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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464화 (463/1,000)

464화. 시골 인형(屍骨娃娃)

“이럴 수가…….”

당빙은 안색이 어두워진 채 중상을 입고 물러난 수라왕을 보며 중얼거렸다.

목진도 표정이 일그러진 채 먼 하늘을 쳐다봤는데 온몸에 검은색 붕대를 휘감은 시령왕 주위에서 이상한 파동이 느껴졌다.

한편, 두 사람은 대결 때문에 실제 실력이 그대로 드러났는데 전부 7급 지존이었다.

두 사람 모두 왕급 존재로 최정예였다. 이 정도 실력이면 황급 강자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하여 똑같은 7급 지존 사이의 대결은 누구 하나 특수한 수단 없이 무승부로 끝날 수도 있었는데 한순간에 변고가 생겼다.

두 사람 사이에 공격이 몇 번 오가지도 않았는데 시령왕이 갑자기 물러나며 옷깃을 휘날리자 삐쩍 마른 검은색 시체가 그 옆에 나타났다.

녀석은 살점 하나 없어 보일 정도로 말랐고 온몸에는 검은색 부적이 그려져 있었으며 아주 불쾌한 파동을 풍겼다. 이는 마시종의 필살기인 마시였다.

마시종의 강자는 시체를 키우는 능력이 있어서 강자의 시체를 잘만 조종하면 싸움에서 큰 이득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 눈앞에 나타난 시체가 바로 시령왕의 본명 마시였다.

잇따라 시령왕의 몸에 감은 검은색 붕대가 찢어지자 그의 육신 중 대부분이 몸에서 이탈해 본명 마시한테 붙었는데 너무 섬뜩해서 다들 소름이 끼쳤다.

시령왕의 육신이 본명 마시와 융합을 마치자 녀석은 바로 수라왕한테 다가가더니 자폭했다.

본명 마시는 시령왕의 피와 살로 융합해 실력이 7급 지존에 이르렀기에 천취황 등이라도 공격을 피하기 바빴다.

하여 수라왕은 최선을 다해 막았지만 결국 중상을 입고 패배했다.

사람들은 너무 갑작스럽게 끝난 대결에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다들 시령왕이 이렇게 물불 안 가릴 줄은 몰랐다.

본명 마시는 수련자 본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이를 폭발시키면 수련자도 큰 타격을 입는다. 게다가 녀석을 수련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어려워 이번 대결에서 이긴다고 한들 시령왕한테 절대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다들 시령왕이 미쳤다고 하는 것이었다.

승리하기 위해 치른 대가가 너무 컸다.

후우.

목진은 깊게 숨을 들이켜며 시령왕을 쳐다봤는데 검은색 붕대 사이로 피가 뚝뚝 떨어졌고 주위의 영력 파동이 상당히 무질서해졌다. 본명 마시의 자폭 때문에 시령왕도 큰 타격을 입은 것이 분명했다.

“미친놈…….”

아마 다들 목진과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슉.

천취황이 다가가 중상을 입은 수라왕을 부축하며 한기 어린 눈빛으로 시령왕을 쳐다봤다.

“참 잔인하군. 그런데 승리하기 위해 치른 대가가 너무 과하단 생각은 들지 않느냐?”

시령왕은 차가운 눈빛으로 상대편을 보며 씨익 웃더니 파르르 떠는 손으로 간신히 사람 모양을 한 인형을 꺼냈는데 뼈로 만든 녀석은 온몸에 균열이 일었다.

“시골 인형이라…….”

천취황은 그제야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시골 인형은 엄청나게 기이한 물건으로 주인을 대신해 치명적인 피해를 감당한다고 들었는데 이를 만드는 과정이 상당히 잔인해 지닌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시령왕한테 이토록 괴이한 보물이 있다니. 하긴, 시골 인형이 치명적인 피해를 대신 막아줬으니 시령왕한테는 큰 타격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이렇게 미쳐 날뛰는 데는 역시 이유가 있었다.

영동황, 구유 등도 시골 인형을 보더니 안색이 어두워졌다. 백전역에서는 시령왕의 상황을 잘 알고 오늘 대결을 하자고 했던 것이었다.

수황만 아니었으면 아마 대라천역은 이미 패배했을 것이었다.

“허허, 두 번째 대결은 백전역에서 승리했군요.”

장검 노인이 히쭉 웃으며 말했다.

대라천역 사람들은 언짢은 듯 콧방귀를 뀌었고 천취황은 중상을 입고 혼절한 수라왕을 다른 사람한테 맡기고 왕좌에 앉아있는 역주를 바라봤다.

“허허, 각자 한 번씩 승리했군.”

대라 역주의 주위를 감싼 빛이 조금씩 떨리며 웃음소리가 들렸다.

“백전역에서 준비를 제대로 하였구나.”

“허허, 그건 아니네. 백전역은 실력이 대라천역보다 못하니 어떻게라도 승리하고 싶은 마음에 저런 것이라네.”

여태껏 조용히 서 있기만 하던 유천도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제 장검 노인 등은 대라 역주가 그렇게까지 두렵지 않았다.

“대라 역주님, 두 차례 대결에서 각자 한 번씩 패해 무승부가 났으니 지금 여기서 물러나시면 세 번째 대결은 진행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수라왕이 본의 아니게 패배한 탓에 세 번째 대결이 제일 중요한 싸움이 되었다. 백전역에서는 통령 중 제일 겸손하지만 실력은 기고만장한 임청봉마저 인정하는 진비를 내세웠다. 심지어 사람들은 진비가 북계 젊은이 중에서도 정예에 속할 거라고 수군거렸다.

반면, 대라천역에서는 실력이 2급 지존경 밖에 안 되는 어린 소년을 출전시켰다. 목진이 비록 최근에 유명해졌지만 진비와 비교하면 천지 차이라 백전역 사람들은 마지막 대결에서 반드시 승리할 거라고 여겼다.

대라천역에서 사람들을 잔뜩 거느리고 백전역까지 왔는데 내기에서 패배하면 앞으로 그들은 북계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대라천역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구유위 앞쪽에 서 있는 젊은이를 유심히 쳐다봤다.

대라천역 사람들은 두 차례의 대결에서 승리하면 마지막 대결은 패해도 괜찮다고 여겼는데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가고 있었다. 다들 기대하지 않던 대결이 이제 승패를 가리는 관건이 되었다.

역시 변하고 또 변하는 것이 세상사였다.

한편, 사람들의 의심쩍은 눈길에 목진은 어깨를 들썩이며 대라 역주를 바라봤다. 목진의 행보는 결국 그한테 달렸다.

잇따라 다들 대라 역주한테 눈길을 돌렸는데 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역시 내가 예상했던 대로군.”

대라 역주의 말에 다들 흠칫 놀랐다. 역주께서 형세가 이렇게 될 줄 미리 알았단 말인가? 그런데도 가장 중요한 대결에 목진을 출전시켰다니, 소년을 이토록 믿는단 말인가!

그때 대라 역주가 목진을 바라보며 물었다.

“세 번째 대결은 대라천역의 명성이 달린 중요한 싸움인데 이길 자신이 있느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목진은 역주가 자신처럼 미약한 존재한테 관심을 기울이는지 궁금했지만, 공을 세울 수 있는 일을 마다할 리 없었다.

“좋다.”

대라 역주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럼 세 번째 대결은 네가 나가거라.”

대라천역 사람들은 역주가 생각을 바꾸지 않자 씁쓸하게 웃기만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목진에게 기대를 거는 수밖에 없었다.

“목진, 힘내!”

당빙이 주먹을 꼭 쥔 채 힘껏 외쳤다. 그녀는 세 번째 대결의 결과를 막론하고 끝까지 목진을 지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에 목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려는데 구유의 걱정 어린 눈빛이 느껴졌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며 곧바로 하늘로 날아올랐다.

“대라천역, 구유궁의 목진이네!”

소년의 맹랑한 소리에 백전역 사람들은 수군대기 시작했다.

소년은 실력이 2급 지존밖에 안 되는데 이는 백전역 통령 중에서 겨우 봐줄 만한 실력이었지만 진비나 임청봉 등 정예들과는 너무 크게 차이가 났다.

“대라천역에 이렇게까지 사람이 없단 말인가? 어린 녀석이 뭘 안다고 출전시킨 건가? 패배를 인정하고 싶으면 말로 하는 것이 어떤가?”

“하하, 그러게 말일세.”

* * *

정작 소년은 아무렇지 않게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을 잘 모르는 사람이 함부로 입을 놀린다고 해서 화가 나지 않았다.

“흥, 또 저 녀석이군!”

백전역 측에 서 있던 진천강이 음침한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봤고 그 뒤에 서 있던 진릉도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녀석이 겁도 없이 감히 진비와 싸우려 하다니!”

진릉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는 목진이 전의를 자신보다 더 잘 장악해서 일전의 대결에서 이겼다고 여겼다. 그런데 곧 일어날 대결에서는 군대의 힘을 빌릴 수 없는데도 목진은 감히 싸우겠다고 나섰다. 진릉은 소년의 근거 없는 자신감에 헛웃음이 나왔다.

게다가 그는 대라천역의 역주께서 왜 이토록 중요한 대결을 어린 녀석한테 맡긴 건지 이해되지 않았다.

“녀석은 진비의 진정한 실력에 분명 까무러칠 거야.”

진릉은 한시라도 빨리 목진의 낭패를 당한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때 백전역 측 앞쪽에 서 있던 진비도 고개를 들고 목진을 바라봤는데 다른 사람들과 달리 소년을 전혀 멸시하지 않았다. 그는 목진이 통령이 된 데에는 사람들이 모르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여겼다.

그는 목진이 겉으로 부족해 보이거나 그럴싸해 보여도 여전히 전력을 다할 것이다. 그런 한결같은 태도 덕분에 그는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

맹수는 사냥감이 아무리 토끼라도 전력을 다해야 한다.

“진비, 마지막 대결은 너한테 맡길게.”

장검 노인이 진지하여 말했다. 진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목진 앞에 나타났다.

“백전역 대비천의 진비일세.”

목진은 영력을 끌어올리지 않고 무덤덤하게 서 있는 사내가 풍기는 위압감에 그가 뇌마종의 진릉보다 더 강한 사람임을 눈치챘다.

진비는 적어도 3급 지존은 될 것이다.

“2급 지존의 실력으로 대라 역주님의 눈에 든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테니 잘 부탁하네.”

진비는 목진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간결하게 말하고는 바로 발을 가볍게 굴렀다. 그러자 뒤쪽 공간이 일그러지며 웅장한 지존해가 나타나 엄청난 영력 파동을 발산했다. 3급 지존의 정상을 뛰어넘는 것으로 보면 그는 곧 4급 지존에 이를 것이 분명했다. 이제 조금만 더 수련하면 진비는 진정한 4급 지존이 될 것이다.

대라천역 사람들은 진비의 영력 파동에 안색이 어두워졌고 서청과 주악도 한껏 정색하며 그들을 바라봤다. 그들도 3급 지존이었는데 진비와 비교하면 한참 뒤처졌다. 그들이 나섰다고 해도 대결에서 이기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에 서청과 주악은 마주 보며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진비는 역시 소문대로 통령 중에서 최강이었다.

“곧 4급 지존에 이르는 실력이라…….”

목진도 이내 정색하며 진비를 바라봤다. 이는 확실히 그가 본 통령 중 실력이 가장 강한 사람이었다.

치칙.

그때 목진이 주먹을 꽉 쥐자 온몸이 빠르게 뇌화되었고 가슴팍에 뇌문 아홉 개가 나타났다.

뇌신체를 한껏 끌어올린 목진이 발을 힘껏 구르자 공간이 일그러지며 사람들 앞에서 사라졌다.

이에 진비는 눈가를 파르르 떨며 한 손으로 결인해 뒤쪽 어딘가를 힘껏 후려쳤고 웅장하기 그지없는 영력이 따라 요동쳤다.

쿵!

진비의 뒤쪽 공간에 갑자기 균열이 일더니 용의 그림자가 신속하게 목진으로 변해 진비의 머리를 공격했는데 마침 진비의 인법이 날아왔다.

두 사람의 공격이 부딪치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난폭한 영력 충격파가 휘몰아쳐 목진은 뒤로 튕겨 나갔다. 그는 간신히 몸을 추슬렀는데 주먹이 얼얼했다.

반면, 진비는 뒤로 몇 보밖에 물러나지 않았고 목진의 용등술을 이용한 공격은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2급 지존의 실력으로 짧은 거리에서 공간을 가를 수 있다니, 제법이군.”

진비가 목진을 노려보며 무덤덤하게 말하자 소년은 조용히 웃기만 했다.

“그런데 이제 더는 기회를 주지 못할 것 같네.”

진비도 피식 웃으며 옷깃을 휘날려 웅장한 영력을 끌어모았다.

그는 하늘 높이 날아올라 허공에 손을 가볍게 맞닿았는데 손바닥에 석비처럼 생긴 빛의 무늬가 나타났다.

쿵!

진비가 손을 내리치자 눈부신 영력은 영력 거수를 만들었고 손바닥의 석비 무적에서는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다.

“대비신수(大碑神手)!”

진비의 나지막한 소리와 함께 영력 거수는 목진을 향해 돌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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