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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461화 (460/1,000)

461화. 거장

쿵!

검기와 뇌광이 번쩍이는 검은색 전의가 부딪치자 공간이 한껏 일그러졌고 충격파가 휘몰아쳤다. 그러나 쌍방 모두 끄떡없이 제자리에 서 있었다.

아래쪽에 서 있던 구경꾼들은 금세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들 삼천 검시의 공격이 구유위한테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구유위는 혈응위와 싸울 때보다 더 강해진 것 같아.”

일부 강자들은 구유위의 실력이 이전과 달라졌음을 발견했다.

“구유위는 통령을 참 잘 둔 것 같아. 조봉이 통령이었을 땐 이런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잖아.”

멀지 않은 곳에 있던 금오위의 전륭 통령도 조금 복잡한 눈빛으로 임청봉과 싸우고 있는 목진을 바라봤다. 그 또한 목진이 군사를 제대로 거느리지 못할 거라고 여겼는데 그가 통령이 된 뒤로 일어난 일들을 보면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알 수 있었다.

더없이 평범했던 구유위는 이제 목진 덕분에 눈부시게 빛나기 시작했고 지금은 무려 만검곡의 삼천 검시를 상대할 실력까지 지니게 됐다.

“통령님, 우리가 나서지 않아도 될까요?”

뒤쪽에 서 있던 부하가 묻자 진륭이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임청봉은 절대 목진을 못 이기니까 큰 싸움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임청봉은 강하지만 목진을 쓰러뜨릴 정도는 아니었다. 더구나 삼천 검시가 전부 나선 것이 아니라 승산은 더 적었다.

역시나 전륭의 예상대로 임청봉은 자신의 공격을 쉽게 막아낸 구유위를 보더니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목진 통령은 듣던 대로 대단하군.”

“과찬이네.”

목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목진 통령이 나섰으니 오늘은 일단 금오위를 풀어주겠네. 다음에 백전역과 대라천역에서 제대로 싸울 때도 이렇게 태연하게 대처할 수 있길 바라네.”

말을 마친 임청봉은 사람들을 데리고 신속하게 물러났다.

이에 목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임청봉을 바라봤다. 그는 일전의 짤막한 대결을 통해 녀석이 절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님을 깨달았다.

“제법이군, 만검곡이 백전역의 3대 세력 중 하나가 될 만해.”

목진은 임청봉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다음 대결은 엄청난 결전이 될 것이다.

“목진 통령, 고맙네.”

그때 전륭이 금오위와 함께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

“대라천역의 사람인데 어찌 모른 척할 수 있겠나?”

유금왕은 대라천역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편이라 목진에게 엄청난 이득이 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구유궁과는 가까워질 것이다.

한편, 늘 엄숙하기만 하던 전륭은 미소를 지으며 목진을 바라봤다. 그는 여태껏 천재들을 수도 없이 봐왔지만 거만했던 이들과는 달리 목진은 겸손했다. 구유왕이 아낄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진 통령이 이리 왔으니 구유왕께서도 도착하셨겠지? 허허, 이번 결승전은 구유왕의 덕을 많이 봐야 할 것 같네.”

전륭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목진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구유왕은 먼저 3황을 뵈러 갔네.”

구유는 9왕 중 한 명이고 대라천역의 정예 역량이라 전쟁에 불참할 수 없었다.

이에 전륭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입을 열려고 하는데 갑자기 저 멀리 하늘에서 전의가 듬뿍 담긴 북소리가 들려왔다.

“백전역의 백전고(百戰鼓)일세!”

전륭은 바로 정색하며 말했다.

“왜 그러는가?”

“백전역에서 전쟁을 알리는 북소리네.”

목진이 어리둥절하여 묻자 전륭이 황급히 답했다.

“목진 통령, 얼른 백전성으로 갑시다.”

목진은 깜짝 놀랐다. 백전역에서 이렇게까지 빨리 결전을 시작하려고 할 줄 몰랐다. 그들은 바로 전륭 등과 함께 백전성으로 향했다.

두 갈래 홍류는 하늘을 가르며 달려 백전성 근처에 도착했는데 도성의 주위를 감쌌던 투명한 광막이 찢어지더니 그 속에서 수많은 사람이 벌떼처럼 날아올라 주위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리고 그 맞은편도 사람으로 가득 차 상당히 강력한 영력 파동을 내뿜었는데 그 위력에 천지의 영력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목진은 실력이 엄청난 두 세력 때문에 곧 무너질 것 같은 하늘을 보더니 깊게 숨을 내쉬었다. 곧 일어날 전쟁은 그 규모가 실로 엄청났다.

양쪽의 부대는 백전역 밖에 모였는데 엄청난 인원수에 햇빛마저 가려져 주위가 상당히 어두워졌고 수많은 영력이 하늘 높이 솟아올라 공기마저 흐름을 멈췄다.

두 거물의 대결로 전쟁이 시작하면 하늘이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목진은 구유위와 함께 대라천역에 합류했고 백전성 위쪽에 가득 모인 사람들을 보고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그는 백전역의 실력을 실감하였다.

저들은 비록 대라천역 같은 정예 세력보다는 못하였지만 북창령원에서 놓고 보면 최정예급에 속했다.

“저들과 싸워 이기려면 쉽지 않겠어.”

목진은 백전역을 쓰러뜨리려면 아무리 대라천역이라도 일정한 대가를 치러야 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싸움은 그렇게 쉽게 일어나지 않아.”

그때 당빙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왜죠?”

“백전역은 천현전이 없었다면 감히 대라천역에 도전장을 내밀지 못했을 거야. 저들은 기세등등해 보이지만 누구보다 겁이 많은 사람들이야.”

목진이 어리둥절하여 묻자 당빙이 이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대라천역은 백전역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전력을 다할 텐데 곧 있을 대수렵전 때문에 함부로 나서지 않는 거야. 이는 백전역도 마찬가지야. 판을 크게 벌여봐야 저들한테 좋을 게 하나도 없어. 그래서 쌍방 모두 목숨을 내걸고 싸울 마음이 없으니 쉽게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한 거야.”

목진은 당빙이 자신만만하게 한 말에 괜히 코를 긁적였다.

“그럼 백전역에서 감히 대라천역을 상대로 연기를 하고 있단 말인가요?”

“천현전과 거래를 했겠지.”

당빙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목숨을 내걸고 싸우지는 않겠지만 오늘 일은 쉽게 끝나지 않을 거야. 다들 대라천역과 백전역의 싸움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는걸?”

이에 목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려 할 때 백전역 가장 앞쪽에 세 사람이 나타났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다들 경외의 눈빛을 보냈다.

그중에 청색 도포를 입은 노인이 엄숙한 표정으로 칼집을 멘 채 서 있었는데 아무도 검기가 흐르는 것 같은 그의 눈을 직시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검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은 삐쩍 마른 것이 살점 하나 없을 것 같았고, 음산한 기운을 풍기는 것이 엄청 불쾌했다.

마지막으로 나머지 한 사람은 중년 남자로 가장 오른쪽에 서 있었는데 수수하게 생긴 얼굴과 달리 그윽한 눈이 은하수가 깃든 것처럼 신비로웠다.

그들의 등장으로 백전역의 사기는 순식간에 폭등하였고 다들 하늘이 떠나가라 환호했다.

“저들은 백전역의 3대 거장이야. 그중, 청색 도포를 입은 노인은 만검곡의 곡주 장검 노인(藏劍老人)으로 실력이 7품 지존에 이르렀고. 삐쩍 마른 노인은 마시종의 우두머리 시산 노귀(屍山老鬼), 나머지 한 명은 대비천의 창시인 마비지존(魔悲至尊)으로 하위면 출신이지만 실력은 세 사람 중 최강이야.”

당빙은 한껏 정색하며 멀지 않은 곳에 나타난 세 사람을 바라봤다.

이에 목진도 대머리 중년 남자를 힐끗 쳐다봤다. 하위면은 대천세계보다 뒤처지긴 하지만 위면의 차이를 뚫고 이곳에 온 사람 중 강자가 아닌 사람은 없었다. 하위면 출신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 바로 염제 무조였다.

마비지존 역시 하위면 출신으로 이곳에서 이 정도 성과를 냈다는 것은 그 실력이 엄청나다는 의미였다.

세 사람 모두 대라천역의 3황 못지않은 실력자였다.

“허허, 3황 친구들은 끝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참인가?”

백전역의 거장 중, 등에 칼집을 멘 노인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허허, 곧 싸울 텐데 친구란 말은 부당하지 않나?”

그때 대라천역의 3황이 나타났고 천취왕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에 대라천역의 사기도 폭등하였다.

“이번 일은 대라천역에서 너무 예민했던 건 아닌가? 백전역에서는 변두리에 있는 도성 몇 군데를 빼앗았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나서다니 말일세.”

삐쩍 마른 노인이 피식 웃으며 한 말에 영동황이 무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대라천역의 명성에 누가 된다면 우리는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무시하지 않는다네. 백전역에서 겁 없이 덤볐으면 당연히 후과를 감당해야지 않겠나?”

이들의 대화에 다들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대라천역이 아무리 유명해도 백전역을 쉽게 쓰러뜨릴 수는 없을 걸세.”

만검곡의 장검 노인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또한, 대라천역의 역주가 나서지 않으면 3황만으로 우리 백전역을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할 텐데 얼른 역주를 모셔오지 그러나?”

이에 천취황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상대방을 바라봤다.

“내가 그렇게까지 보고 싶었던 것이냐?”

그때 나지막한 소리와 함께 무서운 위압감이 주위 만 리 범위를 감쌌다. 이에 다들 고개를 돌렸는데 3황 앞쪽에 눈부신 빛이 모이더니 황금 왕좌가 나타났다. 그 위에는 빛으로 온몸을 휘감은 사람이 조용히 앉아있었는데 아무도 그를 감히 직시하지 못했다.

“역주님을 환영합니다.”

3황은 흠칫 놀랐지만 바로 예를 갖춰 인사를 올렸고 대라천역의 강자들도 잇따라 인사를 올렸다.

반면, 백전역 사람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백전역의 거장 세 명이 함께 덤빈들 절대 대라천역의 신비로운 역주의 상대는 안 될 것이었다.

이에 장검 노인의 안색의 안색이 조금 어두웠다. 그는 왕좌에 앉아있는 역주의 차가운 눈빛에 소름이 쫙 끼쳤다.

그는 이미 7급 지존경에 이르렀지만 지지존과 비교하면 천지 차이었다.

“허허, 대라 역주, 오랜만이군.”

그런데 그때, 백전역쪽에서도 갑자기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백전역 위쪽 공간이 갈라지며 청색 도포를 입은 중년 남자가 걸어 나왔는데 그윽한 눈이 엄청 아름다웠다.

그는 대라천역의 역주가 형성한 위압감에도 끄떡없었다.

장검 노인 등은 청색 도포를 입은 중년 남자를 보고는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 사람은 천현전의 전주 유천도야!”

당빙은 한껏 정색하며 기세등등하게 나타난 유천도를 바라보며 말했다.

“천현전의 유천도라…….”

목진은 순간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유천도라면 유명의 아버지일 것인데 아들이 목진 때문에 지하에 파묻힌 것을 알면 아마 그를 죽이려 들지도 모른다.

“유천도, 드디어 나타났군.”

역주는 유천도가 나타날 것을 미리 알기라도 한 듯 전혀 놀라지 않았다.

이에 유천도는 미소를 지으며 역주를 훑어보더니 바로 미간을 찌푸렸다. 대라천역의 역주는 중상을 입어 몸을 추스르느라 사람들 앞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몸이 가장 허약한 시기에 이곳에 나타난 것이 이상했다.

센 척이라도 하는 건가?

이러한 생각에 유천도가 손을 가볍게 들자 천지의 영력이 미친 듯이 몰려와 지극히 순수한 영력으로 만들어진 산맥이 형성되었다.

그것은 평범해 보였으나 산맥 천만 개를 겹겹이 쌓은 것만큼 무거워 아무리 9급 지존이라도 견디지 못할 것이다.

이는 지극히 순수한 영력으로 만들어진 천지법상으로 지지존에 이른 수련자라야 만들어낼 수 있는데 실력이 이 정도에 이르면 손가락을 가볍게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천지의 영력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었다.

“대라 역주, 내가 선물을 준비했네.”

유천도가 옷깃을 가볍게 휘날리자 산맥이 사정없이 대라 역주에게 향했다. 역주가 겨우 버티고 있는지 확인하려면 이보다 좋은 방법은 없었다.

만약 그의 예상대로 역주의 몸이 허약해진 것이라면 이번 기회에 대라천역을 없앨 좋은 기회였다.

그는 대라천역의 역주를 끌어내려고 백전역을 꼬드긴 것이다.

쿵!

대라천역의 강자들은 순식간에 사색이 되어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이중, 역주를 제외하면 실력이 지지존에 이른 유천도의 공격을 받아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여 다들 왕좌에 앉아있는 역주만 바라봤고 목진도 손에 땀을 쥔 채 잔뜩 긴장했다. 전쟁이 일어나기도 전에 대라천역이 무너진다면 그보다 우스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때 역주가 고개를 들며 가볍게 숨을 들이켜자 천지가 진동하며 사정없이 내려앉던 영력 산맥은 한 줄기 빛이 되어 역주의 입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은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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