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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490화 (489/1,000)

490화. 가로채다

퍽!

거대한 지존법신이 폭발해 수많은 광점이 되어 쏟아져 내리자 목진과 유염은 온몸을 파르르 떨며 뒤로 튕겨 나갔다.

목진은 강제로 몸을 추스르고는 입가의 피를 닦았다. 어느새 생기를 되찾은 목진의 머리카락은 원래대로 돌아왔고 심마 상태에서 물러난 상태였다.

목진은 무덤덤하게 유염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유염의 실력에 깜짝 놀랐다. 그는 지존영액 20만 방울로 구양신통 이양의 힘을 끌어내면 유염을 제압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그런데 유염은 그 힘을 빌려 선보인 천양황금인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유염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그는 온몸을 파르르 떨며 눈을 부릅뜨고 목진을 쳐다봤다.

유염이 일단 분천지우를 소환하면 제아무리 4급 지존이라도 당해내지 못하고 죽었어야 했는데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죽었어야 할 목진은 최후의 반격을 통해 방어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그 공격 여파에 지존법신까지 부서졌다. 유염이 조금이라도 포기가 빨랐다면 아마 이곳에서 죽는 사람은 그였을 것이다.

“이럴 리가!”

유염은 사색이 된 채 중얼거리고는 입가를 파르르 떨었다.

목진한테서 엄청난 위협을 느낀 그는 여력만 있으면 당장에라도 목진을 죽이고 싶었다. 나이가 훨씬 어린 목진의 전투력은 현재의 유염 못지않아 몇 해만 더 지나면 분명 그를 뛰어넘을 것이다.

그는 대라천역에서 왜 3급 지존밖에 안 되는 목진을 용봉천에 보냈는지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목진 정도 실력이라면 4급 지존도 절대 그를 죽이지 못할 것이다.

“아직도 날 죽이고 싶나?”

유염의 눈가에 서린 살기를 읽은 목진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러고 싶어도 그럴 힘은 있고?”

유염도 목진 못지않게 중상을 입어 이를 악물고 주먹을 꽉 쥐었다.

퍽!

유염이 무언가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엄청난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몸통이 상당한 신수를 백골산 정상에 던졌다.

이에 유염이 고개를 돌리고는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것은 바로 온몸이 빨간 거대한 이무기로 온몸에 비늘을 뒤집어쓴 채 무서운 살기를 방출하는 엄청난 흉물이었다.

녀석은 온몸의 비늘이 부서졌고 피를 철철 흘려 금세 백골산 정상을 빨갛게 물들였다. 그리고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구경꾼들은 순간 소름이 쫙 끼쳐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다들 녀석이 적혈신망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용봉천에 들어온 적혈신망은 용봉록 9위인 사신전 적혈밖에 없었으니, 이곳에서 숨진 녀석은 바로 적혈이었다!

적혈이 죽었다니!

유염은 믿기 어려운 사실에 온몸을 파르르 떨렸고 구경꾼들마저 머리가 지끈거렸다. 적혈은 비록 용봉록에서 9위밖에 안 되지만 정작 대결을 벌이면 아무리 유염이라도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또, 적혈과 싸워 이길 수 있다고 해도 녀석을 죽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목진도 멍하니 녀석의 시체를 바라봤는데 그 사이로 여리여리한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채소가 맨발로 적혈의 커다란 머리를 밟더니 우아하게 몸을 움츠리고 앉아 손으로 녀석의 머리를 가볍게 때리자 채아가 나타나 녀석을 덥석 물었다.

이에 거대한 적혈의 시체는 눈 깜짝할 사이에 메말라 뼈와 껍질만 남았다. 그 모습에 구경꾼들은 입이 떡 벌어졌다.

잇따라 채아가 만족하듯 고개를 들어 혀를 날름거리자 채소는 생긋 웃으며 녀석을 어루만졌다.

채아가 다시 숨어들자 채소는 느긋하게 기지개를 켰는데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를 감히 직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곳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바로 신비롭고 예쁜 소녀였다.

“끝났어?”

채소는 목진과 유염을 힐끗 보더니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녀석을 죽일 생각은 없었는데 하는 말이 너무 귀에 거슬려서 어쩔 수 없었어.”

소녀의 말에 목진은 괜히 머쓱하게 웃었다. 녀석도 참, 왜 겁도 없이 채소를 함부로 대해 죽음을 자초했단 말인가?

“아직도 저 녀석을 죽이지 못한 거야?”

채소가 유염한테 고개를 돌리자 녀석은 잔뜩 긴장한 채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내가 대신 죽여줄까?”

슉!

채소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말에 유염은 바로 백골산에서 물러났다. 목진은 녀석의 신속한 판단에 멈칫하더니 입을 삐쭉 내밀었다. 유염도 죽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

그도 이곳에서 유염을 죽이고 싶었으나 지금 상태로는 불가능했다. 소녀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아 내버려 뒀다.

“목진, 우리 사이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딱 기다리게!”

유염은 서둘러 한 마디만 남기고 한 줄기 빛이 되어 사라졌다.

이에 목진은 주위에 몰려든 구경꾼들에게 고개를 돌렸는데 다들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목진과 유염의 싸움을 본 이들은 더는 목진을 일반 3급 지존으로 여기지 않았다.

“우리와 이곳 용봉지를 다툴 사람이 있을까요?”

목진이 주위를 쓰윽 훑으며 묻자 다들 이를 악물고 그곳을 떠났다. 목진은 비록 유염과의 대결 때문에 기진맥진했지만, 그 옆에 서 있는 신비로운 소녀가 더 무서웠다. 손쉽게 적혈을 죽일 수 있는 소녀야말로 진정한 강자였다.

그러니 제아무리 용봉지를 잃고 싶지 않아도 목숨보다 중요한 건 없어 물러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목진은 사람들이 철수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백골산 정상에 올랐다는 것 자체가 실력을 어느 정도 갖췄단 뜻이라 다들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들면 목진과 채소 두 명이 상대하기에는 조금 버거울 수도 있었다. 목진은 사람들이 알아서 물러나 줘서 고마웠다.

“이제 용봉지를 열자.”

채소가 손을 훌훌 털며 말했다. 목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일전에 죽인 마원의 혈맥을 잘라 녀석의 피를 용봉지에 쏟아부었다.

콸콸.

짙은 피비린내와 함께 빨간 피는 1각도 안 되는 사이에 용봉지의 절반 정도를 채웠다.

위잉.

그때 용봉지가 미세하게 떨리더니 우렁찬 용음과 함께 새하얀 뼈로 이뤄진 용봉지에 오래된 빛의 무늬가 나타났다.

그러다 선혈이 비등했는데 용봉지에서 용과 봉황이 헤엄치는 것 같았다.

녀석들이 헤엄치자 진득했던 선혈은 맑고 투명해졌고 피비린내도 전부 사라졌다.

피로 가득 찼던 용봉지는 눈 깜짝할 사이에 신비로운 기운을 풍기는 곳으로 변했고, 그 속에서 뿜어내는 신비로운 힘에 공간이 파르르 떨렸다.

“들어가 봐.”

채소가 용봉지 옆에 서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함께 들어가지 그래?”

이제 진정한 용봉지가 되었으니 들어만 가면 엄청난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난 진정한 용의 정혈이 필요한데 이곳의 정혈은 너무 묽어.”

채소는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는 손을 휘익 저었다.

“사내라면 주저하지 말고 얼른 들어가.”

“고마워.”

목진은 감사의 인사를 하고 바로 용봉지에 뛰어들려 했다.

퍽!

그런데 그때, 백골산 정상에 있는 백골 한 채가 갑자기 폭발해 사방에 파편을 튕겼는데 그 속에서 흐릿한 그림자가 공간을 가르며 목진보다 앞서 용봉지에 뛰어들었다.

목진은 순간 안색이 어두워진 채 살기 가득한 얼굴로 녀석을 노려봤다.

감히 그가 어렵게 취한 전리품을 가로채려 하다니!

슉!

검은색 그림자가 귀신같이 나타나 용봉지로 향하자 목진은 화들짝 놀라 영력 대신 속도가 가장 빠르면서도 절대 피할 수 없는 유명심마뢰를 소환했다. 그러자 손바닥에 무형의 뇌광이 번쩍이다가 폭발했다.

여태껏 생사를 오가는 싸움을 수도 없이 겪은 목진의 판단은 정확했다.

쿵!

검은빛 그림자는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갑자기 울려 퍼지는 뇌음에 어두운 빛을 발산하며 저항했지만 금세 떨쳐내지 못하고 멈칫했다.

바로 그때, 채소가 녀석의 앞쪽에 나타나 빠르게 손가락을 긋자 은은한 백광을 발하며 그곳 공간이 떨리며 쭉 찢어졌다.

그가 음산한 기운이 깃든 어두운 빛을 발하는 두 손가락을 굽혀 채소의 손과 닿자 육안으로도 확인 가능한 힘의 파문이 일어 아래쪽 용봉지에 엄청난 파도가 일었고 채소는 온몸을 파르르 떨더니 뒤로 한 보 물러났다.

슉!

검은색 그림자 역시 뒤로 물러나더니 허공에 멈춰 섰는데 어느새 흑광이 가시고 정체가 드러났다.

이에 사람들은 바로 눈길을 돌렸는데 그 정체를 알고 화들짝 놀랐다.

“저 사람은 유명궁의 유명 황자야.”

그 소리에 목진도 흠칫 놀라 녀석을 쳐다봤는데 검은색 도포를 입은 한 사내가 검은색 장발을 드리운 채 허공에 서 있었다. 제법 잘생긴 녀석은 한기를 물씬 풍겼고 날카로운 눈매로 누굴 쏘아보든 상대방의 몸에 구멍이 뚫릴 것 같았다.

정작 유명 황자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허공에 떠 있었고 채소를 상대하는 데도 상당히 태연했다. 그의 실력은 유염과 천지 차이였다.

“용봉록 2위인 유명 황자였군.”

목진은 검은색 도포를 입은 사내를 노려보고는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당신 같은 사람이 왜 이토록 떳떳하지 못한 짓을 한 건가?”

“가장 쉬운 방법으로 엄청난 걸 수확할 수 있는데 내가 왜 마다한단 말인가?”

유명 황자는 피식 웃더니 목진을 쏘아보며 말했다.

“유염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라 먼저 상대하기보다는 이렇게 먼저 다른 이의 대결을 지켜보는 게 더 흥미롭지.”

“그런데 결국 자네가 원하던 대로 되지 않아 아쉽겠군.”

목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는데 유명 황자한테서 느껴지는 유난히 음산한 기운에 잔뜩 경계하였다. 녀석은 마치 어둠 속의 독사 같았고 일단 공격을 개시하면 누구 하나는 꼭 죽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확실히 아쉽긴 하네.”

유명 황자는 목진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목진과 유염이 중상을 입고 전투력을 완전히 잃으면 다시 나와 두 사람을 쓰러뜨리고 용봉지에 들어가려고 일부러 특수한 방법으로 이곳에 반나절 동안 숨어있었는데 실력이 막강한 채소가 갑자기 나타날 줄 몰랐다.

그는 채소한테 눈길을 돌리며 물었다.

“당신은 도대체 누군가? 북계에는 절대 당신 같은 젊은이가 없는데.”

그러나 채소는 못 들은 척 백골산 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 당장 떠나지 않으면 절대 무사하지 못할 거야.”

채소의 말에 유명 황자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노려보자 눈동자에서 어두운 빛을 발하더니 주위의 공간이 조금씩 일그러졌다.

그 광경에 채소도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백골산 밖 구경꾼들은 손에 땀을 쥔 채 상황을 살폈다. 유명 황자가 신비로운 소녀와 싸우기라도 하면 이들한테 용봉지에 들어갈 기회가 생길 수도 있었다.

신비로운 소녀의 실력이 엄청나긴 하지만 유명 황자도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라서 일단 싸움이 나면 목진과 유염 때보다 훨씬 치열할 것이다.

이렇게 백골산 정상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로 휩싸여 다들 천지를 뒤흔들 만큼 엄청난 싸움을 예상했는데 유명 황자는 주위의 파동을 신속하게 거두며 물러났다.

그는 용봉지 하나 때문에 물불 안 가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신비로운 소녀와 용봉지를 다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제아무리 유명 황자라도 소녀와의 대결에서 절대적인 승산은 없었다.

반면, 목진은 전혀 두렵지 않았다. 비록 소년이 유염과의 싸움에서 엄청난 실력을 선보이긴 했지만, 그의 눈에 들려면 아직 실력이 부족했다.

하여 완벽한 승리를 자신할 수 없는 유명 황자는 곧바로 물러났다. 용봉천에 들어온 사람들은 최대한 빨리 용봉지를 찾아 위룡체와 위봉체를 수련해야 했기 때문에 이곳에서 대치해봐야 좋을 게 없었다. 용봉천에 용봉지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유명 황자는 잔뜩 놀란 사람들을 뒤로한 채 바로 물러났다. 그는 사람들의 반응 따위에 결정을 바꿀 사람이 아니었다.

한편, 목진은 유명 황자의 눈빛에서 자신을 향한 살기를 느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대라천역과 유명궁은 처음부터 그리 사이가 좋지 않았다. 게다가 대라천역의 천재가 용봉천에 들어서자마자 유명궁의 손에 죽어 체면이 바닥을 친 뒤로는 관계가 완전히 틀어졌다. 오늘 일이 없더라도 두 사람은 친구가 될 수 없었을 것이고 유명 황자는 분명 목진을 죽이려 할 것이다.

“적이 또 한 명 늘었군.”

목진은 중얼거리며 생각했다. 유염을 내치자마자 갑자기 유명 황자가 나타났고 용봉고성에서 만났던 신각 방의까지 더하면 그는 용봉록 순위권의 선두를 달리는 사람을 거의 적으로 돌렸다.

그런데 목진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기회는 한정적이고 사람은 많아 적이 되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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