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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513화 (512/1,000)

513화. 봉왕대에 오르다

진종을 쓰러뜨린 구태음은 바로 만다라한테 고개를 돌리더니 공손하게 허리를 굽히며 물었다.

“역주님, 봉왕전을 이대로 끝내도 될까요?”

그 말에 사람들은 목진을 힐끗거렸다. 다들 목진이 세 번째 도전자란 걸 알고 있었는데 구태음은 소년을 아예 무시했다.

그는 목진이 자신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한다고 여기는 듯했다.

“목진아, 이번엔 그냥 포기해.”

뒤에 서 있던 당빙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구태음의 실력을 직접 확인하자 목진이 걱정된 것이다.

구유궁에서 구유를 제외하고 이미 5품 지존경에 이른 구태음을 쓰러뜨릴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존영액 20만 방울은 구유궁에서 무상으로 제공해준 거라고 칠게.”

그 한마디에 목진은 소녀를 흘겨봤다.

‘돈밖에 모르는…….’

구유도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목진을 쳐다보며 말했다.

“진종도 녀석의 상대가 아닌데 네가 나섰다가…… 승산이 얼마 안 돼.”

목진의 실력을 알고 있는 구유는 소년이 5품 지존경에 이른 구태음을 상대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묵묵히 목진을 지켜봤고 황금 왕좌에 앉아있는 만다라마저 시선을 옮겼다.

다들 목진의 반응을 기다렸다.

이에 목진은 깊게 숨을 들이켜더니 생긋 웃었다. 그는 구태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눈치였는데 구유, 당빙 등은 바로 그의 선택을 눈치챘다.

목진은 곧바로 봉왕대에 올라 미소를 지으며 구태음한테 말을 건넸다.

“구유궁의 목진이에요, 잘 부탁드려요.”

소년의 명쾌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사람들은 곳곳에서 수군대기 시작했다. 다들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봉왕대에 오른 소년을 쳐다봤다. 구태음의 놀라운 실력을 직접 확인하고도 그와 싸우려 할 줄이야.

“목진의 담력만은 인정하네. 어린 나이에 엄청난 성과를 거둔 데는 다 이유가 있었군…….”

“그런데 역시 나이가 너무 어리군. 지금이 나설 때인가? 그러다 처참하게 패배하면 체면만 구기고 뭐가 남는단 말인가?”

“패배하는 게 정상이네. 두 사람은 나이 차도 꽤 많지 않은가? 몇 해만 더 지나면 목진은 아예 구태음을 상대할 자격이 없어질 것이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네…….”

* * *

누군가는 감히 봉왕대에 오른 목진이 대단하다고 생각했고, 누군가는 이런 목진이 무모하다고 여겼다. 각기 다른 의견이 오가느라 현장은 제법 떠들썩했다.

정작 봉왕대 위에 서 있는 구태음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목진을 바라보더니 씨익 웃으며 말했다.

“목진 통령, 용기가 가상하구나.”

이에 목진은 이내 미소를 지었다. 그는 구태음의 예리한 눈빛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

“이 정도 용기마저 없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겠죠.”

구태음은 팔짱을 낀 채 미동도 없이 목진을 바라봤다. 신분으로만 보면 목진과 구태음은 동급이었다. 그런데 선배 행세를 하는 모습을 보니 구태음은 목진을 자신과 동급이라고 여기지 않는 듯했다.

“난 목진 통령의 용기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전력을 다할 것이야. 그리고 그 후과는 온전히 자기 몫이니 후회가 없길 바라네.”

목진은 구태음이 내뱉은 말은 무시한 채 중상을 입은 진종한테 다가갔다. 피투성이가 된 진종의 몸에 아직도 검은색 한빙이 퍼지고 있었는데 이는 구태음의 음산한 영력 때문이었다.

목진이 다가오자 진종은 쓸쓸하게 웃으며 입을 열려고 했는데 목진의 손이 이미 그의 가슴팍에 닿은 후였다.

“너!”

진종은 목진의 영력이 체내에 스며들어 음산한 구태음의 영력을 없애려는 것을 느끼고는 깜짝 놀랐다.

“그만 멈추거라. 구태음의 영력이 네 몸에 스며들면 큰일이란다.”

한편, 구태음은 무덤덤하게 웃으며 상황을 살폈다. 그의 영력은 태음지정(太陰之晶)과 융합했기에 그 속에 깃든 음산한 힘이 엄청났다. 같은 5급 지존의 체내에 그의 음산한 영력이 깃들어도 떨쳐내기 힘든데 3급 지존밖에 안 되는 목진이라면 바로 전투력을 잃을 것이다.

그는 목진이 진종을 도와주려고 다가가자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겁도 없이 함부로 덤비다니…….”

진종의 충고에 목진이 방긋 웃더니 보라색 화염을 소환해 상대방의 체내에 쏘자 잇따라 하얀색 연기가 일었다.

진종은 체내의 음산한 기운이 빠르게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이건…… 불사화냐?”

진종은 흠칫 놀라 목진을 쳐다봤다. 소년은 영력을 불사화와 융합해 구태음의 음산한 기운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이에 목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거뒀다.

그 모습에 목진을 바라보는 눈빛들이 달라졌다. 다들 3품 지존밖에 안 되는 소년의 수단에 깜짝 놀랐다.

“고맙구나.”

진종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는 안색이 어두워진 구태음을 힐끗 보며 말했다.

“조심하거라, 녀석은 절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란다.”

목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구태음이 얼마나 강한지 잘 알고 있었다. 그와의 대결에서 승리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어려워도 목진은 물러날 수 없었다. 진종이 패배한 상황에서 그마저 물러나면 구태음이 10번째 왕이 될 것이고 그리되면 그는 신수 열 마리의 정혈을 얻지 못해 용봉진경을 수련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래서 목진은 반드시 구태음과 싸워야만 했다.

진종은 결연한 목진의 표정을 보고는 더는 뭐라 하지 않고 소년의 어깨를 다독이고는 봉왕대에서 물러났다.

“목진 통령, 제법이구나. 용봉천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법하구나.”

구태음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고 목진은 피식 웃으며 상대방을 노려봤다.

“나도 너처럼 훌륭한 젊은이를 아끼긴 하는데 적한테는 그리 너그러운 편이 아니란다. 봉왕대에 올라온 대가는 반드시 치러야 할 것이다.”

구태음은 음산한 눈빛으로 목진을 노려보더니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봉왕대 대결은 생사를 막론한 싸움이라 아무도 널 구할 수 없을 것이다.”

쿵!

구태음은 말을 마치자마자 5품 지존의 웅장한 영력을 한껏 끌어올렸고 그 강력한 위압감은 파도처럼 휘몰아치며 목진에게 향했다.

일반 3품 지존이었다면 이토록 강력한 위압감에 바로 주저앉았겠지만 어쩐 일인지 목진은 전혀 두려워 보이지 않았다.

목진이 눈을 감자 머리카락이 빠르게 자라나 축 드리워졌고 다시 눈을 뜨자 눈동자가 흑과 백 두 가지 색으로 변해 상당히 괴이해 보였다.

소심마상태!

목진이 주먹을 꽉 쥐자 보라색 화염이 깃든 영력과 무형의 벼락이 번쩍이는 영력이 동시에 손바닥에 생성되었는데 부동한 속성을 띤 두 가지 영력은 소심마상태에서 완벽하게 융합되어 상대방이 형성한 위압감을 순식간에 떨쳐냈다.

소심마상태에 이른 목진은 절대적인 이성과 냉정함을 유지한 채 무뚝뚝한 표정으로 구태음을 노려봤다.

이에 구태음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비록 그의 실력은 목진을 훨씬 뛰어넘지만 소심마상태의 목진은 어쩐지 이상했기 때문에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3품 지존 따위가 강해봤자지.”

구태음이 피식 웃으며 손가락을 튕기자 기의 회오리가 거대한 검은색 이무기처럼 날아올랐는데 그 속에 음산한 영력이 가득 찼다.

목진은 뒤로 물러나며 왼손을 내밀어 보라색 화염이 깃든 기의 회오리로 상대방의 공격에 맞섰고 오른손은 구태음을 향해 휘둘렀다.

구태음은 무형의 벼락이 번쩍이는 목진의 오른손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흠칫 놀랐는데, 갑자기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뇌음이 울려 퍼졌다.

꽈르릉!

뇌음과 함께 구태음은 온몸을 파르르 떨었고 체내의 영력이 순간 무질서해졌다.

슉!

그때 목진은 대서미마주를 소환해 한데 부딪친 기의 회오리를 넘어 전력 질주하며 구태음에게 향했다.

구태음이 온몸을 파르르 떨자 영력이 부딪치며 음파를 형성해 빠르게 체내의 뇌음을 제압하였고 바로 뒤로 손을 휘둘렀다.

쿵!

구태음의 검은색 손바닥이 대서미마주에 닿자 공간이 진동하며 아래쪽 대지가 부서졌다. 목진은 대서미마주와 함께 지면에 긴 흔적을 남기며 뒤로 물러났는데 상대방이 그의 공격을 막아낸 것에 전혀 놀라지 않은 눈치였다.

“실력은 그럭저럭인데 괴이한 수단이 제법 많구나. 이것으로 수많은 사람을 꺾고 용봉록 3위가 된 모양이지. 하지만 5품과 3품 지존경 사이의 실력 차이는 이따위 수단으로 보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다!”

구태음은 예상치 못한 공격에 화가 난 듯했다. 그러나 3품 지존밖에 안 되는 녀석은 5품 지존경인 그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는 목진을 노려보며 허공에 떠 오르더니 음산한 영력을 부단히 방출해 실체를 이룬 파문을 이뤘다.

“태음빙뢰(太陰冰牢)!”

잇따라 구태음이 인법을 바꾸고 목진을 향해 주먹을 꽉 쥐자 목진의 아래쪽 대지가 부서지며 그 속에서 어두운 영력이 솟구쳐 검은색 한빙 감옥을 만들어 목진을 구속하였다.

“봉인하라!”

구태음이 씨익 웃으며 주먹을 쥐자 한빙 감옥은 신속하게 작아졌고 어두운 한기가 미친 듯이 목진의 몸을 침범했다. 이는 4품 지존을 순식간에 얼리고도 남을 위력이었다.

그들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아쉬운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목진이 아무리 수단과 방법이 많아도 절대 이 정도의 영력 제압에서는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한편, 한빙 감옥에 갇힌 목진은 보라색 화염으로 온몸을 휘감은 채 한기를 떨쳐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불사화가 아무리 강해도 목진의 영력에 한계가 있어 구태음의 영력 구속에서 자유로워지기가 어려웠다.

목진은 3품 지존경의 영력으로 5품 지존경인 구태음을 상대하기가 버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3품 지존으로는 안 된단 말인가…….”

목진은 잠시 중얼거리더니 갑자기 눈을 감으며 합장했다.

‘3품 지존경으로 안 되면 돌파해야지!’

검은색 한빙으로 만들어진 감옥에 흐르는 검은색 한기는 체내의 영력을 얼릴 정도였는데 목진은 그 속에 조용히 서서 두 눈을 감은 채 합장하였다.

잇따라 ‘위잉!’ 하는 소리와 함께 목진의 체내에서 웅장한 영력이 솟구쳐 몸 곳곳에 퍼졌고 영력 위압감도 놀라운 속도로 상승해 높은 단계로 향했다.

목진은 용봉천의 세례를 거쳐 실력이 이미 3품 지존경 정상에 이르렀지만 여태껏 돌파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속도가 너무 빠르면 어렵게 다진 기초가 흔들릴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여 그는 수많은 용봉 정혈을 제련했지만 꾹 참고 3품 지존경에 머물렀다. 4품 지존경에 이르면 구태음을 상대하기가 훨씬 수월해질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 후로 대라천역에 돌아와 보름 동안 수련해서야 목진은 용봉천에서 얻은 힘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었고, 현재 그의 영력은 흘러넘칠 지경이었다. 조금만 힘을 주면 곧 4품 지존경에 이를 것이다.

구경꾼들은 아쉬운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빙 감옥을 바라봤다. 다들 목진이 패배할 거라 확신했다.

3품 지존이 감당하기에 5품 지존의 실력은 너무 강했다.

“구유 언니, 목진은…….”

당빙 등은 목진이 걱정되어 말을 건넸고 구유는 한빙 감옥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그 속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파동에 잠시 말을 아꼈다.

“이제 이 지긋지긋한 대결을 끝내야겠구나.”

구태음이 무덤덤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목진이 자신보다 훨씬 못하다고 생각했다. 제아무리 수단과 방법이 많아도 3품 지존과 5품 지존 사이의 차이를 보완하기에는 부족했다.

구태음은 최근 북계에 이름을 날린 젊은 천재를 짓밟을 생각에 괜히 으쓱했다. 젊은 천재든 뭐든 결국 그가 원하는 대로 쥐락펴락할 수 있으니까.

이러한 생각에 구태음은 검은색 한빙 감옥을 향해 손을 들어 올리더니 주먹을 꽉 쥐었다.

쿵!

그런데 그때, 그 속에서 갑자기 화산이 폭발하듯 웅장하고 뜨거운 영력이 방출되었다.

보라색 화염과 무형의 벼락이 깃든 강대한 영력은 난폭하기 그지없었고 양기가 흘러넘쳐 한빙 감옥을 순식간에 녹여버렸다.

“뭐지?”

구태음은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고 구경꾼들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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