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9화. 심마의 씨(心魔種子)
“지금의 넌 저 녀석을 수련할 자격이 생겼네?”
구유는 허공의 파손된 석비를 가리키며 조금 부러워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무상심마경에 대해 익히 알고 있는 구유도 이를 수련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절대 수련할 수 없는 신통이었다. 목진과 달리, 구유의 불사화는 혈맥의 힘에서 비롯된 것이라 유명심마뢰와 영력을 융합하려는 것은 죽으려고 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지나친 욕심 때문에 나쁜 생각을 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녀 역시 불사화를 완벽히 수련하면 무상심마경 못지않은 힘을 얻을 것이다.
그때 목진도 흥미진진하게 파손된 석비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돌려 구유를 쳐다봤다.
“우리가 이곳에 들어온 지 며칠 정도 지났어?”
“보름 정도 지났어.”
“우리가 보름 동안 사라졌는데 토벌전은 괜찮겠지?”
“걱정하지 마. 백전역이 아무리 강해도 대라천역의 상대는 아니야. 그리고 우리는 무려 뇌마종을 점령했으니 쉬어가는 것도 당연한 일이야.”
구유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목진도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파손된 석비를 거두었다.
“일단 구유위의 수련부터 살피러 가자.”
목진은 보름 전, 구유위에게 뇌신체의 수련법을 전수해줬는데 뇌마연에서 녀석들이 어느 정도까지 수련했을지 자못 궁금했다.
그는 바로 한 줄기 빛이 되어 어두운 뇌광을 가르며 날아올랐고 구유도 미소를 지으며 뒤따르려 했다. 그런데 뇌해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이상한 파동이 느껴졌다.
그런데 그 파동은 너무 미세해 구유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주의를 기울였지만 더 이상 아무런 파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구유는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다시 목진의 뒤를 따랐다.
그들이 떠나자 뇌해의 깊숙한 곳은 다시 어둠으로 휩싸였고 잔잔하게 파문이 일었다.
* * *
목진과 구유는 속도를 한껏 끌어올렸고 반나절이 지나서야 뇌해에서 빠져나왔다.
꽈르릉!
그들은 뇌해에서 나오자마자 멀지 않은 곳에서 들리는 난폭한 뇌명에 고개를 돌렸는데, 벽 쪽에서 대지마뢰가 기세등등하게 솟구쳐, 자리에 앉아 이를 악물고 수련하고 있는 구유위를 공격했다.
목진과 구유는 이러한 광경에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구유위 중 절반 정도가 이미 뇌신체를 1문 뇌체까지 수련하는 데 성공한 것을 발견했다.
또한, 구산 등 지존경에 이른 강자들의 가슴팍에는 뇌문이 세 갈래나 나 있었다.
그때 구산 등 실력자들은 목진과 구유의 영력 파동를 읽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서 인사를 올리려 했다. 이에 구유는 괜찮다며 손을 저었다.
“잘 돼가?”
“통령님, 현재 뇌신체를 1문 뇌체까지 수련한 구유위는 513명이고 2문 뇌체에 이른 이들은 98명, 3문 뇌체에 이른 이들은 우리 셋뿐이에요.”
구산의 답변에 목진은 만족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구유위의 실력은 목진이 뇌신체를 수련하기 시작했을 때보다 훨씬 강한 데다가 뇌마연의 도움까지 있어 속도가 빨랐다.
이대로라면 아마 한 해도 안 되어 구유위 전체가 9문 뇌체에 이를 수 있을 것이고 그때가 되면 이들의 전투력은 훌쩍 뛰어오를 것이다.
그런데 아직 토벌전이 끝나지 않았으니 앞으로의 전쟁은 더욱 치열할 것이다. 하여 목진은 구유위 전체가 뇌신체를 수련하는 데 성공했으면 하고 바랐다.
“우리한테 아직 보름 정도 시간이 남아있어.”
구유는 목진의 속내를 꿰뚫어 보고 바로 입을 열었다.
“그럼 내가 보름 동안 여기 있을게.”
“그래, 그럼 난 뇌마종을 지킬게. 자리를 너무 오래 비우면 빈틈을 노리는 세력이 분명 있을 거야.”
구유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뇌마종은 자원이 풍부해 노리는 사람이 많을 거라 당빙 혼자 지키기는 버거울 것이다.
이에 목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구유는 한 줄기 빛이 되어 뇌마연에서 나갔다.
한편 목진은 제자리에 앉아 주위를 쓰윽 훑으며 말했다.
“육신의 수련에 지름길이란 없어. 힘을 조금이라도 더 얻고 싶으면 그만큼 노력해야 해. 그래서 지금부터 내가 주위의 모든 대지마뢰를 소환해 너희한테 공격을 개시하려고 하는데 버틸 수 있겠어?”
“네!”
구유위 전체가 결연하게 외치자 목진은 흐뭇한 미소를 짓더니 바로 유명심마뢰를 융합한 영력으로 그 구역을 감쌌다.
꽈르릉!
무형의 영력이 휘몰아치자 주위에 숨어있던 대지마뢰는 전부 도망가기 바빴다. 기세등등하던 녀석들은 부들부들 떨며 감히 목진의 영력에 가까이하지 못했다.
유명심마뢰는 훨씬 강한 벼락의 힘이라 대지마뢰는 겁에 질린 것이다.
꽈르릉!
구유위는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눈앞에 나타난 광경을 바라봤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대지마뢰가 목진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놀라움도 잠시, 구유위는 사방에서 몰려오는 검은색 뇌광에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검은색 뇌광이 구유위를 완전히 감싸자 목진은 씨익 웃었다. 육신의 수련에는 지름길이 없어 엄청난 고통과 맞바꿔야 비로소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구유위는 예전에 목진이 겪었던 것과 똑같은 고통을 겪을 것이다.
남은 보름 동안, 구유위 전체가 뇌신체를 수련하는 데 성공하려면 이 방법밖에는 없었다. 이래야만 전의를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목진은 난폭한 뇌광을 보며 가볍게 한숨을 쉬더니 파손된 석비를 소환했다. 그는 구유위가 뇌신체를 수련하는 틈을 타 무상심마경을 연구해보기로 했다.
난폭한 뇌명은 한시도 그치지 않고 뇌마연에서 울려 퍼졌다.
꽈르릉!
구유위는 꿈쩍 않고 자리에 앉아 대지마뢰의 힘을 빌려 뇌신체를 수련했다.
다들 두 손을 모아 똑같은 인법을 그리자 검은색 뇌광이 모공을 따라 체내에 스며들어 뼈와 살을 단련시켜 주었다.
그리고 그들과 수십 장 정도 떨어진 곳에 목진이 한 손으로 파손된 석비를 든 채 눈을 감고 앉아있다가 서서히 눈을 뜨더니 조금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구유위가 뇌신체를 수련하는 동안, 목진은 전력을 다해 파손된 석비에 적힌 무상심마경을 연구했는데 역시나 구유의 말대로 석비에 적힌 수련법은 완전하지 않았다.
또한, 심마 상태는 소심마 상태, 대심마 상태와 원만 심마 상태 등 세 가지 경지로 나뉘어 구유가 언급했던 뇌신궁의 궁주는 이미 원만의 경계까지 수련했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아직 천지존에 이르지 않은 실력으로 진정한 천지존을 상대했을 리 없었다.
목진은 지금 실력으로 완전한 무상심마경을 얻는다고 해도 수련에 성공할 수 없었기에 전혀 아쉽지 않았다.
대심마 상태에 이르는 것마저 상당히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참 변태적인 수련법이군…….”
목진은 뇌리에 스치는 오래된 정보를 쓰윽 훑더니 길게 한숨을 쉬었다.
심마 상태를 수련하려면 상당히 괴로운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일단 심마의 씨를 만들어내야 하는데 이는 유명심마뢰로 심장을 수도 없이 공격해 그 힘이 심장의 깊숙한 곳에 모여 심마의 씨를 만들어내야 하는데 보통 사람이 보기에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심장은 인체에서 가장 취약한 부위로 조금만 다쳐도 치명적인데 과연 누가 감히 유명심마뢰처럼 엄청난 물건으로 심장을 공격한단 말인가?
조금이라도 잘못했다가는 뇌음이 울리자마자 심장이 폭발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보통 사람은 무상심마경을 얻었다고 해도 감히 수련을 시작하지 않을 것이었다. 이에 목진도 혀를 내두르며 잠시 고민했지만 금세 마음을 다잡았다.
그는 절세의 강자가 되겠다고 소녀와 약속했고 이 세상에는 천재가 너무 많았다. 게다가 천부적인 재능만으로는 절세의 강자가 될 수 없었다.
진정한 강자는 엄청난 고난이 닥쳐도 절대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을 가져야 했고 목진은 절대 무상심마경의 수련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었다.
소년은 다시 활짝 웃으며 천천히 눈을 감고 유명심마뢰와 융합한 영력을 소환하여 심장을 공격했다.
잇따라 체내에서 울려 퍼진 뇌음에 목진의 내장들은 격렬하게 떨렸고 혈액의 흐름마저 원활하지 못했다.
풉.
그는 순간 사색이 된 채 피를 토했고 얼굴에 핏줄이 불끈거리는 것이 그 모습이 상당히 괴이했다. 그러나 겨우 숨을 고르며 가슴을 부여잡고 고통을 참으려고 애썼다.
뇌음이 그의 심장을 찢어버릴 것만 같았다.
“젠장.”
목진은 엄청난 고통에 저도 모르게 욕설을 퍼부었다. 무상심마경처럼 마의 신통으로 자해하면서 수련하는 법을 목진은 태어나서 처음 보았다.
후우.
한참 숨을 고르던 목진은 점차 안정을 되찾고 다시 이를 악물며 유명심마뢰를 소환했다.
풉…….
풉…….
목진은 어두운 뇌마연에서 부단히 피를 토하며 수련을 계속했는데 구유위는 두 눈이 휘둥그레져 그를 바라보면서도 감히 뭐라 하지 못했다. 이에 어쩔 수 없이 그들도 눈을 감고 수련을 계속했다.
이렇게 목진은 부단히 피를 토하며 보름 동안 수련을 계속했다.
어느덧 목진 등이 뇌마연에 들어온 지도 한 달이 되었고 대라천역의 토벌전도 점차 박차를 가했다.
천라대륙 북계의 정예 세력인 대라천역은 백전역보다 강했기에 전쟁이 시작되자 백전역은 패배를 거듭했다. 비록 가끔 반격에 성공했지만 큰 형세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백전역이 호락호락 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도 부단히 세력을 모아 공격했고 대라찬역의 공격 속도 역시 점차 느려졌다. 그들은 더는 처음처럼 파죽지세로 밀어붙이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 맞서 대라천역에서도 세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대라천역의 고층들은 백전역의 중심이 만검곡, 마시종, 대비천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이 세 갈래 세력은 백전역의 최강이었지만 여태껏 나서지 않아 이들을 물리쳐야만 온전히 승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었다.
하여 북계 사람들은 점차 백전역과 대라천역 사이의 싸움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들은 북계에서 엄청난 존재라 대결의 결과에 따라 북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래서인지 최후의 결전을 하기도 전에 다들 이곳에 눈길을 돌렸다.
* * *
목진은 외부 상황을 신경 쓰지 않고 뇌마연 깊숙한 곳에 눈을 감고 조용히 앉아 수련에만 집중했는데 가끔 온몸을 파르르 떨며 얼굴도 경련을 일으켰다.
이는 유명심마뢰가 그의 심장을 공격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더는 전처럼 피를 토하지는 않았다. 어느새 유명심마뢰의 충격에 적응된 것이다.
그러다 그는 갑자기 눈을 뜨며 가볍게 백기를 토하더니 피곤한 듯 머리를 주물렀다.
보름 동안, 그는 빌어먹을 무상심마경 때문에 애를 먹었다.
다행히 목진은 그동안의 수련을 통해 어느정도 효과를 보았다. 그는 아직 심마의 씨를 만들어내지는 못했지만 유명심마뢰가 심장 깊숙한 곳에 모이는 것이 느껴졌다. 이대로라면 곧 심마의 씨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목진은 가슴을 가볍게 문지르고 멀지 않은 곳에 앉은 구유위를 쳐다봤다. 구유위 역시 다들 뇌신체를 수련하는데 성공했다.
구산 등은 네 번째 뇌문이 나타날 기미가 보였는데 그 속도가 실로 엄청났다. 비록 뒤로 갈수록 뇌문이 나타나는 속도가 점차 느려지겠지만 이 정도면 충분했다.
이에 목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구유위를 공격하던 대지마뢰를 전부 물리치자 구유위 역시 눈을 떴다. 그들의 눈동자에 검은색 뇌광이 번쩍였다.
“축하해.”
목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다들 뇌신체를 수련하는 데 성공했군.”
슉!
구유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한쪽 무릎을 꿇고 인사를 올렸다.
“목진 통령, 감사합니다.”
목진은 구유위의 기세등등한 모습에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저었다.
“이제 나갈 때가 된 것 같아.”
목진이 고개를 들며 말을 마치자마자 구유의 목소리가 주위에 울려 퍼졌다.
“이제 떠나자, 대라천역과 백전역이 곧 최후의 결전을 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