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6화. 강자들이 한자리에
용봉과와 용봉지를 한껏 누린 목진은 더는 이곳에 머무를 필요가 없어 자리를 정돈하고 채소와 함께 떠났다.
그들이 용봉천에 들어온 지도 어느새 하루가 넘었는데 이곳은 낮과 밤이 명확하지 않아 시간의 흐름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정도 시간이라면 용봉각에서 알려준 용봉지 다섯 군데는 이미 주인이 생겼을 것이다. 목진은 네 군데를 차지한 사람이 누군지 무척 궁금했다.
또한, 용봉지의 주인이 갈렸으니 다들 용봉천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인 용봉대로 몰려들 것이다. 그곳에 용봉 계승이 있었다.
목진의 목표 역시 용봉대였다.
그와 채소는 속도를 최대한 끌어올려 세 시진도 안 되는 사이에 외진 곳에서 벗어났다. 목진은 용봉대로 향하는 과정에서 혼자 움직이는 강자를 공격하는 무리를 꽤 많이 마주쳤다.
하긴, 용봉지를 차지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인데, 이곳 용봉지에는 천재지보가 많았다. 그러니 이를 획득한 강자가 곧 무리의 목표였다.
이에 일부 녀석들은 겁도 없이 감히 목진과 채소를 노렸으나 그들의 노력은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목진은 그들에게 용봉지에서 수련하는 동안 용봉천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리고 그 정보에 화들짝 놀랐다.
용봉천에는 목진이 처음 얻은 곳을 포함해 용봉지가 여덟 군데나 나타났다. 그건 운이 엄청 좋은 누군가가 알려지지 않은 용봉지를 찾아냈다는 것인데 놀라운 것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용봉지 여덟 군데 중, 목진이 한 군데를 차지했고 만성산 소비월과 요문의 홍어, 거령족 정선, 신각 방의도 각자 하나씩 얻었으며 유명 황자가 혼자 두 군데나 차지했다. 그리고 마지막 한 군데는 무려 유염이 차지했다.
“녀석들, 제법이군. 저들도 위룡체나 위봉체를 수련했을 텐데 무늬가 몇 갈래나 될지 모르겠군.”
목진은 이내 감탄하며 말했다. 역시 용봉천에 들어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엄청난 천재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유명 황자를 특히 주의해야 할 것 같아.”
채소의 말에 목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이 용봉지 두 군데를 차지해 수련한 위룡체도 절대 뒤처지지 않을 것이다.
“용봉대가 떠들썩해지겠는걸?”
채소가 흥미진진한 얼굴로 말했다.
“용봉천에 용과 봉황의 정혈이 깃든 천재지보가 많아서 기회가 닿은 사람들은 분명 위룡체와 위봉체를 수련하는 데 성공했을 거야. 그럼 그들 전부 용봉대에 오를 자격이 있겠지?”
이에 목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깊게 숨을 들이켜고 먼 곳을 바라봤는데 그곳에 오래된 석대가 보였다.
용봉천에 들어온 천재들은 전부 그곳에 모여 승패를 가릴 것이다.
북계의 젊은이들이 모여 싸우는 전장만큼 존재 자체만으로도 피가 끓어오르는 곳은 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위룡체와 위봉체는 분명 용봉체에 기가 확 꺾일 것이다.
용봉역은 용봉천의 중심인 동시에 가장 중요한 구역이기도 했다. 이는 진정한 용과 진정한 봉황의 계승이 깃든 용봉대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 구역은 다른 구역과 달리 영수들이 주위를 얼씬거리지 못했다. 진정한 용과 진정한 봉황이 이곳에서 별세해 이곳에 남긴 위압감은 시간이 아무리 오래 흘러도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는 용봉정혈을 흡수한 영수라도 감히 얼씬거리지 못할 정도였다.
하여 이 구역은 보통 쥐 죽은 듯 조용했고 바람마저 주위에 둘러싼 위압감 때문에 마음껏 불지 못했다.
그러나 정적도 잠시, 오래된 기운으로 가득 찬 공간에 사람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어 하늘을 뒤덮었고 주위는 순식간에 떠들썩해졌다.
그들은 용봉대로 향하는 젊은이들로 용봉천에서 위험한 상황을 겪으며 어느 정도 수확을 얻은 이들이었다.
용봉대에서는 곧 천지를 뒤흔들 만큼 엄청난 대결이 펼쳐질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이들이 용봉대로 몰려들었고 떠들썩한 소리에 구름마저 들썩였다.
슉!
그때 저 멀리 하늘에서 갑자기 강력한 영력 파동이 폭발했는데 누군가 하늘을 가르며 고봉에 내려앉았다.
퍽!
잇따라 그의 발이 닿은 곳에 커다란 균열이 일더니 순식간에 산 전체에 퍼져 휘청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산 정상에서 발하던 빛이 가시자 6장 정도 되는 사내가 무거운 갑옷을 입고 거대한 도끼를 든 채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상고의 거인처럼 상당히 우람했다.
“저 사람은 거령족의 정선이야!”
사람들의 반응을 보니 그는 북계에서 제법 유명한 인사였다.
“정선도 용봉지 중 한 군데를 얻어 위룡체를 수련하는 데 성공했다고 들었어. 거령족은 워낙 육신이 튼튼한 데다가 위룡체까지 얻었으니 이번엔 용봉록의 순위가 한 층 더 오르겠어.”
슉! 슉!
다들 정선의 출현에 놀라고 있을 때, 또 다시 하늘에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영력 파동이 전해졌다.
슉!
하늘에 나타난 이들은 두 여인으로 앞뒤로 날아오더니 기의 회오리를 쏘며 한데 부딪쳐 영력 파동이 휘몰아쳤다. 두 사람은 각각 뒤로 물러나 산봉우리에 내려앉았다.
“어머, 소 언니, 실력이 많이 늘었네요. 너무 부러운걸요.”
빨간색 치마를 입은 홍어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생긋 웃으며 말했는데 그녀의 아름다운 미모에 다들 넋이 나갔다.
“동생도 제법인걸? 요신결이 곧 대성하겠어.”
다른 한 산봉우리에 내려앉은 여인은 하얀색 치마를 입은 절세의 미녀로 신성한 기운을 풍겼다. 그녀는 다름 아닌 만성산의 소비월이었다.
절세의 미녀들이 나타나자 현장의 분위기는 더욱 들끓었고 다들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실력이 엄청날 뿐만 아니라 미모도 상당해 용봉록 1위인 신각 방의보다 훨씬 유명했다.
“난 소 언니가 위봉체 수련에 성공했는지가 더 궁금하네요.”
말을 마친 홍어가 입을 가린 채 생긋 웃자 사내들은 심장이 콩닥거렸다.
“그럼 지금 당장 힘이라도 겨뤄볼까?”
소비월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전 그러고 싶지만, 우리가 지금 싸워봐야 좋을 게 없지 않나요? 언니의 불패 성녀 명성에 누가 될까 봐 걱정되네요.”
홍어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두 여인은 미모와 실력 모두 뛰어났지만 사이는 별로였다. 언니, 동생이라 부르며 친한 척하면서도 서로를 잔뜩 경계하는 눈치였다.
소비월은 홍어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란 것을 잘 알아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주위를 쓰윽 훑다가 정선한테 잠시 멈추고는 다시 시선을 돌렸다.
두 여인 뒤로 놀라운 영력 파동을 내뿜는 강자들이 속속 도착했는데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지는 사람들도 적잖게 존재했다. 그들은 전부 진정한 용이나 진정한 봉황의 정혈을 흡수했다.
진정한 용이나 진정한 봉황의 정혈이 깃든 천재지보를 얻었거나 정혈을 흡수해 위룡체나 위봉체를 수련한 사람은 용봉대에 오를 자격을 얻을 수 있다.
그중에서도 유염이 가장 이목을 끌었는데 음침한 표정을 한 채 한 산봉우리에 서서 무서운 살기를 내뿜었다.
“유염은 대라천역의 목진과의 대결에서 패해 용봉지 한 군데를 뺏겼다는군.”
녀석의 모양새를 본 사람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목진이면 실력이 3급 지존밖에 안 되는 소년을 말하는 건가?”
“바로 그 소년이네. 그러나 실제 실력은 3급 지존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 분명하네. 내가 두 사람의 대결 현장에 있었는데 소년이 정말 범상치 않았지. 유염이 선보인 지존 신통마저도 그를 쓰러뜨리지 못했으니 말이야.”
“역시 대라천역에서 소년을 보낸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군.”
* * *
사람들이 수군거리자 유염은 눈가가 파르르 떨렸고 얼굴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목진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한층 더 커졌다.
소비월과 홍어도 그런 유염을 힐끗 바라봤다. 두 여인은 처음에 소식을 듣고 분명 거짓일 거라 여겼다.
북계에 명성이 자자한 유염과 비교하면 목진은 무명 인사나 다름없었다. 분명 결과가 뻔할 거라고 여겼는데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유염이 용봉지 쟁탈전에서 패배했다.
“목진이 그토록 강하단 말인가?”
두 여인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중얼거렸지만 속으로 잔뜩 놀랐다. 이들은 용봉각에서 소년의 용기에 조금 놀랐을 뿐이었는데 3급 지존밖에 안 되는 소년이 용기에 걸맞은 실력을 갖췄을 줄은 몰랐다.
홍어와 소비월은 눈동자를 굴리며 생각하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두 산봉우리 위쪽 공간이 일그러지는 것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두 사람의 모습에 사람들은 심장이 철렁했다.
“저 사람은…….”
사람들은 몸에서 용과 봉황의 정혈의 향기를 풍기는 강자의 출현에 눈가가 파르르 떨렸고 잔뜩 경계한 채 상대방을 바라봤다.
“저 사람은 용봉록 2위인 유명 황자와 1위인 신각 방의가 아닌가!”
“드디어 저들이 나타났군!”
방의와 유명 황자의 등장에 다들 입이 떡 벌어졌다.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강자였다.
사람들의 주시하에 뒷짐을 쥔 채 모습을 드러낸 두 사람은 각자 검은색과 하얀색 도포를 입어 아주 현저한 차이를 이뤘고 아무리 실력이 강한 사람이라도 감히 이들한테 덤비지 못했다.
북계의 젊은이 중 두 사람을 뛰어넘을 천재는 아직 없었다.
슉!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자 그 구역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두 갈래 빛줄기가 하늘을 가르며 사람들에게로 향했다.
그중 한 갈래의 빛줄기가 도착하기도 전에 말부터 전했다.
“도둑놈 주제에 감히 떳떳하게 나타나다니, 내가 너희를 가만둘 것 같아?”
청량한 목소리와 함께 소녀가 결인하고 손가락을 내리찍자 공간이 찢어지며 오색 찬란한 빛줄기가 나타났다.
사람들은 빛줄기가 날아가는 방향을 확인하고는 소름이 쫙 끼쳤다. 빛줄기가 향한 곳은 바로 용봉록 1위인 신각 방의였다.
누가 모습을 드러내기도 전에 감히 용봉록 1위인 최강자 방의를 공격한단 말인가!
쿵!
사람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오색 찬란한 빛줄기가 하늘을 가르며 산봉우리에 서 있는 방의에게 향하는 것을 지켜봤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소비월이나 홍어 같은 강자들도 조금 놀랐다. 과연 누가 겁도 없이 감히 방의를 공격하려 하는 걸까.
방의는 다름 아닌 용봉록 1위였다.
대부분은 공격을 날린 사람이 주제를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방의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는 바로 도망갔다.
쿵!
잇따라 빛줄기가 산맥을 저격하자 와르르 무너져 순식간에 평지가 되었다.
사람들은 이러한 광경에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러다 하늘에 두 갈래 빛이 날아와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 정체를 확인하자 사람들은 화들짝 놀랐다.
“저 사람은…… 대라천역의 목진이잖아!”
“감히 방의를 공격하다니, 죽고 싶어 환장했나?”
“방의를 건드렸다가 무슨 봉변을 당하려고…….”
* * *
누군가 괴상한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봤다. 목진이 유염한테서 용봉지를 빼앗아 용봉천에 이름을 날렸다고 한들 그것만 믿고 방의한테 까부는 것은 멍청한 짓이었다.
유염이 아무리 강해 봐야 방의와는 천지 차이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다들 목진과 동행한 미녀에게는 신경 쓰지 않고 무시했다.
이에 목진은 머쓱하게 웃으며 입을 열려고 했는데 갑자기 엄청난 살기가 느껴져 고개를 돌려보니 유염이 음산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여 목진도 미간을 찌푸리고 유염을 노려봤다. 그는 혈전을 벌인 끝에 중상을 입었지만 지금 다시 싸우면 녀석을 완전히 쓰러트릴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보며 살기를 내뿜었다. 그들은 서로를 죽이고 싶은 마음을 전혀 감추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무너진 산맥의 위쪽에서 방의가 하얀색 도포를 입고 검은색 장발을 드리운 채 다시 모습을 드러냈는데 멀리 떨어져 있는 채소를 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일전의 일은 내가 잘못했네. 그런데 용봉과는 용봉천의 진정한 보물로 한 알만으로도 진룡체나 진봉체를 수련할 수 있지 않나? 난 그중 채 무르익지 않은 것을 한 알밖에 취하지 않았고 그쪽에서 나머지 두 알을 가졌는데도 만족하지 않는 건가?”
녀석의 말에 목진은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 방의는 일부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정보를 흘린 것이다. 용봉과가 얼마나 희귀한 물건인지 잘 아는 사람들은 분명 목진과 채소한테 달려들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방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람들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목진과 채소를 노려봤다.
“저들이 무르익은 용봉과를 두 알이나 얻었다니!”
“용봉과만 있으면 바로 진룡체나 진봉체를 수련하는 데 성공할 수 있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