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8화. 소심마 상태
목진이 손을 짝 폈다가 다시 주먹을 쥐고 자신의 몸에 퍼진 장악력을 마음껏 느꼈다.
쿵!
암장 밖에서 갑자기 난폭한 영력 파동이 전해졌는데 거대한 용 아홉 마리가 미친 듯이 몰려와 대일불멸신을 뚫고 목진을 물리치려 했다.
“너희도 위험을 감지한 거냐?”
목진은 눈가를 가볍게 떨더니 손을 쩍 벌려 상고 염룡의 정혈을 가리켰다.
크으으으!
이와 동시에, 상고 염룡의 정혈 아홉 방울에서 난폭한 포효가 들리며 자그마한 상고의 염룡 아홉 마리가 나타났고 선홍색 용린에서도 눈부신 적광을 발했다.
쿠쿵.
녀석들 주위의 암장이 요동치며 거대한 암장의 용이 나타날 기미가 보였다.
사람들은 손에 땀을 쥔 채 상황을 지켜보았다. 3급 지존밖에 안 되는 목진이 무슨 수로 용린의 보호를 받는 정혈을 취할 건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때 목진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공간에 파동이 일더니 무형의 무언가가 나타나 귀청을 찢는 듯한 뇌음을 보냈고 무형의 힘에 균열이 아홉 개나 생겨난 암장은 상고 염룡의 정혈로 향했다.
위잉.
정혈을 수호하던 용린은 갑자기 들려온 뇌음에 선홍빛을 발하며 용의 무늬를 소환해 최강의 보호막을 형성했다.
슉!
그런데 무형의 뇌음 아홉 갈래는 눈 깜짝할 사이에 용린이 만든 눈부신 빛을 공격했다.
퍽!
무형의 힘에 적중한 용린 보호막은 끄떡없었는데 오히려 그 속에 있는 상고 염룡의 정혈이 격렬하게 떨며 적광을 미친 듯이 뿜어내고 처량한 울음소리를 냈다.
사람들은 어리둥절해 상황을 살피기 바빴다. 다들 용린이 형성한 방어막을 뚫고 정혈을 공격하는 무형의 힘을 발견하지 못했기에 왜 녀석이 이렇게 난동을 부리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때 조용히 서서 격렬하게 움직이는 염룡의 정혈을 바라보던 목진이 다시 손가락을 튕기자 예리한 뇌명이 울렸다.
퍽!
목진은 제자리에서 사라지더니 바로 상고 염룡의 정혈 아홉 방울의 뒤쪽에 나타나 그것을 수중에 넣었다.
크으으으!
상고 염룡의 정혈은 도망가려고 발버둥 쳤지만 목진의 손바닥에 빠르게 모인 두 갈래 영력 때문에 꼼짝하지 못했다.
각각 보라색 화염과 무형의 뇌광이 깃든 두 갈래 영력은 완벽한 평형을 이루며 광막을 형성해 상고 염룡의 정혈을 전부 그 속에 가뒀다.
소심마 상태에 이른 목진의 영력에 대한 장악력은 적어도 두 갈래 영력을 완벽히 융합할 수 없었던 것에 비하면 이전보다 훨씬 나아졌다.
슉! 슉!
아홉 개의 용린은 상고 염룡의 정혈을 빼앗긴 채 만 장 정도의 적광을 발하며 미친 듯이 목진에게 향했는데 지나는 곳마다 공간이 찢어져 은은한 흔적이 남았다.
용린들의 속도는 피할 수 없을 정도로 정말 빨랐다.
쿠쿵.
그런데 그때, 암장이 갑자기 반으로 갈라지더니 금광을 발하는 손이 암장의 깊숙한 곳에 손을 넣어 목진을 휙 낚아챘다.
퍽! 퍽!
용린에 맞은 금광 거수는 순식간에 부서졌는데 그 속에 숨어있던 목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암장에서 나왔다.
암장 해면은 어느새 무질서해졌고 거대한 암장의 용 아홉 마리도 정혈을 빼앗겨 맥없이 추락하였다. 구구염룡진도 곧 부서질 것 같았다.
한편, 목진은 검은색 장발을 휘날리며 그윽한 눈으로 외부에 서 있는 사람들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이럴 수가…….”
사람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특히 화미아, 빙청 등 대라천군의 통령들은 자신들의 눈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목진이 상고 염룡의 정혈을 아홉 방울이나 취했다니, 대라천군의 대 통령인 화미아도 네 방울밖에 못 얻었는데 설마 목진이 화미아보다 더 강하단 말인가?
이건 정말 불가능한 일이었다!
“저건 혹시…….”
만다라는 목진을 한참 쳐다보더니 서서히 입을 열었다.
“유명심마뢰인가? 유명심마뢰라면 바로 용린을 뚫고 정혈 속에 깃든 염룡의 기를 공격할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유명심마뢰라니!”
사람들은 깜짝 놀라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유명심마뢰는 물리적 방어를 뚫고 사람의 마음속 깊숙한 곳을 공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방식도 상당히 괴이했다. 다들 목진이 이것으로 상고 염룡의 정혈을 상대할 줄 몰랐다.
“상고 염룡의 정혈 속에 상고 염룡의 의지가 남아있는데 이는 유명심마뢰의 뇌음을 제일 두려워하지. 그러니까 목진은 정말 운이 좋았던 거야.”
만다라의 말에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마저 해낼 수 없는 일을 3급 지존밖에 안 되는 목진이 해낸 것이 여간 부끄럽지 않았는데 천운이라면 그나마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럼 이번 시험 결과는…….”
구유의 질문에 만다라가 생긋 웃으며 답했다.
“당연히 통과했다고 봐야지. 이 세상에 운이란 절대 없어. 무슨 수를 쓰든 승리할 수 있으면 된 거야. 천운도 실력의 일종이지. 또한, 목진이 이렇게 짧은 시간 내에 구구염룡진을 뚫을 방법을 찾아내고 유명심마뢰를 이 정도까지 다스린다는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야.”
쿠쿵.
그때 거대한 암장 해역이 부서져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허공에 있던 목진이 온몸을 파르르 떨자 눈은 원래대로 돌아왔고 장발의 모습도 사라졌다.
심마 상태에서 벗어난 목진은 다시 생기를 되찾았다.
“지금부터 넌 대라천역의 6통령이다.”
만다라는 앳된 목소리로 중대한 내용을 발표했다.
이에 사람들은 깜짝 놀라 공손하게 허리를 굽혀 목진한테 인사를 올렸다.
“6통령을 뵙습니다!”
목진은 자신을 향해 허리 굽혀 인사하는 대라천군의 모습에 기분이 짜릿했다. 대라천역의 최강 군단의 인사를 받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구유위는 발전 가능성이 있긴 해도 지금 당장 대라천군과 싸우면 아마 1각도 못 버티고 전멸할 것이다. 대라천군은 지존경에 이른 강자들로만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하여 이들이 전력을 다한 공격을 막아낼 사람은 대라천역의 3황 뿐일 것이다. 아무리 왕이라도 그 상대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대라천군의 통령이 되는 일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목진이 구구염룡진을 뚫었다고 해도 그를 진심으로 6통령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목진의 실력이 다른 통령들에 비해 훨씬 뒤처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목진은 전혀 언짢지 않았다. 비록 지금은 다른 통령들보다 실력이 부족하지만, 언젠가 시간이 흐르면 그때는 아무도 그를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목진은 천천히 만다라 등에게 다가가 두 갈래 부동한 영력이 깃든 옥병을 꺼냈다. 그러자 그 속에 들어있는 정혈 아홉 방울이 뜨거운 파동을 내뿜었다.
바로 상고 염룡의 정혈이었다.
“전부 가져도 돼?”
목진이 방긋 웃으며 물었다.
그는 상고 염룡의 정혈이 무척 탐났다. 상고의 염룡은 신수방에서 순위가 상당히 앞쪽에 속했고 실력은 북명룡곤 못지않았다.
목진은 북창령원에서 북명룡곤의 정혈 한 방울을 얻기 위해 갖은 고생을 다 했는데 한꺼번에 그와 비슷한 위력의 정혈을 아홉 방울이나 얻어 무척 기뻤다.
그러나 정작 만다라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상고 염룡의 정혈이 귀하긴 하나 그녀한테는 별것 아니었다.
“네가 구구염룡진을 무사히 통과했으니 대라천역을 대표해 용봉천에 참가할 사람은 너로 하겠다.”
만다라는 목진을 힐끗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용봉천은 북계의 젊은이 사이의 거사로 다들 천부적인 재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뒷배도 상당해 네가 여태껏 마주쳤던 아이들과는 전혀 다를 거야.”
이에 목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각 정예 세력에서 전력을 다해 키운 천재들을 무시할 리 없었다. 목진은 비록 천현전의 유염 밖에는 보지 못했지만 그에게서 충분히 위압감을 느꼈다.
“용봉천에는 규칙이 있는데 우리는 절대 들어갈 수 없어. 그러니까 그때 가서 네가 죽는다고 해도 우리는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을 거야.”
“대라천역에서 용봉천에 참가한 적이 있어?”
목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물었다.
“있긴 했지만 들어간 지 얼마 안 돼서 유명궁 사람 손에 죽었어.”
만다라는 어느새 안색이 어두워졌다. 대라천역은 그 일로 엄청나게 비웃음을 당했다.
“그때, 우리 대라천역의 젊은이들은 다른 정예 세력에 비하면 조금 뒤처지긴 했었다. 역주께서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것도 있었지만 말이야.”
천취황의 말에 만다라는 괜히 눈을 부릅뜨며 쏘아봤다.
“젊은 녀석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볼 여유가 어딨어? 천재들을 벌레 죽이듯 죽일 수 있는 실력을 지닌 내가 있으면 대라천역은 무사할 거고,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천재들이 아무리 많아도 아무런 소용 없는데.”
그 말에 목진은 피식거렸다. 만다라가 말은 이렇게 해도 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녀도 젊은이들의 배양에 심혈을 기울이긴 했지만, 여태껏 그녀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던 것뿐이었다.
다만, 그녀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대라천역은 지지존에 이른 만다라 때문에 천라대륙의 정예 세력이 되었고, 그녀가 건재하는 한 아무도 감히 이곳을 노리지 못할 것이다. 그녀가 아니라면 천재들이 아무리 많아도 절대 대라천역을 구할 수 없을 것이다.
“허허, 목진이 이번 용봉천에서 좋은 성과를 따냈으면 좋겠군요. 북계의 사람들한테 우리 대라천역에도 엄청난 젊은이가 나타났다는 걸 알리면 얼마나 좋겠어요?”
천취황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목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최선을 다할게요.”
용봉천에 참가하는 이들은 전부 각 정예 세력에서 심혈을 기울여 배양한 천재란 것을 잘 알았지만 목진은 전혀 두렵지 않았다. 저들이 아무리 상대하기 어려워도 자신 역시 절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이 정도 자신감도 없었다면 목진은 절대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좋은 성과를 따내는 것도 좋지만 절대 죽지 말아라. 그럼 상대방만 명성을 떨치고 우리 대라천역의 체면은 더 구겨질 거야.”
만다라가 찬물을 끼얹자 목진은 이를 악물고 소녀를 노려봤다.
“너 따위가 어떻게 역주가 된 거야!”
이에 다들 화들짝 놀랐다.
만다라는 대라천역의 통치자라 아무도 감히 그녀의 말을 어기지 못했다. 만다라가 아무리 귀엽게 생겼다고 해도 감히 선을 넘는 발언이나 행동하는 이들은 없었다. 그러니 목진의 말에 두 눈이 휘둥그레진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정작 만다라는 화를 내기는커녕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뒷짐을 쥐었다.
“날 따라와. 닷새만 있으면 용봉천이 열리는데 그 전에 너한테 줄 것이 있어. 나 따위 역주가 부하를 무시한다는 말을 더는 못하게 말이야.”
목진은 구유와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빠르게 만다라를 따라나섰다.
두 사람이 떠나고 나서야 천취황 등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는 씁쓸하게 웃었다. 두 사람이 어떤 사이인지는 모르지만 절대 단순한 역주와 통령의 관계는 아니란 것만은 확실했다. 안 그럼 만다라 같은 냉혈 인간이 그런 말을 듣고서도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구유도 이내 웃으며 어깨를 들썩였다. 그녀는 만다라가 목진을 잘 챙겨줘서 좋았지만 그 이유가 궁금했다. 다만, 목진에게 더 좋은 수련 조건을 마련해주고자 대라천역에 데려온 거였기에 구유는 이 일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