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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484화 (483/1,000)

484화. 용봉지(龍鳳池)

영력 파동이 완전히 사라지자 유염은 안색이 한껏 어두워진 채 목진을 쳐다봤다. 그가 한 공격은 3급 지존경에 이르렀다 해도 손쉽게 막아낼 수 없는데 목진은 이를 가볍게 막아냈다.

사람들은 유염이 내뿜는 한기와 점차 그윽해지는 영력 파동에 흠칫 놀랐다.

빨간색 치마를 입은 여인도 조용히 제자리에 서 있기만 했다. 그녀는 유염과 사이가 그렇게까지 가까운 편은 아니었지만 3급 지존밖에 안 돼 보이는 목진의 놀라운 실력을 보고는 이처럼 승패를 가늠할 수 없는 판에는 뛰어들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 여겼다.

한편, 목진도 차가운 눈빛으로 유염을 쳐다봤다. 비록 이곳에서 싸우는 것이 최선의 선택은 아니지만, 상대방이 기어코 쉽게 넘어가지 않으려 하면 얼마든지 상대해주리라 마음먹었다.

“용봉각에서 쫓겨나고 싶지 않으면 스스로 물러나게.”

유염이 용봉각 대문을 가리키며 무덤덤하게 말했고, 목진은 히쭉 웃으며 답했다.

“유염 소전주, 잔말 말고 공격이나 하게.”

“겁도 없이!”

유염은 한기 가득한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보며 웅장한 영력을 끌어올린 채 미친 듯이 목진을 향해 돌진했다.

유염이 정말 목진을 상대하러 나섰다!

이에 목진의 뒤쪽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지존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손바닥에 속성이 전혀 다른 두 가지 영력이 형성되었고 지존해 속에서 용음과 코끼리의 울음소리도 들렸다.

목진은 순간 뇌화되어 뇌광이 번쩍이는 몸을 이끌고 하늘 높이 날아올라 유염에게 향했다.

사람들은 정신을 번쩍 차리고 그들의 대결을 지켜보았다. 용봉천이 열리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곳에서 정예급 강자들의 대전이 벌어진단 말인가?

두 사람이 곧 부딪치려는데 부드러운 목소리가 어딘가에서 들려왔다.

“용봉각은 힘을 겨루는 곳이 아니니 이만 멈추는 게 어떨까?”

이와 동시에, 한 줄기 백광이 목진과 유염이 부딪칠 곳에 내리꽂혀 두 사람을 막았다.

그 힘은 두 사람의 힘을 막아낼 만큼 강력하지는 않았으나 누군가의 말소리에 유염은 흠칫 놀라 바로 뒤로 물러나 제자리로 돌아갔고 목진도 영력을 거두며 내려가 좌측 상방을 쳐다봤다. 그곳에는 절세의 미인이 서 있었다.

하얀색 치마를 입은 여인은 빨간색 치마를 입은 여인 못지않게 미인이었고 미간에 빨간 점을 찍은 모습이 더없이 순결해 보였다.

그녀의 출현에 용봉각 내부는 순간 떠들썩해지더니 다들 사랑이 담긴 눈빛으로 여인을 바라보았다.

“용봉각에서 곧 용봉천에 관한 정보를 공유할 테니 잠시 싸움을 멈추게.”

“허허, 소비월 선녀였군.”

유염도 바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선녀의 말을 마다할 리가 있을까? 그럼 이번만큼은 봐주도록 하지.”

이에 목진이 피식 웃자 유염은 그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한기어린 눈빛으로 아래쪽을 쏘아보기만 했다.

유염이 핑곗거리를 찾아 물러난 것뿐임을 아는 목진도 그의 말에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더구나 용봉각에는 뛰어난 실력자가 정말 많았고 그중 몇 사람은 목진마저 위험하다고 느낄 정도였으니 유염도 당연히 눈치챘을 것이다.

유염이 이곳에서 목진과 싸우기라도 하면 어느 정도 대가를 치를 것이 분명한데 그러다 누군가 기회를 노리고 끼어들면 큰 손해를 볼 것이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적인 이곳에서 유염처럼 강력한 적을 물리친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그보다 목진은 하얀색 치마를 입은 여인이 용봉록 3위인 만성산 성녀, 소비월이란 사실에 흠칫 놀랐다. 영력 파동을 보니 충분히 용봉록 3위에 오를 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 언니. 좋은 구경 났는데 왜 그래요?”

그때 빨간색 치마를 입은 여인이 생긋 웃으며 말하자 사람들은 몰래 침을 꿀꺽 삼켰다.

“용봉천이 열리면 이보다 흥미로운 구경거리는 수도 없이 많을 거니까. 그때 가서 마음껏 구경해.”

소비월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럴게요. 그런데 지난번처럼 허튼수작을 부려도 더는 나를 이기기란 어려울 거란 것만은 명심해요.”

“과연 그럴까?”

소비월은 홍어가 히쭉 웃으며 한 말에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여인이 입을 열자 용봉각은 순간 조용해졌다. 다들 이들 사이가 범상치 않다는 것을 알아챘지만 그렇게 놀랍지는 않았다.

북계에서 두 여인 사이의 원한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어 목진과 유염의 대결보다 훨씬 더 기대되었다.

목진은 두 여인 사이는 전혀 관심이 없었기에 다시 자리에 앉으려 했다.

“대라천역에서 온 친구, 괜찮으면 여기 올라오겠나?”

그때 소비월이 갑자기 고개를 돌려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녀 역시 목진한테 관심이 생긴 모양이었다.

“누이한테 올래?”

홍어도 바로 목진한테 눈길을 돌려 매력을 발산하였다.

슉!

이에 용봉각 사람들이 질투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았고 목진은 순간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싸우려면 여인들끼리 싸울 것이지 왜 자신을 끌어들이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목진이 두 사람 중 누굴 선택하든 미움을 살 것이 분명했다.

그는 유염 같은 녀석과 적이 되는 한이 있어도 실력과 수단, 외모까지 고루 갖춘 여인들은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그녀들은 유염보다 훨씬 위험했다.

그런데 그때, 옆에 조용히 앉아있던 채소가 미소를 짓자 사람들은 바로 그녀한테 눈길을 돌렸고 소비월과 홍어도 그녀의 요염함에 조금 놀랐다.

그때 소녀의 옥구슬 같은 목소리가 용봉각에 울려 퍼졌다.

“언니들, 목진 한 사람을 두고 싸우기라도 할 건가 봐요?”

채소의 청량한 목소리에 다들 두 눈을 부릅뜨고 목진을 쏘아봤는데, 눈총으로 목진을 쏴 죽일 듯한 기세였다.

최고의 미인 셋이 목진 한 사람 때문에 말다툼을 벌이고 있으니 다들 질투가 난 것이다.

목진도 사람들의 예사롭지 않은 눈빛에 흠칫 놀라 채소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곧바로 소비월과 홍어한테 고개를 돌렸다.

“두 분의 뜻은 고맙지만, 그쪽은 너무 높아 내가 올라가면 누군가 내키지 않아 할 것 같습니다.”

목진의 말을 바로 알아챈 사람들은 몰래 유염을 힐끗거렸다.

소비월과 홍어도 가볍게 웃더니 더는 고집을 부리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채소한테 눈길을 돌렸다. 채소한테서 조금이나마 위험한 파동을 느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북계 젊은이 중 최정예에 속했는데 이들마저 위험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몇 명 없는지라 소녀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소비월과 홍어는 조용히 제자리로 돌아갔고 목진도 다시 자리에 앉아 찻잔을 들더니 생긋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채소를 쏘아보았다.

“내가 죽는 꼴을 보고 싶어 환장했어?”

이에 채소는 손으로 턱을 괴고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위쪽 두 사람이 너무 예쁘고 위험해서 도와주려고 나선 것뿐이야. 그러다 네가 그녀들의 미모에 넘어가 허튼짓이라도 하면 어떡해?”

“가장 위험한 건 너야.”

목진은 씩씩거리며 말했다. 소비월과 홍어가 아무리 절세의 미모를 지닌 강자들이라고 해도 채소만큼은 아니었다.

“사람 마음도 모르고!”

채소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하더니 용봉각 윗층을 쓰윽 훑어봤다.

“북계 젊은이 중에도 실력을 제법 갖춘 사람이 있군.”

이에 목진도 용봉각 위쪽을 쓰윽 훑었다. 그곳에는 소비월, 홍어, 유염 등을 제외하고도 강력한 영력 파동들이 느껴졌고 그중 한 갈래는 구유의 깊숙한 곳에 숨은 차디찬 얼음처럼 엄청난 한기를 내뿜었다.

해당 영력 파동의 주인은 바로 목진을 눈치채고 반격했는데 독사처럼 휘몰아치는 한기에 자칫하면 다칠 뻔했다.

목진은 상대방의 반격에 바로 인상을 찌푸리며 영력 감응을 거뒀다. 상대방의 차디찬 한기가 따라붙어 보라색 화염을 소환해 이를 떨쳐낸 뒤, 조심스럽게 영력 감응을 거뒀다.

“엄청난 한기야.”

목진은 이내 정색하며 위층의 어둑한 곳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는 해당 영력 파동의 주인이 누군지 알 것 같았다.

그는 아마 용봉록 2위인 유명궁의 유명 황자일 것이다.

“1위인 방의는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조차 않았네?”

유명 황자보다 더 강력한 영력 파동은 느껴지지 않았는데 이는 방의가 용봉각에 들어오지 않았거나, 녀석이 자신의 영력을 완벽히 가려 목진마저 알아채지 못했다는 두 가지 가능성뿐이었다.

만약 후자라면 방의의 실력은 생각보다 더 놀라울 것이다.

목진은 용봉록 강자들의 실력을 확인하고는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비록 순위를 다 믿는 것은 아니지만 유염보다 순위가 낮은 사람들도 절대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닐 것이다.

목진이 이번 기회에 이름을 날리는 일은 절대 쉽지 않을 것이다.

그 후로, 용봉각은 다시 조용해졌는데 사람들이 목진을 바라보는 눈빛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가 비록 유염과 제대로 싸우지는 않았지만 잠시나마 선보인 실력으로만 봐도 절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닐 거라고 여겼을 것이다.

목진은 비록 실력이 어느 정도 폭로되긴 했지만 불필요한 일들을 피할 수 있어서 만족했다.

목진이 조용히 용봉천에 참가한 사람들의 실력을 가늠하고 있는데 갑자기 맑은 종소리가 들려왔다. 용봉각 내부는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다들 고개를 들자 위층에서 나이든 누군가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허허, 용봉천은 회를 거듭할수록 흥미로워지는 것 같구나.”

노인은 나이는 어리지만 기세등등한 젊은이들을 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여러분, 내가 바로 용봉각의 각주, 모규(慕虬)란다.”

“모 각주를 뵙습니다.”

용봉각에는 북계 젊은이 중 정예들만 모였지만 다들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 용봉각은 사람이 얼마 없어 북계의 한 갈래의 세력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지만 북계에서 그들이 존재한 시간을 따라올 세력은 몇 없었다.

또한, 용봉각은 땅을 넓히지 않고 용봉고성을 지키기만 해서 적이 거의 없었고, 아무도 감히 이들과 적이 되려 하지 않았다.

“모 각주님께서 이번 용봉천에 대해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만성산의 소비월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용봉각 사람들의 수련법은 용봉천에서 획득한 거라 그 내부의 변화를 알아낼 수 있었다. 이에 매번 용봉천이 열릴 때마다 이곳에서 취한 정보를 공유하곤 하는 것이었다.

“허허, 그래야지.”

모규는 상냥하게 웃으며 말했다.

“다들 진정한 용과 진정한 봉황의 정혈을 얻기 위해 용봉천에 들어가려는 걸 잘 아네. 그런데 용봉천 내부는 시시각각 변화해 열릴 때마다 상황이 달라진단다. 그런데 이번엔 아쉽게도 용봉지가 다섯 개밖에 열리지 않은 것 같구나.”

“뭐요? 용봉지가 다섯 개밖에 없다니!”

사람들은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

“용봉지가 뭐야?”

채소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원고 시기, 진정한 용과 진정한 봉황이 별세하면서 피와 살, 그리고 뼈의 파편이 용봉천에 뿌려졌는데 그중 양자의 뼈가 한데 부딪쳐 용봉지를 이뤘다고 해. 용봉천 내부에서 생활하고 있는 영수들 체내에는 진정한 용이나 진정한 봉황의 피가 조금씩 섞여 있어 이들의 피를 용봉지에 주입한 뒤, 양자의 뼈에 깃든 힘을 빌려 수련하면 위룡체(偽龍體)와 위봉체(偽鳳體)를 얻을 수 있어.”

“그럼 위룡체와 위봉체는 뭔데?”

채소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음, 용봉천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더 깊숙한 곳에 있는 용봉대인데 그곳에 오르려면 위룡체와 위봉체가 있어야 해. 그러니까 진정한 보물을 얻으려면 용봉지의 세례를 통과해야만 해. 이게 유일한 방법이야.”

목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지난번에는 용봉지가 아홉 개나 나타났다고 들었는데 이번엔 다섯 개밖에 없네…….”

목진이 한숨을 쉬며 한 말에 채소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용봉천 대결은 더 치열할 것이 분명했다.

그때 모규가 용봉각 내부의 소란을 잠재우고 손을 가볍게 휘두르자 영력 광막이 나타났다. 그것은 흐릿한 지도였는데 다섯 개의 빛나는 광점이 보였다.

“이건 우리가 발견한 용봉지의 위치란다.”

이에 사람들은 바로 정신을 차리고 빠르게 지도를 외웠다.

목진도 영력 광막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비록 지도가 흐릿하긴 했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헤매는 것보다는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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