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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460화 (459/1,000)

460화. 삼천 검시(劍侍)

“대라천역은 어느새 백전역의 땅을 절반쯤 차지했어.”

뇌마종의 대전에 영력 광막이 나타나더니 구유는 얇은 손으로 백전역 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한 달 사이, 대라천역은 백전역에 속했던 도성 중 절반 정도를 빼앗았다. 그사이에 벌어졌을 치열한 전쟁이 저절로 예상되었다.

영력 광막을 보고 있노라니 그 속에서 피비린내가 나는 것 같았다. 대라천역은 도성을 빼앗을 때마다 백전역과 혈투를 벌였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짜 전쟁이었다.

이곳은 더는 북창령원이 아니었다.

“그런데 진정한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야.”

구유가 태연하게 한 말에 목진, 당빙, 구유궁 강자들은 한껏 정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백전역의 최정예 세력이 나섰다면 대라천역이 그들을 제압하는 속도가 이렇게 빠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검곡, 마시종, 대비천의 움직임은 어때?”

지금까지 미동이 없을 녀석들이 아니란 생각에 목진은 조심스럽게 구유한테 질문을 던졌다. 만약 저들이 끝까지 나 몰라라 하면 백전역의 다른 세력들은 절대 이들을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만검곡, 마시종, 대비천의 전력은 전부 이곳에 모여들고 있다고 들었어.”

구유가 가리킨 곳은 백전역의 방어벽이 가장 단단한 장소였다.

“바로 백전성(百戰城)이야.”

목진은 지도에 표기된 백전성을 한참 쳐다봤다. 그곳은 백전역에서 가장 큰 도성으로 3대 세력이 함께 관리한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백전역의 가장 견고한 방어벽일 것이다.

이런 도성이라면 아무리 대라천역이라도 상대하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만검곡, 마시종, 대비천의 강자들과 백전역의 다른 세력들이 전부 이곳에 모여들어 엄청난 규모를 형성하고 있어.”

구유도 이내 정색하며 말했다.

“백전역에서 대라천역에 도전장을 내밀어 북계 전체가 이곳을 주의 깊게 살필 거야. 만약 대라천역에서 조금이라도 주춤하거나 물러나면 명성은 바닥을 칠 거야.”

“도전장이라니…….”

목진은 깜짝 놀랐다. 백전역에서 무슨 자신감으로 먼저 도전장을 내밀었단 말인가?

“백전역이 천현전만 믿고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거지.”

구유가 피식 웃으며 말하자 목진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토벌전을 시작하기 전, 대라천역의 역주는 천현전의 유천도가 이쪽을 호시탐탐 노려 나설 수 없다고 하였다. 역주가 함께하지 않으니 대라천역은 절대적인 우세가 없는 거나 다름없었다.

이에 백전역에서 감히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그러다 그들이 이기기라도 하면 백전역은 명성이 자자해질 것이고, 대라천역은 곤두박질칠 것이다.

그렇기에 이번 전쟁은 대라천역에게는 매우 중요했다.

“3황께서는 뭐라고 하셨어?”

목진은 3황이 대세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백전역의 무례한 행동을 잠자코 보고만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3황께서 대라천역의 모든 강자는 백전성 밖에 모이라고 하셨어. 하여 백전성 주위 천 리는 이미 전쟁터가 되었어.”

구유의 말에 목진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라천역은 상대방이 내민 도전장을 반드시 받아들여만 했고, 앞으로 벌어질 전쟁은 상상 이상으로 치열할 것이었다.

이번 대결이야말로 진정한 대결로 한 달 동안 했던 싸움은 이에 비하면 소꿉장난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럼 우리는 어떡할까?”

대라천역의 모든 강자가 백전성 주위에 모였으니 구유궁도 빠질 수 없었다.

“바로 백전성으로 간다.”

말을 마친 구유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외쳤다. 구유궁 역시 대라천역 사람으로 이토록 중요한 싸움에 자리를 비울 수는 없었다.

“네!”

구유궁의 강자들이 힘차게 외치자 목진은 고개를 들어 대전 밖, 멀리 떨어진 서북쪽을 바라봤다.

하늘은 전의로 가득 차서 그런지 어둡고 숨 막혀 보였지만 정작 그는 점차 피가 끓어올랐다. 절세의 강자가 되려면 목진은 부단히 치열한 싸움을 통해 실력을 다져야만 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목진의 이름은 천라대륙에 널리 알려질 것이고 그때가 되면 그는 소녀와 했던 약속을 지키러 떠날 수 있을 것이다.

낙리야, 부디 기다려줘.

* * *

방대하기 그지없는 백전성은 원고 시기에 전해져 내려온 곳으로 수많은 대전을 겪고도 끄떡없었는데 지금 이곳에서 다시 전쟁의 불씨가 튀겼다.

도성 밖, 저 먼 하늘에서 사람들이 허공에 떠올라 강력한 영력을 뽐내자 주위 공간은 일그러질 듯했다.

이렇게 전쟁은 백전성을 중심으로 주위로 퍼져나갔다.

한편, 백전성 서남쪽은 백전성과 조금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전쟁은 계속되었고 쌍방은 서로를 없애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들은 모두 전의를 다루는 군대라 쌍방의 대결은 유난히 치열하였다. 특히 왼쪽 부대가 황금빛처럼 보이는 노란색 갑옷을 입은 채 장창을 들고 전의를 내뿜자 주위에 돌풍처럼 휘몰아쳤다.

갑옷에 새겨진 무늬로 보아 그들은 대라천역 9왕 중 유금왕(鎏金王)의 금오위(金吾衛)였다.

대라천역에서 금오위의 명성은 비록 수라위, 열산군, 혈응위 등보다 못하지만 절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는데 현재 상황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그들의 상대는 청색 도포를 입은 채 장검을 거머쥔 만검곡의 삼천 검시로 무서운 검기를 발산해 하늘이 순식간에 만신창이가 되었다.

특이한 차림새로 바로 신분을 파악할 수 있었는데 3천 검시는 만검곡의 최강 부대로 전투력이 백전역에서 손에 꼽힐 만큼 엄청났다.

또한, 명성으로 놓고 보면 만검곡의 삼천 검시는 금오위를 훨씬 뛰어넘었다.

슉! 슉!

금오위는 상대방의 엄청난 검기에 겨우 방어만 하고 있었다. 주위에서 다른 세력들이 비웃고 있었는데 금오위 때문에 백전역 측은 기세등등하였고 대라천역 은 점차 주눅이 들었다.

“허허, 전륭(錢隆) 통령, 금오위가 더는 못 버틸 것 같으니 그냥 포기하는 것이 어떻나? 한 사람이라도 적게 사망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삼천 검시의 위쪽에 서 있던 사람이 피식 웃으며 말을 건넸는데 청색 도포를 입은 채 자청색 장검을 거머쥔 그는 삼천 검시의 통령, 임청봉(林青峰)으로 백전역에서의 지위는 대라천역의 서청, 주악과 비슷했다.

이에 금오위 위쪽에 서 있던 튼실한 사내는 안색이 조금 어두워진 채 이를 악물고 임청봉을 노려봤다.

잔당을 소탕하던 그는 재수 없게 삼천 검시와 마주칠 줄 몰랐다. 삼천 검시는 서청의 수라위나 주악의 열산군과 맞먹는 실력이라 전부 나섰더라면 금오위는 이미 패배했을 것이었다. 그런데 그중 일부와 싸우는 데도 금오위는 완전히 제압되었다.

“임청봉, 대라천역의 강자들이 곧 올 테니 너무 우쭐거리지는 말게. 그때가 되면 아무리 당신이라도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을 걸세.”

“허허, 그럼 일단 당신부터 없애는 것이 좋겠군.”

임청봉은 씨익 웃으며 말하더니 손가락을 굽혔는데 검기가 깃든 전의가 휘몰아치며 천 장 크기의 검 한 자루를 만들었다.

전륭은 영력 검기에 공간이 찢어지는 것을 보더니 안색이 어두워져 외쳤다.

“유금신순(鎏金神盾)!”

쿵!

유금 전의는 하늘 높이 솟아올라 금오위의 앞쪽에 거대한 황금 방패를 형성했는데 이는 산보다 더 든든해 보였다.

슉!

그런데 임청봉은 전혀 개의치 않고 거대한 검을 휘둘렀고 황금색 방패와 부딪치자 무서운 검기가 폭발하였다. 이에 전륭의 표정이 한껏 일그러졌다.

곧 황금색 방패에 균열이 일더니 끝내 반으로 갈라졌다.

“망했어!”

전륭은 금오위가 큰 타격을 입을 거란 생각에 금세 사색이 되었다.

반면, 임청봉은 여전히 아무렇지 않게 영력 장검을 휘둘렀는데 저 멀리 하늘에서 갑자기 난폭한 뇌명이 울려 퍼졌다.

꽈르릉!

멀리서부터 날아온 검은색 벼락은 사정없이 임청봉을 공격했다.

이에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거대한 장검의 방향을 돌렸는데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영력 돌풍이 일어 다들 흠칫 놀라 고개를 들었다.

“누가 감히 내 앞길을 막는 건가?”

임청봉은 한기 어린 눈빛으로 점차 어두워지는 위쪽 하늘을 바라봤는데 검기가 깃든 그의 목소리에 주위의 구름이 뚫렸다.

그러다 뇌명이 점차 가까워지자 소년의 명쾌한 웃음소리가 전해졌다.

“대라천역, 구유궁의 구유위다.”

뇌명과 함께 전해진 명쾌한 웃음소리에 그 구역에서 싸우던 강자들은 바로 멈춰서 하늘을 바라봤고 금오위 때문에 사기가 뚝 떨어졌던 대라천역의 강자들은 정신을 번쩍 차렸다.

“구유위야!”

“무려 뇌마궁을 쓰러뜨린 구유궁에서 우리를 도우러 왔어.”

“구유위의 목진 통령의 목소리야. 그가 있으면 더는 임청봉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

* * *

대라천역의 강자들은 이내 화색이 되었다. 반년도 안 되는 사이, 놀라운 속도로 성장한 구유위는 대라천역 전체에 명성이 퍼졌고 이를 거느리는 새 통령인 목진도 점차 유명해졌다.

임청봉도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고개를 돌렸는데 저 멀리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엄청난 살기를 싣고 멀지 않은 곳에 멈춰 섰다.

검은색 갑옷을 입은 군대는 주위에 어두운 전의가 홍류처럼 들끓었고 난폭한 뇌명도 가끔 들렸다. 그 엄숙한 모습을 보면 아무나 감히 건드릴 수 없을 것 같았다.

“허허, 구유궁의 구유위라면 최근에 유명해진 대라천역의 군대가 아닌가?”

임청봉은 구유위를 잠시 쳐다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만검곡의 삼천 검시가 범상치 않다고 들었는데 역시 소문대로군.”

목진은 구유위의 위쪽에서 모습을 드러내더니 청색 도포를 입은 임청봉한테 말을 건넸다.

“자네가 바로 구유궁의 새 통령인 목진인가?”

임청봉은 목진을 노려보며 말을 이어갔다.

“자넨 대라천역의 혈응위를 쓰러뜨렸을 뿐만 아니라 뇌마종과의 대결에서도 승리했다고 들었네.”

이에 목진은 산만해진 금오위를 힐끗 쳐다보고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임 통령, 보아하니 전쟁은 그치지 않을 것 같은데 그쪽에서 알아서 떠나는 것이 어떻겠나?”

“허허, 저들을 구하기라도 할 것인가?”

임청봉은 히쭉 웃으며 손가락으로 등 뒤의 장검을 가볍게 튕겼다.

“자네 앞가림이나 잘하게.”

임청봉은 구유위의 전적을 전해 들어 잘 알고 있었지만 전혀 두렵지는 않았다. 백전역에서 만검곡의 수석 통령인 그를 따라갈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여 3천 검시가 전부 나서지 않았지만, 그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승리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임 통령의 말이 틀리진 않았네.”

목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임청봉은 백전역에서 실력이 좋다고 소문나 있었다. 그러니 입만 잘 놀린다고 그의 손에서 대라천역의 사람들을 구해낼 수 없었다.

이는 오직 실력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 일이었다.

이에 목진이 바로 정색하며 발을 힘껏 구르자 아래쪽에 서 있던 구유위가 동시에 고함을 지르며 뇌명이 섞인 구유 전의를 방출했다.

현재 구유 전의는 한 달 전보다 훨씬 강해졌다.

위잉.

이와 동시에, 임청봉도 옷깃을 휘날리자 검음이 울리며 검기 전의가 휘몰아쳐 그 주위에 돌풍을 일으켰는데 이는 천지를 반으로 가르고도 남을 정도로 강력했다.

“목진 통령, 사람을 구하고 싶으면 내 공격부터 받아내고 말하게!”

임청봉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하더니 두 손을 모아 신속하게 결인하였다.

“검의, 영검지련(靈劍之蓮)!”

슉!

웅장한 검기가 한데 모여 검련을 형성하더니 천천히 회전하며 피어났는데 주위의 공간에 미세하게 균열이 일었다.

조용히 움직이며 피어나는 검련의 위력은 엄청났으니, 임청봉은 목진을 상대로 바로 살수를 뒀다.

그가 목진을 바라보며 손가락을 튕기자 검련은 잔영을 남기며 신속하게 목진에게 향했다.

그러나 목진은 아무렇지도 않게 상대방의 공격을 보더니 인법을 바꿔 웅장한 구유 전의로 검은색 권인을 만들었다.

“구유 전의, 구유뢰권(九幽雷拳)!”

목진의 고함과 함께 뇌광이 번쩍이는 권인은 검련과 정면으로 맞섰다.

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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