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5화. 용봉
“3급 지존의 실력으로 이렇게까지 해주다니 정말 놀랐어. 만약 네가 저들과 비슷한 실력이었다면 아마 손쉽게 이겼을 거야.”
목진은 소녀의 칭찬에 왠지 기분이 좋았다.
“아직 안 갔어?”
목진에 대한 칭찬이 끝나자 채소는 유명 황자한테 고개를 돌렸다.
“유명궁에서는 오늘 일을 절대 이대로 넘기지 않을 것이야. 그리고 다음번에는 여인의 뒤에 숨지 않았으면 하네.”
유명 황자는 조금 어두워진 표정으로 두 사람을 쓰윽 훑더니 목진한테 눈길을 멈췄다.
“다음번에는 그쪽이 나를 두려워할지도 모르지.”
목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는 아직 유명 황자를 쓰러뜨리기 어렵지만 자신 있었다. 언젠가 다시 만나면 유명 황자는 더는 목진을 오늘처럼 궁지에 몰지 못할 것이다.
“뻔뻔하기는.”
유명 황자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북계의 젊은이 중 정예에 속하는 그는 자부심이 엄청났다. 그런데 목진이 감히 자기를 뛰어넘으려 하다니 그 모습이 우스울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오늘은 채소 덕분에 살아남았다. 그녀만 아니었다면 목진은 지금쯤 이미 죽었을 것이다.
말을 마친 유명 황자는 목진과 채소를 쓰윽 훑더니 한 줄기 빛이 되어 멀리 날아갔다. 채소는 용봉 계승을 무사히 받기 위해서라도 절대 그를 남기지 않을 거라 유명 황자는 복수를 다짐하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너만 골치 아파졌네?”
채소가 멀어져가는 유명 황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을 건네자 목진은 흠칫했다.
“난 북계 사람이 아니라 이번 용봉천 대결만 끝나면 떠날 건데. 넌 대라천역 사람이라 어젠가 방의와 유명 황자를 만나겠지? 그럼…….”
채소가 히쭉 웃으며 한 말에 목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용봉록 1위와 2위와 적이 된 건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여태껏 살아오면서 자기보다 실력이 훨씬 강한 사람을 적으로 둔 적이 많았고 그들은 결국 목진이 더 높은 곳에 오르는 발판이 되어주었다. 목진은 이 정도 압력이 있어야 더 강해진다고 굳게 믿었다!
“두려우면 용봉천 대결을 마치고 나와 함께 가자. 대라천역보다 그곳이 더 너한테 어울려. 그리고 지금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수련할 수 있어.”
채소의 실력에 비춰 볼때, 그녀의 출신은 범상치 않을 것이 분명했다. 북계에서 그녀를 뛰어넘을 사람이 거의 없으니 그녀를 따라가면 수련 조건은 더 나아질 것이다.
이는 강자들 대부분이 꿈에도 바라는 바지만 목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누군가의 뒤에 숨기보다 스스로 길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 더 좋았다. 진정한 강자는 강대 세력에 의존한다고 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날 걱정할 필요는 없어. 다음번에 만나면 난 저들을 없앨 거야.”
목진이 미소를 지으며 한 말에 채소는 흠칫 놀라는 한편, 소년이 왜 이토록 자신을 믿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그녀라도 방의와의 대결에서 이기기 위해 애를 먹었는데 아직 3급 지존밖에 안 되는 목진이 두 사람을 쓰러뜨리겠다고 하니 믿기 어려웠다.
그러나 채소는 목진을 전혀 비웃지 않고 요염한 눈을 굴리며 소년을 쓰윽 훑었다.
“그래, 다음번에 만나면 좋은 소식을 전해줬으면 해.”
이에 목진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채소는 주위를 쓰윽 훑었더니 다른 쪽에 서 있는 소비월, 홍어와 정선한테 눈길을 돌렸다.
“우리가 용봉 계승을 받는 데 별다른 의견이 있어?”
채소의 질문에 세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가볍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방의와 유명 황자마저 물리친 위인을 두고 뭐라 할 수 있을까?
“그럼 고마워.”
채소는 그제야 생긋 웃었는데 그 아름다운 미소에 소비월과 홍어 같은 미인들도 잠시 빛을 잃었다.
잇따라 목진은 고개를 들고 용봉대의 정상을 쳐다봤는데 눈부신 금광을 발하는 곳에 오묘하기 그지없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았다.
목진은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렸다.
용봉 계승은 드디어 그들의 것이 되었다!
난폭한 영력 파동은 어느새 가셨고 천지를 뒤흔들 법했던 대전도 서막을 내렸다. 허공에 떠 있는 두 사람은 이 구역에서 가장 눈부신 존재가 되었다.
목진은 눈부신 빛을 발하는 용봉대 정상을 바라봤는데 그 속에서 오래된 용음과 봉황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곳은 용봉을 계승하는 장소였다.
위잉.
용봉대는 사람의 수가 적어진 것을 느끼기라도 한 듯 정상에서 황금색 계단을 내렸는데 그 끝에 바로 용봉 계승이 있었다.
“전리품을 가지러 가.”
채소는 눈부신 황금빛을 발하는 계단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치열한 싸움에서 어렵게 승리를 거뒀으니 이젠 전리품을 누릴 때가 되었다.
이에 목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사람들의 부러움 가득한 눈빛을 뒤로하고 채소와 함께 계단을 올랐다.
소비월, 홍어, 정선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따라붙었다. 그들은 비록 정상 계승을 받을 수는 없겠지만 아래쪽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수련에 충분히 도움이 되었다.
이렇게 다섯 사람은 황금 계단을 오르다가 다시 멈춰 섰는데 계단의 끝자락에 놓인 여러 단계로 나뉜 황금 제단을 발견했다.
용과 봉황이 한데 얽힌 모양을 한 제단에서 내뿜는 오래된 기운에 이곳 천지가 혼돈에 처한 느낌이 들었다. 무서운 위압감에 채소마저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엄청난 위압감에 순간 공간이 응고된 것 같았다.
한편, 제단의 가장 높은 곳에는 계단이 10개밖에 없었는데 이를 오르는 게 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그곳에서 발하는 위압감을 무시하고 오르려 했다가는 육신이 폭발할지도 모른다.
“이곳의 위압감은…….”
채소는 예상을 뛰어넘는 위압감에 안색이 어두워졌다. 황금 계단에 발을 들이는 순간 엄청난 위압감이 온몸을 감쌀 것이 분명했다.
이곳의 위압감은 목진이 용봉체를 수련했던 용봉지보다 훨씬 강력했다.
“진정한 용과 진정한 봉황의 심장이 이곳에 떨어져 용봉대를 이뤘고 계승을 봉인했다고 들었어. 이곳은 아마 용봉천에서 용과 봉황의 위압감이 제일 강한 곳일 거야. 그리고 우리 앞에 놓인 황금 계단은 용봉제로 불리는데 계승의 최종 시험으로 이를 오르는 데 성공한 사람만 최종 계승을 받을 수 있어.”
목진도 그곳에서 느껴지는 무서운 위압감에 이를 악물었다. 용봉체가 아니었으면 목진은 이미 견디지 못하고 물러났을 것이다.
“용봉천에 참가한 사람 중 여기까지 올라온 사람은 꽤 있지만, 황금 계단은 높이 올라봐야 9번째까지 오른 게 다야.”
“그래?”
목진의 말에 채소는 안색이 점차 어두워졌다. 용봉천을 연 지가 언제인데 아무도 10번째 계단에 오르지 못했다니, 용봉천이 정녕 그토록 대단하단 말인가?
“넌 얼마나 오를 수 있을 것 같아?”
채소의 물음에 목진은 고개를 들어 강력한 위압감과 함께 금광을 발하는 용봉제 끝자락을 쳐다봤다. 용봉 계승이 숨어 있는 곳 말이다.
“난 절대 쉽게 포기하지 않아!”
목진은 피식 웃으며 바로 용봉제에 올랐다.
쿵!
순간, 우레와 같은 용음이 들리며 무서운 위압감이 휘몰아쳤다.
목진은 등에 산을 한 채 업은 것처럼 몸이 무거워졌지만 이를 악물고 전진했다.
그는 상상해보지 못한 엄청난 위압감에 근육이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을 참느라 온몸을 파르르 떨며 땀을 미친 듯이 흘렸다. 뒤에 따라오는 채소는 상황이 그보다 훨씬 나아 보였지만 그녀 역시 쉽지 않아 보였다.
그리고 채소 뒤에 따라붙은 소비월, 홍어, 정선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 자체가 상당히 어려웠다.
사람들은 천천히 계단을 오르는 목진 등을 물끄러미 지켜봤다. 다들 이번에는 용봉제에 어디까지 오를 수 있을지 궁금했다.
목진은 휘청이며 전진하다가 여섯 번째 계단에 멈춰 섰다. 등의 피부가 찢어져 피가 계속 흘러내려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용봉체라도 이곳의 위압감을 견디긴 힘들었다.
목진 뒤에서 걷던 채소도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그녀의 실력으로도 이곳의 무서운 위압감을 무시할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계속 올라갈 거야?”
채소가 이를 악물며 묻자 등이 피로 흥건해진 목진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전진했다. 앞으로 나가자 이번에는 어깨 쪽 피부가 찢어져 피가 흘러내렸고 황금 계단에 선홍색 발자국을 남겼다.
목진이 앞으로 나아갈수록 혈흔은 더 많이 생겼는데 어느덧 얼굴에도 혈흔이 가득 생겨 시선마저 흐릿해졌다. 그러나 목진은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고 결국 8번째 계단에 멈춰 섰다.
육신의 손상으로 눈과 귀가 기능을 잃어가는 게 느껴졌다.
이미 피투성이가 된 목진은 주위에서 전해지는 무서운 위압감에 육신이 곧 폭발할 것 같았는데 다행히 피와 살에서 부단히 암금색 빛을 발하며 다친 육신을 치유했다.
용봉 정혈이 아니었다면 목진의 육신은 이미 폭발했을 것이다.
이렇게 목진은 간신히 8번째 계단에 서 있었고 채소도 어느새 목진의 옆에 다가왔다. 계속해서 흐르는 땀에 옷이 흥건해져 소녀의 아름다운 몸매가 그대로 드러났다.
그녀도 안색이 창백해졌는데 옆에 서 있는 목진을 살피고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채소는 이제야 10번째 계단에 오른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무리 그녀라도 기껏해야 9번째 계단이 한계였고 무리했다가는 육신이 폭발할 것만 같았다.
그밖에 소비월, 홍어, 정선은 여섯 번째 계단에 멈춰 섰다. 그들은 여기가 한계라 육신의 보존을 위해 더는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세 사람은 널찍한 계단에 자리를 잡고 앉아 피투성이가 된 목진을 바라봤다. 그는 정말 대단했다.
3급 지존밖에 안 되는 실력으로 8번째 계단에 올랐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었다. 의지가 박약한 사람이었다면 일찌감치 포기했을 것이다.
그들은 목진이 3급 지존의 실력으로 유염을 쓰러뜨리고 유명 황자의 계획을 망친 것이 천운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는 절대 운만 있어서 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제야 목진이 이토록 많은 기적을 이뤄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것은 전부 목진의 굳건한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러한 생각에 소비월, 홍어, 정선은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때 채소는 턱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내더니 피범벅이 된 목진에게 말을 건넸다.
“넌 여기서 멈춰.”
“넌 계속해.”
피는 어느새 딱지가 되어 온몸을 덮었다. 목진은 너무 힘들어 말도 겨우 내뱉었는데 그의 목구멍마저 무서운 위압감에 상처가 난 것 같았다.
이에 채소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웅장한 영력으로 무서운 위압감을 간신히 떨쳐내며 드디어 아홉 번째 계단에 올랐다.
아홉 번째 계단에 오르다니!
사람들은 금세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태껏 용봉제에 오른 사람 중, 아홉 번째 계단에 오른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는데 오늘 그 두 번째가 나타났다.
사람들이 수군대자 목진도 간신히 고개를 들어 용봉대 정상을 쳐다봤다. 진정한 용과 진정한 봉황이 존재하듯 눈부신 금광을 발하는 곳에서 엄청난 위압감을 발산했다.
이는 사람을 한순간에 무너뜨릴 만큼 엄청난 위압감이었다.
그런데 정작 목진은 오히려 주먹을 꽉 쥐었다. 제아무리 뇌신체와 용봉체를 수련한 목진이라도 절대 감당할 수 없는 위압감이었지만 그는 절대 이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9번째 계단에 오르면 육신이 찢어지고 10번째 계단에 오르면 육신이 폭발할 가능성이 컸는데도 말이다.
목진은 눈앞이 잠시 흐릿해졌는데 검은색 치마를 입은 채 은하수 같은 장발을 드리운 소녀가 유리알처럼 맑고 투명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낙리였다.
낙리는 지금쯤 낙신족에서 종족을 되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고 지금의 목진 못지않은 압력을 받고 있을 것이다.
목진은 문득 절세의 강자가 되어 그녀를 지켜주겠다던 약속이 떠 올랐다.
이에 목진은 갑자기 눈을 번쩍 떴는데 더 이상 고민할 것도 없었다. 절세의 강자가 되기까지 수많은 고난을 마주할 텐데 벌써 포기하면 무슨 수로 약속을 지킨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