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3화. 속전속결
용봉각은 여러 층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층마다 사람은 많았지만 질서 정연했고 위층에 있는 구경꾼일수록 내뿜는 파동이 더 강했다.
그들이 들어서자 사람들의 두 눈은 휘둥그레진 채 채소를 쳐다보았다. 이에 목진은 그녀와 함께 구석을 찾아 조용히 앉았다. 얻은 정보에 의하면 용봉각에서 용봉천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는 사람이 따로 있어 조용히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다만, 조용히 정보를 얻고 떠나려는 두 사람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들 채소의 미모에 흠뻑 빠져 그녀와 동행한 목진의 신분을 캐기 시작했다.
그 외에도 목진은 용봉각에 발을 들이자마자 익숙하지만 절대 우호적이지 않은 눈빛을 느꼈다. 그 눈빛은 바로 유염으로 위층에 앉아 목진과 그 옆에 앉아있는 채소를 쓰윽 훑었다.
유염의 주위에는 사람들이 가득 모였는데 다들 북계에서 어느 정도 이름을 날린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유염은 주인공이 아니었다. 다들 그 오른쪽에 앉아있는 가녀린 여인에게 눈길을 주었다.
새하얀 피부에 빨간색 치마를 입은 여인은 풍만한 몸매의 소유자로 다들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벌렁거렸다.
더구나 절세의 미모에 맑은 눈동자까지 더해져 그녀와 한 번이라도 눈을 마주치면 아무리 점잖던 사내도 속에서 의욕이 활활 불타올라 바로 여인을 낚아채려 했다.
그녀는 사내를 꼼짝 못 하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어머, 저렇게 예쁜 아이가 있다니.”
여인은 외모가 출중한 채소를 보더니 그 옆에 있는 낯선 소년을 발견하고 생긋 웃었다.
“그런데 동행자는 처음 보는 것 같네? 북계에 내가 모르는 젊은 강자가 나타났단 말인가?”
“저 사람이 바로 대라천역의 새 통령인데 제법이야. 유명이 바로 저 녀석한테 당한 거야.”
유염이 무덤덤하게 말을 이어갔다.
“내가 분명 용봉천에 참가하지 말라고 충고했는데 이렇게 온 걸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 모양이야.”
사람들은 순간 유염과 목진의 사이를 파악했고 유염과 사이가 좋은 젊은이들은 피식 웃으며 아래쪽에 있는 목진을 쏘아봤다.
“대라천역의 실력자였군.”
여인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더니 미소를 지으며 목진을 바라봤다.
“대라천역에서 꽤 괜찮은 신인을 배양했군.”
“대라천역은 비록 북계의 정예 세력이긴 하지만 후배 양성에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고, 최근에 용봉천에 참가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왜 생각이 바뀐 걸까요? 그러다 또 체면을 구길까 봐 두렵지도 않나 봐요?”
유염의 졸개 한 명이 히쭉 웃으며 영력을 실은 채 말했다. 그 말에 용봉각은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다들 좋은 구경이 났다는 듯 아래쪽 구석에 앉아있는 소년을 쳐다봤다. 그러나 정작 소년은 화를 내기는커녕 태연하게 앉아 있었다.
한편, 유염은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미소를 짓더니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친구를 바라봤다.
이에 친구는 씨익 웃더니 바로 목진 앞쪽에 나타나 어깨를 덥석 쥐었다.
“유염 형님이 너를 보자고 하신다. 나를 따라오거라.”
그런데 목진은 끄떡없이 자리에 앉아 무덤덤하게 말을 내뱉었다.
“나설 거면 직접 나서지 이따위 급이 되지도 않는 것들을 앞세우다니. 천현전 소전주의 명성에 누가 될까 걱정도 안 되나 봐.”
히쭉거리던 사람들은 목진의 말에 흥미진진해져 위쪽에 앉아있는 유염한테 고개를 돌렸다. 그는 북계 젊은이 중 제법 유명한 인물이었다. 무려 용봉록 4위라 이곳에 모인 정예들은 그를 경계하는 눈치였다.
게다가 그는 용봉천에서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로 아무도 감히 무시하지 않았는데 소년의 무모한 발언에 오히려 흥미로워진 것이다.
유염은 목진의 도발에도 가볍게 웃기만 했다. 그는 목진 따위가 감히 넘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기에 소년의 말을 받아주면 오히려 체면을 구길 수밖에 없었다.
유염과 사이가 좋은 젊은 강자들도 피식 웃더니 아래쪽에 앉아있는 소년을 노려봤고 지금 용봉각에서 가장 이목을 끄는 여인마저도 흥미진진하게 미소를 지었다.
반면, 목진의 어깨를 잡은 청년은 3급 지존밖에 안 되는 소년이 감히 자신을 무시한단 생각에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는데 바로 공격을 개시하지 않고 한발 뒤로 물러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난 설룡산(雪龍山) 여양(呂陽)이라고 해. 넌 어디 출신 누구야?”
북계에서 제법 큰 세력인 설룡산은 실력이 백전역 못지않았고 여양은 그곳 젊은이 중 정예로 백전역의 진비 못지않은 실력자였다.
그는 비록 유염보다는 훨씬 뒤처졌지만 그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목진은 뒤쪽에 서 있는 여양 때문에 안색이 어두워졌다. 유염이 이렇게 성급하게 나설 줄 몰랐다. 유염은 목진을 자신의 상대로 취급하지 않았기에 여양이란 녀석이 대신 나선 것 같았다.
이에 목진 옆에 턱을 괴고 앉아있던 채소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넌 나 못지않게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녔네?”
정작 목진은 자리에 앉아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대라천역은 북계의 정예 세력이라 설룡산이 감히 덤비지 못할 텐데 이리 날뛰니 반응해주면 오히려 체면을 구길 것이다.
유염은 상냥해 보이는 소년이 그보다 오기가 훨씬 많은 사람이란 걸 몰랐을 것이다.
목진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여양은 순간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감히 3급 지존 따위가 우쭐대다니, 이곳이 대라천역이라도 되는 줄 안단 말인가?
“설룡산이 썩 내키지 않나 보지? 하긴, 대라천역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
여양은 씨익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네가 과연 그럴 자격이 있을까?”
쿵!
여양은 말이 끝나기 바쁘게 웅장한 영력을 끌어올렸는데 그 강력함에 용봉각 사람들은 흠칫 놀랐다.
여양은 곧 4급 지존에 이를 실력자로 젊은이 중 최정예는 아니더라도 정예에는 속했다.
쿵!
잇따라 그는 발을 구르더니 귀신처럼 허공에 나타나 웅장한 영력을 손바닥에 모아 목진을 공격했다.
여양은 그의 실력으로 대라천역에서 온 소년에게 그의 보잘것없는 체면을 대라천역이 지켜줄 수 없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고 싶었다.
용봉각에서 실력이 부족하면 제아무리 뒷배가 든든해도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설룡장(雪龍掌)!”
나지막한 소리와 함께 여양의 손바닥에서 커다란 설룡이 나타나 눈꽃을 뿌리며 목진에게 향했다.
사람들은 여양이 바로 살수를 두자 깜짝 놀랐다. 설룡산의 한기가 깃든 설룡장에 적중하면 체내의 영력은 바로 얼어붙을 것이고 어렵게 한기를 거둬낸다 해도 경맥이 다칠 것은 분명헀다. 이는 대라천역에서 온 젊은이가 더는 용봉천에 참석할 기회가 없을 것임을 의미하기도 했다.
목진은 여전히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채소는 목진의 변화에 깜짝 놀랐다. 목진의 까맣던 눈동자가 놀라운 속도로 변하더니 생기가 전혀 없는 사람이 되었다.
또한, 변화가 있기 전 목진의 영력은 비등할 기미가 보였는데 지금은 오히려 아주 조용해졌다.
이는 목진의 영력이 줄어든 게 아니라 영력에 대한 제어력이 갑자기 완벽에 가까운 수준이 되었다는 걸 의미했다.
목진은 찻잔을 들고 차를 마셨는데 상대방의 공격에 그의 머리에 눈꽃이 맺히기 시작했다.
구경꾼들은 순간 어리둥절해졌다. 목진은 곧 닥칠 치명적인 공격을 느끼지 못한 걸까?
보아하니 목진은 방어조차 하지 않았다.
“녀석, 도대체 뭘 하려는 거지? 죽고 싶어 환장이라도 한 건가?”
누군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중얼거렸다.
위층의 어두운 곳에 있던 사람들마저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그렇게까지 죽고 싶다면 원하는 대로!”
여양은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외쳤다. 이 정도 거리라면 아무리 목진이 최선을 다해 막는다고 해도 무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라천역에서 오랜만에 파견한 사람이 이렇게 멍청할 줄이야! 다들 대라천역은 이번에도 웃음거리가 될 거라 여겼다.
쿵!
그런데 그때, 여양의 앞쪽 공간이 갑자기 일그러지더니 영혼을 뒤흔들 것만 같은 뇌음이 아주 괴이한 방식으로 모든 방어막을 뚫고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울려 퍼졌다.
여양은 차마 준비할 틈도 없이 당해 체내의 영력이 바로 무질서해졌고 정신마저 흐릿해졌다.
풉.
잇따라 여양이 피를 토하자 설룡 장인은 수많은 눈꽃이 되어 조용히 쏟아져 내렸고 그의 눈과 코, 입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목진은 그제야 뒤로 돌아섰는데 귀신처럼 여양의 앞쪽에 나타나 녀석의 가슴팍에 손을 얹었다.
퍽!
웅장한 영력에 적중한 여양은 미친 듯이 피를 토하며 뒤로 튕겨나더니 창문을 부수고 용봉각에서 내쳐졌다.
용봉각에 순간 정적이 흘렀다.
다들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늘씬한 소년을 바라봤다. 목진은 분명 아무런 반격도 하지 않았는데 여양의 공격은 제멋대로 부서졌고 피를 토하며 튕겨 나갔다.
“녀석이 도대체 무슨 짓을 했단 말인가?”
사람들은 안색이 점차 어두워졌다. 용봉각에서 단숨에 여양을 쓰러뜨릴 수 있는 사람은 몇 명 안될 것이다.
대라천역 출신의 젊은 강자는 절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이러한 생각에 사람들은 더는 목진을 무시하지 않았다.
그런데 안색이 어두워진 유염과 달리, 빨간색 치마를 입은 여인은 목진을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더 위쪽에 앉아있던 사람들마저 흠칫 놀라며 소년을 훑어봤다.
“흥미롭군.”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그때 목진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어 한기 어린 눈빛으로 유염을 노려봤다.
“이제 직접 나설 건가?”
이에 유염 수중의 찻잔에 균열이 일더니 가루가 되어 부서졌고 그는 손을 훌훌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용봉각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용봉록 4위가 정말 직접 나서기라도 한단 말인가?
유염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용봉각 분위기는 순식간에 가라앉았고 무형의 위압감이 전해졌다.
이는 유염이 형성한 위압감이었다.
용봉록 4위인 유염은 북계 젊은이 중에서도 상당히 유명했고 현재의 목진이 비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적어도 용봉각에 모인 사람들은 목진이 유명과 함께 서 있을 자격조차 없다고 여겼다.
비록 목진이 단숨에 여양을 쓰러뜨리긴 했지만 그보다 훨씬 실력이 강한 유염의 상대는 아닐 거라 확신했다.
한편, 막연하게 목진을 쳐다보던 유염의 눈가에 점차 한기가 서리더니 목진한테 강력한 위압감을 형성하였다.
이에 목진 주위의 공기가 순간 흐름을 멈췄다. 녀석은 영력 위압으로 소년의 몸을 으깨려 하였다.
일반 3급 지존이었으면 이 정도 영력 위압만으로 충분히 물리칠 수 있었을 텐데 목진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목진의 피부 표면은 어느새 뇌광이 번쩍였고 체내에서 가끔 뇌명이 들렸다. 그는 뇌신체로 상대방이 형성한 강력한 위압감을 전부 받아냈다.
두 사람의 한기 가득한 눈빛 교환에 용봉각의 온도는 더 급락하였다.
“지난번보다는 실력이 늘었군. 그래서 이토록 우쭐댔던 건가!”
유염은 말을 내뱉자마자 이내 정색하며 손가락을 내리찍었다.
“그런데 3급 지존경밖에 안 되는 실력으로는 아직 나한테 덤빌 자격이 안 되지.”
쿵!
유염이 손가락을 내리찍자 그곳 공간에 육안으로도 확인 가능한 파동이 일더니 선홍빛 화염이 휘몰아쳤다.
“염마지(炎魔指).”
선홍빛 화염은 굵직하고 큰 선홍색 손가락을 만들어냈는데 엄청난 고온에 용봉각 내부 온도는 다시 급등하였다.
쿵!
그러다 선홍색 손가락이 목진에게 향하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불똥이 튈까 봐 부랴부랴 물러났다.
그런데 채소는 가만히 자리에 앉아 미소를 지은 채 그를 지켜보았다. 그녀는 목진을 도와줄 의향이 전혀 없어 보였다.
쿠쿵!
목진은 고개를 들어 자신에게 향하는 거대한 화염 거수를 무덤덤하게 보더니 주먹을 꽉 쥐었는데 손바닥에 전혀 다른 두 갈래 영력이 형성되었다.
크으으으!
용음과 코끼리의 울음소리가 거의 동시에 울려 퍼지자 목진의 머리 위쪽에 용과 코끼리가 나타나 얽히고설켜 용상 광반을 형성해 화염 거수에 맞섰다.
퍽!
엄청난 소리와 함께 난폭한 영력 파동이 휘몰아쳐 공간마저 파르르 떨렸고 용상 광반은 눈부신 빛을 발하며 화염 거수와 함께 폭발했다. 목진과 유염한테 그 여파가 고스란히 전해졌지만 두 사람 모두 손쉽게 물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