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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518화 (517/1,000)

518화. 신혈로 몸을 적시다

“무슨 근거가 있어?”

“대수렵전을 어디서 개최하는지 알아?”

만다라가 고개를 기웃거리며 묻자 목진은 흠칫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운락 전장(隕落戰場)이지 아마?”

운락 전장은 북계의 금지 구역으로 원고 시기, 역외 사족이 대천세계에 왔을 때 북계까지 쫓아와 천라대륙에서 파국에 이른 전쟁을 터트렸는데 운락 전장이 바로 저들이 싸웠던 곳 중 한 군데였다. 수많은 강자가 이곳에서 죽음을 맞아 다들 이를 운락 전장이라 불렀다. 운락이란 이름만으로도 그날의 전쟁이 얼마나 처참했을지 상상이 갔다.

그 외, 운락 전장에는 수많은 강자의 계승이 깃들어있었는데 그중에 지지존급 강자의 계승도 적잖게 존재하여 한때는 사람들이 혈안이 되어 뛰어들었지만 살아 돌아온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곳에서 죽은 사람이 너무 많아 그 속에 있는 영력은 난폭한 화산처럼 시도 때도 없이 폭발해 영력 돌풍을 이뤘는데 이는 지지존이라도 차마 무시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에 운락 전장은 북계에서 불길한 땅으로 유명해졌고 자연스레 금지 구역이 되었다.

“그래, 바로 운락 전장이야.”

만다라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상고 시기에 지지존급 강자들이 운락 전장에서 죽음을 맞았는데 대수렵전의 최종 목표가 바로 그곳에서 별세한 지지존들이야.”

이에 목진은 흠칫 놀랐다.

“영신액이라고 들어봤어?”

만다라가 재차 질문하자 목진은 멍하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지존급 강자 한 명이 별세하면 그의 지존해는 시간이 지나면서 풍화되는데 그게 어느 정도 진행되면 영신액을 형성해. 이것이 바로 그의 최후의 진수야.”

영신액에 관해 설명하던 만다라는 이내 입맛을 다셨다. 영신액은 아무리 그라도 탐날 수밖에 없는 엄청난 보물이었다.

“영신액은 나처럼 지지존에 오른 사람들한테 상당히 중요해. 다만, 운락 전장 내부의 영력 돌풍이 너무 강력해 돌풍의 세기가 조금 줄어드는 특정한 시기가 아니면 무턱대고 뛰어들었다가는 다시는 나오지 못하는 수가 있어. 그리고 그 특정한 시기에 대수렵전을 여는 거야.

신각은 대수렵전을 다섯 차례나 치르고도 사라지지 않았고 신각 각주는 북계의 정예 세력 중에서 영신액을 가장 많이 얻은 사람으로 이미 하위 지지존 정상을 넘어 곧 상위 지지존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들었어. 하여 그가 이번에 또 영신액을 얻으면 온전히 상위 지지존의 경지에 이를 거야. 그 밖에 유명궁 등 정예 세력의 지배자들도 그럴 가능성이 농후해.”

만다라는 한껏 정색하며 말을 이어갔다.

“누구든 일단 상위 지지존의 경지에 이르면 나머지 세력을 휘어잡고 북계를 일통하는 절대적인 권력자가 될 거야.”

“상위 지지존이라…….”

목진은 인상을 찌푸린 채 만다라의 말을 경청했다. 그녀가 언급한 등급은 목진한테는 너무 멀고도 낯설었다.

“지지존도 경지의 차이가 존재하는데 보통 하위 지지존, 상위 지지존과 대원만 지지존으로 나눠.”

만다라는 바로 목진의 생각을 읽고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이들 사이의 차이는 엄청나. 현재 북계의 정예 세력의 지배자들은 전부 하위 지지존이지만 신각 각주가 이번 대수렵전에서 영신액을 얻어 경지를 돌파하면 상황은 상당히 복잡해질 거야.”

만다라의 말에 목진도 한껏 정색하였다. 그는 여태껏 지지존은 실력이 엄청난 강자라고만 생각했지 부동한 등급의 지지존의 실력 차이가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

더구나 만다라의 말에 의하면 영신액은 지지존들이 꿈에도 그리는 물건이었고 대수렵전은 바로 이 영신액 때문에 벌어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낙리의 할아버지는 어느 등급일까?’

목진은 문득 북창령원에서 마주쳤던 낙천신이 떠 올랐다. 그분은 만다라보다 강할 것 같았다.

“이번 대수렵전은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싸움이 될 거야.”

말을 마친 만다라가 이내 미소를 지었는데 두려움 대신, 전투의 의지로 활활 타올랐다.

“이번 기회로 과연 누가 경지를 돌파할지 보자꾸나!”

만다라는 하늘을 쳐다보며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훈련장의 돌사자 위에 앉아있던 목진은 싸울 의지를 활활 불태우는 만다라를 보고 있으니 저도 모르게 소름이 끼쳤다.

그는 귀여운 소녀가 전쟁을 전혀 꺼리지 않는 것이 조금 의외였다. 다른 세력들은 피하기 바쁜 대수렵전이 그녀한테는 오히려 좋은 기회인 것 같았다.

그렇다고 다른 세력이 절대 호락호락한 것은 아니었다. 모두 북계의 정예 세력들로 아무나 감히 덤빌 수 없었다.

대수렵전을 시작하기도 전인데 대라천역에 짙은 피비린내가 나는 것 같았고 이를 치르고 나면 어느 세력이 사라질지 자못 궁금했다.

그러나 결과가 어떻든 북계에 상당한 파동이 일 거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정예 세력이 확보한 땅과 자원이 탐나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었다.

만다라는 바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목진한테 고개를 돌렸다.

“혹시 상고의 천궁이라고 알아?”

갑작스러운 소녀의 질문에 목진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고는 이내 화색이 되어 만다라를 쳐다봤다.

목진이 구유와 함께 대라천역에 온 목적이 바로 상고의 천궁 때문이었다.

상고의 천궁에 신비로운 종잇조각이 있는데 이는 대일불멸신에 엄청난 도움이 될 정보가 적혀 있었다!

“네가 천라대륙에 온 게 바로 상고의 천궁 때문이구나.”

만다라는 무덤덤하게 웃으며 목진을 쳐다봤다.

“그렇게 놀랄 거 없어. 네가 대일불멸신을 수련했으니 그에 관한 정보를 알고 있는 것도 당연해. 그리고 상고의 천궁에는 네가 원하는 것이 분명 있어.”

목진은 만다라의 말에 너무 흥분한 나머지 호흡마저 가빠졌다. 그는 대라천역에서 생활하면서 상고의 천궁이 확실히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적어도 제대로 찾아왔다는 것만은 명확해졌다. 대라천역에는 확실히 그가 원하는 물건이 있었다.

“상고의 천궁이 어디 있는지 알아?”

목진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묻자 만다라는 입을 삐쭉 내밀며 답했다.

“상고의 천궁이 천라대륙에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아무도 그 구체적인 위치를 몰라. 내 생각에 그곳은 독립적인 공간에 있고 엄청난 인물로 인해 봉인된 것 같아.”

“지지존인 너마저 찾아내지 못한단 말이야?”

목진이 말에 만다라는 괜히 그를 흘겨보며 답했다.

“상고의 천궁은 원고 때에도 대천세계에서 상당히 유명한 세력이고 천궁의 주인은 최정예 강자인데 그런 사람이 친 봉인을 지지존 따위가 찾아내거나 뚫을 수 있을까?”

이에 목진은 머쓱하게 웃더니 역시 실력자들이 정말 많다는 걸 느꼈다.

“내가 상고의 천궁을 찾아낼 수는 없지만 그곳의 최정예 강자 한 분이 운락 전장에서 숨졌어. 그쪽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아.”

만다라의 말에 목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소식의 진위 여부는 모르겠지만 무턱대고 찾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그가 천라대륙에 온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나머지 신비로운 종이를 얻기 위해서였다.

신비로운 종이는 그가 진정한 강자가 되는 데 엄청난 힘이 되어줄 물건이었고, 언젠가 그의 대일불멸신이 만고불후신으로 진화한다면 그야말로 대천세계에 명성을 떨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목진은 낙신족과 어머니께서 계시는 신비로운 종족을 막론하고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운락 전장만큼은 반드시 가봐야겠군.”

목진은 운락 전장에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설로만 남겨진 만고불후신을 꼭 수련해내고 싶었다.

* * *

목진은 남은 이틀 동안 구유위와 함께 훈련하면서 본인의 수련에도 박차를 가했다. 대수렵전은 북계 전체 정예 세력이 참가하는 것만큼 그 규모도 엄청났다. 그가 비록 대라천역의 왕이 되었지만 이 엄청난 전쟁에서 보탬이 될 수 있는 부분은 상당히 적을 것이다.

또한, 일단 전쟁을 시작하면 아무리 만다라라도 모든 사람을 보살필 수는 없기에 다들 스스로 실력을 최대한 끌어올려야만 했다.

목진은 아직 4품 지존에 이른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체내의 영력도 이제야 안정되었다. 게다가 다시 경지를 돌파하는 것은 무모한 선택이었으니, 실력을 끌어올리려면 다른 수단에 의지해야만 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용봉진경이었는데 꽤 괜찮은 선택이었다.

그는 구유궁의 깊숙한 곳에 있는 텅 빈 석지 밖에 조용히 앉아 눈부신 빛의 무늬가 아른거리는 옥병 열 개를 꺼냈다. 빛의 무늬는 그 속의 난폭한 힘이 갑자기 폭발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했다.

목진은 옥병 열 개를 바라보더니 이내 정색하였다. 그가 용봉천에서 말로만 듣던 용봉체를 수련하긴 했지만 아직은 초급단계로 육신을 조금 강하게 했을 뿐이었다. 진정한 용과 진정한 봉황의 힘과 비슷한 정도가 되려면 상당히 험난한 수련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리고 용봉진경의 수련이 바로 그 시작이었다.

목진은 옷을 모조리 벗었는데 소년의 몸에 깃든 무서운 힘이 충분히 느껴졌다. 가슴팍과 등에 새겨진 진정한 용과 진정한 봉황의 무늬가 아른거렸다.

그는 고개를 숙여 진정한 용과 진정한 봉황의 무늬를 만지며 쳐다봤는데 이는 그저 무늬가 아니라 살아 숨을 쉬는 생물인 것 같아 신기한 느낌이 들었다.

용봉진경에 의하면 목진의 가슴팍과 등에 새겨진 두 무늬는 진정한 용과 진정한 봉황의 영이라 불러야 마땅했다. 이는 그 속에 용과 봉황이 남긴 진령이 있기 때문인데 일정한 양의 신수 정혈의 힘을 빌려야 이를 제대로 활성화를 시켜 목진에게 더 강한 힘을 부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단계를 마치면 화형 단계에 이르는데 그때가 되면 진정한 용과 진정한 봉황의 무늬가 몸에서 벗어나 제대로 각성할 수 있다. 마지막은 용봉현세로 이름만 봐도 그 뜻을 알 수 있다.

하여 첫 단계인 진령을 활성화하는 것부터 시작하려는 것이다.

후우.

목진은 숨을 가볍게 내쉬며 마음을 가다듬고는 바로 손가락을 튕겼는데 영광이 옥병 중 한 개를 부쉈고 그 속에서 암홍색의 진득한 액체 몇 방울이 떨어졌다. 그리고 어느 정도 속도가 붙더니 물결 소리가 들려왔다.

정혈은 결국 거대한 석지 속에 떨어지더니 놀라운 속도로 팽창해 눈 깜짝할 사이에 석지를 들끓는 혈지로 만들었다.

이는 난폭한 영력과 짙은 피비린내를 풍기며 부단히 석지를 부식하려 했는데 목진은 특수한 재질로 만들어진 석지를 준비했는지라 끄떡없었다.

“역시 원고구두사의 정혈은 남달라.”

목진은 들끓는 혈지를 보며 이내 감탄했다. 정혈 몇 방울만으로 혈지를 이룰 수 있다니, 원고구두사가 신수방에 이름을 올린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전혀 제련하지 않은 거라 공격성이 상당했는데 목진이 원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처럼 가장 원시적인 신수의 정혈이라야 진정한 용과 진정한 봉황의 진령을 깨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과정이 괴로울지라도 말이다.

이에 목진은 들끓는 혈지를 바라보며 주먹을 꽉 쥐고는 발가벗은 몸으로 그 속에 뛰어들었다.

철썩.

목진이 사방에 피를 튕기며 그 속에 들어앉아 결인하자 혈지가 요동치며 선홍색 소용돌이를 만들었는데 그 중심에 목진이 앉아있었다.

그때, 혈지 내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는데 혈액이 요동치며 소형의 선홍색 구두사를 만들어 목진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목진은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온몸을 격렬하게 떨었고 안색마저 조금 창백해졌지만 아직 정신을 잃을 정도는 아니였다. 그는 깊게 숨을 들이켜며 인법을 바꿔 용봉진경을 소환했다.

잇따라 목진의 가슴팍과 등에 새겨진 진정한 용과 진정한 봉황의 무늬에서 영광을 발하자 나지막한 용음과 봉황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는데 소형의 선홍색 구두사가 갈기갈기 찢어져 진정한 용과 진정한 봉황의 무늬에 스며들었다.

원고구두사의 정혈이 난폭하기는 해도 진정한 용과 진정한 봉황의 진령한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목진은 지금부터가 진정한 고통의 시작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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