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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516화 (515/1,000)

516화. 왕의 책봉식

구태음은 검은색 얼음 방패를 순식간에 뚫은 검은빛 기둥을 보더니 그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알아차렸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한기를 내뿜은 검은빛 기둥은 이미 공간을 가르며 그의 태음 법신에 꽂혔다.

잇따라 태음법신에 검은색 꽃무늬가 놀라운 속도로 퍼져 녀석의 방대한 영력을 와해시켰다.

구태음은 이를 발견하고 한껏 어두워진 얼굴로 상황을 모면해보려고 노력했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뭐지!”

구태음은 속으로 포효하며 애를 써봤지만 1각도 안 되는 사이에 태음법신 주위에 맴돌던 음산한 힘은 점차 사라졌고 방대한 몸도 빠르게 투명해졌다. 이는 영력이 더는 지존법신을 지탱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이와 동시에, 구태음도 안색이 점차 창백해졌다. 지존법신은 본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지존법신의 영력이 사라지는 것은 그한테도 엄청난 타격이었다.

구태음은 목진의 괴이한 영진 공격에 화들짝 놀랐다. 검은빛 기둥은 분명 아무런 파괴력도 없는데 영력을 사라지게 하는 괴이한 능력은 치명적이었다.

잠시 후, 점차 투명해지던 태음법신은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폭발했고 수많은 검은색 광점이 되어 우수수 떨어졌다.

풉.

지존법신이 부서지자 구태음은 온몸을 파르르 떨며 피를 토했다. 그의 영력은 거의 바닥이 났다.

한편, 허공에 서서 무덤덤한 표정으로 구태음을 바라보던 목진이 인법을 바꾸자 흑련 네 송이는 다시 꽃술을 움직여 구태음을 조준한 뒤, 검은빛을 발사하였다.

구태음은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목진이 아직도 공격할 힘이 남았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지존법신이 파괴된 지금, 공격을 받으면 분명 육신에 중상을 입을 것이다. 이에 그는 황급히 외쳤다.

“목진, 설마 나를 죽일 셈이냐?”

그런데 목진은 못 들은 척 빠르게 흑련의 꽃술에 검은빛을 모았다.

“젠장, 내가 졌다!”

구태음은 살기 가득한 목진의 모습에 깜짝 놀라 패배를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에 사람들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절대적인 우세를 차지했던 구태음이 스스로 패배를 인정할 줄이야. 이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목진은 그제야 미소를 지었는데 그의 검은색 장발은 빠르게 짧아졌고 괴상해졌던 눈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소심마상태에서 벗어난 목진은 다시 생기를 되찾았다.

“구 종주님, 감사해요.”

목진은 씨익 웃으며 검은색 흑련을 거두었는데 눈빛이 한층 어두워졌다. 그는 영력이 바닥나 더는 싸울 여력이 없었다.

그가 구태음을 죽이려 했던 것은 연기일 뿐이었다!

사람들은 흠칫하더니 피식 웃으며 동정 어린 눈빛으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구태음을 쳐다봤다. 구태음은 자신보다 나이가 한참이나 어린 목진의 수에 넘어간 것이다.

구태음은 영력이 거의 바닥나긴 했지만 아직 싸울 힘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목진은 아마 움직이기조차 어려웠을 것이다.

게다가 4품 지존에 이른지 하루도 채 안 되어 체내의 영력이 불안정한 상태였다.

그런데 목진의 연기에 구태음이 벌벌 떨며 패배를 인정하였으니, 사람들은 목진이 정말 교활하단 생각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사람들의 나지막한 웃음소리에 구태음은 온몸을 파르르 떨며 목진을 노려봤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비웃는 것 같아서 너무 화가 났다. 오늘이 지나면 이 대결이 그한테 얼마나 큰 타격을 줄지 충분히 예상되었다.

“네 이 녀석, 죽어!”

어느새 혈안이 된 구태음은 이성을 잃고 포효하며 주먹을 꽉 쥐었는데 수중에 유백색 옥책이 나타났다. 상당히 복잡한 부적이 새겨진 옥책에서 난폭하기 그지없는 영력 파동이 전해졌다.

슉!

한껏 일그러진 표정을 한 구태음이 팔을 떨자 유백색 옥책은 하늘 높이 솟구치다가 폭발하며 난폭한 영력이 휘몰아쳤는데 이는 곧 분노의 사자로 변해 목진을 공격했다.

9왕은 지극히 무서운 영력 파동을 내뿜는 사자의 등장에 흠칫 놀랐다.

“현천사인(玄天獅印)이란 말인가?”

3황은 옥책의 정체를 알아채고 안색이 어두워졌다. 현천사인은 천현전의 최정예만 수련할 수 있는 엄청난 수련술이었다.

영력으로 이뤄진 거대한 분노의 사자가 목진 앞에 나타나자 그의 무서운 영력 위압감에 목진은 한없이 작아졌다. 잇따라 분노의 사자는 입을 쩍 벌리며 목진을 집어삼키려 했다. 아무리 4품 지존이라도 녀석의 공격에 즉사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힘이 빠진 목진은 영력으로 만들어진 분노의 사자를 그냥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퍽!

그런데 그때,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고 목진을 덮치던 분노의 사자 역시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사람들은 숨죽이고 상황을 지켜보았다.

목진은 그제야 긴장을 풀었다. 그의 앞에 여리여리한 소녀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목진의 앞쪽 공간에 파동이 일더니 여리여리한 소녀가 모습을 드러내자 목진은 완전히 긴장을 풀었다.

한편, 목진의 앞에 나타난 만다라는 한기 어린 눈빛으로 목진에게 향하고 있는 분노의 사자를 바라보더니 손을 뻗어 녀석을 가볍게 때렸다.

퍽!

그녀의 가벼운 손짓에 분노의 사자는 유리창 깨지듯 와장창 부서졌다.

잇따라 만다라가 무덤덤한 표정으로 주먹을 꽉 쥐자 분노의 사자가 와장창 깨졌고 수많은 광점이 그녀의 손바닥에 모이더니 영력 빛덩이를 이뤘다. 난폭하던 영력은 그녀의 손에서 온순한 양처럼 조용했다.

영력 빛덩이를 만지작거리던 만다라는 고개를 들어 안색이 창백해진 구태음을 노려보며 말했다.

“현천사인은 천현전에만 있는 물건인데, 너는 무슨 수로 이것을 얻은 것이냐?”

만다라의 말에 다들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구태음을 쳐다봤다. 대라천역은 천현전과 적이었다. 그런데 구태음이 그곳에만 존재하는 물건을 지녔다는 것은 충분히 의심받을 만한 일이었다.

이에 구태음은 온몸을 파르르 떨며 한껏 질린 얼굴로 만다라를 힐끗거렸다. 그는 현천사인을 꺼내자마자 바로 후회했다. 목진 때문에 이성을 잃고 이런 짓까지 저지를 줄은 몰랐다.

“역…… 역주님, 현천사인은 소인이 임무 중 천현전의 강자를 죽이고 얻은 물건입니다.”

구태음의 말도 안 되는 대답에 만다라는 두 눈을 부릅뜨고 녀석을 쳐다봤다.

“정녕 그런 것이냐? 현천사인은 독특한 방법으로만 수련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이는 천현전의 장로들한테만 주어지는 거라더구나. 그럼 넌 천현전의 장로를 죽이고 현천사인을 취한 것이냐?”

만다라의 한기 어린 말에 구태음은 소름이 쫙 돋았다.

“그러면 넌 천현전의 장로 중 누굴 죽인 것이냐? 왜 이토록 엄청난 공로를 숨긴 것이냐? 네가 정녕 천현전의 장로를 죽였다면 승패와 상관없이 난 너를 왕으로 책봉할 것이다.”

만다라의 말에 구태음은 식은땀이 나서 등이 푹 젖었다. 그는 소녀가 너무 무서웠다. 또 사람들의 눈빛에서 오는 무서운 압력에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쿵!

구태음은 더는 참지 못하고 포효하며 체내의 영력을 미친 듯이 방출하더니 한 줄기 빛이 되어 신속하게 대라천 밖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만다라가 손을 가볍게 휘두르자 순간 그가 있던 공간이 응고되었고 구태음의 몸은 꿈쩍도 하지 못했다.

잇따라 만다라가 손가락을 튕기자 구태음은 다시 봉왕대로 향하며 몸 전체가 바닥에 꽂혔고 체내의 영력은 전부 사라졌다.

“저놈을 가두거라. 천현전이 대라천역에 첩자를 적잖게 뿌린 것 같은데 저놈이라면 어느 정도 알 것 같구나.”

만다라의 말에 집법 부대가 나타나더니 체내의 영력이 완전히 사라진 구태음을 끌고 빠르게 사라졌다.

사람들은 구태음과 허공에 떠 있는 만다라를 번갈아 보며 숨조차 크게 쉬지 못했다. 다들 만다라가 잔뜩 화가 났음을 알아챘다.

“곧 대수렵전이 다가온다. 너희는 이것이 뭘 의미하는지 잘 알 거다. 우리 대라천역은 북계의 정예 세력이지만 대수렵전에서 패배하면 사라질 위험이 있다. 그러면 너희는 지위와 우리의 보호를 잃을 것이다.”

만다라가 무덤덤하게 내뱉은 말에 사람들은 흠칫하였다. 북계처럼 경쟁이 치열한 곳에서 대라천역 같이 방대한 세력의 보호 없이 수련하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

“대라천역의 보호를 잃고 누군가의 사냥감이 되고 싶지 않으면 너희들의 충성을 보이거라. 본좌는 대라천역에 충성하는 사람을 절대 박대하지 않을 것이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사람들은 경외의 마음을 담아 외쳤다. 그들이 북계에서 끊임없는 자원을 누리며 수련할 수 있었던 것은 지지존인 만다라의 보호가 있기 때문이었다.

목진은 조용히 서서 상황을 살폈는데 지지존이 지닌 힘에 적잖게 놀랐다. 이 정도 실력을 지녀야만 한 세력을 보호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봉왕제의 승패의 결과가 났으니 오늘부터 목진은 대라천역의 10번째 왕이 되었음을 선포한다.”

만다라가 목진을 바라보며 말했고 사람들은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대라천역의 왕이 되었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일이었다.

왕들도 이내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목진을 노려보던 혈응왕의 눈빛에는 경계와 후회로 가득 찼다. 그는 목진이 이렇게까지 빨리 성장할 줄 몰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는 절대 목진을 괴롭히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래가 창창한 사람을 적으로 돌린 것은 더없이 멍청한 짓이었다.

“왕이 되면 자신의 세력을 가질 자격이 주어져.”

만다라가 목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왕이 되면 대라천역이 제공하는 대량의 자원을 얻을 수 있는데 이는 다른 9왕과 비슷한 규모의 세력을 구축하기에 충분했다. 비록 이들의 실력을 끌어올리기까지 일정한 시간이 필요했지만 말이다.

사람들은 목진이 입을 열기만을 기다렸다. 특히, 구유궁 사람들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목진을 바라봤다.

목진이 자기 세력을 가지려면 구유궁에서 벗어나야 하고 구유궁 통령의 신분도 포기해야 하는데 앞으로 가질 세력이 구유궁과 아무리 사이가 좋아도 한 가족이 되기는 힘들 것이다.

구유궁 사람들은 그가 아니었으면 지금처럼 허리를 곧게 펴고 다닐 수 없었을 것이다.

“히히, 목진은 참 대단한 것 같아요. 이렇게나 빨리 왕이 되다니 말이에요.”

당유는 단순해서 히쭉 웃으며 목진이 왕이 된 것에 기뻐했는데 옆에 서 있던 당빙은 그런 동생을 흘겨보며 씩씩거렸다. 구유궁이 이대로 목진을 잃으면 엄청난 타격을 받을 것이다. 비록 목진 탓은 아니었지만 왕과 통령의 차이는 엄청났다.

반면, 구유는 무덤덤하게 서 있었다. 걱정은커녕 미소를 지으며 목진을 바라봤다. 그녀는 목진과 혈맥을 연결한 사이라 소년에게 자기 세력이 생긴다고 해도 전혀 걱정되지 않았다.

목진도 만다라의 말에 멈칫하더니 구유궁 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그들의 표정을 보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난 세력을 따로 만들지 않고 계속 구유궁에 남을 거야. 그렇다고 나한테 왕이 누려야 마땅할 자원을 주지 않는 건 아니겠지?”

구유궁에 있는 동안 세력을 만들어 키우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번거로운 일인지 알게 되었고, 이곳에 정력을 쏟으면 수련에 영향을 줄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따로 세력을 만들어 원하던 길에서 멀어지고 싶지 않았다.

또한, 그는 구유궁 사람들을 충분히 움직일 수가 있었고, 그가 뭘 하든 구유가 막아서지 않을 거란 걸 알았다. 그러니 굳이 따로 나와 세력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

목진의 말에 사람들은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들 지금껏 대라천역에서 생활하면서 자신의 세력을 갖출 기회를 포기하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 세력을 갖추면 자신만의 군대는 물론이고 재산도 온전히 자신만의 것이 될 텐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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