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9화. 만다라멸천광(曼陀羅滅天光)
목진과 만다라는 대라천을 지나 깊은 산속의 한 산봉우리에 내려앉았는데 그 위에 수수하게 생긴 장경루(藏經樓)가 있었다.
목진은 다가가 쓰윽 훑더니 그 속에서 느껴지는 위험한 파동에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이곳은 대라천역의 장경루야. 우리는 여태껏 다른 종족과 파벌에서 빼앗은 신술, 영진과 계승을 전부 이곳에 넣어 보관하고 있어. 대라천역의 중요한 곳이라 할 수 있지. 그리고 이곳은 몽이의 수련지이기도 해.”
“몽이라…….”
만다라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 말에 목진은 멈칫했는데 그녀가 말하는 몽이가 바로 수황을 말한다는 것을 눈치채고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3황의 우두머리인 수황이 만다라에게는 그저 몽이일 뿐이었다.
“이곳이 수황님의 수련지군.”
목진은 위험한 파동의 원천이 수황이라는 것을 알고 점차 긴장을 풀었다. 수황 정도라면 감히 이곳에 접근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네가 비록 구구염룡진을 통과하긴 했지만 3급 지존밖에 안 돼서 용봉천에 참가하는 천재들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상당해. 천현전의 유염만 봐도 4급 지존경에 이른지 한참 됐다고 들었어. 그는 네가 일전에 쓰러뜨렸던 진비보다 훨씬 강해. 더구나 넌 유명을 지하에 묻었으니 그 원한을 갚기 위해서라도 절대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만다라의 말에 목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염은 확실히 진비보다 훨씬 강해 보였다.
잇따라 소녀가 손을 가볍게 젓자 장경루의 대문이 서서히 열리더니 놀라운 파동이 휘몰아쳤는데 만다라는 아무렇지 않은 듯 서 있었다.
목진은 만다라를 따라 장경루에 들어갔다가 오색 찬연한 내부에 깜짝 놀랐다. 그곳은 수많은 석대가 광권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수많은 족자가 허공에 떠다녔다.
강력한 영력 파동을 내뿜는 족자들은 절대 보통 물건이 아니었다.
목진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주위를 훑고는 이내 입맛을 다셨다. 이곳이야말로 정예 세력을 엿볼 수 있는 곳이었다. 과연 얼마나 많은 세력을 제압해야 이 정도 규모를 갖춘 장경루를 갖게 되는 걸까?
그때 만다라는 목진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고 그중 한 족자를 꺼내 목진에게 건넸다.
“넌 용봉천에 참가하는 거니까 적에 대해 잘 아는 것이 우선이야. 이 속에는 현재, 북계의 젊은이 중 정예에 대한 정보가 적혀있으니 잘 봐둬. 분명 쓸모가 있을 거야.”
이에 목진이 고개를 숙이니 빛이 가시며 수중에 동으로 만든 족자가 나타났다. 양쪽에 용과 봉황이 새겨진 족자에서 용음과 봉황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목진이 이내 족자를 펼치자 금광이 비치더니 ‘용봉록’이란 글자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목진이 족자를 펼치자 금광이 비치더니 오래된 문자가 되살아난 것처럼 그의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용봉록 9위는 사신전(蛇神殿) 적혈로 본체인 적혈신망(赤血神蟒)은 신수인 데 잔인하고 살인을 즐겨 도성 수백 군데를 도살한 전적이 있다.”
* * *
“용봉록 7위는 거령족(巨靈族)의 정선(丁宣)으로 선천적으로 힘이 엄청나 산 한 채쯤은 거뜬히 든다. 그는 백 차례의 대결을 거쳐 지존급 강자 백 명을 쓰러뜨린 전적이 있다.”
“용봉록 5위는 요문(妖門)의 홍어(紅魚)는 출중한 외모로 북계에 이름을 날렸다. 수많은 사내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뿐만 아니라 그중 한 사람은 다년간 자신을 키워준 정예 세력을 배신하면서까지 그녀를 따라나섰다.”
* * *
목진은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홍어란 여인이 얼마나 예뻤으면 배신까지 하면서 그녀를 따르려 했던 걸까!
“대단하군.”
목진은 이내 혀를 끌끌 찼다. 비록 만봉록에는 홍어란 여인의 전적이 적혀있지 않았지만 5위를 차지한 것이 절대 미모 때문만은 아니란 것을 잘 알았다.
“그럼 천현전의 유염은 몇 위지?”
목진은 유염의 천부적 재능과 실력으로 분명 용봉록에 이름을 남겼을 거라고 여겼는데 아니나 다를까, 4위에 익숙한 이름이 적혀있었다.
“용봉록 4위는 천현전의 유염으로 수련한 만염법신(萬炎法身)은 상당히 난폭하여 그가 지난 곳은 순간 잿더미가 된다. 그는 5급 지존과 싸워 무사히 물러난 전적이 있다.”
“만염법신이라…….”
목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만염법신은 비록 천염법신과 한 글자 밖에 차이가 안 나지만 그 위력에서는 엄청난 차이가 났다.
만염법신은 99등급 지존법신 중 69위인 엄청난 법신으로 이를 수련하려면 세상에 존재하는 수백 가지 특이한 불씨를 찾아 영력을 제련해 성공해야 비로소 만염법신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 일단 수련에 성공하면 그 위력은 매우 강했다.
월급 대전은 목진만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다른 정예 세력에서 정성을 들여 키운 청년들도 충분히 가능했다.
“역시 상대하기 쉬운 상대는 아니군.”
목진은 용봉천에서 유염을 주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 실력을 지닌 상대가 몰래 그를 노리고 있으니 더욱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목진은 어느새 용봉록의 내용이 흥미진진해졌다. 유염도 4위밖에 안 된다면 3위권에 든 사람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목진은 3위에 눈길이 멈췄다.
“용봉록 3위는 만성산(萬聖山)의 소비월(蘇碧月)로 요문의 홍어 못지않은 미모와 명성을 지녔다. 북계에서 자주 싸움을 벌이지는 않지만 일단 싸웠다 하면 겨우 열 차례 공격만으로 상대방을 제패한다. 그녀는 요문의 홍어와도 싸운 적 있는데 간신히 승리했던 전적이 있다.”
“기껏해야 열 차례 공격만으로 상대방을 제패하다니…….”
목진은 깜짝 놀랐다. 용봉록에 적힌 강자들은 하나같이 실력이 엄청났는데 기껏해야 열 차례의 공격만으로 승리를 거머쥔다고 생각하니 소름 끼치도록 무서웠다.
“용봉록 2위는 유명궁의 유명 황자다. 유명궁은 고충을 배양하는 방법으로 천재를 양성하는데 천재 만 명 중 유일하게 성공하는 사람만 유명 황자가 될 수 있다.”
목진은 금광이 비치는 글귀를 보고 있노라니 저절로 소름이 끼쳤다. 비록 족자에 유명 황자의 전적은 전혀 적지 않았지만, 이것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무서운 상대였다.
고충을 배양하는 방법으로 천재를 양성하다니, 이건 잔인함 그 자체인데 유명 황자가 살아남은 유일한 사람이라는 것은 그만큼 잔혹한 과정을 겪었다는 뜻이었다.
몇 개월 전, 목진은 유천도가 유명궁을 언급했던 것이 떠올랐다. 북계의 오래된 정예 세력인 대라천역과 관계가 그다지 안 좋았던 것 같았다.
이에 목진은 유명 황자 또한 위험 인물로 정하고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비록 상대방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두 세력의 관계가 안 좋으니 조심하는 것이 좋을 듯싶었다.
“그럼 1위는 누굴까?”
유명 황자마저 2위밖에 안 되면 1위는 더 엄청날 것이다.
목진은 광막의 최상단을 쳐다봤는데 오래된 글귀가 천천히 나타났다.
“용봉록 1위는 신각(神閣)의 방의(方毅)다.”
간단명료한 설명에 목진은 안색이 한껏 어두워졌다. 소개는 스무 자도 안 되어 있지만 용봉록 1위를 차지한 사람은 그 누구보다 무서울 것이었다.
“신각은 북계에 존재한 지 가장 오래된 정예 세력으로 대수렵전을 다섯 차례나 겪고도 소멸하지 않았고 방의는 신각에서 심혈을 기울여 배양한 차기 각주야.”
그때 앞쪽에서 만다라의 앳된 목소리가 전해지자 목진은 몰래 혀를 내둘렀다. 신각처럼 오래된 정예 세력에서 전력을 다해 키울 정도라면 방의의 실력 역시 상당할 것이다.
“북계에 내가 모르는 강자가 참 많은 것 같아.”
목진은 이내 한탄하며 말했다.
대천세계에 발을 들이고 나서야 비로소 이 세상이 얼마나 크고 넓은지 알 수 있었고 천재 역시 수두룩하다는 걸 깨달았다. 강자가 되는 과정은 역시 험난했다. 그러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진보해 언젠가 진정한 패주가 될 것이다.
“이제 용봉천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강한지 알겠지? 급에 들지도 않는 녀석들을 이겼다고 너무 으쓱대지 마.”
만다라는 후배를 가르치듯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는데 앳된 목소리가 조금 어울리지 않았다.
“내가 언제 으쓱댔다고 그래!”
목진은 소녀를 흘겨보며 말했다. 그는 자신감이 넘쳤지만 그렇다고 절대 자만하지는 않았다. 목진은 자기가 이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멍청이가 아니었다.
“그럼 겁은 안 나?”
만다라는 입을 삐쭉 내밀며 물었다.
“아직도 용봉천에 참가하고 싶어?”
용봉록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목진은 갑자기 미소를 지으며 족자를 거뒀다.
“이번 용봉천을 마치면 난 분명 10위권에 들어가 있을 거야.”
현재, 용봉록 순위권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목진의 실력을 훨씬 뛰어넘은 천재들로 이들과 대결하는 것이 그한테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전혀 두렵지 않았다.
그가 북창령원에 처음 들어갔을 때, 심창생, 이현통 등도 쉽게 넘볼 수 없는 강자였는데 북창령원을 떠날 때 그는 이미 정상에 서 있었다.
목진은 비록 출신이 좋지 않았지만 절대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반드시 어머니를 모시고 오겠다고 아버지와 했던 약속을 잊지 않고 있었다.
또한, 꿈에도 그리는 소녀를 위해 절세의 강자가 되겠다고 했던 말도 기억하고 있었다. 어떤 고난이 닥쳐와도 절대 두려워하지 않고 전진할 것이다.
만다라는 미소를 짓는 목진을 보고 조금 놀랐다.
“그래, 포부는 좋아. 아직은 실력이 바닥이지만 만고불후신 계승자다운 말이었어.”
“나한테 뭘 줄 건데?”
목진은 소녀의 말을 완전히 무시한 채 히쭉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만다라 정도라면 엄청난 보물을 내줄 것이 분명했다.
용봉천에 참가하는 사람은 하나같이 변태급 천재라 목진은 수단을 한 가지라도 더 늘리고 싶었다. 아무리 자신만만한 목진이라도 용봉록 3위권에 든 사람들에 관한 서술을 보고는 소름이 끼쳤다.
이에 만다라가 목진을 흘겨보더니 장경루의 깊숙한 곳으로 향했고 소년도 바로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눈부신 빛과 강대한 파동을 내뿜는 석대를 수도 없이 지났는데 만다라는 여전히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러다 1각이 지나 장경루의 끝이 보이자 소녀는 점차 속도를 줄였다.
잠시 후, 만다라가 멈춰 서자 목진은 고개를 들었는데 모양을 가늠할 수 없는 회흑색 석상 한 채가 한 손으로 결인한 채 위로 떠받든 자세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손바닥에 신기한 꽃 한 송이가 놓여있었다.
보라색을 띤 요염한 꽃이 괴이한 빛을 뿜으며 특이한 파동을 내뿜자 목진은 잠시 정신이 흐릿해지더니 그 속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꽈르릉.
그때 유명심마뢰가 갑자기 울렸고 목진은 정신을 차리고 뒤로 한 보 물러나 조금 놀란 듯한 표정으로 보라색 꽃을 쳐다봤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능력을 지녔다.
잇따라 만다라가 손을 휘익 젓자 보라색 꽃은 그녀의 손에 쥐어졌고 다시 손가락을 튕기자 목진한테로 날아갔다.
이에 목진은 조심스럽게 꽃을 건네받고 살폈는데 꽃잎에 오래된 문자가 적혀있었다.
“이건 원고의 신술인 만다라멸천광이야. 해당 신술을 부리면 천지가 어두워지고 그 구역의 생물 전체가 소멸해. 그 위력은 그야말로 절대적이지.”
만다라는 무덤덤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이 신술을 수련하려면 반드시 상고의 신꽃인 만다라 꽃의 힘이 필요해.”
목진은 순간 멈칫했다. 상고의 만다라 꽃은 이 세상에서 상당히 신기한 존재로 지능이 있을 뿐만 아니라 꽃 한 송이도 엄청난 강자나 다름없는데 목진이 무슨 수로 그 힘을 빌린단 말인가?
만다라는 소년의 의혹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그의 아랫배를 가볍게 찔렀다. 그곳은 지존해가 있는 곳으로 지존해 속에 신비로운 검은색 종이가 들어있었다.
목진은 바로 소녀의 뜻을 알아채고 이내 화색이 되었다. 신비로운 검은색 종이에 만다라 꽃 한 송이의 신의 무늬를 봉인했으니 만다라멸천광은 목진이 수련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다들 만다라 꽃의 힘을 빌릴 수 없어 수련할 수 없지만 목진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 순간, 목진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그는 만다라의 선물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