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9화. 수련
“대라 역주, 이번엔 그쪽에서 승리한 것으로 하겠지만 이 결과가 변치 않길 바라겠네.”
유천도는 만다라를 보며 괴이하게 웃었다.
“참, 유명궁(幽冥宮)의 유명천존(幽冥天尊)이 수련을 마쳤다고 들었는데 그해, 역주를 다치게 한 일로 엄청 미안해하고 있더군…….”
유명천존이란 말에 만다라의 표정에 드디어 변화가 생겼다.
목진도 인상을 한껏 찌푸렸다. 그는 북계의 세력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유명궁은 북계에서 예로부터 유명한 정예 세력이었다. 대수렵전을 서너차례 겪고도 소멸되지 않는 것을 보면 그 실력은 충분히 증명되었다.
유천도가 말한 유명천존은 다름아닌 유명궁의 궁주로 실력이 엄청났다. 이런 사람이 만다라와 원한 관계가 있었다니, 천라대륙은 역시 위험천만한 곳이었다.
유천도는 미세하게나마 변한 만다라의 표정을 확인하고서야 호탕하게 웃으며 유염, 유명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이에 만다라는 한기 어린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더니 콧방귀를 뀌며 백전역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사흘 내로 지존영액 백만 방울과 도성 천 군데를 건네거라. 안 그럼 본좌가 너희를 하나씩 없애버릴 것이다!”
만다라의 말에 백전역 사람들은 화들짝 놀랐고 머리를 더 깊게 숙였다. 잇따라 만다라는 돌아서서 목진을 힐끗 보더니 한마디 말만 남기고 사라졌다.
“철수하라.”
3황은 방대한 군대를 거느리고 질서정연하게 대라천역으로 돌아갔는데 그 모습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장검 노인 등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채 철수하는 대라천역 사람들을 보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건 다 저 빌어먹을 녀석 때문이네!”
목진만 아니었으면 백전역은 지금쯤 승리의 기쁨을 누리고 있을 것이다!
“저들한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네. 이제 용봉천이 열리면 녀석은 끝이야.”
시산노귀가 입가를 파르르 떨더니 이내 정색하며 말했다. 그 말에 다들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암이 목진을 공격하려 했을 때의 상황을 보면 결과는 뻔했다.
천재한테 가장 슬픈 일은 그보다 더 뛰어난 천재를 마주치는 것인데 이들한테 전자가 곧 목진이고 후자는 당연히 유염이었다.
* * *
대라천역과 백전역의 대결은 결국 대라천역의 승리로 끝났고, 대결에 관한 소식은 놀라운 속도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런데 다들 대라천역의 승전보다 그 과정에 더 놀라워했다.
전해진 이야기에 따르면 대라천역에서 백전역의 꼼수에 당해 다들 마시종의 영시왕이 본명 마시를 폭발시켜 수라왕에게 큰 타격을 주어 대라천역이 상당히 불리해졌는데, 마지막 대결에서 백전역에서 이름을 널리 알린 진비와 대라천역에 온지 얼마 안 된 새 통령 목진의 싸움으로 역전승을 이뤘다는 이야기였다.
아무도 2급 지존밖에 안 되는 어린 통령이 압박감을 이겨내고 곧 4급 지존경에 이르는 진비를 쓰러트리고 승리를 거둘 줄 몰랐다.
두 세력이 싸우기 전까지만 해도 대라천역의 승리가 어린 통령에 의해 달라질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그 밖에 사람들은 목진과 천현전 차기 전주 유염의 대화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대부분은 목진이 유염을 이용해 천라대륙에 이름을 알리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목진은 현재 진비와의 대결에서 이겨 조금 유명해졌지만 이미 북계의 젊은이 중 정예로 알려진 유염과 비교하면 훨씬 뒤처졌다.
게다가 두 사람의 실력 차이는 상당했다.
비록 목진이 천재가 널린 북계에서 얼마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은 북계의 샛별로 떠올라 눈부신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그가 더 유명해질지는 결국 그한테 달렸는데 얼마 후에 있을 용봉천에서 그 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천현전의 유염은 절대 목진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 * *
목진은 대라천역과 백전역의 대결에 관한 소식이 북계에 전해지건 말건 조용히 구유궁에만 있었다. 비록 구유궁은 대량의 도성을 건네받아야 해서 바빴지만 당빙이 있는 한 목진과 구유가 신경 쓸 일은 전혀 없었다.
또한, 대전이 끝난 뒤로 구유궁의 지위는 대라천역에서 부쩍 올라가 사람들은 더 이상 이들의 험담을 하지 않았으며 다른 왕급 세력들의 태도도 완전히 변했다. 심지어 구유궁을 무시하던 혈응전은 최대한 이들을 피해 다녔고 더는 구유궁 사람들을 경멸의 눈빛으로 보지 않았다.
이는 구유궁이 이번 대전에서 훌륭한 성과를 따낸 것도 있겠지만 역주가 나서서 목진과 구유를 구한 것이 큰 몫을 하였다.
대라 역주는 대라천역의 최고 권력자로 그녀의 말은 명령이나 다름없었다. 오만하기 그지없는 혈응왕도 감히 뭐라 하지 못하는데 그런 사람이 목진과 구유를 보호하려 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사람들은 더는 함부로 입을 놀리지 못했다.
한편, 목진은 구유궁 뒷산의 한 산봉우리에 무형의 벼락으로 온몸을 휘감은 채 눈을 감고 앉아있었는데 그 주위에서 가끔 날카로운 뇌명이 들렸다.
그것은 상당히 사납고 내뿜는 파동도 괴이해 누군가 주위에 있었다면 분명 뇌음에 영력이 무질서해졌을 것이다.
목진은 유명심마뢰의 힘을 빌려 뇌마연 깊숙한 곳에서 얻은 무상심마경을 수련하는 중이었다.
한 시진이 지나자 목진은 천천히 눈을 뜨고는 심장이 있는 쪽을 어루만졌다. 유명심마뢰는 한 시진 동안 목진의 심장을 수도 없이 공격했다. 이에 심장 깊숙한 곳의 심마의 힘이 짙어졌지만 심마의 종자가 아직도 형성되지 않아 목진은 조금 시무룩해졌다.
“무상심마경은 역시 수련하기가 쉽지 않군.”
그는 입을 삐죽 내밀며 중얼거렸다. 물론 무상심마경의 수련이 쉬웠다면 그 위력도 그렇게까지 엄청나지는 않을 것이다.
목진은 문득 고개를 숙여 구유궁을 바라봤는데 늦은 밤에도 구유궁은 유난히 바빠보였다.
이번 대결로 구유궁은 대량의 자원을 얻었고 구유는 이 기회를 통해 구유위 예비군을 사천 명이나 뽑았다. 그들은 비록 구유위보다 실력이 훨씬 뒤처졌지만 잘만 키우면 분명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구유궁은 더는 전처럼 한적하지 않았고 생기로 흘러넘쳤다. 이는 구유와 목진 덕분이었다. 소년은 이러한 변화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이건 유명심마뢰야?”
그때 조금 놀란 듯한 목소리가 들려와 목진이 고개를 돌려보니 뒤쪽 암석에 검은색 치마를 입은 소녀가 다리를 흔들거리며 앉아 있었다.
그녀는 만다라, 바로 대라 역주였다.
이에 목진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고 괜히 머쓱해서 히쭉 웃었다. 여태껏 그녀를 편하게 대했는데 갑자기 공손한 척하려니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나를 만다라라고 생각해.”
만다라는 목진을 힐끗 보고는 손으로 턱을 괴며 말을 이어갔다.
“너는 내가 대라 역주인 것을 알아도 진심으로 날 떠받들어 모실 사람이 아니니까. 내 앞에서는 마음가는 대로 해도 돼.”
만다라의 말대로 목진의 그녀의 실력이 두렵긴 했지만 떠받드는 건 절대 불가능했다. 그는 금세 생각을 정리하고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번엔 고마웠어.”
만다라가 나서서 그와 구유를 구한 일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 결정을 내리기가 절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네가 대라천역을 위해 공을 세웠는데 바로 천현전에 넘기면 앞으로 대라천역에서 나를 따를 사람은 몇이나 될까?”
목진은 만다라의 말이 왠지 우스웠다. 지지존한테 충성이란 기껏해야 두려움이었다. 적어도 대라천역에서는 감히 그녀를 배신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넌 나를 도와줬으니 그 은혜를 갚는 건 당연한 일이야.”
만다라의 진심 어린 말에 목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만다라한테 목진이 신비로운 종이를 빌려준 것은 대라천역을 위해 출전한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었다.
“자.”
만다라가 손을 가볍게 휘두르자 한 줄기 빛이 목진한테 날아갔다. 이를 잡아서 보니 손바닥에 영롱한 빛깔의 옥병이 나타났다. 그 속에 담긴 맑고 투명한 액체에서 엄청난 영력 파동이 느껴졌다.
“이건…….”
목진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만다라를 바라봤다.
“그 안에 지존영액이 2만 방울 들어있어. 백전역과의 대결은 네 덕분에 이겼으니까 너한테 주는 보상이야.”
목진은 만다라의 말에 잠시 넋이 나갔다. 구유궁은 뇌마종을 쓰러트려 지존영액을 십만 방울 조금 넘게 얻었지만 목진은 그중 한 방울도 갖지 않았다. 그는 현재, 구유궁에서 대량의 지존영액이 얼마나 필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
지존영액은 수련의 필수라 이것만 있으면 수련 속도가 배로 늘고 대일불멸신의 지존신통을 수련하는 데도 꼭 필요했다. 엄청난 양의 지존영액이 필요해 목진은 어떻게 하면 지존영액을 구할 수 있나 고민하던 참이었는데 때마침 만다라가 선물로 줘서 정말 기뻤다.
목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옥병을 거두고 진지하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정말 고마워.”
만다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산들 바람에 장발을 휘날리며 목진을 바라봤다.
“3개월 뒤, 너는 대라천역을 대표해 용봉천에 참가할 텐데 유염은 분명 너를 죽이러 할 거야. 그래서 지금부터 내가 직접 책임지고 너를 수련시키려고 해. 하지만 네 수련 성과가 마음에 안 들면 자격을 박탈할 거니까 명심해.”
만다라가 아무렇지 않게 말을 내뱉고 떠나자 목진은 옥병을 쥔 채 멍하니 제자리에 서 있었다.
만다라가 했던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이튿날, 목진이 훈련소에서 구유위 예비군을 검열하고 있는데 검은색 치마를 입은 소녀가 다가와 돌사자 위에 팔짱을 낀 채 서서 황금빛 눈동자를 굴리며 목진을 바라봤다.
“역주님을 뵙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만다라에 구유궁 고층들은 황급히 인사를 올렸고 구유마저 공손해졌다.
이에 소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목진한테 말을 건넸다.
“날 따라와.”
어제저녁에 말한 일을 벌써 진행하다니 목진은 만다라가 이렇게 빨리 수련을 시작하려 할 줄 몰랐다.
만다라가 이리 나섰으니 목진은 물릴 수도 없었다. 이에 구유한테 상황을 알렸고 자초지종을 들은 구유는 화들짝 놀라 목진을 바라봤다. 그녀는 대라천역에 온 뒤로 역주께서 누군가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물론이고 시간을 들여 직접 가르치는 것을 처음 보았다.
더구나 대라천역에서 용봉천에 사람을 보내는 것이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다. 역주는 여태껏 이런 일에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고 3황더러 자원을 나눠주라고 한 것이 다였다.
그렇기에 다들 목진한테 유난히 관심을 쏟아붓는 역주가 이상했다.
“역주께서 친히 가르쳐준다고 하셨는데 어디서 싫은 척이야?”
구유는 괴로워하는 목진을 보더니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하긴, 다들 지지존의 가르침의 기회를 얻지 못해 안달인데 목진이 이따위 표정을 짓는다면 불쾌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에 목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기만 했다. 그도 만다라의 가르침을 받는 것이 얼마나 복 받은 일인지 잘 알지만 대라 역주라는 신분때문에 조금 어색했다.
반면, 만다라가 목진을 힐끗 보고는 아무렇지 않게 떠나자 목진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바로 그 뒤를 따랐다.
* * *
슉.
만다라가 가볍게 발을 구르자 바로 천 장 밖에서 나타났는데 목진은 아무리 속도를 끌어올려봐도 소녀를 따라갈 수 없었다.
만다라는 그런 목진의 모습을 보고 속도를 늦춰 어깨를 나란히 했는데 그들옆을 지나가던 대라천역 강자들이 황급히 물러서며 괴상한 표정을 지었다. 통령 밖에 안 되는 목진이 역주와 함께 비행하는 장면에 잔뜩 놀란 것이다.
“어딜 가는 거야?”
목진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물었다.
“북계 젊은이들 중 유염은 5위권에 들 정도로 강해. 지금은 실력이 4급 지존경에 이르렀을 거야.”
만다라는 목진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소년을 힐끗 보며 말을 이어갔다.
“그렇다고 진비의 실력이 유염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안 돼. 진비는 단약의 힘으로 잠시 4급 지존의 실력을 갖춘 거라 두 사람이 대결하면 유염은 손쉽게 녀석을 쓰러뜨릴 수 있어.”
이에 목진은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지금의 그는 전력을 다해서야 겨우 진비를 쓰러뜨렸는데 유염은 녀석보다 훨씬 강하다니…….
목진은 처음부터 유염의 실력이 엄청나다는 걸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현천전의 차기 전주는 역시 엄청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