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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462화 (461/1,000)

462화. 내기

사람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왕좌에 앉아있는 빛의 그림자를 바라봤다. 아무도 그가 유천도의 엄청난 공격을 꿀꺽 삼켜버릴 줄은 몰랐다.

목진도 지지존과 지존 사이의 엄청난 차이에 몰래 혀를 내둘렀다. 대라천역 역주가 아니었다면 유천도의 공격은 이들한테 큰 타격을 입혔을 것이다. 실력이 강한 군대와 전진사가 있지 않고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러한 광경에 유천도도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비록 전력을 다한 공격은 아니었으나 원하던 바는 이뤘기 때문이다.

그의 공격을 이토록 쉽게 받아내고도 영력이 무질서해지지 않은 것을 보면 대라천역 역주의 상태는 좋은 게 틀림없었다.

“이럴 수가…….”

유천도는 대라천역의 역주 몸속에 잠복하고 있었던 상처가 지금쯤이면 다시 돋아나 몸이 아주 허약할 거라는 정보를 입수했는데 지금 보니 사실이 아닌 듯했다.

“유 종주가 본좌와 싸우고 싶은가 보지?”

그때 왕좌에 앉아있던 역주가 입을 열자 주위의 공간이 일그러졌다.

“허허, 난 그저 역주의 실력이 늘었는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네.”

유천도는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말하고는 전장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대라 역주가 이 전쟁에 나서면 안 될 것 같은데. 당신이 정녕 나선다면 백전역과의 사이를 봐서라도 천현전은 절대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걸세.”

“그럼 이번 기회에 천현전이 얼마나 강한지 봐야겠군.”

대라 역주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는 현천전이 끼어든다고 해서 겁먹을 위인이 아니었다. 이에 유천도는 히쭉 웃으며 역주를 노려봤다.

“지금 형세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왜 그런 말은 하나? 내가 당신의 결정을 좌우할 수는 없겠지만 꼼짝 못 하게 하는 것쯤은 쉽지 않을까? 또한, 나 역시 대라천역과 백전역이 혈투를 벌이는 꼴을 보고 싶군.”

대라역주는 순간 눈빛이 흔들리더니 금세 미소를 지었다.

“군소리 말고 바로 원하는 걸 제시하게.”

“대라 역주는 역시 호탕하군. 그런데 그건 오늘 대전 상대인 백전역의 수령 세 명한테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

유천도의 말에 만검곡의 장검 노인이 히쭉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는 목숨을 걸 생각이 없고 대라천역은 빈손으로 돌아갈 수 없으니 내기를 할까 합니다. 그리하면 피해를 최대한으로 줄이고 우열도 가릴 수 있지 않을까요? 결과가 갈리면 패자가 승자에게 지존영액 백만 방울과 도성 천 군데를 주는 것이 어떤가요?”

“지존영액 백만 방울에 도성 천 군데라…….”

사람들은 화들짝 놀랐고 3황마저도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대라천역에서 지존영액 백만 방울을 내줄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건 절대 적지 않은 양이었다.

그리고 도성 천 군데는 아무리 천라대륙의 정예 세력인 대라천역이라도 움찔할 만한 숫자였다.

목진도 몰래 혀를 내둘렀다. 구유궁이 점령한 뇌마종의 모든 재산을 합쳐도 기껏해야 지존영액 20만 방울밖에 안 되는데 백전역은 내기에 백만 방울이나 걸었으니 엄청난 패기였다.

3황을 포함해 다들 역주의 결정을 기다렸다. 이에 대라 역주는 잠시 멈칫하더니 여전히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

“대결은 어떻게 진행할 것이냐?”

“어려울 건 없습니다.”

장검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황급, 왕급, 통령급 대결로 세 번에 나눠 대결을 펼치려 합니다. 각자 황, 왕, 통령을 각각 한 사람씩 파견하여 싸우게 한 뒤, 승리를 더 많이 거둔 쪽이 승리하는 거죠.”

“이렇게까지 번거롭게 할 필요가 있나? 당신 셋과 우리 셋이 싸우면 그게 더 쉽지 않겠나? 혹시 우리를 이길 자신이 없어서 그러는 건가?”

“허허, 그건 아니고 후배들한테도 기회를 줘야 하지 않겠나?”

장검 노인이 히쭉 웃으며 말했다. 이에 천취황이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대라 역주를 바라봤다. 해당 방식은 변수가 많아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몰랐다.

그때 역주가 대라천역 사람들을 쓰윽 훑더니 결국 결정을 내렸다.

“좋다. 너희가 제시한 내기를 받아들이겠다.”

“역주께서는 역시 패기가 넘치시는군요.”

“백전역에서 뭘 믿고 그러는지 보자꾸나.”

장검 노인이 아부를 떨자 역주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백전역의 황급 강자는 저로 할게요.”

조용히 서 있던 대비천의 우두머리인 마비지존이 갑자기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 말에 장검 노인과 시산노귀는 조용히 웃었다. 그들은 그가 나설 것을 어느 정도 예상한 듯했다.

“역시나 마비지존이군.”

대머리 사내가 나서자 당빙의 안색이 점차 어두워졌다. 백전역의 3대 거장 중, 가장 겸손한 마비지존은 실력이 제일 강했다.

이에 목진은 인정하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영력 파동으로 보면 마비지존은 절대 상대하기 쉬운 사람이 아니었다.

잇따라 장검 노인이 손을 휘두르자 뒤쪽 무리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는데 시체 썩은 냄새를 풍기는 그는 온몸에 검은색 붕대를 감았고 그 표면에는 괴이한 부적이 적혀 있었다.

녀석의 출현에 다들 화들짝 놀랐다.

“저 사람은…… 마시종의 시령왕(屍靈王)이잖아! 사라진 지 몇 년은 되었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나타나다니…… .”

당빙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시령왕이라…… .”

“시령왕은 마시종의 대장로로 실력이 시산 노인 다음으로 강하다고 들었는데 몇 년 전에 실종해 죽은 줄로만 알았어.”

당빙의 말에 목진도 미간을 찌푸렸다. 시령왕은 뭔지 모를 괴이한 파동을 풍겼다.

“백전역에서 통령급 강자로 누굴 파견할까요?”

목진은 황급과 왕급 강자보다 통령급 강자에 더 관심이 갔다. 통령급이야말로 그가 상대할 수 있는 등급이었다.

“백전역에서는 아마 최강 통령 3인 중에서 고를 거야. 각각 만검곡의 임청봉, 마시종의 미묵(墨默), 대비천의 진비(秦碑)로 임청봉이 가장 유명하고 미묵은 제일 독하며 진비는 엄청 겸손한 사람이야.”

당빙의 말에 목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기대는 하지 마. 대라천역에서는 아마 너를 내세우지는 않을 거야.”

당빙은 미소를 지으며 목진을 바라봤다.

“네 기를 꺾으려고 그러는 게 아니야. 대라천역에 머무른 시간만 봐도 넌 서청과 주악보다 훨씬 짧잖아? 네 성장 속도가 비록 빠르긴 하지만 사람들은 이곳에 오래 머무른 저들을 믿을 거야. 역주도 마찬가지일 거고…… .”

이에 목진이 머쓱하게 콧등을 쓸어내렸다.

“주악과 서청도 충분히 강하니까 저들이 출전해도 불만은 전혀 없어요. 난 지켜만 보면 되니까 오히려 홀가분하고 좋은걸요?”

“그렇게 생각하니 다행이야. 우린 네가 저들 못지않게 강하다는 걸 잘 알고 있어.”

당빙이 생긋 웃으며 말했다. 목진은 어깨를 들썩이며 고개를 들었는데 장검 노인이 다시 손을 휘두르자 백전역에서 나설 통령급 강자 후보 세 명이 나타났다.

그중 한 사람은 목진이 일전에 마주쳤던 임청봉이었고 양측에 검은색 옷을 입은 미묵과 대머리에 검푸른 도포를 입은 야윈 사내 진비가 서 있었다.

잇따라 장검 노인의 손짓에 임청봉과 미묵은 입을 삐쭉 내밀며 뒤로 물러났다.

통령급 강자는 진비로 정해졌다.

“내 예측대로 흘러가고 있어.”

당빙은 다시 미간을 찌푸렸다. 명성으로 보면 대비천은 백전역의 3대 세력에서 최하위인데 실제로 상대하기에는 가장 어려운 존재였다.

“허허, 역주님, 백전역에서는 저들 셋을 내세우려고 하는데 그쪽에서는 어떻게 할 건가요?”

장검 노인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이에 다들 고개를 돌리자 대라 역주는 왕좌에 느긋하게 앉아 천천히 말을 내뱉었다.

“수황.”

이에 눈을 감고 있던 수황이 눈을 번쩍 뜨더니 멀리 떨어진 마비지존을 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라천역에서는 실력을 가늠할 수 없는 수황을 내세울 작정인 듯했다.

“수라왕.”

대라 역주의 두 번째 선택은 전혀 놀랍지 않았다. 그는 9왕 중 실력이 가장 강한 사람이었다.

마지막으로 역주가 머뭇거리자 다들 서청과 주악한테 눈길을 돌렸는데 정작 두 사람은 태연하게 서 있기만 했다.

그런데 역주는 손으로 왕좌를 가볍게 치며 서청과 주악을 바라보다 눈을 감고 있는 목진을 발견했다.

“목진.”

이에 구유를 포함하여 다들 화들짝 놀랐다. 역주께서 왜 대라천역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신인을 출전시키려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목진.”

역주의 말에 대라천역에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다들 수군대며 잔뜩 놀란 표정으로 목진을 바라봤다.

서청과 주악도 멈칫하여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감히 역주님의 결정을 반대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목진을 믿는 건 아니었다. 비록 오천과의 대결을 통해 목진이 상대하기 쉬운 사람이 아니란 걸 알게 됐지만 구유 전의의 힘을 빌렸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온전히 통령 본인의 실력에 의지해서 싸워야만 했다.

목진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그는 괴상한 표정을 지으며 당빙을 바라봤고 그녀 역시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서 있었다.

당빙은 역주께서 목진을 출전시킬 줄 전혀 생각지 못했다.

대라천역 사람들은 목진의 출전이 썩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감히 위험천만한 대라역주의 뜻을 굽힐 수는 없었다.

그때 구유가 목진을 힐끗 보며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역주님, 목진은 아직 경력이 부족한데 무턱대고 출전시키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 아닐까요?”

앞으로 펼쳐질 세 차례의 대결은 엄청 중요해 출전할 세 사람에게 부여된 압박감도 엄청날 것이다. 대결에서 이기면 그만이지만 일단 패배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비난할지 눈에 선했다.

구유는 이번 전쟁에서 목진을 널리 알리고 싶었지만 그건 소년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전제하에서였다.

그런데 대라 역주는 손을 휘익 저으며 미소를 지었다.

“괜찮다, 목진으로 할 것이다.”

이에 구유는 더는 뭐라 하지 않았지만 역주께서 왜 목진을 이렇게까지 중히 여기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역주라면 목진 정도의 실력을 갖춘 이에게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역주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대라천역에서 역주의 말은 절대적인 권리나 마찬가지라 아무도 감히 반대하지 못했다.

통령급 대결은 결국 목진이 출전하기로 했다. 대라천역 사람들은 처음 두 차례의 대결에서 승리하길 바랐다. 그럼 목진이 패배하더라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목진도 입을 삐쭉 내밀며 왕좌 쪽을 바라봤다. 역주께서 갑자기 왜 이러시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다.

“허허, 대라 역주께서 사람을 정한 것 같군요.”

장검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고는 경계하는 듯한 눈빛으로 수황을 쳐다봤다. 그 또한 수황의 실력이 3황 중 제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잇따라 그는 갑옷을 입은 채 무덤덤하게 서 있는 수라왕을 바라봤는데 눈에서 풍기는 엄청난 살기에 소름이 쫙 끼쳤다.

대라천역 9왕 중에서 수라왕의 실력이 제일 강했고 황급 강자가 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후보였다.

그러다 그는 목진한테 눈길을 돌리고는 멈칫하였다. 2급 지존밖에 안 되다니, 대라천역의 통령은 이것밖에 안 된단 말인가?

그마저도 역주의 선택에 조금 의아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씨익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사람을 정했으니 순서는 역주께서 정하시죠.”

이에 역주께서 수황을 힐끗거리자 수황은 느긋하게 나서며 입을 열었다.

“그럼 황급부터 대결을 진행하겠네.”

말을 마친 수황이 바로 허공에 날아올라 마비지존을 바라봤다.

“마비지존은 위면의 장애를 뚫고 올라온 천재라고 들었는데 이렇게 힘을 겨룰 수 있게 되어 기분이 좋군.”

수황의 말에 마비지존이 미소를 짓자 갑자기 제자리에서 사라지더니 수황의 앞쪽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몽 형의 대몽신경(大夢神經) 역시 몽롱한 상태에서 수련하는 아주 신기한 수련이라고 들었는데 오늘 직접 보겠군.”

마비지존은 그윽한 눈으로 수황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어려운 일은 아니지.”

수황이 더없이 예리해진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며 옷깃을 휘날리자 파랗던 하늘은 순간 일그러지며 하늘을 부술 정도로 강력한 영력 위압감이 형성되었다.

퍽! 퍽!

이에 구천의 모든 구름이 흩어졌고 공간에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그때 수황이 주먹을 쥐자 아기 뱀처럼 생긴 공간 균열이 수황의 수중에 나타났는데 그 속에 깃든 힘이 엄청났다.

이는 공간의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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