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4화. 제련
“넌 아직 용봉금갑의 진정한 위력을 보지 못했어.”
채소가 미소를 지으며 한 말에 목진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진정한 용과 진정한 봉황의 힘은 서로를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건 위룡체를 수련해서 잘 알 거야. 아무리 용봉지에 진정한 용과 진정한 봉황의 정혈이 있어도 결국 더 강한 한쪽이 상대방을 집어삼켜. 그러니까 넌 승자의 정혈을 흡수할 수밖에 없어.”
채소는 앞쪽에 있는 용봉금갑을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이 갑옷은 두 가지 힘을 한데 융합하는 데 성공해서 금갑 수호자가 진정한 용과 진정한 봉황의 힘을 동시에 얻은 거야. 녀석은 본인의 실력보다 용봉금갑의 힘을 빌려서 그렇게 강했던 거야.”
“네 말은…….”
목진은 순간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만약 네가 용봉금갑을 취하면 동시에 진정한 용과 진정한 봉황의 정혈을 흡수할 수 있을 것야. 그럼 넌 진룡체와 진봉체를 동시에 수련할 수 있겠지. 하하하, 용봉체(龍鳳體)라고 해야 하나?”
채소가 방긋 웃으며 한 말에 목진은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용봉체라…….”
아무리 그라도 이러한 유혹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용봉천이 열린 지 오래되고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이 진룡체와 진봉체를 수련하는 데 성공했지만 양자를 동시에 수련하는 데 성공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는 일반 방법으로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일말의 희망이 생겼으니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목진은 한참 지나서야 마음을 가라앉히고 용봉금갑과 채소를 번갈아 봤다.
“이건 네 전리품이야.”
목진은 욕망에 눈이 멀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채소가 아니었으면 그는 여기에 오지 못했을 거고 이토록 엄청난 보물을 수중에 넣을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쭈뼛대지 말고 네가 가져. 네가 목숨을 걸고 나서지 않았으면 난 절대 녀석을 해결할 수 없었을 거야. 그리고 용봉금갑이 희귀하긴 해도 내 마음을 움직일 정도까지는 아니야.”
말을 마친 채소는 바로 용봉금갑을 목진한테 넘기고는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큰 집 아가씨가 따로 없군.”
목진은 채소가 일부러 이리 말한 것을 알면서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토록 희귀한 보물을 쉽게 마다할 사람은 적었으니까. 목진은 용봉금갑을 건네받고 진지하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럼 고맙게 받을게. 앞으로 내가 필요하면 어디든지 불러.”
“잘난 척하긴.”
채소는 목진을 흘겨보며 말했다. 그녀가 도움이 필요하다고 해도 목진의 실력으로 전혀 도움을 줄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은 어렵겠지만 미래의 일을 누가 보장할 수 있을까?”
목진은 차가운 용봉금갑을 어루만지며 말하더니 가볍게 미소를 지었고 채소는 무덤덤한 표정에 깃든 엄청난 자신감에 조금 놀랐다. 그것은 결코 자만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의지였다.
하긴,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소년이 앞으로 대성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용봉금갑으로 미래의 엄청난 강자의 약속을 얻어냈으니, 제법 좋은 거래 같군.”
자신을 한참 노려보던 채소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목진은 머쓱하게 고개를 긁적였다. 다른 이가 이처럼 아무런 보장도 없는 약속을 들었으면 절대 소년을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우리의 전리품을 확인해볼까?”
채소는 황금색 물이 가득한 엄청난 용봉지를 바라보더니 그 뒤쪽에 있는 황금색 묘목에 눈길을 돌렸다. 그 위에 달린 눈부신 빛을 발하는 용봉과 세 알이 이 구역에서 가장 눈부시게 빛났다.
잇따라 채소와 목진은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바로 황금색 묘목에 다가가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 주위 공간이 갑자기 일그러지더니 그 속에서 칼이 나타나 용봉과 세 알을 떨어뜨린 뒤, 다시 사라졌다.
갑작스러운 변고에 채소와 목진은 흠칫 놀랐다가 금세 정색하였다.
“용봉록 천재들은 비겁한 짓을 하는 것을 낙으로 삼나 보지!”
채소는 피식 웃으며 말하더니 갑자기 사라졌다가 허공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손을 휘둘러 앞쪽 공간을 부쉈다.
퍽!
그때 그 속에서 누군가 손을 뻗어 반격하자 엄청난 영력 파동이 휘몰아치더니 소녀는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금갑 수호자와 치열한 싸움을 치른 채소의 상태는 그렇게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수중에서 물건을 빼앗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었다. 소녀가 두 손을 모아 결인한 뒤 앞쪽 허무한 공간을 향해 오색 찬연한 빛을 발하는 손을 휘익 저었다.
이에 공간이 부서지며 피가 몇 방울 튕겼고, 공간이 파르르 떨리며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놀라운 속도로 도망갔는데 채소마저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빨랐다.
채소가 한기 어린 눈빛으로 멀어져가는 녀석을 노려보다가 손가락을 튕기자 금광을 발하는 용봉과 두 알이 눈앞에 나타났다.
“녀석한테 한 알 빼앗겼어.”
채소는 안색이 조금 어두워진 채 말했다. 그녀는 비록 용봉과를 두 알 얻었지만 한 알을 빼앗긴 것이 잔뜩 언짢았다.
반면, 목진은 용봉과 두 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그들이 수중에 넣은 것은 완전히 익은 것이고 빼앗긴 것은 열매가 맺힌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이었다.
목진도 한기 어린 눈빛으로 녀석이 떠난 방향을 바라봤다. 그는 비록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가능한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신각 방의라…….”
하늘에 일었던 공간 파동이 사라지자 그곳은 조용해졌지만 채소의 안색은 한층 어두워졌다. 방의가 빼앗아간 것은 비록 익지 않은 용봉과지만 이런 일을 처음 당한 소녀는 세상 끝까지 따라가서라도 방의를 죽이고 싶었다.
“참 교활한 녀석이야.”
목진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채소한테서 물건을 빼앗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인데 방의가 이를 해냈으니 그 실력은 엄청날 것이다.
또한, 그들은 녀석이 도대체 언제부터 어떻게 뒤를 밟았는지 알아채지 못했다. 채소가 분명 용봉각 때의 일 때문이라도 주위를 살폈을 텐데, 녀석은 지난번에 들킨 뒤로 채소를 상대할 방법을 생각해낸 것이 분명했다.
채소와 금갑 수호자의 대결을 지켜보다가 채소가 최강수를 선보이고 몸이 허약해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나섰으니 그는 섣불리 움직이는 사람이 절대 아니었다.
녀석이 채소를 너무 쉽게 생각해 결국 용봉과를 한 알밖에 가져가지 못했으니 다행이었다.
이렇게 정체가 드러난 이상, 녀석은 더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 잔뜩 화가 난 채소의 손에 잡히면 다시는 이곳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절대 그 녀석을 가만두지 않을 거야.”
채소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보아하니 그가 무사히 용봉천에서 나가는 일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이에 목진은 불쌍한 방의를 위해 미리 묵념했다. 제아무리 용봉록의 1위라 해도 채소의 눈에 나면 상당히 골치 아파질 것이다.
“넌 일단 용봉금갑부터 제련해. 녀석은 이제 더는 못 돌아와.”
어느새 안정을 되찾은 채소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 말에 목진은 히쭉 웃더니 용봉지 옆에 놓인 거대한 바위 위에 앉아 다시 금갑을 소환했다.
용봉금갑은 상당히 정교했다. 황금색 용린에 새겨진 오래된 부적도 신비로웠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양자의 정혈이 한데 융합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용의 비늘과 진정한 봉황의 깃털이 모여 자연스럽게 해당 신물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천지의 영기를 머금고 태어난 신물이었다.
목진이 주먹을 쥐자 보라색 화염이 깃든 영력이 나타나 용봉금갑을 감쌌고 그 엄청난 고온에 주변의 온도가 순간 올라갔다.
잇따라 목진이 정혈을 뱉자 용음과 봉황의 울음소리가 함께 들렸고 금갑은 눈부신 금광을 발하며 목진의 정혈의 침입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목진은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느긋하게 자염으로 용봉금갑을 제련했는데 시간이 흐르자 갑옷의 표면에 황금색 액체가 나타난 것이었다. 이는 용의 비늘이 보라색 화염에 타면서 생긴 변화였다.
황금색 액체는 용봉금갑의 제1 방어막일 뿐이었다. 목진한테는 이 정도면 충분했다. 그가 마음을 움직이자 정혈은 황금색 액체와 융합해 갑옷에 부착되었다.
목진의 정혈은 양쪽의 융합의 힘을 빌려 갑옷에 정혈 낙인을 남겨 자신과 연결을 맺었다.
이 정도 신기를 제련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용봉금갑은 주인이 없는 물건이고 목진이 위룡체를 수련해 체내에 진정한 용의 기가 깃들어있어 다행히 그의 정혈 낙인을 배척하지 않았다.
이렇게 갑옷의 제련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낙인이 형성되자 목진은 용봉금갑과 연결을 맺은 것이 느껴져 이내 화색이 되었다. 그도 일이 이렇게 쉽게 풀릴 줄은 몰랐다.
잇따라 목진이 손을 가볍게 휘두르자 용봉금갑은 한 줄기 금광이 되어 날아와 그의 몸을 감쌌다.
목진은 온몸을 감싼 금갑이 발하는 눈부신 빛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토록 강력한 방어력이 있는 갑옷을 입고 유염과 싸웠더라면 녀석이 아무리 분천지우를 사용했다고 해도 목진은 절대 중상을 입지 않았을 것이다.
“참 좋은 물건이야.”
용봉금갑의 방어력은 뇌신체보다 훨씬 강했다. 대신, 뇌신체는 육신 자체의 방어이고 용봉금갑은 외부의 힘을 빌린 방어였다.
그때, 목진이 마음을 움직이자 용봉금갑이 금광이 되어 피부에 스며들었다. 이제 목진이 원하면 언제든 갑옷을 소환할 수 있게 되었다.
용봉금갑의 제련을 마친 목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황금색 물로 가득 찬 용봉지로 눈길을 돌렸다. 이곳 용봉지에 깃든 정혈의 힘은 일전에 그가 봤던 것보다 훨씬 강할 것이다. 게다가 용봉금갑의 힘까지 빌리면 그 속에 들어있는 진정한 용과 진정한 봉황의 정혈을 모두 융합해 아무도 수련하지 못했던 용봉체를 수련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후우.
목진은 깊게 숨을 들이켜더니 채소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바로 한 줄기 빛이 되어 용봉지에 뛰어들었다.
철썩.
순간, 황금색 물결이 일었는데 한 방울에 천 근이나 되는 물방울의 움직임에 용봉지 내부에 금세 파도가 일었다.
용봉지에 들어간 목진도 점점 몸이 무거워진 것이 느껴졌고 주위의 물은 산맥처럼 몸을 짓눌러 온몸의 근육이 찌릿했다.
“역시 엄청나군.”
그런데 목진은 당황하기는커녕, 오히려 방긋 웃었다. 그는 황금색 물에 깃든 진정한 용과 진정한 봉황의 정혈이 상당히 짙다는 것을 느꼈다.
이는 온전히 녀석들 체내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다른 영수의 피에 오염되지 않아 제련할 필요가 전혀 없었고 일전에 마원의 피로 얻었던 정혈보다 훨씬 강력했다.
잠시 후, 밑바닥에 이른 목진은 용봉지 전체의 무게를 감당하며 자리에 앉았는데 그 무게에 못 이겨 피부에 미세한 균열이 일어났다.
그가 위룡체를 수련하지 않았다면 이미 살이 쫙 찢어졌을 것이다.
그때 목진이 두 팔을 펴고 결인하자 체내에서 순간 흡인력이 폭발하였다.
위잉.
그를 중심으로 소용돌이가 형성되더니 암금색 액체가 목진의 피부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용음과 봉황의 울음소리가 함께 체내에서 울려 퍼지며 눈부신 금광을 발했다.
또 목진의 피부에 용과 봉황의 무늬가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서로를 집어삼키려고 애를 썼다. 녀석들은 서로를 완전히 집어삼키기 전까지 절대 멈출 것 같지 않았다.
“역시…….”
목진이 깊게 숨을 들이켜자 눈부신 금광을 발하더니 용봉금갑이 그의 몸 표면을 뒤덮었다.
잇따라 목진의 가슴팍에 황금색 용의 그림자가 나타났고 등에는 봉황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러자 용봉지가 폭동을 일으켰다.
황금색 액체가 반으로 갈리더니 용과 봉황의 그림자를 향해 돌진했다.
크으으으!
그때 용과 봉황의 그림자는 목놓아 포효하며 두 줄기 금광이 되어 목진의 머리 위에 나타나더니 한데 어울려 회전하는 용봉 신륜을 이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