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4화. 승리
사람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조용히 서서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광점을 쳐다봤다.
아무도 이런 결과를 예상치 못했다.
유명 황자는 무려 용봉록 2위인 엄청난 강자로 북계 젊은이들 중에서 방의를 제외하고 최강자라 불릴 정도로 강했다. 그는 유염, 소비월 등 엄청난 천재들도 감히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또한, 일전의 그의 공격은 유염, 소비월 등이 상대했다고 해도 분명 받아내지 못했을 정도로 강한 것이었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은 멍하니 소년을 바라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환호했다.
소비월, 홍어 등도 조금 놀란 표정으로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씁쓸하게 웃었다.
“목진…… 참 대단하군.”
정선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아무리 싸움을 즐기는 그라도 목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였다면 유명 황자의 손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을 것이다.
“유염이 녀석을 이기지 못한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군.”
소비월과 홍어도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말했다. 그들은 여태껏 유염이 목진과의 싸움을 너무 쉽게 생각해서 패했다고 여겼는데 지금은 완전히 생각이 바뀌었다. 목진은 유염을 쓰러트리기에 충분한 실력을 지녔다.
“이번 용봉천을 치르고 나면 목진은 북계에 이름을 날리겠군.”
목진은 만다라멸천광으로 영력 소모가 엄청 나 안색이 조금 창백해졌지만 아무렇지 않게 서 있었다.
그러나 목진은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한기 어린 눈빛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상대방을 바라봤다. 그러자 녀석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해졌고 눈빛도 유난히 음산해졌다.
용봉록 2위인 유명 황자는 심기가 상당히 불편해졌다.
3급 지존밖에 안 되는 목진이 자신만만했던 그의 필살기를 막아낼 줄 몰랐다. 이는 유염, 소비월 등이라도 절대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허허, 이번엔 내가 실수했군.”
유명 황자는 목진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잔뜩 화가 난 채 말을 건넸다.
“그런데 일전의 반격으로 체내의 영력이 전부 닳았겠지, 아마? 그럼 이젠…….”
유명 황자의 말과 함께 방출한 살기에 순식간에 주위의 온도가 떨어졌다.
“유명!”
그때 다른 쪽 전장에서 갑자기 들려오는 고함에 유명 황자가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오색 찬연한 소용돌이의 흡인력이 갑자기 폭등하였고 방의가 밟고 있는 연꽃 신좌에 미세한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이에 방의는 부단히 영력을 연꽃 신좌에 불어넣어 방어벽을 강화했지만 현재 상황이 그리 좋지 않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그마저도 유명 황자의 필살기에 목진이 죽을 거라 확신했는데 예상치 못한 결과에 놀라 영력에 대한 조종력에 미세한 실수가 생겼다.
눈치가 빠른 채소는 바로 그 틈을 타 오색 찬연한 소용돌이의 흡인력을 한껏 끌어올렸다. 이에 연꽃 신좌는 순간 힘을 잃어 균열이 생겼고, 비록 방의가 최선을 다해 방어막을 되살렸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그들처럼 실력이 막강한 사람들 사이의 대결에서 한순간의 방심은 패배에 이르는 지름길이었다.
방의의 주위를 휘감았던 웅장한 영력은 부단히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갔고 연꽃 신좌에 난 균열도 점차 주위에 퍼졌다. 방의는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한편, 유명 황자는 방의의 고함에 이를 악물고 발을 힘껏 굴렀는데 주위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갑자기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이와 동시에 목진도 거대한 봉황의 날개를 퍼덕이며 눈 깜짝할 사이에 수천 장 밖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유명 황자는 방금까지 목진이 서 있던 곳에 나타났는데 멀리 떨어져 있는 목진을 바라보더니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목진은 유명 황자의 움직임을 예상했다.
“승리는 결국 우리의 것이겠군.”
목진은 멀리 떨어져 있는 유명 황자를 바라보며 말하더니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왜, 도망갈 줄밖에 모르는 사람이 되었나 보지?”
유명 황자는 씨익 웃으며 말하더니 다시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슉!
“그대가 약 올린다고 해서 화가 날 내가 아니라네.”
목진은 다시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유명 황자는 다시 그와 정면으로 맞서려고 일부러 그런 말을 한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연이은 혈전으로 체내의 영력을 소모한 목진한테는 절대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유명 황자의 발목만 잡고 있으면 결국 대결에서 승리할 것이다. 그는 태연하고 무덤덤하던 방의와 유명 황자가 다급해졌음을 느꼈다.
그리고 유명 황자의 성급한 태도 덕분에 몇 번이나 잡히지 않고 도망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목진은 여러 차례의 아슬아슬한 추격전을 벌였지만 단 한 번도 잡히지 않았다. 이에 유명 황자는 목진을 당장에라도 죽이고 싶을 정도로 분노에 휩싸였다.
유명 황자는 다시 한번 목진을 놓치자 갑자기 제자리에 서서 그를 노려봤는데 목진은 왠지 불안한 느낌이 들어 바로 경계 태세를 취했다.
그런데 유명 황자는 더는 나서지 않고 깊게 숨을 들이켜더니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도 이런 상태로는 절대 목진을 잡을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목진은 상대방의 반응에 깜짝 놀랐다. 녀석을 상대하는 건 역시 쉽지 않았다. 이렇게나 빨리 마음을 다잡다니, 안정을 되찾은 유명 황자야말로 가장 위험했다.
그때 유명 황자가 목진을 노려보며 두 손을 모아 결인하자 체내에서 어두운 빛을 내뿜더니 옆에 희미한 그림자 두 개가 생성되었다. 유명 황자의 본체는 점차 흐릿해지더니 어느새 그림자와 똑같이 변했다.
슉!
잇따라 세 개의 그림자가 갑자기 사라지자 목진은 다시 날개를 떨쳐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는 치명적인 위험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느꼈다.
위잉!
목진의 주위 공간이 갑자기 일그러지더니 파동을 일으켰고 그 속에서 세 개의 그림자가 나타나 목진을 둘러쌌다.
“어디 도망가 보지 그러나!”
세 개의 그림자는 동시에 말을 내뱉더니 목진을 향해 엄청난 살기가 깃든 장인을 쐈다. 목진이 아무리 용봉체를 수련했다고 해도 이에 적중하면 치명적인 상처가 날 것이 분명했다. 그는 더는 피할 수 없게 되자 오히려 눈에 광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 * *
쿵!
이와 동시에, 그 구역에 천지를 뒤흔들 만큼 엄청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른 쪽 전장에 있던 방의의 연꽃 신좌가 오색 찬연한 소용돌이의 엄청난 흡인력을 못 이기고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폭발하자 녀석은 온전히 노출되어 미친 듯이 소용돌이로 향했다.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면 신백마저도 더는 도망갈 수 없을 것이다!
이에 방의는 애써 발버둥 쳐봤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지금은 지존법신을 소환한다고 해도 크게 도움은 안 될 것이다. 오색 찬연한 소용돌이의 위력은 역시 엄청났다.
방의는 더는 처음처럼 태연할 수 없었다. 그는 점점 더 가까워지는 오색 찬연한 소용돌이에서 전해지는 위험한 파동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젠장!”
방의는 더는 참지 못하고 욕설을 퍼붓고는 이를 악물고 오래된 빨간색 옥을 꺼내어 부쉈다.
퍽!
옥이 부서지자 방의 주위의 공간이 미친 듯이 일그러지다가 공간 통로를 만들어 그를 꿀꺽 삼켰다.
“오늘의 굴욕은 내 언젠가 반드시 갚아 주리다!”
방의가 잔뜩 화가 난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눈앞에서 사라지자 다들 입이 떡 벌어졌다.
방의가 도망가다니!
녀석이 부순 옥은 신각에서 준 호신용 보물로 부수면 바로 공간을 뚫고 도주할 수 있게 해주는 물건이었다. 그는 용봉천을 떠났고 이대로 용봉 계승의 대결에서 물러났다.
그때 채소가 한기 어린 눈빛으로 방의가 사라진 곳을 쳐다보더니 갑자기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한편, 유명 황자의 공격에 눈가를 파르르 떨던 목진은 갑자기 안정을 되찾더니 씨익 웃으며 말했다.
“미안, 우리가 이겼군.”
목진의 말에 유명 황자는 흠칫하더니 일단 소년을 죽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쿵!
유명 황자는 이내 살기를 품고 목진의 머리를 향해 웅장한 영력이 깃든 장인을 쐈다.
그런데 그때, 차가운 손이 나타나 그의 등을 내리쳤고 한기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더 이상 움직였다가는 죽는 수가 있어.”
소녀의 한기 어린 말에 하늘에서 휘몰아치던 웅장한 영력이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사람들은 미간을 찌푸린 채 상황을 살폈는데 목진 주위를 감싼 세 개의 그림자가 살기 가득한 모습으로 공격을 개시했다. 그 정도 위력의 공격이라면 목진은 중상을 입고도 남았다.
그런데 채소가 검은색 장발을 휘날리며 갑자기 나타나 한 보 앞서 그중 한 그림자의 등을 때리자 그 속에 깃든 무서운 영력에 검은색 그림자는 바로 경직되었고 목진에 닿으려던 장인도 순간 움직임을 멈췄다.
그가 그대로 목진을 공격한다면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그 구역은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아무도 감히 먼저 입을 열지 못했다.
특히, 유명 황자는 눈빛이 계속해서 변했는데 상대방을 죽이고 싶지만 채소의 실력이 두려워 그럴 수 없는 상황에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그는 아직 목진을 이대로 풀어주고 싶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그는 충분히 목진을 죽일 수 있었는데 아쉽게도 채소가 더 빨랐다!
또한, 그녀가 이곳에 나타났다는 것은 방의가 패배했다는 것을 의미했으니 그의 계획도 이미 실패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목진은 눈가를 파르르 떨고 있는 유명 황자를 보고 피식 웃었다. 소년은 상대방의 매서운 공격이 전혀 두렵지 않아 오히려 활짝 폈던 날개를 거두며 말했다.
“당신이 졌네.”
“죽고 싶어 환장했나?”
목진이 말에 유명 황자는 엄청나게 화가 났다. 소년은 분명 유명 황자한테 숨통을 잡혔는데 전혀 두려워 보이지 않았다.
“자넨 절대 본인 목숨과 내 목숨을 맞바꾸려 하지 않을 것이네.”
목진이 노려보며 입꼬리를 씰룩거리자 유명 황자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유명 황자는 당장에라도 목진을 죽일 수 있었지만 그의 엄청난 기세에 압도당해 무덤덤하게 서 있는 소년이 조금 무서워졌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목진의 말대로 유명 황자는 자신의 목숨을 내주면서까지 목진을 죽일 용기가 없었다.
이에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깊게 숨을 들이켜고 채소한테 고개를 돌렸다.
“우리가 함께 손을 내리는 건 어떤가? 끝까지 물고 늘어져 봐야 서로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네.”
녀석의 말에 채소는 목진을 힐끗 봤는데 소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목표는 용봉 계승이라 유명 황자를 사지에 몰 필요는 없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리는데 유명 황자는 언제든지 덮칠 수 있는 포악한 늑대라 이쯤에서 멈추는 것이 최선이었다.
다행히, 유명 황자와 채소는 약속을 어기는 간사한 사람이 아니라 동시에 손을 거뒀고 난폭한 영력도 함께 사라졌다.
슉!
유명 황자는 눈 깜짝할 사이에 수천 장 밖에 나타나 한껏 경계하는 눈빛으로 목진과 소녀를 쳐다봤다. 그 모습에 목진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영력 소모가 엄청난 그는 더 이상 싸울 여력이 없어 채소가 방의와의 대결에서 이긴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제법이야.”
목진은 채소한테 엄지를 척 내밀며 말했다. 그는 비록 방의를 상대한 적은 없지만 용봉록 1위를 차지하고 유명 황자보다 더 유명한 사람을 쓰러트리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목진은 유명 황자를 상대한 바가 있어 채소가 그보다 훨씬 강한 방의를 이긴 것이 정말 놀라웠다.
이에 채소는 목진에게 미소를 지었다. 그 아름다운 표정에 사람들은 저절로 눈길이 갔지만 불경스러운 마음을 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다들 채소의 실력에 적잖게 놀란 모양이었다.
“너도 제법인걸? 내가 역시 사람을 제대로 봤어.”
채소는 흐뭇한 표정으로 목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번 싸움에서 목진이 목숨을 걸고 유명 황자를 막아내지 못했더라면 그녀도 방의한테 집중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마터면 죽을뻔했어.”
목진이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도 잘 알고 있었다. 현재 실력으로는 유명 황자를 잠시나마 막을 수 있을 뿐, 정면 승부를 보면 승산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목진은 결국 3급 지존일 뿐이었는데 유명 황자는 곧 5급 지존경에 이를 엄청난 실력자였다. 이는 대라천역에서 왕이 되고도 남을 실력이었다.
목진이 수단과 방법이 아무리 많아도 쉽게 유명 황자와의 대결에서 승리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