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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511화 (510/1,000)

511화. 쌍웅회(雙雄會)

슉! 슉!

오늘은 대라천역에서 한 해 동안 가장 떠들썩한 날로 사람들이 벌떼처럼 대라천역에 몰려들었다. 대라천 수비들은 더 엄격하게 수비하였고 왕들 휘하의 군사들도 엄청난 행사에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까 봐 협조에 나섰다.

그런데도 대라천을 향하는 행렬은 끊이지 않았다. 다들 10번째 왕이 과연 누가 될지 궁금했다.

한편, 구유궁 수련실 밖에 두 소녀가 서 있었는데 앞쪽에 서 있는 늘씬한 사람은 구유이고 온몸에 찰싹 달라붙는 검은색 옷을 여인은 당빙이었다.

“곧 봉왕제가 시작될 텐데 목진은 왜 아직도 수련실에서 나오지 않는 걸까요?”

당빙은 미간을 한껏 찌푸린 채 문이 꼭 닫힌 수련실을 쳐다보며 물었다.

“제대로 준비하고 가야지. 왕의 자리에 오르기가 어디 쉬운 일이야?”

정작 구유는 전혀 급해 보이지 않았다.

“목진이 수련한다고 해서 20만 방울도 넘는 지존영액을 겨우 모아 건넸는데 실패라도 하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당빙은 이내 아쉬워하며 말했다.

“밝히기는. 걱정 마. 목진은 절대 너를 실망시키지 않을 거야.”

구유는 피식 웃으며 소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너 자신을 투자하는 건 어때? 수확이 엄청날 것 같긴 한데…….”

“언니!”

구유의 말에 당빙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구유궁의 냉미녀로 유명한 당빙이 이처럼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절대 흔치 않았다.

“누가 어쩐다고?”

그때 꼭 닫혔던 수련실의 문이 열리더니 목진이 히쭉 웃으며 걸어 나왔다.

“돌파하지 못한 거야?”

당빙은 목진을 보더니 얼굴이 더 빨개졌는데 그의 변화에 인상을 확 찌푸렸다.

목진 주위를 감싼 영력이 수련하기 전보다 응집되긴 했어도 여전히 3급 지존이었다. 당빙이 생각했던 것처럼 4급 지존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에 목진은 괜히 머쓱해졌다.

“내가 신도 아닌데 어떻게 수련실에 들어갔다고 금방 4급 지존에 이를 수 있을까요?”

“그렇게 많은 지존영액을 낭비하다니!”

당빙이 중얼거리자 목진은 괜히 그녀를 흘겨봤다.

그런데 구유는 목진을 쓰윽 훑어보더니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당빙보다 예리한 그는 목진 체내에 영력이 가득 찬 것이 느껴졌고 그가 일부러 무언가를 억제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번 수련도 효과가 제법인 것 같네?”

구유가 미소를 지으며 한 말에 목진은 조용히 웃기만 하더니 느긋하게 기지개를 켜고 고개를 들어 구유궁 밖 하늘을 쳐다봤다. 그는 갑자기 수많은 강력한 영력 파동이 온전히 느껴졌다.

“준비됐어?”

이에 목진은 깊게 숨을 들이켜더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천라성 성주 진종이든 귀음종 종주 구태음이든 절대 유명 황자 못지않은 실력자일 것이다.

목진이 왕이 되려면 필경 치열한 싸움을 치러야 할텐데 무슨 일이 일어나든 목진은 절대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가자.”

목진은 다시 한번 소녀를 되새기며 구유한테 말을 건넸다.

목진은 무슨 수를 쓰든 반드시 10번째 왕이 되리라 다짐했다.

대라천의 대라 광장은 평소에는 닫혀있다가 중요한 일이 있어야 열렸는데 봉왕제로 인해 다시 떠들썩해졌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드넓은 대라 광장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찼고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는 대라천 어디서든 잘 들렸다.

이곳 대라 광장은 현재, 대라천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곳일 뿐만 아니라 대라천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라 광장의 중심 구역에는 거대한 석대가 우뚝 솟아있었는데 대라천역에서는 이를 봉왕대라 불렀다.

대라천역의 왕들이 이곳에서 탄생하기 때문이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부단히 들렸고 사람들은 계속해서 대라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광장의 앞쪽에는 등급이 명확하게 나눠진 석좌가 있었는데 가장 높은 곳의 석좌에서 눈부신 황금빛과 위압감이 뿜어져 나왔다.

그때, 목진과 구유가 광장에 나타나자 사람들은 바로 고개를 돌렸다. 한때 왕급 세력 중 최약체였던 구유궁은 이제 신흥 강자가 되었고 대라천역의 강자들이 구유와 목진을 바라보는 눈빛 역시 완전히 달라졌다.

짧은 시간에 구유궁은 대라천역에서 명망이 부쩍 높아졌다.

사람들은 구유를 잠시 보다가 그 옆에 서 있는 목진한테 눈길을 돌렸다. 다들 용봉천에서 엄청난 성과를 이뤄 북계에서 유명해진 목진이 궁금한 듯했다.

그가 용봉천에서 이룬 성과는 대라천역의 노참들마저 놀랄 정도였다. 더구나 목진은 대라천역에 온 지 한 해 밖에 안됐으니 시간이 지나면 그는 대라천역에서 가장 강한 강자로 거듭날 것이다.

그러나 구유와 목진은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개의치 않고 바로 구유궁 쪽으로 가서 봉왕제가 시작하기만을 기다렸다.

목진은 구유 옆에 서서 광장의 최전방을 쓰윽 훑었는데 다른 왕들도 이미 도착해 있었다. 역시 봉왕제는 대라천역 전체가 중시하는 대행사임이 틀림없었다.

목진의 시선을 느낀 왕들도 목진을 바라봤는데 그중 수라왕, 열산왕 등이 흐뭇한 표정으로 소년을 쳐다봤다. 목진은 북계의 수많은 젊은이뿐만 아니라 대라천역의 정예들마저 놀라게 했다.

반면, 구유와 사이가 안 좋은 혈응왕은 표정이 썩 좋지 않았는데 이를 갈며 목진을 흘겨봤다. 목진이 대라천역에 막 왔을 때만 해도 손쉽게 밟아 죽일 수 있는 벌레 정도밖에 안 됐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놀랄 만큼 성장했다.

지금도 목진을 쉽게 제압할 수 있겠지만 이젠 일정한 대가를 치러야만 가능했다. 지금의 목진은 더는 그날의 하찮은 존재가 아니었다.

혈응왕은 목진의 이러한 변화가 상당히 언짢았지만 더는 목진을 함부로 해코지할 수 없었다. 대라천역 전체가 목진과 역주의 친분이 남다르단 걸 아는 상황에서 아무리 그가 의지하는 영동황이라도 감히 목진을 해치지는 못할 것이다.

슉!

그때 저 멀리 하늘에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 속에 깃든 강력한 영력 파동에 사람들은 바로 고개를 돌렸다.

“진종이 드디어 왔군!”

“하하, 난 저 녀석이 포기하지 않을 줄 알았네!”

“이번에는 과연 왕이 될 수 있을까?”

* * *

대라 광장에 서 있던 사람들은 바로 진종임을 알아챘다.

“대라성의 성주, 진종이란 말인가?”

목진도 눈가를 파르르 떨며 하늘을 쳐다봤다.

멀리서부터 한 줄기 빛이 날아와 대라 광장의 위쪽 하늘에 나타나 사람들한테 인사했다.

이에 목진이 고개를 들어보니 우람한 체구의 중년 남자가 눈에 힘을 준 채 호탕하게 웃으며 아래쪽을 쳐다봤다.

그 주위에 맴도는 강력한 영력 파동으로 보아 진종은 유명 황자 못지않은 실력자였다.

“저 녀석은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데 실력이 아직도 저따위밖에 안 돼?”

구유가 진종을 힐끗 보더니 입을 삐쭉 내밀며 말했고 목진은 흠칫 놀라 구유를 쳐다봤다. 보아하니 구유는 진종과 구면인 것 같았다.

그런데 목진이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진종이 구유궁을 바라보며 껄껄 웃었다.

“하하, 구유야! 오랜만이야. 여태껏 돌아오지 않아서 난 네가 진화에 실패한 줄 알았어.”

“몇 해나 지났는데 아직도 4품 지존이야? 그따위 수련 속도로도 감히 봉왕제에 참석하기로 한 거야?”

“내가 예전에 너를 얼마나 많이 도와줬는데 그따위로 말하면 섭섭하지.”

목진은 진종의 말에 피식 웃었다. 그는 진종이 제법 유쾌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자네가 바로 요즘 북계에 이름을 날린 목진인가? 이렇게 젊은 나이에 이 정도의 성과를 이루다니, 대단하군.”

목진의 웃음소리를 들은 진종은 이내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진종 성주님, 과찬이세요.”

목진도 가볍게 웃으며 진종을 바라봤다. 처음 봤지만 진종의 호탕한 모습에서 가식이 느껴지지 않았고 대라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진종을 바라보는 눈빛만 봐도 그가 사람들과 사이가 좋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왕은 나이만 찼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구유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진종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목진을 보며 히쭉 웃었다.

“괜찮아. 어차피 난 여러 번 실패했으니 한 번 더 도전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어. 대신 최선을 다할 거야. 그때 가서 용봉록 3위인 젊은 강자가 과연 얼마나 강한지 확인할 거야.”

이에 목진이 입을 열려는데 푸른 하늘 끝에서 갑자기 검은색 연기가 휘몰아치더니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속에 깃든 한기에 다들 혈액마저 얼어붙는 것 같았다.

검은 안개는 검은색 소용돌이가 되어 대라 광장의 위쪽 하늘에 멈춰 섰고 안개가 가시자 검은색 도포를 입은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제법 훤칠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눈빛이 유난히 음산했고 얇은 입술은 꼭 다물고 있었다. 그가 체내에서 내뿜는 한기가 엄청났다.

“음귀종의 구태음이네, 반갑네.”

사내가 미소를 지은 채 천라 광장에 있는 사람들한테 인사했다. 구태음은 대라천역의 수많은 노참들 중에서 제법 유명했고 대라천역 왕들을 제외한 최강자로 꼽혀 이번 봉왕제에서 반드시 10번째 왕이 되리라 믿었다.

잇따라 구태음이 대라 광장에 내려앉자 적잖은 대라천역 강자들이 다가가 아부를 떨었다.

그때 구태음을 쳐다보던 진종은 아무렇지 않은 척 깍지를 낀 손을 앞쪽에 드리웠는데 체내의 영력에 파동이 일었다.

“저 사람이 음귀종의 종주, 구태음인가?”

목진도 구태음을 힐끗 보더니 위험한 파동이 느껴지는 것 같아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구태음은 역시나 명불허전이었다. 이번 봉왕제에서 그를 쓰러뜨리고 왕이 되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쿵!

갑자기 종소리가 들려 다들 고개를 번쩍 들었는데 광장의 가장 높은 황금 왕좌 쪽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가녀린 소녀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황금 왕좌 아래에 있던 3황도 모습을 드러내 수많은 대라천역의 강자들을 쳐다봤다.

“역주님을 뵙습니다.”

잇따라 사람들이 공손하게 인사를 올리자 만다라는 새하얀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그리고 황금색 눈동자를 굴리며 대라광장을 쓰윽 훑다가 진종, 구태음, 목진한테 잠시 눈길을 멈췄다.

“이번 봉왕제에서 왕이 될 자격을 갖춘 사람은 세 명이다.”

소녀의 위엄 넘치는 소리에 대라 광장은 조용해졌고 다들 한껏 긴장한 채 만다라의 발표만을 기다렸다. 만다라의 인정을 받은 자만 10번째 왕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천라성 성주, 진종.”

“귀음성 성주, 구태음.”

일부는 자기 이름이 불리지 않아 아쉬워했지만 대부분은 이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 진종과 구태음은 실력이나 경력으로 볼 때, 왕이 되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때 만다라가 다시 입을 열었다.

“구유궁, 목진.”

만다라의 말에 대라 광장에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다들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목진을 바라봤다.

“목진이라니! 정녕 구유궁의 새 통령인 목진이란 말인가?”

“목진도 왕이 될 자격이 있다니,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 아직 대라천역에 온 지 한 해밖에 되지 않았네.”

“아무리 용봉천에서 엄청난 성과를 이뤘다지만 봉왕제와 용봉천은 급이 아예 다르지 않나? 더구나 목진은 염제의 딸 덕분에 용봉천에서 1위를 할 수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러게 말이야…….”

* * *

사람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다들 대라천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목진에게 질투를 느끼는 듯했다.

보통 사람은 대라천역에서 여러 해 동안 노력해야 이룰 수 있는 성과를 짧은 시간에 이룬 소년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고 자신이 이룰 수 없는 것을 이룬 사람이 곱게 보일 리 없었다.

검은색 도포를 입은 구태음도 미소를 지으며 목진을 바라봤는데 그는 자신을 위협할 수 있는 사람은 진종 뿐이라고 생각했다. 목진은 천부적 재능이 뛰어난 천재일 뿐, 아직은 너무 어려 그는 상대로조차 취급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10번째 왕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목진은 사람들을 무시한 채 무덤덤하게 서 있었고 오히려 그 뒤에 서 있던 당빙과 당유, 구유궁 사람들이 씩씩거리다 구유의 제재로 겨우 조용해졌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화를 낸다고 달라질 건 없었고 실력으로 증명해 보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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