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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457화 (456/1,000)

457화. 파손된 석비

어두운 곳에 조용히 엎드려있는 무형의 뇌망은 한기 어린 눈빛으로 목진과 구유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난폭한 벼락과 달리 상당히 괴이하고 무서웠다.

목진과 구유는 이내 경계하는 눈빛으로 무형의 뇌망을 노려봤다. 구유마저도 녀석한테서 엄청 위험한 파동을 느꼈다.

“녀석의 실력은 적어도 5급 지존 정도 돼 보이지만 다행히 의식이 없어. 우리한테도 기회는 있어.”

구유가 속삭이는 말에 목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형의 뇌망은 보기에는 무서워 보여도 눈동자에서 아무런 영성도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본능적인 반응만 있는 전투 무기인 듯했다. 그러나 뇌마종의 종주 진청강보다 훨씬 무서운 존재였다.

후우.

목진은 가볍게 숨을 내쉬며 간신히 마음을 가라앉혔다.

목진은 북창령원 뇌역의 마지막 층에서도 벼락에서 비롯된 신비로운 녀석을 본 적 있는데 실력이 9급 지존의 정상에 이르렀던 북명룡곤마저 두려워했던 존재와 비교하면 무형의 뇌망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유명심마뢰로 만들어진 무형의 뇌망은 비록 뇌역의 생물보다 등급이 높았지만 위력은 훨씬 뒤처졌다. 만약 녀석이 등급만큼 엄청난 위력을 지녔다면 목진과 구유는 도망가기 바빴을 것이다.

“녀석이 갖춘 모양을 흐트러트려야 그를 쓰러뜨릴 수 있어.”

구유가 서서히 주먹을 쥐며 말했다.

“내가 먼저 나설 테니 조심해!”

이번 싸움에는 구유의 힘이 필요했다. 목진은 2급 지존밖에 안 돼서 그 실력으로는 절대 뇌망을 물리칠 수가 없었다.

“조심해!”

목진은 무턱대고 나서다가 구유에게 괜히 짐만 될까 봐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구유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체내에서 웅장한 보라색 화염을 끌어 올렸다. 그러자 주위의 온도가 순간 폭등하였다.

그때 구유의 등에서 아름답고 큰 검은색 날개가 나타났는데 주먹을 꽉 쥐자 깃털들이 한데 모여 보라색 화염이 요동치는 길쭉한 장창을 형성했다.

이와 동시에, 무형의 뇌망은 위험을 감지하고 혀를 날름거리며 구유를 노려보았다.

잇따라 구유는 날개를 떨치며 순식간에 무형의 뇌망 위쪽에 다가가 장창을 휘둘렀는데 보라색 화염이 깃든 창망의 파괴력이 엄청났다.

그때 무형의 뇌망이 고개를 번쩍 들고 입을 쩍 벌려 고함을 지르자 뇌음이 주위에 울려 퍼져 창망이 닿자마자 빠르게 사라졌다.

구유도 체내에 유명심마뢰의 뇌음이 스며들어 온몸을 파르르 떨기 시작했지만, 다행히 불사화가 있어 버틸 수 있었다.

쿵!

뇌망이 갑자기 꼬리를 휘둘러 구유의 머리를 공격하자 그녀는 거대한 날개로 방패를 형성해 육신을 보호했다.

쿵!

녀석의 꼬리에 맞은 구유는 뇌음이 섞인 방대한 힘에 멀리 튕겨 나가더니 날개를 퍼덕이며 간신히 몸을 추슬렀다.

그제야 구유를 침입자로 단정한 무형의 뇌망은 미친 듯이 공격을 시작했고 소녀를 향해 부단히 뇌음을 방출했다.

이에 구유는 수비밖에 할 수 없는 상태로 완전히 제압되었다.

목진은 상황을 살피다가 안색이 어두워졌다. 무형의 뇌망이 구유를 손쉽게 제압할 만큼 강할 줄은 몰랐다.

‘최대한 빨리 녀석을 쓰러뜨려야 해. 시간이 흐르면 구유는 절대 못 버텨.’

무형의 뇌망은 유명심마뢰가 형성한 생물이고 이곳의 벼락의 힘은 엄청났다. 지금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구유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목진이 쉽게 나설 수도 없었다. 그러다 무형 뇌망이 그를 공격하기라도 하면 더 위험해질 것이다.

이에 목진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무형의 뇌망 쪽으로 조금씩 이동했는데 마음속에서 다시 뇌음이 들려오더니 몸이 순간 경직되었고 얼굴은 핏줄이 불끈거리다가 곧 터질 것 같았다.

다행히, 영력과 융합한 보라색 화염이 활활 타올라 뇌음을 간신히 제압했는데 목진이 숨을 고르기도 전에 다시 뇌음이 들려왔다.

그것은 목진은 무형의 뇌망의 공격 범위에 들어섰다는 뜻이었다.

하여 그는 천천히 눈을 감고 유명심마뢰를 상대할 방법을 찾으려 애썼다. 그가 만약 방법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구유가 위험해질 것이다.

그는 뇌신체를 한껏 끌어올렸다가 유명심마뢰에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해 바로 어뢰술을 소환했는데 이 또한 큰 효과는 없었다. 유명심마뢰는 대지마뢰보다 훨씬 강해 목진의 실력으로 장악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목진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생각나는 방법은 모조리 시도해봤지만 역시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구유와 무형의 뇌망의 싸움이 점차 치열해져 그가 받는 고통도 점차 세졌다.

‘안 돼, 절대 포기하면 안 돼!’

목진은 체내에 급속하게 울려 퍼지는 뇌음에 안색이 빠르게 창백해졌는데 혈전을 벌이고 있는 구유를 두고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깊게 숨을 들이켜 영력을 끌어올려 불사화로 뇌음을 상대했다.

무형의 뇌망은 실력이 너무 강해 그 형태를 흩트리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럼 남은 방법은 봉인하는 것뿐인데 목진 체내의 신비로운 종이가 최적의 선택이었다. 만다라처럼 무서운 실력자마저 그 힘을 빌려 체내의 저주를 제압했으니 말이다.

이러한 생각에 목진은 바로 합장해 특이한 인법을 그렸다.

위잉.

이에 지존해의 웅장한 영력 바다에서 한 줄기 어두운 빛이 솟아올라 공간을 가르며 목진 앞에 나타났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신비로운 종이로 그 속에서 발한 암자색 빛은 만다라 꽃의 형태를 갖추며 천천히 피어올랐다.

목진은 다시 깊게 숨을 들이켜며 요염한 만다라 꽃에 체내의 영력을 모조리 주입했다.

위잉.

잇따라 조금씩 피어나는 아름다운 만다라 꽃에서 신비롭고 오래된 무늬가 나타났다.

쿵!

그때 저 멀리 전장에서 귀청을 찢는 듯한 뇌음이 들렸다. 그것은 너무 난폭해 공간마저 일그러졌고 불사화마저도 억제하기 어려워 구유는 순식간에 뒤로 수천 장 정도 튕겨 나갔다.

“젠장!”

구유는 이를 악물고 외쳤다. 그녀도 무형의 뇌망이 이렇게까지 강할 줄은 몰랐다. 더구나 이곳은 자기 구역이라 그런지 더 기세등등했다.

“일단 이곳에서 나가 대라천역의 강자한테 도움을 청해야겠어.”

구유는 혼자서는 녀석의 상대가 안 된다는 걸 느끼고 물러나려 했다. 그와 사이가 좋은 강자는 천취황 뿐인데 그가 이곳에 올지 알 수 없었다.

“구유야, 물러나!”

그때 목진의 고함이 들려왔다. 목진이 왜 갑자기 전장에 뛰어들었는지 모르지만 그를 믿고 일단 뒤로 물러났다.

이와 동시에, 거대한 만다라 꽃이 암자색 빛을 발하며 날아가 무형의 뇌망 위쪽에 멈춰 서더니 천천히 기울여 꽃술을 무형의 뇌망에 조준했다.

이에 무덤덤했던 무형의 뇌망은 화가 난 듯 울부짖으며 만다라 꽃을 공격했다. 뇌음은 암자색 빛에 닿더니 갑자기 사라졌다.

슉!

만다라 꽃은 활짝 피자 암자색 빛을 발사해 무형의 뇌망 주위를 감쌌다. 이에 무형의 뇌망은 그 기이한 힘에 조금씩 만다라 꽃에 끌려갔다.

쿵! 쿵!

무형의 뇌망이 엄청난 위험을 감지하고 미친 듯이 요동치자 유명심마뢰가 폭발해 주위의 공간이 격렬하게 떨렸다.

녀석의 발악에 암자색 빛에 조금씩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그것은 목진의 최후의 수단이었다. 그는 이번마저 실패하면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에 안색이 어두워졌다.

목진의 실력이 더 강하면 몰라도 지금으로서는 만다라 꽃의 힘을 이것 밖에는 끌어올리지 못했다.

“젠장!”

목진은 이를 갈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등 쪽에 차가운 손길이 느껴지더니 구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영력을 사용해!”

쿵!

잇따라 목진은 온몸을 파르르 떨었고, 웅장하기 그지없는 영력이 홍수처럼 부단히 그의 체내에 스며들어 눈 깜짝할 사이에 온몸이 그윽한 영력으로 가득 찼다.

쿵!

목진의 몸에 스며든 웅장한 영력은 순식간에 경맥을 타고 온몸에 퍼졌다. 구유가 준 영력은 목진의 것보다 훨씬 강력했다.

보통은 자기 영력을 바로 타인의 체내에 주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이었다. 제아무리 육신이 강하다고 해도 체내가 유난히 취약해 일단 본인의 영력이 배척 반응을 일으키면 경맥이 모조리 부서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진과 구유는 혈맥을 연결한 사이라 아무 문제도 없었다.

목진은 구유의 영력을 받자마자 두 손을 모아 신속하게 결인했는데 체내의 영력이 홍류를 이뤄 요염한 만다라 꽃에 스며들었다.

위잉.

이에 요염한 만다라 꽃은 한껏 팽창하며 더 아름답게 피어났고 암자색 빛도 더 눈부셔졌다. 그러자 무형의 뇌망으로 생겨났던 균열도 완벽히 사라졌다.

쿵! 쿵!

무형의 뇌망은 쉼 없이 발버둥쳤지만 암자색 빛은 끄떡없이 녀석을 만다라 꽃으로 끌어들였다. 그 속도는 조금 느렸으나 절대 멈추지 않았다.

목진은 만다라 꽃에 조금씩 가까워지는 무형의 뇌망을 보고는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이내 인법을 바꾸자 만다라 꽃은 녀석을 꿀꺽 삼키고 꽃잎을 조금씩 안으로 모았다.

무형의 뇌망은 애처로운 비명을 지르며 녹아내렸고 무형의 알로 변해 조용히 만다라 꽃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옆에는 파괴된 석비가 놓여있었다.

“만다라 꽃은 역시 대단해.”

구유는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만다라 꽃을 바라봤다. 그녀는 무형 뇌망과 싸워봐서 녀석이 얼마나 강한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신비로운 만다라 꽃에 의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유명심마뢰는 실체가 없어 봉인의 힘이 있는 만다라 꽃을 가장 두려워해. 그래서 내가 녀석을 제압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던 거야.”

목진은 히쭉 웃으며 만다라 꽃을 소환해 알이 된 유명심마뢰를 힐끗 보고는 바로 파손된 석비로 눈길을 돌렸다.

목진은 석비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지만 범상치 않은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목진이 옷깃을 휘날리자 파손된 석비가 바로 눈앞에 나타났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체현한 검은색 석비에는 오래된 글귀가 적혀 있었고 특이한 위압감을 형성하였다.

목진은 석비를 살펴보다 가장 위쪽에 있는 무상심마경이라 적힌 글귀를 발견했는데 석비가 파손되어 수련법이 완전하지 않았다.

“무상심마경이 엄청난 물건이야?”

목진이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뇌신궁(雷神宫)이라고 들어봤어?”

목진은 흠칫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제 애송이가 아니라 대천세계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뇌신궁은 그중에서 상당히 유명한 최정예 세력이었다.

“뇌신궁은 원고의 뇌궁의 계승을 받은 곳으로, 심마뇌제가 곧 원고의 뇌궁(遠古雷宮) 사람이야. 내가 알기로 무상심마경은 뇌신궁의 진궁신통(鎮宮神通)이야.”

“진궁…… 신통이라고?”

구유의 말에 목진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는 무상심마경이 신술이 아닌 신통이란 말에 화들짝 놀랐다.

대천세계에서 신술보다 더 오묘하고 위력이 강한 것이 바로 신통으로 이는 일반 지존과는 거리가 너무 먼 존재였다.

하여 신통의 존재가 알려지면 수많은 강자가 미친 듯이 달려들곤 했는데 무상심마경이 무려 뇌신궁의 진궁신통이라니. 그 위력은 실로 엄청날 것이다.

“무상심마경은 뇌신궁에서도 아무나 수련할 수 있는 게 아니야. 현재는 이조차 완전하지 않아 기껏해야 준대원만급 신술 정도의 등급이라고 할 수 있어.”

구유는 조금 아쉬운 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

“준대원만급이라…….”

반면, 목진은 히쭉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충분해, 난 완전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좋아.”

만약 무상심마경이 완전했다면 목진의 실력으로 절대 수련하는데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불완전한 것이 득이 되었다.

이에 구유는 괜히 목진을 흘겨봤다. 그녀는 소년의 ‘똑똑함’에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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