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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486화 (485/1,000)

486화. 백골산(白骨山)

목진이 다시 눈을 뜨자 주변 환경이 완전히 바뀌었다. 수많은 산맥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암홍색 평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는 초원의 한 언덕 위에 서 있었다.

그때 오래된 향기를 풍기는 바람이 불자 암홍색 초원이 하늘하늘 춤을 추기 시작했는데 꼭 혈해가 요동치는 것처럼 공포스러워 보였다.

위잉.

초원 위쪽 공간은 계속 진동하며 사람을 뱉어냈다. 그들은 공간 균열을 통해 용봉천에 온 사람들이었다.

공간 균열을 통과할 때, 무질서한 공간 파동 때문에 사람들은 임의로 나뉘어 떨어졌기 때문에 채소가 목진의 손을 잡았던 것이다. 그래야 두 사람이 같은 곳에 착륙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자 조용하던 암홍색 초원은 떠들썩해졌고 다들 낯선 곳을 살피다가 어딘가로 떠났다.

한편, 목진은 암홍색 초원에서 왠지 모르게 불안한 파동을 읽은 것 같아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위잉.

그런데 그때, 암홍색 초원에 갑자기 암홍색 풀이 날아올라 허공에서 흩어져 암홍색 혈무를 형성하더니 먼저 앞서나간 강자 수십 명의 주위를 감쌌다.

쿵!

이에 수십 명의 강자가 바로 체내의 영력을 한껏 끌어올려 암홍색 혈무를 물리치려 했지만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그들은 비명 한 번 질러보지 못한 채 백골이 되어 추락했다.

이러한 광경에 사람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건 뭐지?”

누군가 화들짝 놀라 외쳤다.

이에 목진은 암홍색 혈무를 뚫어져라 쳐다봤는데 이는 안개가 아니라 수많은 암홍색 벌레였다.

손가락 한 마디만큼 작은 벌레의 수는 실로 엄청났고 영력까지 삼키며 지나갔다.

목진이 갑자기 무언가 떠올라 옷깃을 휘날리자 영력이 암홍색 초원을 향했는데 지난 곳에 있던 암홍색 풀들이 순간 혈무가 되었다.

목진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곳은 초원이 아니라 벌레로 이뤄진 바다였다!

“얼른 떠나자!”

목진은 바로 채소의 팔목을 잡고 도망갔다. 용봉천은 생각보다 훨씬 위험했다. 조금만 잘못하면 바로 이곳에서 숨질 것이다.

다른 젊은 강자들도 목진과 똑같은 선택을 했다. 그들은 유난히 재수가 없어 이토록 위험한 곳에 전송된 것 같았다.

위잉!

그런데 벌레들은 수많은 사람이 도주하며 발산한 영력을 읽고 바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암홍색 초원은 부활한 듯 미친 듯이 요동치며 소용돌이를 형성하며 사람들에게 향했다.

위잉.

암홍색 충해로 형성된 소용돌이 중 한 갈래가 목진과 채소에게 향했는데 그 기세등등한 모습에 그는 안색이 어두워진 채 웅장한 영력이 깃든 기의 회오리를 쐈다.

퍽!

암홍색 벌레들은 목진의 영력을 대부분 꿀꺽 삼켰는데 얼마 되지 않아 몸이 활활 불타올랐다.

녀석들이 불사화에 타버리는 모습에 목진은 깜짝 놀랐다.

“네가 영력을 제법 괜찮은 화염과 융합한 것 같은데 이를 소환해서 녀석들을 상대하면 될 것 같아. 저들이 네 영력을 삼키긴 하겠지만 그 속에 깃든 화염을 무서워하는 것 같아.”

채소의 말에 목진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더니 보라색 화염을 소환해 그와 채소의 주위에 보호막을 형성했다.

슉!

불사화로 온몸을 휘감은 목진은 채소와 함께 충해에 달려들었는데 녀석들은 불사화에 닿자 귀청을 찢는 듯한 소리와 함께 전부 잿더미가 되었다.

목진은 전력을 다해 전진했지만, 뒤쪽에서는 처량한 비명이 끊임없이 들렸다. 적잖은 젊은이들이 충해를 넘지 못하고 백골이 되어 추락했다. 그런데 목진은 저들을 구해줄 여유가 없었다. 일단 충해에 둘러싸이면 제아무리 불사화가 있다고 한들 언젠가 영력이 닳아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슉.

목진은 채소와 함께 1각 정도 달려서야 암홍색 초원에서 벗어나 민둥민둥한 석산 위에 내려앉아 뒤를 돌아보았다. 암홍색 초원에 혈무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꼭 멸세지난 같았다.

그러나 도망쳐 나온 것은 목진과 채소뿐만이 아니었다. 목진처럼 영력을 화염과 융합한 사람들도 그 힘을 빌려 간신히 충해를 뚫고 나왔다.

“첫 번째 관문에서 사람들이 너무 많이 죽었어.”

목진은 한껏 정색하며 말했다. 목진과 함께 이곳에 나타난 사람은 수천 명이나 되었는데 지금은 아마 백 명도 안 돼 보였다. 엄청난 사망률에 소름이 쫙 돋았다.

용봉천은 참으로 위험천만한 곳이었다.

목진은 고개를 저으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영력 지도를 소환했다. 그것은 바로 용봉각에서 얻은 지도였다.

다만, 지도가 또렷하지 않아 한참 헤매고서야 현재 위치를 찾아냈다.

“우린 아마 이쯤에 있을 거야.”

채소는 가녀린 손가락으로 좌측 아래쪽을 가리키며 말하더니 자신과 가장 가까운 광점에 손을 얹었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용봉지가 여기 있으니까 여기부터 가보자.”

용봉지를 하나라도 찾아야 그 힘을 빌려 다른 용봉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목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영력 지도를 거두고 깊게 숨을 들이켜며 서남쪽을 바라봤다. 목진은 비록 용봉천이 처음이지만 용봉지 주위는 충해보다 더 위험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이 목진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가자.”

목진은 나지막하게 말하며 먼저 하늘 높이 날아올랐고 채소도 바로 그 뒤를 따랐다.

* * *

슉!

두 갈래 빛줄기가 빠르게 창망한 하늘을 가르며 지나갔다. 두 사람은 속도가 엄청 빨랐지만 최대한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조용히 움직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만 장 정도 비행한 두 사람은 갑자기 멈춰서더니 아래쪽 산봉우리에 내려앉자 종적을 감췄다.

잇따라 앞쪽 공간이 파르르 떨리더니 방대한 영수 수백 마리가 포효하며 지나갔는데 순간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목진은 채소와 함께 숨어들어 무리를 지어 지나가는 영수들을 보고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용봉천에 이와 같은 영수들이 너무 많았다. 그들은 비록 똑똑하지는 않지만 진정한 용과 진정한 봉황의 정혈에 힘입어 엄청난 힘을 가졌다.

하여 녀석들에게 발견돼 엄청난 대가를 치르기보다는 영수들을 피하기로 했다.

“곧 용봉지에 도착할 것 같아.”

채소가 주위를 훑으며 말했고 목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멀리 떨어진 곳에서 아주 특이한 파동을 읽었는데 강력한 위압감이 함께 느껴졌다. 비록 거리가 멀었지만 목진은 체내의 영력이 전보다 느리게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이 용봉지를 눈여겨본 사람들은 어떤 실력자들일까?”

목진은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알려진 다섯 개의 용봉지 중 이곳에 몰려든 강자들의 수가 너무 많았다. 다들 그 속에 들어가 수련하기 위해 피 튀기는 싸움을 벌일 것이다.

결국 최종 승자만 용봉지에 들어갈 수 있는데 실력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절대 불가능할 것이다.

잠시 후, 영수 무리가 지나가자 목진과 채소는 다시 움직였다. 그러나 반 시진도 안 되는 사이에 영수 무리를 수십 번이나 마주쳤다. 최선을 다해 피했지만, 눈치가 빠른 영수들은 전혀 피할 수 없어 싸우느라 결국 속도가 느려졌다.

목진은 이런 상황에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그들이 향하는 방향이 틀림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과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영수 무리를 이렇게까지 많이 마주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용봉지에 가까워질수록 부딪치는 영수의 실력이 점차 강해졌기에 목진과 채소는 절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두 사람은 무사히 영수들을 따돌리고 산맥 하나를 넘어 고봉에 내려앉았는데 앞쪽에 펼쳐진 광경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와르르 무너진 대지에 깊숙한 자국이 잔뜩 나 있었는데 그것은 천지를 뒤흔들 만큼 무서운 싸움이 일어났었다는 증거였다.

또한, 무너진 대지의 중심에 하얀색을 띤 웅장한 산맥이 구름을 가르며 우뚝 솟아올랐는데 자세히 보니 백골이 쌓여 이뤄진 것이었다!

백골의 양이 너무 많아 한데 모여 방대한 산을 이룬 것이었다.

한편, 백골산 표면에 오래된 빛의 무늬가 흐릿하게나마 보였는데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미세하게 번쩍이며 무서운 위압감을 형성하였다.

“용봉지는 아마 백골산 위에 있을 거야.”

목진은 구름을 뚫고 우뚝 솟아오른 백골산 정상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곳에서 발하는 위압감이야말로 가장 그윽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채소는 무너진 대지와 백골산을 훑어보더니 무덤덤하게 말했다.

“사람이 제법 모였네?”

소녀의 말에 목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영력 파동이 적잖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조금만 기다려보자. 용봉지가 코앞에 있긴 하지만 들어가기는 절대 쉽지 않을 거야.”

목진은 용봉지에 바로 뛰어들려 하지 않았다. 값진 보물일수록 주위에는 위험한 무언가가 있기 마련이었다.

여기까지 도착한 것도 쉽지 않았는데 용봉지에 들어가는 것이 쉬울 리 없었다.

채소는 목진의 태연함에 놀라지 않았다. 며칠 동안 지내다 보니 그녀는 목진이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뛰어난 지혜와 굳건한 마음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전부 목진처럼 태연한 것은 아니었다. 멀리 떨어진 산맥 위쪽에 한 무리가 강력한 영력 파동을 뽐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수많은 영수 무리를 뚫고 이곳 용봉지에 왔다는 것은 그들도 실력이 충분하다는 뜻이었다.

백 명 정도 되는 무리는 백골산이 위험천만하다는 걸 알고 있는지 누구 하나 먼저 뛰어들지 않고 함께 움직이기로 협의를 했다. 그러다 위험한 상황이라도 생기면 함께 맞서면 되기 때문이다.

슉!

이렇게 백 갈래 빛줄기가 신속하게 하늘을 가르며 백골산을 향하더니 균일하게 흩어졌다.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목진은 갑자기 무언가의 목소리를 들었고 백골산에서 열기가 끓어오르는 것을 발견했다.

아우!

잇따라 백골산이 격렬하게 진동하더니 균열이 생겼고 하얀색 그림자들이 균열을 비집고 밖으로 나왔다.

이에 가장 앞쪽에서 달리던 젊은이 십수 명은 순간 수백 개의 그림자에 포위되었는데 녀석들은 예리한 발톱을 세워 공간을 가르며 공격을 개시했다.

그들은 바로 영력을 한껏 끌어올려 보호막을 형성했지만 목숨을 부지할 수는 없었다. 검은색 비늘로 덮인 하얀색 그림자들은 순식간에 발로 영력 보호막을 뚫고 계속 공격했고 십 수명의 젊은이들은 비명도 못 질러보고 즉사했다.

으악!

그때 다른 곳에서도 처량한 비명이 들리자 나머지 강자들은 잔뜩 겁에 질려 미친 듯이 물러났는데, 그중 절반이 눈 깜짝할 사이에 갈기갈기 찢어졌다.

“참 무서운 괴물이야.”

목진은 안색이 한껏 어두워진 채 상황을 살폈다. 하얀색 그림자는 원숭이 모양을 하고 몸이 온통 하얗고 사람의 몇 배 되는 크기에 검은색 발을 가진 괴물이었는데 발에 난 검은색 비늘이 햇빛에 반사되자 무서운 기운을 풍겼다.

게다가 녀석들은 등에 난 뼈로 된 날개로 인해 속도가 엄청났다.

“용과 봉황의 정혈이 이 공간을 엉망으로 만들었군.”

채소는 입을 삐쭉 내밀며 말했다. 용과 봉황의 정혈이 지능이 없는 괴물들한테 엄청난 힘을 주었기 때문에 이곳이 이렇게 변한 것이다.

이에 목진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들은 기껏해야 2급 지존경의 실력을 지녔는데 그 수가 너무 많아 다들 꼼짝 못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목진은 백골산 깊숙한 곳에서 그들보다 더 난폭한 파동 몇 갈래를 읽었다.

백골산은 역시 아무나 오를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일전의 도살로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녀석들은 더는 나서지 않고 백골산 주위만 떠돌아다녔다.

한편, 황급히 물러난 강자들은 이내 사색이 되었다. 직접 겪고 나니 비로소 백골산의 위력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조용히 그들을 지켜보던 사람들도 안색이 어두워져 감히 나서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곳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다.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누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여러분, 계속 기다려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네. 녀석들이 아무리 강해도 우리가 함께 나서서 맞선다면 절대 당해내지 못할 걸세.”

영력이 깃든 누군가의 힘찬 목소리가 주위에 울려 퍼지자 사람들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럽시다!”

다들 이곳을 지키고 있어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닫고 나서려 했다. 녀석들은 절대 그들의 상대가 안 될 것이다.

쿵! 쿵!

강력한 영력 파동이 하늘 높이 솟구치더니 저 멀리 산맥 상공에 상당히 많은 수의 사람들이 모였다.

“우리도 가자.”

목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함께 나서기만을 기다렸다. 저들이 앞장서서 장애물을 제거하면 그 틈을 타 백골산에 오르려 한 것이다.

“너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닐 거야.”

채소도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곳에는 실력이 뛰어난 사람도 많고 진정한 강자들도 적잖게 존재했는데 그들은 목진처럼 바로 백골산에 뛰어들지 않았다. 보아하니 다들 목진과 비슷한 생각을 한 듯했다.

“그럼 누가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지 보지.”

목진은 히쭉 웃더니 의지가 활활 타올랐다.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곳 용봉지를 차지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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