의 공격 여파에 산산이 부서졌으며 지면에는 커다란 균열이 빠르게 일었다.
그때 진릉은 팔짱을 낀 채 목진을 노려보며 히쭉 웃었다.
“이제 어떡할 건가?”
이에 미간을 찌푸린 채 진릉을 노려보던 목진이 갑자기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의를 사용할 수 없는 것뿐이지 않나? 사실 이게 내가 원하는 바였네.”
진릉은 순간 흠칫 놀라 이내 살기를 품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소년이 얄미웠다.
목진은 주위에 형성된 황금색 뇌장에도 여전히 태연했다.
“전의를 모으지 못한다 이건가…….”
목진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들어 한기 어린 눈빛으로 팔짱을 낀 채 서 있는 진릉을 바라봤다. 그것은 바로 목진이 원하던 바였다.
그가 비록 전의를 진릉보다 훨씬 잘 장악하고 있어 우세를 차지했지만 뇌마중도 절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이에 구유위의 전의만으로는 절대적인 승산이 없었고 이는 서로에게 소모전만 될 뿐이다.
대신 쌍방이 전의를 잃으면 통령의 역량에 따라 승패가 갈릴 테니 그건 오히려 목진한테 더 유리한 일이었다.
다들 2급 지존밖에 안 되는 목진이 3급 지존인 진릉을 상대하기 버거울 거라 여기겠지만 목진은 진릉을 상대하기가 훨씬 쉬워졌다.
“생각보다 침착하군.”
허공에 뜬 진릉이 말을 마치자 주위에 회흑색 뇌광이 번쩍였고 뒤쪽 공간이 파동을 일으켰다. 그리고 웅장한 바다가 나타나 놀라운 영력 위압감을 형성했다.
“뇌마체!”
진릉이 피식 웃다가 이내 정색하며 두 손을 모아 결인하자 육신이 놀라운 속도로 팽창하였고 피부가 까맣게 그을렸으며 핏줄이 불끈거렸다. 얼마 후, 그는 회흑색 뇌광을 휘감은 검은 거인이 되었다.
이와 동시에,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파동이 퍼졌는데 녀석이 수련한 뇌마체도 엄청난 단체 신술이었다.
“그쪽 체내에서 느껴지는 벼락의 힘은 아마 뇌 속성의 신술을 수련해서겠지? 그런데 내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닐 걸세.”
광기 어린 진릉의 목소리에 다들 귀가 찌릿했다.
“뇌마체라…….”
목진은 흠칫하며 진릉의 거뭇한 피부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알지 않을까?”
잇따라 목진이 두 손을 모아 결인하자 눈부신 뇌광이 폭발하였다.
목진은 뇌신체를 끝까지 끌어올려도 육신이 진릉만큼 방대하지는 않았지만 상대방이 형성한 위압감을 완전히 제압하였다.
“뭐지!”
진릉은 뇌화 상태가 된 목진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일전에 그가 느꼈던 보잘것없던 벼락의 힘이 이렇게까지 강할 줄은 몰랐다.
그렇다고 겁먹을 진릉이 아니었다. 그는 피식 웃으며 발을 힘껏 구르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목진의 앞쪽에 나타나 머리를 공격했다.
쿵!
진릉의 공격은 상당히 빨랐지만 목진의 속도를 따라가지는 못했다. 이에 소년은 난폭한 힘을 실은 주먹을 힘껏 휘둘렀다.
슉!
전투 경험이 풍부한 진릉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공간을 부수며 목진의 가슴을 향해 다리를 휘둘렀다.
이에 목진도 신속하게 다리를 휘둘렀다.
퍽! 퍽! 퍽!
두 사람의 공격이 너무 빨라 사람들은 뇌광이 번쩍이는 잔영과 함께 난폭한 뇌명만 미친 듯이 들렸다.
1각도 채 안 되어 두 사람은 육신의 힘만으로 수백 차례의 공격을 주고받았는데 다들 그 무서운 위력에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쿵!
그러다 온몸에 뇌광이 번쩍이는 두 사람이 다시 주먹을 휘두르자 뇌광이 폭발하며 두 사람은 각자 뒤로 튕겨 나갔다.
목진은 백 보 정도 물러나서야 간신히 멈춰서 팔을 파르르 떨었고 진릉은 뒤로 수십 보밖에 물러나지 않았다.
그때 진릉이 깍지를 낀 두 손을 풀며 조금 놀란 듯한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봤다. 녀석의 육신이 이렇게까지 강할 줄 몰랐던 것이다.
그는 십수 년 동안 뇌마체를 수련해서 겨우 이 경지에 이르렀는데 목진이 수련한 육신 역시 그의 뇌마체 못지않았다.
진릉은 이 같은 상황을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는 지금처럼 막상막하인 실력을 확인하려고 꼼수까지 써서 전의를 사용할 수 없게 만든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