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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468화 (467/1,000)

468화. 대라 역주의 본모습

“이제라도 좋은 사람이 되어볼까 하여 이러는 것인데 무슨 의견이라도 있는 가?”

대라 역주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유천도는 깊게 숨을 고르고 나서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 두 사람은 우리 아들이 경매에서 얻은 보물을 빼앗았을 뿐만 아니라 지지존까지 불러 그를 봉인해 영력을 전부 잃게 하였네. 나 유천도가 오늘, 이 원수를 갚지 못하면 앞으로 북계에서 어떻게 살아가란 말인가?”

“참나, 뚫린 입이라도 함부로 놀리는 건 아니죠. 유명이 우리 수중의 보물이 탐나 장로와 함께 쫓아와 우리를 죽이고 보물을 빼앗으려 한 겁니다.”

대라 역주의 결연한 태도에 목진은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유명과 장로를 봉인한 사람은 무경의 안주이신인데 천현전에서 정말 원수를 갚고 싶으면 무경을 찾아가야 하는 건 아닌지요!”

목진의 말에 다들 화들짝 놀랐고, 유천도와 대라 역주의 영력 파동도 격하게 떨렸다. 무경의 안주인이란 말만으로도 이들한테 엄청난 충격이었다.

대라천역과 천현전이 북계에서 정예 세력에 속하긴 하지만 대천세계의 진정한 패주인 무경과 비교하면 새 발의 피나 다름없었다.

유천도가 아무리 담대해도 절대 무경에 쳐들어가 그 안주인과 시시비비를 따질 수는 없을 것이다.

목진도 이를 잘 알아 감히 무경을 입에 올린 것이었다.

그때 유천도가 음산한 눈빛으로 목진을 쳐다보며 말했다.

“너야말로 뚫린 입이라도 함부로 놀리는구나. 너 따위가 뭐라고 무경의 안주인께서 나섰단 말이냐! 이보다 우스울 수 없구나!”

유천도는 말은 이렇게 했지만 저도 모르게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유명을 봉인한 영산은 그마저도 뚫을 수 없어 굉장한 인물의 도움을 받고서야 간신히 뚫어 아들을 구했다. 그런데 유명을 봉인한 이가 다른 사람도 아닌 무경의 안주인이라면 그럴만 했다.

눈가가 파르르 떨리던 유천도는 바로 마음을 굳게 먹었다. 무경의 안주인이 나선 것이 사실이라도 목진과 구유를 죽이면 적어도 지금처럼 화가 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목진 따위가 엄청난 실력자인 무경의 안주인과 관계가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대라 역주께서 사람을 내주지 않으면 내가 직접 나서야겠군.”

말을 마친 유천도가 앞으로 나서자 하늘이 순간 어두워졌고 목진과 구유를 향해 주먹을 꽉 쥐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서 있던 공간이 폭발하며 실체나 다름없는 영력이 스며져 나와 영력 감옥을 형성했다.

영력 감옥은 순수하기 그지없는 영력으로 만들어진 거라 목진과 구유의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단단했다.

그것은 바로 지지존의 표식으로 실력이 지지존에 이르러야 천지의 영력을 이토록 순수하게 제련할 수 있었다. 게다가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는 것만으로도 목진 등이 전력을 다해 신술을 부린 것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지지존은 현재의 목진과 구유가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절대 아니었다.

“흥, 본좌한테서 사람을 낚아채려 하다니, 과연 자네가 그럴 만한 실력이 있는가!”

대라 역주가 손가락을 튕기자 순수하기 그지없던 영력 빛줄기가 감옥으로 향했는데 표면에 균열이 일더니 바로 산산이 부서졌다.

이에 목진과 구유는 바로 대라천역 측으로 돌아와 잔뜩 놀란 표정으로 유천도를 바라봤다. 지지존의 실력은 역시 막강했다.

잇따라 유천도가 정색하며 두 손을 들자 천지의 모든 영력이 미친 듯이 그 위쪽에 모였다.

유천도가 입을 쩍 벌려 각양각색의 영력을 삼킨 뒤, 체내에서 제련하고 다시 내뱉자 은하수처럼 방대한 기의 회오리가 형성되었다.

이는 실체나 다름없었고 그 속에 수많은 영력 알갱이가 있었다. 유천도는 눈 깜짝할 사이에 체내에 흡수한 영력을 순수하게 제련하였다.

이는 아무리 9급 지존이라도 쉽게 해낼 수 없는 일로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때 기의 회오리가 천 장 정도의 거대한 검으로 변했는데 표면에 난해하고 오래된 무늬가 새겨진 검은 엄청난 검기를 내뿜었고 검기가 지난 공간은 길쭉한 흔적이 남았다.

“오랜만에 힘을 겨루는데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 확인해볼까?”

유천도는 피식 웃더니 허공에 손가락을 찍으며 외쳤다.

“천도지검(天道之劍)!”

위잉!

거대한 검은 공간을 가르며 대라 역주의 머리 위에 나타나 사정없이 내리꽂혔는데 검광이 지나가는 곳마다 수천 장 정도의 깊숙한 검은색 흔적이 생겨났다.

그 엄청난 파괴력에 사람들은 소름이 쫙 돋았다.

이에 왕좌에 앉아있던 역주가 고개를 들어 상대방의 공격을 확인하고 가볍게 숨을 내쉬자 흑기가 하늘 높이 솟아올라 괴이한 검은색 가시밭을 형성했다.

쿵!

거대한 검이 다가오자 가시밭은 날카로운 가시를 내뿜어 녀석을 휘감더니 조금씩 삼켜버렸다.

잇따라 대라 역주가 손가락을 튕기자 검은색 가시는 귀청을 찢는 듯한 소리를 내며 거대한 용으로 변해 유천도의 검을 부숴버렸다.

두 사람의 대결은 참으로 괴이하고 놀라웠다.

한편, 유천도는 안색이 조금 어두워진 채 앞으로 나섰는데 순간 대라 역주의 앞쪽에 나타나 장풍을 쐈다. 아무렇지 않은 것 같은 유천도의 공격에 그곳 공간은 파르르 떨리며 나지막하게 울렸다.

그 힘은 거대한 검의 공격을 훨씬 뛰어넘었다.

이에 대라 역주는 역시나 무덤덤한 표정으로 상대방의 공격에 맞섰다.

두 사람이 손바닥을 맞대자 주위 만 장 공간은 공격 여파에 전부 부서졌다.

대라 역주와 유천도는 힘에 대한 장악력이 뛰어나 목진 등이 싸웠을 때와 달리, 아주 조용했지만 스며져 나오는 위압감은 엄청나 다들 머리가 지끈거렸다. 해당 공격이 조금이라도 새어 나가면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즉사할 것이다.

쿵!

그때 역주와 유천도는 온몸을 파르르 떨며 뒤로 튕겨 나갔다.

유천도는 열세 보 물러났고 역주는 다섯 보 정도 물러났는데 두 사람의 영력 대결에 주위를 휘감았던 빛이 전부 사라지고 그들의 모습이 온저히 드러났다.

사람들은 드디어 드러난 역주의 모습에 전부 눈길을 돌렸고 금세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목진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눈부신 빛이 사라진 곳에는 가녀린 소녀가 있었다.

검은색 옷을 입은 그녀는 장발을 드리운 채 무뚝뚝한 표정으로 유천도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상당히 귀여웠다.

그런데 그 모습이 왠지 익숙했다. 그녀는 바로 목진의 뒤를 따라다니기 바빴던 신비로운 만다라였다!

그녀가 바로 대라천역의 역주였다!

사람들은 무서운 영력 여파가 아직 가시지 않은 전장에 서 있는 왜소한 소녀를 유심히 쳐다봤다. 아무도 대라 역주의 실체가 이토록 귀엽고 예쁘장한 소녀일 일거라 짐작하지 못했다.

북계에 널리 이름을 알린 대라 역주가 소녀였다니!

대라천역도 백전역도 다들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만다라가 대라 역주라니…….”

구유와 당빙 등 만다라를 마주쳤던 구유궁의 강자들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보다 놀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목진도 입을 쩍 벌리고 소녀를 바라보다가 한참 지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그녀가 대라금지 밑에서 수련한 것도, 대라천 내부를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었던 것도 또 엄청난 실력을 보유한 것도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그녀가 바로 신비로운 대라 역주였다!

“왜 우리를 지켜준다고 했는지 알겠네.”

구유는 목진을 힐끗 보더니 냉철하기로 소문난 대라 역주께서 유천도의 엄청난 조건을 마다하면서까지 이들을 지키기로 한 것이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그것은 전부 목진 때문이었다.

목진은 구유의 눈빛에 씁쓸하게 웃었다. 사실, 목진은 만다라와 사이가 그렇게 좋은 것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기껏해야 서로를 이용하는 것뿐이지만 만다라가 엄청난 대가를 거절하며 그와 구유를 지키기로 한 것이 정말 고마웠다.

정작 만다라는 사람들의 반응을 전부 무시한 채, 황금색 눈동자를 굴려 주위를 쓰윽 훑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고 감히 눈을 마주치지도 못했다. 그 속에 깃든 위엄에 다들 두려움에 떨었다.

역주의 실체를 처음 보는 천취황과 영동황도 몰래 만다라를 힐끗거렸는데 오직 수황만 아무렇지 않게 자리에 서 있었다.

“그 유명한 대라 역주가 어린 소녀의 모양새를 했을 줄이야, 취미가 참 고약하군.”

유천도가 만다라를 보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

지지존 정도가 되면 외모를 바꾸는 일은 더없이 간단했는데 유천도는 만다라가 일부러 모양새를 바꿨다고 생각했다. 하긴, 만다라가 보여지는 것처럼 젊다면 실력이 절대 지지존이 아닐 것이다.

그때 만다라가 여전히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가 전력을 다해 덤빈다고 해도 절대 내 상대가 아닐 테니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말고 얼른 떠나거라.”

실체가 드러난 역주의 목소리는 더 이상 사내처럼 굵지 않았고 맑고 앳된 목소리였다.

왜소한 체구와 앳된 목소리를 가진 만다라가 냉철하고 실력까지 엄청나다는 사실이 쉽게 믿기지 않았다.

한편, 유천도는 만다라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잘 알았다. 일전의 짤막한 대결에서 그는 이미 만다라의 실력을 확인했고 정말 싸움이라도 나면 승산은 별로 없었다.

“정녕 천현전과 등을 돌리려는 건가?”

유천도가 이를 악물며 한 말에 만다라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우리는 예전부터 적이 아니었나?”

“허허, 그렇군. 좋아.”

유천도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만다라를 쏘아보았다.

“대라 역주가 오늘 한 말은 명심하겠네. 대수렵전에서도 이렇게 당당했으면 좋겠군.”

이에 천취황 등은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대수렵전을 개최할 때마다 정예 세력이 없어지곤 했는데 다른 적들과 함께 이제 천현전까지 상대하려면 절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다라는 끝까지 대수롭지 않게 왕좌에 앉아있어 유천도는 더 화가 났다.

그때 목진을 공격하려다 실패한 백의 사내가 갑자기 나서더니 소년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대라천역 젊은이 중 최정예겠구나.”

목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백의 사내를 바라봤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위험한 파동으로 보아 그는 분명 엄청난 실력자일 것이다.

“당신은 누굽니까?”

“천현전의 유염이다.”

목진의 질문에 백의 사내가 히쭉 웃으며 답했다. 이에 구유는 흠칫 놀라더니 작은 목소리로 목진한테 말을 건넸다.

“유염은 천현전의 차기 전주로 유명의 형님이기도 해. 그는 북계 젊은이 중 정예라고 들었는데 유명과 비교하면 천지 차이지.”

이에 목진도 깜짝 놀랐다. 녀석은 역시나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오늘은 너를 손봐줄 수 없겠지만 북계의 용봉천(龍鳳天)에는 참석하겠지? 그때 가서 다시 보자꾸나.”

유염이 미소를 지으며 목진을 쳐다보는데 그 속에 소름 끼칠 정도로 엄청난 한기가 깃들어 있었다.

유염의 말대로 오늘 대결을 계기로 목진은 대라천역 통령 중 제일로 거듭났다. 서청과 주악마저도 그를 따라가기는 어려웠으니 용봉천에 갈 사람은 목진 뿐이었다.

보아하니 유염도 용봉천에 참석할 것 같은데 더는 목진을 보호해 줄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목진은 미소를 지으며 유염을 보더니 당당하게 말을 건넸다.

“그럼 기대하겠네. 대신 방심하지는 말게. 나를 이용해 명성을 떨치려다 나한테 이용당하면 어쩌려고 그러나?”

“허허.”

유염은 수중의 부채를 가볍게 두드리며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그는 소년이 조금 전 대결에서 놀라운 실력을 보였음에도 상대로 여기지 않았다. 그건 그가 기고만장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그의 실력이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는 다름아닌 천현전의 차기 전주였다.

유명은 유염과 목진의 대화가 썩 마음에 들었다. 적어도 체면치레는 했으니, 일단 목진이 용봉천에 참가하면 유염의 손에 죽는 건 시간문제였다.

목진이 두려워 용봉천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도 그는 목진을 손봐줄 방법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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